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 * *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초점이 뚜렷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듯 바라봤다.
나는 당과를 한참 우물거려 꿀꺽 넘기고 나서 입을 열 수 있었다.
“······류청?”
그러자 소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남궁류청이 하던 행동이었다.
‘와, 진짜 남궁류청이잖아!’
기도가 완전히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단단하고 강한 기세가 느껴졌다.
아직 완벽하게 갈무리하지는 못한 듯 보였다.
푸른빛의 경장에 짙은 감색 장포를 걸친 남궁류청은 이제는 어린 티를 벗어내고 완연한 소년미가 느껴지는 용모를 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뚜렷한 눈매, 높게 솟은 콧날과 굳은 입매에서는 남궁완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고,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며 드러난 눈망울에서는 소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남궁류청 옆으로 한 소녀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연분홍색 경장 위로 긴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나도 있어!”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직 애티를 완전히 벗진 못했지만, 길을 걸어가면 열에 아홉은 뒤를 돌아볼 듯한 미인이었다. 거기다 안정적인 기파에서 느껴지는 실력도 꽤 좋아 보였다.
내 침묵에 소녀의 입꼬리가 늘어졌다.
“뭐야, 나 잊어버린 거야?”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나서야 알았다.
“설마······ 서하령?”
“맞아! 오랜만이야!”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얼떨떨하게 서하령을 마주안았다.
아니······ 아니······ 아니?
‘얘가 정말 서하령이라고?’
미쳤다······. 장난 아닌데? 남궁류청도 어마어마하게 잘생겨졌지만, 걔는 원래 어릴 때도 남달랐다.
서하령도 꽤 예쁘장하게 생겼었지만, 워낙 지저분하게 다녔던지라 이렇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천지개벽 수준으로 느껴졌다.
고작 4년밖에 안 지났는데 사람이 이렇게 변하다니?
그때 석가약이 말했다.
“오, 쟤가 그?”
“아, 응.”
나는 서하령을 밀어내며 옆을 돌아보았다.
석가약이 눈이 마주친 서하령을 향해 묵례하고 내게 계속 말했다.
“오늘은 그럼 못 오겠네?”
“아, 그렇겠네.”
원래 오늘 석 태의께 의술을 배우러 가는 날이었다. 뱃놀이에서 일찍 나온 이유기도 했다.
“태의께 죄송하다고 전해 줘.”
석가약이 말에 올라타며 가볍게 말했다.
“그래. 다음에 봐.”
“응. 잘 가.”
“아, 이건 너 다 먹어.”
석가약이 내게 당과가 들어 있는 봉지를 건네고 고삐를 당겼다.
나는 멀어지는 석가약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소저, 오랜만입니다.”
나는 남궁류청 뒤쪽으로 시선을 두었다가 생긋 웃었다.
“수염이 아주 멋지네요!”
“그렇습니까?”
심 부관이 4년 새 기른 듯한 멋들어진 수염을 뿌듯하게 쓰다듬었다.
옆에서 서하령이 물었다.
“그런데 쟤는 누구야?”
“같은 학당 다니는 친우.”
내 설명에 서하령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석가약이 떠난 방향을 보았다.
“그래? 신기하네.”
“뭐가?”
“류청이 누군지 아는 거 아냐?”
“알지.”
“근데 그냥 바로 갔잖아.”
“아······!”
보통 남궁 세가 공자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통성명은 하려고 들겠지.’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쟤가 원래 좀 저래.”
쟤는 우리 할아버지한테도 저랬는걸······.
“거기다 날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했어.”
“······.”
이 자신감······ 뭐지?
잠시 당황한 눈으로 서하령을 보다가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남궁류청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오시는 거 아녔어?”
“아버지는 일이 생기셨어.”
“그래?”
이상하네. 저번 생에는 남궁완 아저씨가 오셨고, 별문제 없었는데.
나는 의문을 미루며 서하령을 돌아보았다.
얘도 저번에는 오지 않았다. 저번 생만 따지면 얜 나랑 교류라고 할 것도 없었다.
“너는 어떻게 온 거야?”
“쟤 따라왔지! 근데 쟤가 주고 간 거 뭐야? 당과? 나도 먹을래!”
* * *
백리 세가 대문 앞은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온갖 마차와 말들이 몰려들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모두 할아버지 산수연에 온 손님들이었다. 요 며칠 계속 이런 모습이었기에 익숙했다.
긴 줄도 늘어서 있었는데, 백리세가에 들어가기 위해 신분을 확인받기 위해 서 있는 이들이었다.
나를 선두로 일행들은 그 줄을 지나쳐갔다. 그 모습은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하기에 충분했다.
“어머어머, 저기, 저기 좀 보게.”
“헉, 세상에 저 훤칠한 소년은 누구래?”
“저 정도면 석 공자 못지않은데?
어디 사람이려나?”
여인들은 남궁류청에게 시선을 두었고.
“세상에 몇 년만 지나면 엄청난 미녀가 되겠는데! 대체 저런 소저가 어디서 나타난 거지?”
“허리의 검을 봐서는 무가 사람같은데.”
남자들은 서하령을 보고 감탄하기 바빴다. 서하령은 익숙한 듯 돌아보지도 않고 나를 향해 말했다.
“너 만나서 다행이다. 아니면 이 줄을 서야 했겠네.”
그리고 사람들은 그제야 나를 발견했다.
“음? 백리 소저잖아?”
“어떤 소저?
백리 소저가 둘이지 않소?”
“4공자의 외동딸인 큰 소저일세.”
“큰 소저가 왜 저들이랑 함께 있지?”
내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그건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 얘기다.
나를 알아 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건 아닐걸.”
“아, 맞다. 기억나? 옛날에 우리 만두 가게에 줄 섰었잖아.”
“기억나지.”
문지기가 나를 보고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오셨습니까, 아기씨. 함께 오신 분들은······?”
나는 뒤를 흘금 보았다.
입을 꾹 다문 남궁류청 뒤에서 심 부관이 나와 서신을 내밀었다.
곧이어 문지기의 눈이 커졌다.
“남궁 세가의 소공자셨군요! 오실 거란 전갈 받았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순간 사방에서 놀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소란을 뒤로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남궁 세가 정도면 할아버지께서 직접 초대장을 보냈으니 내가 없더라도 줄 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안내하러 나온 이를 물리고 직접 접객당으로 데려갔다.
“그럼 쉬고 있어.”
짐도 풀어야 할 테고.
‘저녁에나 다시 보겠군.’
내가 돌아 나갈 때, 서하령이 방에서 후다닥 뛰어나왔다.
“어디 가? 나 네 처소 구경할래!”
“응? 쉬는 게 좋지 않겠어? 씻고 옷도 갈아입고······.”
서하령이 눈을 부릅떴다.
“나 깨끗해! 오기 전에 객잔에서 씼었거든!”
“아니, 더럽다고 한 건 아니야.
피곤할까 봐.”
“괜찮아! 가자!”
나는 서하령에게 붙잡혀 접객당에서 끌려 나왔다.
‘4년 만에 만나서 어색한 건 나만인거야?’
나는 질질 끌려가다가 어이가 없어 말했다.
“너 내 처소가 어딘지 알고 가는 거야?”
“몰라!”
“이쪽이야.”
나는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며 남궁류청을 마주 보았다.
“너도 같이 오게?”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너도 구경했잖아.”
“······내가 그랬나?”
남궁류청이 날 노려봤다.
나는 뺨을 긁적이고 앞서갔다.
“따라 와.”
나는 바로 내 처소로 가지 않고 백리 세가를 돌아다니며 간단하게 안내했다.
여기는 가면 안 되고 여기는 되고, 구조를 알려주며 백리가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인 이화원에도 데려갔다.
감탄하던 서하령이 말했다.
“여긴 사람이 없네.”
“응, 여긴 아무나 못 들어오거든.”
“그래?”
그때 남궁류청이 나직이 말했다.
“그럼 저기 오는 사람은 네가 아는 사람인가?”
“응?”
남궁류청이 바라보는 방향에 작은 빛과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나무 사이로 기척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금안으로 누군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깜짝 놀랐다.
“백리리?”
백리리는 쫄딱 젖어 있었다.
백리리도 우릴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그게 무슨 꼴이야?”
놀란 나는 겉옷을 벗으며 백리리에게 다가갔다. 봄이라지만 이렇게 젖은 채 돌아다녀도 될 날씨는 절대 아니었다.
조금씩 떨리는 백리리의 어깨에 겉옷을 걸쳐주며 물었다.
“시비는 어디 가고 혼자야? 왜 이런 모습이고?”
백리리가 파리하게 질린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통통한 손이 내가 걸쳐 준 옷자락을 꽉 쥐었다.
나는 뒤쪽의 다른 두 사람을 슬쩍 살폈다.
서하령은 눈을 크게 뜬 게 놀란 낯이었고, 그에 비해 남궁류청은······ 백리리를 보기 전과 본 후 표정이 똑같았다. 이 자리에서 남궁류청만 태연했다.
잠깐 자리를 비워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백리리가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
“언니 때문이잖아!”
“으응?”
소리친 백리리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갔다.
“······.”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남궁류청이 입을 열었다.
“사촌?”
“응. 큰 아버지 딸로 나보다 한살 어려.”
“동생이라니. 예의가 없군.”
“······.”
“······.”
남궁류청이 예의를 논하다니?
순간 서하령과 눈이 마주쳤다.
서하령은 네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웃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와 똑같은 얼굴이란 말이었다.
그걸 안 순간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이 커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푸핫! 하하하!”
그 웃음을 기점으로 나는 서하령에게 가지고 있던 어색함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웃음을 겨우 그쳤을 땐 남궁류청이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웃었나?”
“하하. 아니. 푸하하하하.”
“이제 참아.”
“아, 알았어. 흐읍, 흐읍.”
나는 콧숨을 품으며 웃음을 참았다.
먼저 웃음을 그친 서하령이 말했다.
“그런데 저게 무슨 꼴이야?
어디 빠지기라도 했나?”
“그러게 말이야.”
나는 서하령과 남궁류청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둘 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잠시 구경하고 있어. 난 동생 좀 살피고 올게.”
무시하고 싶었지만, 성인의 양심이 어린아이를 저렇게 두면 안 된다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손님도 많아서, 저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본다면······.
“잠깐.”
불러 세우는 목소리에 돌아보려 할 때였다.
어깨에 가벼운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고개를 숙이자 짙은 감색 장포 자락이 보였다. 그러니까 남궁류청의 겉옷이었다.
나는 놀라며 남궁류청을 바라봤다.
“뭐 해? 동생 쫓아간다며?”
남궁류청이 미간을 좁힌 채 어서 가라는 듯 눈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