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 * *
밖에서 안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도록 문과 창을 떼어 낸 객잔 1층.
10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남궁완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객잔 1층에서 대여섯 발자국 거리를 두고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와 마주앉아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천마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 아들일 터인 3공자의 시신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는 듯 행동했기에, 우리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천마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 요구했다.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렇게 천마와 마주앉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곳의 많은 이들을 두고 나와 마주 앉다니.’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나는 알 것 같기도 했고 전혀 알 수 없기도 했다.
시선을 마주쳤을 때부터 용건이 나인 것은 알 수 있었다. 회귀와 내가 바꾼 미래 등, 아마도 그와 관련한 얘기겠지.
하지만 대체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그 목적에 대해선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
원래도 있던 두통이 긴장으로 더더욱 심해졌다.
천마가 마교 본산에서 내려오다니······.
최근 백여 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게다가 천마는 소설 속에서도 한 번도 움직인 적 없었다. 남궁류청이 점차 날개를 펴며 마교의 전당들을 물리치는 동안에도 단 한번도.
그런데 왜 이번에 여기까지 와 나와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아 있는가.
지금까지 계속 시련이 있었지만, 그래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흐름을 이해하고, 어찌 극복할 방법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대개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백리세가의 무사들 또한 애써 정신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바교 쪽은 그나마 얼굴을 드러낸 소수의 몇 명조차 훈련받은 듯 완벽하게 무표정해서 속을 알 수가 없었고, 교주는 말 할 것도 없었다.
불쌍한 객잔 점원이 찻잔과 찻주전자를 날랐다. 무척 떨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째 아주 멀쩡한 얼굴이었다.
차분하게 걸어온 점원이 찻잔과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물러갔다.
곧 이유를 깨달았다. 점원은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뭔가에 홀려 있었다.
아마도 후일 천마가 왔고, 자신이 차 심부름을 했단 사실조차 기억도 못 할 듯싶었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나는 빈 찻잔과 찻주전자를 바라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차 안 따라줬다고 죽일 놈이라면 내가 뭘 하든 죽일 테니 움직이지 않았다.
천마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남궁완 아저씨가 뭘해보기도 전에 숨이 끊어질 터였다.
천마는 내가 따라 줄 생각이 없어 보여서인지, 혹은 아무 생각 없어서인지 본인이 소매를 잡고 찻주전자를 들어 자신의 찻잔과 내 찻잔을 모두 채웠다. 정말 예상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천마의 서두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중압감에 입을 떼는 것조차 어려웠다. 나는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내 답했다.
“······ 오랜만이라고요?”
천마가 나를 억누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게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천마에게 있고,그 영향을 나도 받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천마의 힘 자체가 음침하니 어둠을 모아둔 것만 같은 그래, 마(魔) 그 자체였다. 그래서 더더욱 꺼려졌다.
천마가 말했다.
“거기까진 아직 떠올리지 못했나.”
거기까진 떠올리지 못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설마 내가 최근에 여러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게다가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내게 알려줄 생각이 있어 보였다.
알려줄 생각이 없다면 내가 전혀 모르던 사실을 꺼낼 필요 없을 테니까.
나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제가 떠올리지 못했다니요? 저와 만난 적 있나요?”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마치 실망이라도 했다는 듯한 어조였다. 천마가 말을 이었다.
“제갈 세가주의 모습을 보고 느끼지 못했나?”
“······.”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지. 그게 너라고 다를 거라 여기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제갈 세가주는 대대로 기억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제갈화무는 그걸 무척 싫어했다.
물려받은 기억을 받아들일수록 자신의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걸 무척 경계했다. 본인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자신이 자신 같지 않고 가문의 주구가 된 느낌이라고.
그래서 제갈화무가 기억을 모두 받아들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기억을 받아들이길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고 다를 것 같으냐는 건······.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나도 기억을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가?’
설마 그래서 그동안 모두 기억하지 못했던 건가?
그리고 최근 내가 계속해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최근 금안의 능력이 한 단계 상승했지.’
금안의 능력은 상단전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기이하게 상단전만 발달한 제갈화무를 보아서는 기억과 상단전이 연관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제갈화무와 내가 이런데 아무리 윤회에서 벗어난 불가의 괴력난신이라도, 천마는 대체 이 모든 걸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걸까.
의문을 가진 순간 나는 천마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야?’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실 같은 것들이 천마의 몸에 잔뜩 얽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듯 깨달았다
천마가 회귀했으면서 무림맹을 습격하기 전까지 만신의에 관한 일을 빼면 별다른 움직임 없이 지냈던 이유.
그게 바로 저 몸을 칭칭 감싼 줄 때문이라는 것을. 게다가·····.
‘이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나?’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절대 이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어둡고 탁한 알 수 없는 지독한 힘으로 만들어진······ 덩어리에 가까운 것이 사람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보았구나.”
천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평범하게 짓는 미소였다. 그래서 더 섬뜩했다.
당장 일어나서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실에 묶여 있는 건 교주가 아니라 내 몸인 것만 같았다.
고작해야 탁자 아래 손끝만이 덜덜 떨 수 있었다.
교주가 말했다.
“겁 먹지 말아라. 널 죽일 생각은 없으니.”
천마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여상한 태도였다.
“널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러고 대화할 리가 없지 않으냐.”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숨조차 쉴 수 없게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입술을 뗄 수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천마가 처음부터 내게 말해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널 죽이면 백리의강이 구도자가 될 테니.”
“아버지요?”
갑자기 튀어나온 아버지 얘기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좀 전까지 입술을 떼기조차 어려웠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질문을 던진 상태였다.
천마가 나를 지그시 응시하더니 뭔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또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구도자.”
“구······도자요?”
“대적자라고도 할 수 있지.”
“······.”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천마가 나를 바라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백리의강을 해독하고 싶겠지?”
“······.”
아버지가 독에 당한 사실도 알고 있다니.
이미 회귀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 테니, 당연히 알고 있을법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이 독을 쓴 거였군요?”
그는 일상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래. 그는 내 대계에 방해물이었으니.”
나는 탁자 아래 주먹을 꽉 쥐었다. 천마가 말을 이어갔다.
“너는 모두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반복된 회귀 속에서 백리의강이 해독에 성공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모두 공통점이 있었지. 방법이 궁금한가?”
당연하지!
내 눈빛으로 답을 읽어낸 듯 천마가 말했다.
“그 방법이 매우 어렵더라도?”
“상관없어요.”
본인이 중독시켜놓고 해독방법을 알려준다니, 웃기는 상황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그저 천마의 흥미일 뿐이더라도, 갑자기 든 변덕일 뿐이더라도, 심지어 함정이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은 간단하단다.”
천마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죽으면 된다.”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귀를 의심했다.
천마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너만 없다면 백리의강은 내가 어떻게 방해하든 끝내 독을 해독하여 내 앞길을 막아섰지.”
천마가 낮게 웃었다.
“그 외에는 한 번도 해독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
“네가 죽으면 백리의강은 자유로워질테니.”
그러니까 교주의 말뜻은······.
내가 있어 그동안 아버지가 해독에 온전히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내가 없어진다면 얽히는 것 없이 자유로워진 아버지가 해독방법을 찾아낸다는 뜻이었다.
나 때문에, 내 존재에 그동안 발목이 잡혀서 해독하지 못한 채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셨다는······.
천마가 말했다.
“그런데 과연 백리의강이 그걸 바라겠느냐?”
침묵하던 나는 더듬거리듯 말했다.
“······그럼 나를 그동안 내버려 둔 이유가······.”
“그래. 그것이 네 용도니라.”
천마가 아직 웃음기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를 바꾸었다고 좋아하고 있었느냐? 이기고 있는 것 같았느냐?”
“······.”
“안타깝구나. 네가 없는 미래가 훨씬 가능성이 큰 미래였거늘.”
천마가 마치 자비를 베푼다는 듯이 말했다.
“어떤가, 네 아비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느냐? 무섭다면 내가 대신해줄 수도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