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천산염제라고?”
“아니, 천산염제가 왜 이곳에?!”
사람들이 그야말로 대경실색했다.
나는 연회장 바깥으로 백리가의 무사들이 속속들이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천산염제의 등장 때문일 것이다.
분명 천산염제도 모여드는 병력을 느꼈을 텐데, 아주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지나가는 길에 하도 떠들썩해서 술 한잔 얻어먹을까 해서 왔다네.”
“······.”
“길거리 거지에게도 술 한잔씩 내주던데 설마 내게 줄 술이 없다하진 아않겠지.”
그때, 누군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호기롭게 외친 자는 꽤 젊은 나이의 사내였다.
천산염제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곧 사내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주변의 누구도 서로 눈치를 보면서 나서지 않았다.
“스승님.”
다들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을 놀란 눈으로 보았다.
“그만하시지요.”
“······쯧.”
모두 천산염제를 뒤따라온 소년이 있는 건 알았다. 하지만 천산염제의 존재감에 미처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가 이제야 살피게 된 것이다.
“제자?”
“천산염제에게 제자가 있다고?”
사람들이 재차 놀라서 수군거렸다.
소년의 칠흑같은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는 길이로 대충 잘라묶은 모습이었다. 거기다 장식 하나 없는 검은색의 밋밋한 무복까지. 강호를 떠도는 흔한 여행객과 같은 차림새였지만 빛이 나는 외모는 가릴 수 없었다.
‘야율.’
“잘 생긴 소년이군요.”
“외모보다는 실력을 봐야지요. 기백을 갈무리하는 게 벌써······.”
“그런데 왠지 익숙한 낯인데요?”
감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색 일색인 복장을 보자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내 손을 단단하면서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꽉 잡아주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셨다.
아버지가 나를 걱정스레 보고 계셨다. 곧이어 전음이 들렸다.
「 안색이 창백하구나, 몸이 안 좋으냐? 이만 돌아갈까? 」
이 상황에 연회에서 나가자고?
배짱도 두둑하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때 고개를 돌린 야울이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무표정하던 얼굴이 녹아내리듯 환하게 웃었다.
탁. 갑작스러운 소리에 할아버지를 보았다.
술잔을 탁자에 부딪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심술궂은 표정이셨다.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는 사이더냐? 」
나는 보일 듯 말 듯 머리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호랑이 같은 시선으로 야율을 살폈다. 뭔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안하는 눈빛이었다.
그 사이 천산염제가 뒷짐을 지고 슬렁슬렁 걸음을 옮기며 연회장을 살폈다. 마치 이곳이 자기 안방인 것만 같은 태도였다.
“술은 언제 내줄 건가.”
할아버지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는 검을 뽑는 대신 하인을 향해 손짓했다.
하인이 재빨리 빈 잔을 대령했다.
골골골, 술잔에 술이 차는 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내 입이 까다로워 맛없는 술은 안 받네.”
갑자기 난입해 왔으면서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술잔이 넘칠 것처럼 채워졌다.
탁. 할아버지가 술병을 내려놓고, 술잔을 집어 던졌다. 어떻게 던지는지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넘실거리듯 따랐던 술잔의 술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저 술잔 안에 담긴 힘이 대단했다. 제갈화무가 던졌던 암기는 장난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아마도 잘못 맞았다간 적어도 골절, 혹은 장기 파열은 되지 않을까. 거기다 조금만 잘못 잡아도 술잔의 술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었다.
천산염제는 소리없이 한 방울도 넘치지 않게 술잔을 잡았다.
이를 단번에 털어 넣은 천산염제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며 입가를 닦았다.
“그럼 나도 자네의 팔순을 축하하는 잔을 건네지.”
천산염제가 가까운 자리의 술병을 들었다.
천산염제는 할아버지를 향해 다시 잔을 돌려주었다.
두 노인의 기교에 여럿 감탄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찻잔에만 내공을 담았네. 술은 회전력을 통해서 붙잡은 거야. 이걸 잡으려면······ .’
눈을 부릅뜨고 그 기교를 분석할 때였다.
문득 스친 사람의 낯이 의아했다. 그러니까 천산염제가 술을 가져온 자리의 주인이었는데 안색이 매우 좋지 못했다. 누렇게 뜬 낯이 마치 화장실이 정말 급한 표정이랄까.
천산염제의 앞이어서 겁먹었다고 여기더라도 무척 이상한 모습이었다.
천산염제는 제대로 준비하고 온 듯 할아버지께 선물까지 건넸다.
할아버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인에게 자리를 마련하라 시켰다.
그러곤 대뜸 야율을 보았다.
“이렇게 데려온 김에 제자도 소개해주게나. 자네는 평생 제자를 안 받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뒷짐을 진 천산염제가 몸을 모로 틀자 야율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언제 웃었냐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야율이 공손하게 양손을 모아 포권했다.
“야율이라 합니다.”
그때 눈썹부터 수염까지 모두 백발인 실눈의 노인이 대뜸 물었다.
“그래. 야율. 벽기현과는 무슨 관계인가?”
나는 의아하게 노인을 바라보았다.
‘벽기현?’
예전에 아버지가 언급한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 뒤로 궁금하여 백리세가로 돌아온 뒤에 조금 알아보았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노비 출신이면서도 무가에 입적된 여인. 당시 아버지와 동수를 이룰 정도의 검객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미인에 뛰어난 무공. 유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짝 알아본 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십 년, 아니 이제는 이십 년이 가까워지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자가 야율과 무슨 상관인데?’
노인이 꺼낸 이름은 연회장에 잔잔한 파문처럼 퍼졌다.
“벽기현이라니.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미래가 기대되는 검객이었죠. 어디서 무얼 하는지.”
“벽가장의 이공자가 여기 있지 않았소?”
“음? 그러고 보니 저 아이, 꽤 닮지 않았습니까?”
야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모친 되십니다.”
좌중이 술렁이는 와중에 한 곳으로 시선이 모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천산염제가 술병을 집어 든 탁자의 주인은 벽가의 사람이었다. 검게 질린 낯빛의 사내를 천산염제가 의미심장하게 내려다보았다.
* * *
나는 야율의 손을 잡고 끌었다.
연회장을 나와 요리조리 복도를 걸어가던 나는 사람이 없는 방을 하나 찾아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야율을 바라보았다. 근 4년간 천산염제의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다. 그 말은 야율의 소식 또한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생각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서신 한 장도 없었지.’
글을 몰랐다곤 하지만 남궁세가에 있는 동안 알려준 것도 있었는데 짤막하게 잘 지낸다는 정도는 써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연락을 두절해 놓고 이렇게 나타나서······!’
내가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자 웃는 낯이었던 야율의 입꼬리가 점차 내려갔다.
“화났어?”
“······.”
“오랜만에 만났는데 화내지 마.”
헤어지기 전에는 나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대체 그간 뭘 먹었는지 마주 보니 머리 하나 반이나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렇게 자랐으면서도 전과 같이 여전히 내 눈치를 봤다.
축 늘어진 모습이 왠지 불쌍해 보이기도······.
‘아니, 아냐. 지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냐!’
난 단호하게 말했다.
“설명 좀 해 주겠어?”
“응?”
“지금 이게무슨 상황인지.”
“아······.”
잠깐 머뭇거린 야율이 말했다.
“네가 얼마든지 와도 된댔잖아.”
물론 내가 백리가에 들어올 수 있는 초대서신을 주긴 했지.
“하지만 오늘은 할아버지의 산수연이었어. 너와 천산염제는 초대객이 아니고.”
“보고 싶어서.”
“······.”
“오면 안 돼?”
야율이 슬그머니 내 손을 잡았다.
고개를 들자 초점이 뚜렷한 검정색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얘 눈빛이 원래 이랬었나?’
아니. 야율은 늘 살짝 흐린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세상사에 아무 흥미가 없는 듯한.
그런데 지금은 알 수 없는 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나는 붙들렸던 시선을 억지로 돌리며 야율이 붙잡은 손을 빼냈다.
“그나저나 그 이야긴 대체 뭐야?”
“뭐가?”
야율이 손을 거두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네 어머니 얘기.”
“아······.”
야율이 잠깐 시선을 들어 허공을 보았다. 우리가 빠져나온 연회장 방향이었다.
“별거 아니야. 말한 대로 내 모친은 벽기현이었고······ 나는 어릴 때 벽가에서 지냈어.”
야율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