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 * *
모두가 잠들었을 시각.
투둑투둑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요란스럽게 기와 천장을 내리쳤다.
“쏟아지네, 쏟아져.”
홀로 중얼거리는 막개의 표정은 고뇌가 가득했다.
그는 들고 있던 서신을 다시 보았다.
“아니, 하필 출발하고 나서 오냐? 며칠만 더 일찍 왔으면······.”
서신은 최근 무림맹이 돌아가는 상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무림맹이 돌아가는 모습은 적어도 막개가 느끼기에는 가관이라는 말이 걸맞았다.
“백리 세가를 끌어들일 줄이야. 위맹주가 미친건가? 아니, 아니지. 머리 하나는 잘 굴렸다고 봐야 하나?”
악양까지 이 정보가 오는 데 꽤 걸렸을 테니, 지금은 또 어떻게 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코 백리 세가와 백리의강에게 좋은 방향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걸 어쩌나······? 아니 뭐, 내가 알려줄 의무는 없지 않나?”
개방에서 그에게 내린 임무는 백리의강을 적당히 도우며 정보를 얻어 오는 것이지, 물심양면 지원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심지어 백리의강은 이미 며칠 전 무림맹 본성으로 떠난 상황.
“······.”
한참 침묵하던 막개가 종이를 꺼내며 붓을 들었다.
“······그래도 빚을 지워 두면 나쁘지 않겠지? 게다가 무슨 일 있으면 알려 주기로 했고······약속한 건 지켜야지.”
도와주고 싶어서 자신이 핑계를 대고 있는 걸 알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백리의강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어린 거지들이 많았다. 부잦집 도련님이 돈 많으니 좀 뿌리는 게 대수냐고 빈정대거나 심지어 재수 없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부자라고 모두 돈을 뿌리고 다녔으면 거지가 왜 있어? 도움 받았으면 도와주고그러는 게 세상사아닌가?
게다가······.
막개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이곳의 상황이 위지백, 맹주에게 흘러들어 간 정황이 있었다.
“대체 어떤 쥐새끼가 정보를 넘긴 거야?”
다시 떠올리니 열이 확 뻗쳤다.
분명 제 부하 중 누군가가 여기의 소식을 맹주 측에 넘긴 것이다.
백호단, 백리 세가와 남궁 세가의 사람들도 있지만, 그 셋은 맹주 측에 정보를 넘길 이유가 없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사이 막개는 전서구들을 관리하는 방에 도착했다.
심정만으로는문을 쾅 열어젖히고 싶었으나 새들은 새가슴이기때문에 조심스레 다뤄야 했다. 훈련한 전서구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는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레 문을 열다 멈칫했다.
“거기 누구야? 음? 소개? 너 안자고 여기서 뭐 하냐?”
작은 체구의 거지가 눈을 끔뻑이다 답했다.
“비 맞는 새가 없는지 확인하러 왔죠.”
“그래? 잠도 안 자고 잘했다.”
전서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에 열어 둔 창문 근처가 쫄딱 젖어있었다.
“그러는 형님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막개는 새똥 냄새가 가득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새장들을 살폈다.
“전서구 있는 방에 왜 왔겠냐?”
“어디에 보내시려고요?”
“위쪽에 보고할 게 좀 있어서.”
파드득, 파드득.
불빛에 깨어난 새들이 새장 안에서 부산스럽게 날갯짓했다.
막개는 적당한 새를 고른 후 새장을 열어젖혔다.
소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그치고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막개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게. 음······ 급해서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네.”
막개가 얼굴을 긁적이더니 다시 손을 움직였다.
“일단 이놈은 보내고, 나중에 그치고 나서 또 한 놈 보내지 뭐.”
곧이어 전서구 한 마리가 쏟아지는 빗속을 뚫으며 날아갔다.
“그럼 저도 가 보겠습니다.”
“소개야.”
막개의 음성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손 좀 펴 보거라.”
“······.”
“왜 대답이 없어? 손 좀 펴보라니까.”
그가 전서구를 고르기 전 쭉 훑어본 새장 속 새 한 마리가 흠뻑 젖어있었다. 그리고 새장까지는 비가 들이치지 않았다.
즉, 흠뻑 젖은 새는 비가 내리고 나서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새의 발목의 대롱은 열려 있었다. 자신은 비가 오고나서 전서구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소개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형님,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혀가 길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손바닥 내놔.”
머뭇거리던 소개가 결국 손을 펼쳤다. 그리고 손바닥에는 구겨진 서신이 있었다.
이미 의시마고 있었지만, 실제로 행한 모습을 보니 화가 절로 치솟았다.
“너 이 새끼!”
퍽!
막개가 소개의 뒤통수를 거세게 갈겼다.
소개가 비틀거리는 사이 손의 종이를 휙 뺏어 갔다.
구겨졌지만 글을 읽는 건 문제 없었다. 그리고 몇 글자 읽기도 전에 막개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너 이걸 왜 숨긴 거야? 너, 설마 마교······.”
“형님! 형님. 잠시만요. 제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설명······.”
막개가 말할 때였다.
소개가 갑자기 막개에게 일장을 내뻗었다. 개방의 거지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장법 중 하나였다.
막개는 다소 안도했다.
손쉽게 소개의 공격을 피해 낸 막개가 말했다.
“네 실력으로 날 상대할 수······.”
그 순간 막개의 손바닥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을 바라보자 가느다란 침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 부터 시작한 마비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소개가 뻣뻣이 굳은 막개를 향해 말했다.
“형님, 그동안 고마웠소.”
“너······.”
“하루 일찍 가는 것뿐이니 너무 억울해할 것 없소.”
* * *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자 조금 잦아들었다.
어젯밤 남궁완 아저씨와 밤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급하게 들어가야 했다.
‘어차피 아저씨는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은 다 하신 모양이었지만.’
나는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먹먹한 느낌이었다.
남궁완 아저씨께 그런 얘기를 들어서일까? 갈수록 꿈꾸는 것이 줄어들었는데 어제는 다시 내리 꿈을 꿨다.
운기조식에서 별것 없던 것과 정반대였다. 심지어 이번에 꾼 꿈은 아주 예전에 꿨던 적이 있는 꿈이었다.
나는 어둡고 서늘한 감옥 속에 있었고,눈매가 익숙한 복면인이 겁에 질려 떨던 나를 끌고 나갔다.
‘이 꿈을 꿨던 게 그러니까······ 석가약을 치료하고 나서였지?’
그러고 보니 그때와 지금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내 금안의 능력을 다루는 것에 발전을 이룬 시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복면인에게 거의 질질 끌려가듯 한참을 걸었다.
내가 뿌리치지 않았던 것은 이 복면인이 정말로 나를 이곳에서 꺼내 주려고 노력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게 이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꿈을 꾸면 꿀수록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꾸는 꿈들이 소설 내용이 맞는 건가?
저번에 남궁류청과 서하령이 내게 화를 낼 때 느꼈더 억울하고 서러웠던 감정, 그리고 지금 겁먹은 감정까지 모두 내가 직접 겪는 것처럼 선명했다.
밤새 이어진 길고 긴 탈출.
“여기서부턴 너 혼자서 가야 한다.”
말에는 안장과 간단한 짐이 놓여 있었다.
“이쪽으로 조금 내려간다면 널 찾
으러온 이들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저를 찾으러······ 청이요? 청이가 절 찾으러 온 건가요?”
그만해! 청이는 무슨 청이!
알아서 혼자 결론을 낸 나는 황급히 말의 고삐를 잡았다.
마지막에는 지쳐서 복면인에게 업혀서 옮겨졌던 주제에 말에 오르는 속도는 재빨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말에 오르자마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복면인이 나를 황급히 잡아 주려했다. 그리고 고삐를 놓치고 허공을 휘젓던 내 손이 하필이면 복면을 붙잡았다.
투둑. 아차 하는 사이 복면이 벗겨졌다. 그리고 한 여인이 있었다.
“허억, 죄, 죄송······.”
반사적으로 사과하던 나는 여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등에 업혔을 때 여인인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놀란 것은 너무나 고운 얼굴 때문이었다. 나이는 중년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눈매로 보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확언할 수 있는 게 한 번 보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외모였다. 그런데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
“······.”
중년의 여인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복면을 다시 썼다. 그리고 먼저 자리를 떴다.
저꿈이 지금 내 머리를 먹먹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머리 아파?”
야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밤새 꿈을 많이 꿔서. 나만 주지 말고 너도 먹어.”
“무슨 꿈들?”
“그냥 옛날 일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걱정하는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 네가 날 걱정할 때야?”
“왜?”
“너 오늘 비무······ 됐다.”
“네가 내가 이길 거라며?”
“그건······!”
“그냥 장난이었다고? 그래도 난 좋은데.”
야율이 살풋 웃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누가 이길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소설에서······ 아니, 이젠 소설이기는 한지 믿을 수도 없지만.
하여튼 내가 알기로는 둘은 몇 번이고 마주쳐 싸웠지만 제대로 승부를가린 적은 없었다.
한번은 야율이 비겁한 수로 이겼는데, 웃긴 게 또 야율이 이겨놓고는 남궁류청을 죽이지 않았었다. 그땐 주인공이 죽으면 소설이 거기서 끝나니까, 라고 별 생각 없이 넘겼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나는 밖으로 향했다. 객실을 나가자마자 남궁완 아저씨가 보였다.
인사를 하러 가려고 할 때 아저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선 무사를 향해 말했다.
“이상하군. 본가에서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적어도 늦어지면 연락할 법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