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 * *
백리연과 서하령이 떠나고 난 자리.
“······.”
“······.”
침묵만 흘렀다.
야율은 백리연이 나간 방향만 뚫어지게 바라봤고, 남궁류청은 눈을 내리깔고 고고하게 차만 들이켰다.
백리연과 서하령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기회다 싶어 접근하던 이들이 그 분위기에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그런데 그 분위기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다가가는 이가 있었다.
백리리가 남궁류청과 야율의 탁자에 다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물었다
“언니, 어디 갔어요?”
“······.”
“······모릅니다.”
남궁류청은 시선을 들지도 않았고, 야율이 짧은 침묵 후 시선을 조금 틀어 답했다.
백리리가 남궁류청을 잠깐 노려보았다가 야율을 향해 물었다.
“서 소저랑 둘이서만 갔어요?”
야율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백리리가 그대로 돌아가려다가 다시 돌아봤다. 그러곤 갑자기 물었다.
“언니랑 어떻게 친해진 거예요?”
야율이 그제야 백리리를 제대로 돌아보았다. 백리리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처음에는 사이 안 좋았잖아요.”
“······그게 왜 궁금합니까?”
“알 거 없고요.”
백리리는 고개를 치켜들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야율이 백리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 연이와의 사이는 그다지 가까워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저 아이가 아닌 척 계속 백리연을 힐끔거렸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아는 연이는 다른 사람이 내민 손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잠시 생각한 야율이 백리리에게 백리연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표정없이 얘기하기 시작했으나 백리연에 관해 말하다 보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어렸다. 산사태에서 백리연이 야율과 소녹을 밀어내고 휩쓸린 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렇게 연이가 절 구했죠.”
“언니가 밀쳤다고요?”
탁.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어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웃으며 이야기할 일인가?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거늘, 그걸 즐겁다는 듯 얘기하다니.”
남궁류청이 야율을 쏘아보았다.
“염치를 알아라.”
야율의 낯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서로 시선이 부딪쳤다. 이내 야율이 피식 웃었다.
“부러워?”
“하.”
남궁류청이 기가 찬 듯 탄식했다.
야율이 말했다.
“게다가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뭐?”
“너야말로 연이를 죽일 뻔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남궁류청의 표정이 싸해졌다.
“서 소저랑 대련했을 때, 제 실력에 취해 오만하게 굴기 바빴던 주제에.”
“너······!”
남궁류청이 탁자를 내려치듯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아닌데.”
백리리가 툭 내뱉었다.
“작은 아버지가 구해 준 거잖아요.”
야율과 남궁류청이 백리리를 돌아봤다.
“작은 아버지가 공자랑 소녹을 데리고 가느라 언니는 두고 가서 휩쓸렸다고 들었는데.”
야율이 고개를 기울였다.
“대협이 나와 소녹을 데리고 가신 건 맞지만······ 연이가 우리를 대협께 떠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내가 들은 건······!”
그때였다.
“리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백리명이 다가왔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백리연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안 듯 싶었다.
백리리가 말했다.
“그냥 얘기 좀 했어.”
백리명이 웃으며 물었다.
“무슨 얘기? 다들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했습니까?”
“······.”
“······.”
백리리가 몸을 돌렸다.
“언니한테 직접 물어보지 뭐.”
“뭘? 어디 가는게냐?”
백리명이 의아하게 물었으나 백리리는 대답하지 않고 휙 빠져나갔다.
원체 이런 일이 잦았기에 백리명은 백리리가 친우들과 함께 나가는 걸 보고서는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당장 싸울 듯하던 남궁류청과 야율의 분위기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남궁류청이 주먹을 꽉 쥐고 노려보았다가 고개를 틀었다. 야율도 마찬가지로 다시 백리연이 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모르는 백리명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리리가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데 공자들과 함께 있다니 의외네요. 다음에는 제 처소에서 리리와 함께 차라도 마시는 게 어떻습니까?”
남궁류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공자.”
그리고 자못 짜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허튼 곳에 시간 들이지 마시고 본신의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백리명은 백리가의 소공자로 이렇게 대놓고 무안을 받은 경우는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얼굴이 당혹감에 붉에 타올랐다.
“남궁 공자, 지금 그게 무슨, 무슨 말입니까? 저는 그저······.”
그때 야율이 갑작스레 몸을 일으켰다. 남궁류청이 인상을 찌푸린 채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보았다.
출입구 부근이 소란스러웠다.
점차 소란이 수면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차츰차츰 퍼져 나갔다. 무슨 일인지 청력을 높이려 할 때였다.
그때 귀티 나는 소저가 황급히 달려왔다.
“오라버니! 명 오라버니!”
정신없이 달려오는 모습에 백리명이 남궁류청에게서 시선을 뗐다.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고 말했다.
“너는 조아가 아니냐? 리리와 함께 나간 것 아니었어? 왜 그리 다급히 온 게야?”
“정원, 정원에서······ 소저가······.”
숨을 몰아쉬느라 말이 뚝뚝 끊어졌다.
백리명이 찻잔을 건네며 다독였다.
“천천히 말하거라.”
그때 누군가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목청 높게 말했다.
“밖에서 싸움 났대!”
“뭐? 정말? 누가? 누가 싸운다는 거야?”
백리명의 안색이 굳었다.
조아라 불린 소녀가 백리명의 팔을 붙잡았다.
“백리연 소저랑 쌍둥이 공자들!”
* * *
처음 날아온 건 몸통 방향이었다. 재빨리 몸을 비틀어 피하고자 할 때 하나가 더 날아왔다.
‘머리 좀 굴렸네.’
교차해서 던져 피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 읽혔다. 하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진흙 덩어리.
그냥 잡으면 손바닥에서 철퍼덕 터지며 사방으로 진흙이 튈 터였다. 잡는 것만이 아니라 조금만 잘못 피해도 옷자락에 진흙이 묻을 것이었다.
엇박자로 날아오는 것을 피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을 수 있겠는데?’
할아버지와 천산염제가 찻잔을 주고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 방식이라면······.’
이 모든 고민은 아주 짧은 사이 스친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으로 오는 것을 피하며 날아온 것을 잡았다.
철퍽!
충격을 최대한 흘려보냈어도 손바닥이 얼얼했다. 차갑고 축축하기도 했다. 손에 잔뜩 묻긴 했으나, 그래도 어떻게 터지거나 튀지도 않고 진흙 덩이 형체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진흙덩이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이건 변하질 않네.’
과거에 그나마 집안의 웃어른이 없는 자리에 겨우 용기를 내 참석했었다.
그땐 구석에 가만히 앉아 대화하는 이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산책이나 할까 해서 밖으로 나왔고, 정확히 이 자리에서 진흙 덩이를 맞았다.
앞섶은 엉망이 되었고, 당연하게도 겨우 나온 연회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처소로 가야 했다.
‘혹시나 변했을까 싶었는데 ······.’
나는 진흙 덩이가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뭐, 뭐야! 어떻게!”
“감히 피해?”
경악한 낯의 소우악과 씩씩거리는 백리표가 보였다.
아니 변하긴 했다.
과거에 쌍둥이들은 네가 우리 가문의 체면을 더럽힌다고 어딜 감히 기어 나오냐며 깔깔댔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게 쏠린 관심을 질시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백리의란이 강호 지사들 앞에서 벌인 소란은 천산염제의 등장에 밀려 크게 회자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수는 없지.’
소문의 당사자도 아닌, 장자와 장손인 백리묵과 백리명은 별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백리의란과 쌍둥이들은 달랐다. 백리의란이나 쌍둥이들과 친해져 봤자 득이 될 것 없다는 분위기는 순식간에 퍼졌다.
그 분위기는 당사자가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전과 달리 기꺼이 이야기하려 들지 않고 심드렁하게 변한 태도들.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 훨씬 더 속내를 포장할 줄 몰랐다.
‘거기다 쌍둥이와 원래 가깝던 사람들도 다가오려고 했지.’
쌍둥이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노려보아 차마 다가오진 못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고계암으로 쫓겨난 일로 내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을 녀석들이었다.
심지어 이런 냉대라니.
백리표가 소리쳤다.
“당장 꺼지지 못해! 네깟 게 좀 떠받들어 준다고 뭐라도 된 줄 알아?”
“네가 꺼지지 그래? 그러는 넌 사라져도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은데.”
“뭐, 뭐라고?”
“내가 보니까 다들 너랑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던데.”
정곡을 찌른 말에 백리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닥쳐! 닥치라고!”
버럭버럭 소리치는 백리표와 달리 소우악은 뭔가를 눈치챈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조금만 머리가 있다면 내가 진흙덩이를 깔끔하게 잡은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백리표가 몸을 숙여 다시 진흙을 쥐었다.
“잠깐, 표야.”
소우악이 말리려는 듯 백리표의 어깨를 짚었다.
“뭐 해! 너도 빨리 해! 하나는 맞겠지. 그 꼴로도 어디 연회에 나올 수 있을지······!”
진흙을 쥔 백리표가 몸을 일으킨 순간.
휙 – 무언가 날아오고.
퍽 소리와 함께 백리표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악!”
“표야!”
소우악이 깜짝 놀라 백리표를 붙잡았다. 백리표는 이마를 감싸 쥐로 부들부들 떨었다.
소우악이 황급히 백리표의 손을 떼어 내며 맞은 곳을 확인했다.
“헉, 허억, 허어엉.”
백리표가 헐떡거리며 울먹였다.
머리부터 이마에 갈색 진흙이 처참하게 묻어있었다. 그리고 붉은빛이 스멀스멀 퍼져가다 흙탕물과 함께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 피가······!”
툭. 그때 백리표의 옷자락에 걸려 있던 작은 돌이 바닥에 떨어졌다. 진흙 안에 들어 있던 돌이었다.
‘예전에 저걸 맞고 이마에 흉터를 얻었지.’
소우악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웃었다.
“나는 놀자고 던진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