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그러곤 웃기는 모습이 이어져싸.
나를 중간에 두고 둘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투명 인간 취급이었다.
“연아.”
그때 아버지의 부름에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아버지 곁에는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흰색 무복에는 적색으로 매화가 수놓여 있었다. 10리 밖에서 봐도 화산파의 사람으로 보였다.
여인이 술잔을 내리며 진중한 눈으로 나를 훑었다.
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연이라고 했지?”
연회를 시작하자마자 할아버지가 한 번에 안내했기 때문에 자기소개를 다시 할 필요는 없었다.
“내 잠시 보고 싶어 불렀단다.
나는 화산의 명진이라 한다.”
명진 진인이면 화산 지검?
나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화산지검은 화산을 대표하는 검수였다. 아버지의 미간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좁혀져 있었다.
“그새 뭘 묻히고 먹은 것이냐?”
“네?”
아버지가 반사적으로 입술을 문지르려던 내 손을 막고 손수건을 꺼내 들어 입가를 닦았다.
그 모습을 명진 진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의강이 의외로 다정한 아비로구나.”
“누님, 의외라니요?”
“글세. 나는 네가 딸이 하나 있다길래 솔직히 걱정이 컸다.”
명진 진인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네 태도는 오해를 부르기 쉬우니 말이다.”
“과한 걱정이십니다.”
과하긴,
아주 통찰력이 뛰어나시구먼!
대화를 이어나가던 나는 등 뒤가 따가울 정도로 느껴지는 시선에 내가 떠나온 자리를 돌아보았다.
백리명도 백리리도 떠난 자리에 쌍둥이들만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소우악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이었고 백리표는 부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문득 꿀떡이 떠올랐다. 백리리의 탁자 위 꿀떡은 백리표가 건네준 그대로였다.
나는 백리표를 향해 환하게 웃고 시선을 돌렸다.
“명진 진인님, 꿀떡 드실래요? 맛있어요.”
명진 진인은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하나 주거라.”
명진 진인께 하나 드리고 나는 두 개를 한 번에 집어 먹었다.
꿀의 단맛을 쌉쌀한 진달래 맛이 살짝 억눌러 주며 조화롭게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음, 맛있어.’
아버지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요?”
“······.”
“아, 꿀떡이요?”
내 입에도 꿀떡이 한가득 들어 있어서 발음이 잘 안 됐다.
나는 열심히 씹어 넘기고 말했다.
“아버지는 단거 싫어하시잖아요.”
“맛있구나. 하나 더 주겠니?”
“여기요!”
꿀떡을 받아먹은 명진 진인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너랑 닮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
아버지가 침묵했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함께 지낸 탓에 침묵속에서도 살짝 시무룩해진 아버지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허, 참 정말이야?’
나는 히죽 웃고선 말했다.
“저는 아버지를 닮고 싶은걸요!”
명지 진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흘끔 본 백리표의 표정이 제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소우악이 벌떡 일어나 고모에게 향했다. 무심코 고모를 보았다가 눈이 마주쳤다.
아닌 척 나를 지켜보고 있던 모양인지 눈이 마주친 순간 고모가입술을 꽉 깨물며 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무슨 얘길 그리 재미있게 하고 계십니까?”
아버지 곁으로 이번엔 청색 무복을 입은 이가 다가왔다.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 뒤로도 계속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백리리가 자꾸 나를 힐끔거리는 것을 본 아버지가 백리리도 불렀고, 백리리를 걱정한 백리명이 한달음에 달려와 자리에 꼈다.
‘백리리를 걱정해서 온 거 맞아?’
이 자리에 오더니 아주 눈을 빛내면서 좋아 죽는데.
사실은 본인이 오고 싶어 백리리를 보낸 것 아닐까? 그런 의심마저 들 때쯤.
갑자기 높은 음정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정말 어떻게 나았는지 궁금하다니까요. 무슨 요술을 써서 단전 폐인이 단번에 나을 수 있었는지.”
고모가 노골적인 시비를 걸어왔다.
소란스럽진 않았으나 적당한 소음이 가득하던 연회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고모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의아한 낯이었다.
‘그야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니까.’
지금껏 고모와 쌍둥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자들이 없었다.
원래부터 교류가 있던 이들의 의례적인 대화와 관심뿐.
나는 딱딱하게 굳은 낯의 아버지를 보았다가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뜻 모를 표정을 하고 계셨다. 원래라면 벌써 불호령이 떨어졌을 터다.
‘좋은 날이니 참으시는 건가?’
할아버지가 아무 말 없자 침묵은 길어졌고, 어쩔 수 없이 큰아버지가 나섰다.
“의란아, 자리에 맞지 않게 무슨 말을 하는 게야?”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고모는 할아버지가 가만히 계시자 기고만장해서 말했다.
“왜, 오라버니? 오라버니도 궁금하다고 했잖아. 내가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의란아. 하하하.”
무거운 분위기를 웃은 큰아버지가 모두 들으란 듯 말했다.
“연이가 실종되었을 때 만신의를 만났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때 치료받았다고.”
“하지만 만신의는 돌아가셨잖아? 그 말을 어찌 믿어?”
“나중에, 어? 나중에 얘기하자꾸나.”
큰아버지가 필사의 눈짓이라도 했을까? 고모가 이 정도로 물러나겠다는 듯 말했다.
“그저 고모로서 걱정스러워서 나온 말이랍니다.”
‘웃기는 소리. 내가 부정한 방법으로 나은 게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면서.’
고모가 턱을 꼿꼿이 세운 채 웃었다.
“괜스레 모두를 신경쓰게 했네요.”
더는 이어 가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 큰아버지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고모에게 집중했던 시선들이 흩어졌다.
‘이댈 넘어갈 순 없지.’
내가 입을 연 순간이었다.
“누님.”
진중한 목소리가 연회장에 낮게 퍼졌다.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의 시선을 모으는 힘이 있었다.
“제가 여섯 살에 홍시를 따려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던 걸 기억하십니까?”
“가,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것이야? 네가 장난치다 다친게 내 탓이라는 거야?”
고모가 마치 제 발 저린 듯 말했다.
“아뇨. 전혀 누님 탓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따다 드리려던 것뿐이니까요. 전혀 상관없지요.”
고모가 노려보듯 아버지를 바라보고 계셨다. 하지만 흔들리는 눈동자가 불안한 감정을 내보였다.
“그런데 아십니까?”
“뭘 알아? 자꾸 질문만 할 테야?
본론이 뭐야!”
아버지가 내게서 시선을 들어 고모를 바라보았다. 깊게 가라앉은 검은빛 눈동자는 단단히 빛났다.
“제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 다리가 괜찮은지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으셨던 걸요.”
“······.”
“그런데 연이의 상태엔 왜 이렇게 관심이 깊으신지 모르겠군요.”
나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어린아이가 누나를 위하다 다쳤을 때도 괜찮은지 한 번 묻지 않던 매정한 누나가 갑자기 조카의 상태를 걱정한다?
수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눈을 홉뜬 고모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했다.
“너······ 너, 네가 지금······!”
지금껏 고모가 뭐라고 하든 아버지가 이렇게 대놓고 망신을 준 적은 없었다.
그걸 믿고 지른 것일 텐데.
지금껏 남 일인 것처럼 앉아 있던 대부인 또한 낯빛이 싹 바뀌었다.
하지만 여기서 고모의 편을 들어봤자 추할 뿐이었다.
나설거면 처음부터 나섰어야 했다. 할아버지도 아무 말이 없으니 내버려 둔 것이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옷자락을 꼭 쥔 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속삭이듯 물었다
“아버지, 다리 괜찮으세요?”
“······그럼, 아주 옛일인걸. 괜찮다.”
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아버지를 꽉 끌어안았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쓰러움을 불러 일으키는 부녀의 모습에 고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싸늘해 졌다.
“허 참.”
“쯧쯧쯧.
백리가의 대소저라는 이가······.”
대소저는 고모의 호칭이었다.
새빨개진 얼굴의 고모가 부들부들 떨며 옷자락을 말아 쥐었다.
소란이 조금 일었으나, 사람들은 금세 잊어버리고 연회를 즐겼다.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무공을 토론하고, 강호의 소문을 얘기했다.
다들 틀어박혀 자신의 무공을 연성하느라 바쁜 이들이었다. 웬만큼 큰일이 아니면 또 언제 보게 될지 알 수 없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물론 고모 곁으로 다가가는 이는 아주 소수였다.
그때 연회장으로 하인 한 명이 들어왔다. 워낙 많은 하인과 시비들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를 반복했기에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 하인이 할아버지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고 할아버지의 안색이 크게 변하기 전까지는.
곧이어 할머니의 안색도 변했다.
이유는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는 듯한 기파가 멀리서 느껴졌다.
그리고 점차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내 시선, 금안의 시야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강력한 기파가 훅 들이닥쳤다. 천장을 장식한 휘장이 크게 펄럭였다.
들어온 이를 본 몇몇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대부분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듯싶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강자라는 것은 알아 함부로 입을 놀리진 않았다.
누군가 잇새로 말을 흘렸다.
“······천산염제.”
순식간에 충격이 퍼졌다.
놀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천산염제라고?”
“뭐라? 천산염제가 어째서 이곳에?”
천산염제는 정사지간의 인물.
엄청난 악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파고 사파고 가릴 것 없이 사고를 치며 제멋대로 굴던 인물이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별 소란 없이 조용했지만, 그렇다고 정파 대표 가문인 백리 세가의 연회에서 환영받을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명의 안색이 가라앉았다. 아마도 천산염제에게 당한 적이 있는 문파나 가문일 터였다.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내 자네에게 초대장을 보낸 적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