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 * *
이튿날 아침. 천산염제를 만날 수 있었다.
노복이 문발을 걷어 주었지만 나는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안에는 할아버지와 천산염제가 먼저 자리 잡고 계셨다.
겉으로 보기에 두 분은 그저 가만히 앉아 차를 마실 뿐이었다.
하지만 두 분의 존재감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연이 왔느냐?”
어서 들어오라는 듯한 말에 어쩔 수 없이 두 분의 기세를 밀어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가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할아버지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서리더니 어깨를 짓누르던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충 할아버지의 보호 안으로 들어간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일부러 날 시험해 본 것이다.
나는 그제야 좀 자유로워진 몸으로 두 분께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옆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은 나는 천산염제를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
“천산염제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에 비하면 확연히 나이 든 모습이었다. 연회장에선 정신이 없어 눈치채지 못했다.
‘아, 그렇구나.
벌써 그렇게 시간이······.’
천산염제의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말은 최소 아흔에 가깝다는 말이었다.
평균 수명이 50세인 이 세상에서 아흔 살이면 천수를 누리고도 남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남궁류청이 강호에 나올 시기에 천하 십일강은 천하 십강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천산염제의 이름이 빠진 것이다.
‘어쩐지. 이름을 알릴 거라면 비무 대회가 훨씬 나은데 뜬금없이 산수연을 택하더라니.’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금안으로 천산염제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천산염제의 몸은 특별한 이상이 없어보였다.
탁. 천산염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잘 지내는 것 같구나.”
“네. 그렇죠.”
“야율에게 이미 얘기는 다 들었을 테고. 나는 오늘 바로 떠날 거다. 가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불렀느니라.”
“벌써 가세요? 그럼 야율도 오늘 떠나는 건가요?”
“그놈은 좀 더 머물기로 했다.”
“아······.”
눈을 가늘게 뜬 할아버지가 잔뜩 심통 난 어조로 말했다.
“친우 좀 가려 사귀거라. 찾아 온 친우라는 게.쯧.”
“내 제자가 뭘 어때서?”
“말이라고 하나? 그런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놈, 얽혀 봤자 좋을 것 없다.”
“하, 자네 집안이나 잘 돌보지 그러나?”
“뭐라?”
“왜 내가 못 할 말 했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말다툼에 나는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천산염제를 노려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내 살날 얼마 안 남은 노인네니 넘어가네.”
나는 깜짝 놀라 찻물을 잘못 넘겼다.
내가 켁켁 기침하자 할아버지가 손수건을 꺼내 내게 주었다.
입가를 닦고 있는 내게 천산염제가 말했다.
“왜 그리 놀라? 너도 이미 알고 있어 의원을 말한 게 아니냐?”
“콜록, 콜록.”
물론 그랬지만.
할아버지도 알고 계실 줄, 또 이렇게 대놓고 언급할 줄은 몰랐다!
나는 어차피 이렇게 언급된 김에 재빨리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르신, 여기 석 태의라고 유명한 의원이 있······”
천산염제는 아무렇지도 아낳게 말했다.
“그냥 사람 갈 때가 있는 거고 그게 섭리다. 막아 봐야 소용없으니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라.”
“······.”
할아버지와 천산염제는 이미 얘기를 다 끝마친 듯 실없는 소리만 몇 벙 하고서 일어났다.
천산염제는 뭔가 말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답지 않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잘 지내거라.”
귓가로 전음이 흘러들어 왔다.
「 야율을 잘 부탁한다. 」
* * *
연회는 연일 계속되었다. 방 안은 물론 바깥까지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대화들로 이미 그 떠들썩함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이미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대화 중이었다. 모두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아이들뿐이었다.
익숙한 낯이 많이 보였다. 백리가 방계 친족, 같은 학당의 아이들. 하지만 처음 보는 이들도 꽤 되었다.
방 가운데에는 백리명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는데, 마치 이 연회의 주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백리명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눴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백리리가 자신의 학당 친우들과 방계 또래들에게 둘러싸여 고고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쌍둥이들도 비슷했다. 다만 왠지 뭔가 잔뜩 심통 난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연아!”
밝은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순간, 순식간에 시선이 내게 모였다. 그다음 곧바로 내 뒤의 사람에게 향했다. 그리고 감탄하는 듯한 탄식을 들을 수 있었다.
“쟤가 그······ ?”
“세상에서 나는 석 공자가 제일 잘생긴 줄 알았는데.”
“얘, 너 남궁 공자 볼 때도 그 말 했어.”
그 대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서하령이 자신에게 오라는 듯 손짓했다. 서하령에게 다가가는 동안 벽가, 천산염제 등을 언급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서하령이 있는 곳은 대여섯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둥근 탁자였다. 서하령은 내가 오기 전까지 얘기를 나누던 이들을 물러나게 하고 나와 야율을 옆자리에 앉혔다.
서하령이 타박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아버지 손님이랑 인사하느라.”
“너는 그렇다 치고, 쟤는?”
서하령이 야율과 눈인사를 나눴다. 야율이 온 건 천산염제가 온 날 소문이 쫙 퍼졌다. 그 날 서하령과 인사도 나눈 상태였다.
“나랑 같이 온다고 기다렸어.”
“쟤는 여전하구나?”
서하령이 혀를 내둘렀다.
시비가 다가와 나와 야율 앞의 찻잔을 채워 주었다.
나는 다과를 집으며 맞은편에 물었다.
“류청, 연회는 어때?”
“······ ”
“내 생각에 쟤 스무 살이면 미간에 내 천(川)자 주름 생길 것 같지않아?”
서하령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서하령의 모습을 힐끗거리는 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서하령이 아직 웃음기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맞아. 내가 재밌는 말을 들었는데, 너 뱃놀이하다가 경공 실력 좀 보여 줬다며?”
“응? 아아······ . 그냥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뛰어내렸지.”
후, 그때 정말 물에 빠질 뻔했는데. 다시는 그런 모험 하지 말아야지.
“그 뒤로 난리였대. 너 따라한다고 하다가 그 배에 탄 3할이 물에 빠졌다고 하던데.”
“뭐어?”
“대낮에 대로가 물에 빠진 공자 소저들로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하하. 왜 그날······ 있잖아······ .”
그날 그러니까······ 백리리가 물에 쫄딱 빠진 꼴로 온 게 그러니까 나를 따라······ 해 보다가?
그래서 그날 ‘언니 때문이잖아!’ 라고 버럭 화를 내고 간 거야?
웃음이 터지려는 찰나 정강이를 살짝 걷어차였다. 앉은 자리상 걷어찰 수 있는 사람은 남궁류청 뿐이었다.
왜 그러냐고 따지려 할 때였다.
“언니.”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 백리리가 있었다. 서하령도 놀란 듯 입을 오므리며 시선을 피했다.
백리리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탁자를 둘러보았다.
“언니한테 석 공자 말고도 친우가 있다니 신기하네.”
“······ .”
지금 싸우자는 건가?
하지만 방금까지 백리리 얘기를 하고 있던 건 우리였다······ .
“이 사람들 누구야? 나 소개 좀 해 줘.”
“어? 어······ 어어.”
그 뒤로도 끊임없이 친분을 쌓고자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목표는 남궁류청. 천산염제의 제자인 야율에게 관심이 많았다.
백리명도 몇 번이나 이 탁자에 왔다 갔다.
얼마나 떠들었을까? 갑자기 서하령이 내 옷자락을 잡아 끌었다.
바라보자 전음이 들렸다.
「 측간 어디야? 」
“아, 시비 불러서 안내······.”
서하령이 내 팔을 아플 정도로 꽉 잡았다.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바라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일어났다.
“알았어. 가자, 가자.”
어디를 가는 것인지는 알고 따라오려는 건지, 야율이 함께 일어났다.
나는 그를 떼어놓으며 물시계를 확인하며 방을 나왔다.
방 밖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한 볕과 달리 살짝 서늘했다.
“어젯밤에 비 오는 소리 들었어? 물을 바가지로 퍼서 쏟아붓는 줄 알았어. 그래서 오늘 걱정했는데. 해 좀 봐.”
나는 잠자코 웃었다.
서하령이 옷자락을 여몄다.
“아, 네 말대로 옷을 두껍게 입고 나오길 잘했다.”
“그치. 좀 춥지.”
“그러게. 완전 도사네, 비가 그칠 것도 알고. 추워질 것도 알고.”
“그냥 그럴 것 같았어.”
매일 날씨를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내 기억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기억이 특히 선명했다. 날씨와 햇볕과 온도까지.
서하령을 데려다주고 나는 정원을 걸어 나왔다. 아직 마르지 않은 바닥이 축축했다.
‘여기였지.’
멀리서 악공들의 음악 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정원의 작은 돌다리로 향했다.
돌다리에 올라가 내려다본 수면은 혼탁했다. 전날에 온 비의 영향이었다.
과거와 변한 건 이제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날씨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나는 이 사건도 과연 과거와 같을 지 궁금했다.
풍광을 바라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였다. 나를 향해 무언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