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싸늘한 낯빛과 무거운 분위기.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여론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넘어간 상태였다.
곳곳에 휴일을 맞아 예선전을 구경 온 맹원들과 심지어 강 대협의 부하인 치안대원들조차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듯 의혹이 어린 시선이었다.
강 대협이 황보찬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황보찬 주변의 다른 이를 보고 있었다.
곧이어 강 대협이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오!”
그건 마치 악당들이 퇴장할 때의 전형적인 대사 같았다.
“두고 보시오!”
강 대협이 모여든 구경꾼들을 거세게 밀치며 빠져나갔다. 그 뒤를 치안대원들이 우르르 따라서 빠져나갔다.
치안대 두엇은 내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위 맹주의 위세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 위 맹주가 건재했을 때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맹원들, 특히 평대원들은 덮어 놓고 명문대파를 적대했다.
위 맹주의 여론전과 그간 쌓인 업보들로 맹원들 사이에서는 소수의 몇몇 – 예를 들면 내 아버지 – 빼고 명문 대파들의 이미지가 무척 나빴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처럼 위 맹주가 존경받고 있다면 그냥 구경꾼들이라면 모를까, 맹원들은 말 몇 마디로 설득되지 않았을 테다.
떠나는 강 대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팔을 누군가 꽉 붙잡아 왔다. 남궁류청이었다.
서늘한 낯의 남궁류청이 황보찬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나를 그에게서 떼어 놓으려 했다.
“뭐, 뭘 그렇게 쳐다 봐?”
황보찬도 지지않고 남궁류청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남궁류청의 손길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꽤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의 남궁류청에게서 시선을 돌려 황보찬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황보 공자.”
“뭐, 왜. 왜 불러? 요?”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황보찬의 낯빛이 점차 붉어져 가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한번 고민해 보세요. 공자가 왜 여기서 남궁 공자와 다투게 되었는지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황보찬은 정말 영문을 모르는 듯한 눈빛이었다.
‘바보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눈높이를 맞춰 설명했다.
“류청을, 남궁 공자를 싫어하는 이들은 아주많답니다.”
황보찬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해석하자면 뭐야, 백리연은 남궁류청이랑 친구 아니었어? 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왜 황보 공자가 대표로 남궁 공자를 상대하게 되었을까요?”
“뭐?”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거예요.”
독불장군형 천재. 본인의 외모 또한 수려하기 그지없고, 거기에 아리따운 여인들까지 거느린다? 추종자도 많지만 반대로 공공의 적이기도 했다.
나는 더 확실하게 말했다.
“누군가 공자를 부추겼을지도 모르죠.”
“지금······ 내가 다른 놈들에게 속았다는 거야? 어? 내가 다른 놈의 부추김에 저 녀석이랑 싸우게 됐다 그거야?”
나는 알아서 생각하라는듯이 미소로 답했다.
붉어진 낯의 황보찬이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이간질을 하려나 본데, 안 속아!”
하지만 황보찬의 믿음에 찬 외침과 달리, 황보찬을 부축하다 내게 밀려났던 소년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부디 본선에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비무장에 올라온 서하령이 나를 확 잡아끌었다.
“언제까지 얘기하고 있을 거야? 가자.”
서하령에게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거의 질질 끌려 비무장을 내려갔다.
황보찬에게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서하령이 멈춰 서고 나는 붙잡혔던 팔목을 빼내어 문댔다.
“살살해. 아유, 우리 하령이 손힘이 장사네.”
얼마나 억세게 움켜쥐었는지 팔뚝에 붉은 자국이 남았을 정도였다.
서하령이 도끼눈을 하며 말했다.
“저딴 녀석한테 뭐 하러 덕담을 건네?”
함께 내려온 남궁류청이 은근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하령이 간만에 마음에 드는 말을 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니······ 너는 또 왜 동의해?’
나도 모르게 남궁류청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만이었다.
그러니까 지나번 악양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남궁류청이었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남궁류청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
“······.”
그 시선을 살짝 피하며 흐트러졌던 옷자락을 정돈했다.
‘이걸······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상황이 다급해 일단 끼어들고 보았지만 다 끝난 지금 남궁류청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미묘했다.
‘그보다 아니, 대체 류청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남궁류청은 과거 예선 첫날 경기를 한 번 보고 그 뒤로 다시는 예선전에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예선전을 구경하는 것보단 개인 수련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위 맹주의 직전 제자가 예선에 나오는 날에도 오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이번에도 오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황보찬하고 싸우는 곳도 이곳이 아니었다. 무협지라면 꼭 부서져야 하는 약속의 장소, 객잔에서 싸움이 났다. 그것도 본선 직전에.
그래서 나는 본선 직전까지 최대한 남궁류청을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알짱거릴수록 마음을 정리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그때 공손월이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남궁류청 곁으로 다가왔다.
남궁류청이 공손월을 바라보자 공손월이 살포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한 걱정이었나?’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다친 곳은 없느냐, 괜찮냐고 묻는 듯한 대화였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더 듣고 싶었지만 서하령이 내 소맷자락을 잡고 흔들어 대며 말을 걸었다.
“연아, 너 설마 황보찬 저 새끼가 마음에 든 건 아니겠지?”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서하령의 입술을 손가락질했다.
“뭐어? 하아. 그 입, 입조심해. 여기 귀 밝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저 새끼가 뭐야? 너도 한판 하고 싶어?”
“흥, 덤빌 테면 덤비라지. 보니까 별것도 아니더구먼.”
“하령아! 한 번 더 소란 피우면 이번에는 못 지켜 줘.”
코웃음을 친 서하령이 갑자기 내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미안해.”
“응?”
갑작스러운 사과에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걱정할 때였다.
“내가 가만히 있었던 건 안 도와주려던 게 아니고······ 도와주고 싶었는데 내가 나섰다가 괜히 치안대에 트집 잡힐까 봐 가만히 있었어.”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미소 지었다.
“괜찮아.”
눈치를 보던 서하령이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
“율법원에 가면 안 됐던 거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 내가 설명하려는 순간이었다.
“현재 율법원에는 맹주님의 사람이 자리 잡고 있으니까.”
끼어든 공손월이 내게 실례한다는 듯이 살짝 고개 숙였다.
서하령은 공손월과 이미 아는 사이인 듯 익숙하게 물었다.
“맹주의 사람이라고?”
말까지 놓은 것을 보아 그냥 익숙한 정도가 아닌 듯싶었다.
“응. 위 맹주님의 처남 되는 사람이지. 본디 이번에는 무당파에서 맡아야 했지만······.”
지금 무당파는 봉문 상태였다.
서하령이 발을 구르며 성을 냈다.
“아이 진짜 짜증 나.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다 신경 써야 해? 숨 막혀.”
“서하령. 체통을 지켜. 보는 눈이 많다.”
이를 꽉 깨문 서하령이 남궁류청을 노려보고 흥-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이를 무시하며 남궁류청이 내게 말했다.
“이쪽은 공손 세가의 공손월 소저. 네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대.”
공손월이 두 손을 모았다.
“이렇게 인사하게 되는 건 처음이네요. 공손월이라고 합니다.”
“백리 세가의 백리연입니다.”
나도 마주 손을 모았다.
공손월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저희 때문에 괜한 일에 휘말리실 뻔하였네요. 사죄드립니다.”
‘······저희들이라.’
공손월은 과거 위 맹주의 세력이 득세하던 무림맹 내에서 남궁류청의 아군이었다. 그 행동들은 남궁류청을 향한 이성적인 호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벌써 남궁류청을 돕고 있는 모양새였다.
공손월은 자색도 뛰어났고, 무공 실력도 괜찮고, 이를 받쳐 주는 지략도 있었다.
가문 또한 백리 세가보다 명망있는 공손 세가였다. 위로는 가문을 이을 오라비들이 있어 꺼릴 것도 없었고, 심지어 친부는 무림맹의 총군사였다.
그야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래······ 정말로 잘 어울렸다.
누가 와도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하령은 이제 완전히 남궁류청을 이성적으로 보지 않는 듯 보였지만, 공손월은······.
“······감탄스러운 언변이었어요. 한 수 배웠답니다. 어··· 소저?”
“······.”
“백리 소저. 소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공손월이 걱정스러운 낯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아, 뭐라고 하셨죠?”
“정신을 어디다 놓고 있는 거야?”
서하령의 핀잔에 공손월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피곤하신가 봐요.”
“아, 아뇨. 괜찮아요. 무슨 얘기하셨죠?”
“언변이 대단하시다고 말씀드렸어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역시 이야기를 전해 듣는것 보다는 이렇게 뵙는 게 훨씬 더 잘 알겠네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며 남궁류청을 흘끗 보는 게 누구에게 전해 들었는지 역력히 보였다.
“두 분이 많이 친하신가 봐요.”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