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벽가에서 지냈다고 해도, 기억나는 건 없어. 갇혀 지냈거든.”
“갇혀 지냈다고······?”
무심코 반문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응. 이 방 반절만 한 광이었던 것 같은데.”
야율이 방을 살짝 휘둘러보았다.
말하는 야율의 낯빛은 담담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기까지 했다.
“아, 어머니가 계셨는데,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셨어. 내가 갇힌 건 그 이후야.”
“······.”
“그렇게 갇혀 지내다가······ 나를 죽일 거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어. 그래서 도망쳤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만났을 때의 야율은 고작 아홉에 불과했다. 무사히 밖으로 도망쳤다 한들 아홉살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리라.
‘그저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겠지. 마치 내가 날 돌보던 유모가 죽고 거리를 헤맸던 것처럼.’
그런 떠돌이 아이는 천귀조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나는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들은 널······ 왜 ······ 죽이려고 했는지 알아?”
“몰라.”
“······.”
“그냥 내가 싫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래서였어.’
소설 속에서 남궁류청은 야율이 원래 정파 가문 사람이었던 것을 알고는 그의 과거를 알아본다. 하지만 야율의 가문은 이미 멸문해 있었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뭘”
“그냥 이제 앞으로······.”
차마 가문 멸문시킬 거니? 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괜히 자극하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그렇다고 복수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그가 당한 설움이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악인곡에 떨어지진 않았으니 멸문까지는 안 갈지도.
“음······.”
야율이 눈을 내리떴다.
“난 귀찮아서 이런 거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스승님이 이러는 게 좋을 거라고 하시더라고.”
“응?”
“어차피 평생 얼굴 가리고 다닐 거 아니면 내 얼굴을 보면 누군가는 알아볼 거고 결국 벽가의 귀에는 들어갈 거라고 하시더라고.”
“그······렇겠지?”
산수연만 해도 바로 알아보는 이가 나오지 않았나? 벽가에게 소식이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고보니 소설 속에서도 계속 얼굴을 가리고 다녔지.’
야율은 늘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그냥 마교니까 최대한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사실은 친모에 대해서 밝히지 않기 위해서였다면?’
야율이 말을 이어갔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많은 곳에서 나에 대해 밝히는 게 좋을 거라고 하시더라고. 특히 벽가의 사람이 있는 곳에서.”
연회장에 있던 벽 공자는 끝내 입을 열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 벽 공자는 벽기현과 남매였다.
양딸이니 피는 이어지지 않았다지만, 오랫동안 실종된 누이의 아들이 나타났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보통은 ‘누이에게 아들이 있었다니!’ 하고 놀라거나 혹은 ‘누이의 아들일 리가 없다!’ 라며 거짓말이라고 호통을 쳐야 했다. 그리고 누이가 어떻게 된 거냐고도 물어야 했었고.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천산염제’
코앞에 천산염제가 저승사자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스승은 제자의 사연을 알고 있지.’
벽가에서 벌인 어린아이 감금 살인 모사 사연을 아는 천하 십일강아에서는 벽 공자도 뻔뻔스럽게 연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노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다가 황급히 자리를 뜰 수밖에.
그리고 동시에 산수연에 참석한 이들은 야율과 벽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생각하던 나는 의아한 점을 꼽았다.
“할아버지의 산수연 말고 차라리 무림맹 비무대회 때 드러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아?”
8년에 한 번씩 무림맹에서 열리는 후기지수들만이 첨석할 수 있는 친선 비무 대회.
이름을 알리고 싶은 강호의 많은 무인들이 몰려들고, 이를 구경하려는 이들도 구름처럼 몰려오는 무림 제일의 행사.
차라리 그곳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정체를 드러내는게 더 극적이고 알려지기 쉬웠을 것이다.
야율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비무 대회 내후년이잖아.”
“그게 뭐?”
“그럼 널 더 오래 못 보잖아.”
“하. 보고는 싶었니? 그동안 서신 한 통 안 보내 놓고!”
야율이 시무룩한 낯을 했다.
“몰라. 노친네가 안 내려보내 줬어.”
“스승님한테 노친네라니······.”
나는 한숨을 내쉬고 야율을 뾰독하게 노려보았다.
“나중에 내 할아버지께 사과해.”
“왜?”
“왜에? 할아버지 산수연을 소란스럽게 만들었잖아!”
사정은 이해한다지만 남의 연회에서 지금 이게 무슨 소란이란 말인가!
할아버지의 처지에서는 벽가고 야율이고 그저 뜬금없는 일에 끌려 들어간 것일 뿐이다. 축하받아야 할 좋은 날에······.
흑흑, 죄송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좋아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그랬잖아? 백리가에서 네 취급이 좋지 못하다고.”
나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보니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러니까 아주 예전에 남궁 세가로 가는 마차 안에서.
그땐 야율이 나와 백리가로 가게 될 거라고 여겼으니까 미리 알아두라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었다.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래서 그 말과 이 상황이 무슨 상관인데?”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줄 알았어.”
“응?”
나는 잠깐 굳었다가 말했다.
“아니, 그래서 뭐, 연회를 망치기라도 할 생각이었단 말이야?”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그냥 뭐?”
나는 말을 흐리는 야율에게 똑바로 말하라 다그쳤다.
야율이 점차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란이 좀 벌어져도 상관없다······?”
“······.”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었다.
내 표정을 본 야율이 재빨리 말했다.
“사과할게.”
“그래.”
시무룩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 덧붙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할아버지도 크게 뭐라고 하시진 안하을 거야.”
아마도?
“응.”
야율이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에 왠지 속이 더 답답해졌다.
‘이렇게 쉽게 끝나는 게 맞는 건가?’
벽가가 제정신이라면 함부로 천산염제의 제자인 야율을 건드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끝이라고?
야율이 마교에 투신해 벽가를 멸문시키고 무림맹을 무너트리려 들던 그 모든 과정이 이렇게 쉽게 마무리된다고?
뭔가 부족한 기분이었다.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야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짝 끌어당겼다.
앉아 있는 채로 올려다보니 훨씬 더 커보였다.
나는 야율의 몸을 숙이게 하고 등에 손을 올려 몇몇 두드렸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몸짓이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짤막하게 말했다.
“잘 살았어.”
“······.”
백리연을 마주 끌어안으려던 손이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 * *
백리의란 처소의 하인들은 중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평소 백리의란과 가깝게 지냈던 친족들은 연회가 끝났다는 이야기에 백리의란을 보러 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잠긴 문 안에서는 고성이 오고 갔다.
“연회장에서 나오자마자 의강은 왜 찾아? 천산염제도 있는 자리에서! 가서 뭘 하려고!”
“어쩌긴요! 당장 사과하라 해야죠! 오라버니가 붙잡지만 않았어도······! 거기서 사과를 받았어야 했는데. 이제 다들 나를 얼마나······.”
백리의란은 입술을 짓씹었다.
연회 내내 아무도 그녀와 기꺼이 얘기하려 들지 않았다. 말을 붙여 봐야 심드렁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향했다. 희희낙락하는 백리명과 백리연을 뒤로하고 제 아들들은 고개만 숙이고 있어야 했다!
백리의묵이 애써 달래는 목소리를 냈다.
“의란아, 계속 이런 식으로 굴면 곤란하다. 네가 이러면 내 체면이······.”
“제 체면은요! 제 아이들 체면은요! 불쌍한 내 아이들,하나뿐인 외숙도 챙기질 않아, 사촌도 챙기질 않아! 그리고 백리명, 그 자식도! 어떻게 우리 아드들을 싹 무시하고 그 계집에게 알랑거릴 수가 있어요?”
“언제 알랑거렸다는 게냐? 그리고 어찌 명이에게 네 아이를 챙기라 해? 너와 명이 사이가 그런데 명이가 표와 악이를 챙기고 싶겠느냐?”
“그래서 지금 일부러 무시했다는 거예요? 그 천한 것이 주인마냥 설치는 꼴을 가만뒀다는 거냐고요!”
“의강이 자기 지기와 얘기하는 걸 내가 무슨 수로 막느냔 말이냐!”
“왜 못해요? 오라버니는 소가주잖아요!”
“하!”
백리의묵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들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고모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소가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솔직히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늘 ‘의란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가문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직 이르다.’라고 말하곤 했다.
“제발 정신 좀 차리거라! 표와 악이도 겨우 집에 돌아왔는데 쓸데없는 소란 벌이지 말고. 네가 소란 피웠다 또 쫓져나게 두지 말고!”
“감히 내 아이들을 가지고 협박하는 거예요?!”
“됐다. 너랑은 무슨 얘기를 못하겠구나!”
“오라버니!”
백리의묵은 백리의란이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방을 나갔다.
조금 전에 밖에서 돌아온 시비가 그 모습을 보고 바닥에 닿을 듯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방에서 여러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비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겁에 질린 채 서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 오신다더냐!”
문 앞의 시비가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부인은······ 대부인께서 그······
손님이 많아 자리를 비우실 수 없다고······.”
집에 들인 손님이 한둘도 아니니 소란 피우지 말라는 소리는 차마 전하지 못했다.
늘 백리의란을 감싸 주는 대부인이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 가고 있었다.
최근 크게 앓은 이후로는 체력도 꽤 떨어져 예전만큼 백리의란을 감싸 주지 못했다.
쨍그랑!
또다시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시비가 움찔 놀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한참 난리를 치고 침상에 엎드려 있던 백리의란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