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 * *
악중해.
산동 악가의 차남으로 예전에 천귀조 사건에서 내 아버지께 목숨을 구명받은 적 있었다. 그 뒤로도 꾸준히 서신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그건 되려 내가 물어봐야지.”
알고 보니 이 자리에는 전대 용봉지회의 선배들도 초대되어 있었다.
이 비무 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이들이 용봉지회에 들어갈 것은 당연지사.
이미 용봉지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가령 위구중처럼. 그러니 자연스레 선배들도 함께 하는 자리가 된 것이었다.
내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 은근 구경하던 이들이 재미없는 결과에 실망하는 것이 느껴졌다.
악중해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엊그제 너 만나러 갔는데, 자리를 비웠더라고?”
엊그제였다면······.”
백리리를 만나서 외출했을 때였다.
“여기 내 동생인 악중산이야.
내 동생도 이번 비무 대회에 참석하거든. 소개 좀 해 주려고 했지.”
아직 어린 티 나는 소년이 내게 절도 있는 태도로 양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악중산입니다. 형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꽤 귀엽게 생긴 외모였지만, 덩치는 악중해 오라버니처럼 거대했다.
“백리 세가의 백리연이에요.”
그때 악중해 오라버니 뒤편으로 위구중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계획이 틀어진 속내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위구중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는 낯으로 포권했다.
“위구중입니다. 소저가 선배님과 이렇게 친밀한 사이인 줄 미처 몰랐군요.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악중해 오라버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평생 모른 척할 줄 알았더니만.”
위구중의 표정이 살짝 굳었으나 태연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담에 깊게 빠져있다 보니 백리 소저의 도착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나는 옷자락을 정돈하며 나른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기척에 둔하면 누가 왔는지 눈치채지 못할 수 도 있죠.”
깜짝 놀란 듯눈을 부릅뜬 악중산의 표정이 꽤 우스웠다.
비슷한 표정이었던 악중해 오라버니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하하하! 그래. 뭐, 둔한 건 어쩔 수 없지.”
위구중이 붉으락푸르락한 낯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쩌려고? 때릴 거야?’
정신머리가 남아 있어서인지 선배 앞에서 함부로 굴지는 않았다.
‘안타깝군. 여기서 진상이라도 떨었다면 2차 3차도 할 수 있는데.’
악중해 오라버니가 웃음을 그치며 말했다.
“너 정말 여전하구나? 어릴 때도 한 성격 하더니만.”
“제가요? 한 성격이라니요. 저처럼 착하고 얌전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옳지. 맞는 말이야. 그럼그럼.”
우스갯소리를 마친 악중해 오라버니가 위구중을 돌아보고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구중아, 네 행동이 맹주님을 대변한다는 걸 늘 생각해야지.”
“······예. 조심하겠습니다.”
위구중은 겉으로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를 향해 연회를 즐기라고 말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악중해 오라버니가 그런 위구중의 뒤통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중해 오라버니의 친근한 접근을 기점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가장 선두에는굳은 표정의 남궁류청이 있었다.
말이 많았을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악중해 오라버니는 마당발이었다. 내게 이 사람 저사람을 소개해 주었고, 반 시진 정도 지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한 무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어째 위구중의 무리와 나뉘어 있기도 했다.
그때 귀를 잡아채는 대화가 들렸다.
“······벽가장의 일은 들었습니다. 동맹으로서 유감일 뿐입니다.”
벽 소공자와 청년의 대화였다.
청년은 몇 마디 의례적인 위로를 하고 곧장 자리를 옮겼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의아한 인선이었다. 벽 소공자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벽가장이 명문 대파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면 애매하였고, 심지어 벽 소공자의 실력 또한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벽 소공자는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겉돌고 있었다.
다른 이와 떠들던 악중해 오라버니가 말했다.
“뭘 보는 거야? 벽 소공자?”
나는 술잔을 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성율이가 안 됐지. 가문이 그러헥 되다니.”
생각해 보면 악중해 오라버니는 용봉지회 당시 벽성율과 같은 조로 파견을 나갔었다. 물론 벽성율이 그들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 후, 벽성율은 하급무사로서 무림맹에 봉사하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했다. 그 모든 수습을 도왔던 것은 위맹주였다.
확실히 이렇게 보면 위 맹주는 벽가와 매우 가까웠다.
‘그런데 이렇게 한 순간에 팽하다니.’
파헤친다면 꽤 얻을 정보가 많아 보였다.
“제 가문이 그리되었는데 이런 연회에 참석하고싶을까. 당장 돌아가봐야지 않나?”
누군가 살짝 조롱하듯 얘기했고, 여럿 동조하는 말들이 나왔다.
씁쓸한 표정을 지은 악중해가 손을 내두르며 말했다.
“됐어. 다들 그런 말 하지마.”
잠시 조용해지고, 나는 분위기를 바꾸도록 말을 건넸다.
“아, 그러고보니 중해 오라버니, 소용 언니와 곧 혼인한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악중해 오라버니의 얼굴이 달처럼 밝아졌다. 악중해 오라버니는 당시 용봉지회의 조장이었던 당소용 언니와 이번에 혼약을 맺었다.
축하한다는 말이 쏟아지는 와중 누군가 초를 치는 말을 했다.
“그런데 당가는 무조건 데릴사위로 들이지 않습니까?”
황보찬이었다.
“그렇지.”
“당가가 그런 점은 엄격하죠.”
“혼인하면 예전 같진 않겠어.”
워낙 배타적인 당가는 딸이 당가의 비전을 배웠을 시에는 데릴 사위만 들일 수 있었다.
탁. 술잔이 탁자에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남궁류청이 싸늘하게 말했다.
“데릴 사위가 무엇이 어떻길래 반응들이 그렇습니까?”
데릴사위라는 말이 나오자 인상을 찌푸렸던 한 청년이 당황하며 답했다.
“뭐, 그, 그야 그렇지요. 그런데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있습니까?”
“글쎄요. 무시하는 듯한 어조가담겨 있었는데 제 착각인가 봅니다?”
“그, 그냥 별말도 아니지 않느냐? 네 착각이지.”
“다른 이의 인륜지대사인 혼인을 착각하기 쉬운 어투로 말하는 것이 옳지는 않지요.”
사그라드는 듯하던 논쟁은 눈치없는 황보찬에 의해 다시 불붙었다.
“아니, 사내 대장부라면 제 가문을 이루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안 그렇소?”
몇몇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팔자다 싶었다.
나는 황보 공자를 향해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오, 황보 공자께서는 조상님들의 은덕을 벗어나 새 가문을 세우시려는가 봐요. 대단하네요.”
“아니, 내가 언제 그리 말했소?”
“방금 그리 말씀하신 거 아닌가요? 황보 공자께서 황보 가문을 세우신 건 아니잖아요?”
“······.”
네 조상이 세운 가문이지 네가 세운 가문도 아닌데 너도 똑같은 처지 아니냐는 뜻이었다.
분위기가 가라앉고 이내 악중해 오라버니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혼인은 내가 하는데 왜 너희들이 나서서 난리야? 뭐가 그렇게 심각해?”
“이게 다 네가 요란 떨며 혼사를 진행해서 그런 게지 않냐?”
용봉지회의 선배 한 명이 장난스레 타박하자 몇 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황보 공자가 남궁류청을 노려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중해 오라버니가 나와 남궁류청의 술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하하, 너희들 고맙다. 연이는 그렇다 치는데, 류청 네가 나를 도울 줄은 몰랐다.”
“다른 이의 인륜지대사에 함부로 말을 얹는 것이 불쾌했을 뿐입니다.”
남궁류청이 새침하게 답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악중해 오라버니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남궁류청을 향해 말했다.
“그래. 너도 힘들겠다. 도움이 필요하면 이 형님에게 말하렴.”
“······.”
그저 남궁류청이 황보찬에게 밀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편들어 준 것이었는데 괜한 짓을 한 듯싶었다.
조금 더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는 바람을 좀 쐬고 오겠다며 연회장을 나갔다.
주루를 통째로 빌렸기에 쉬거나 따로 사담을 나누고 싶으면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빈방들이 있었다.
그중 한 빈방을 찾아 들어 갔다.
주독이야 자연지기로 몰아낼 수 있지만 그 탓에 온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점원에게 물을 떠 오게 한 후, 손을 씻고 가볍게 세수를 했다.
정신이 좀 맑아지는 기분을 느끼며 물기를 닦아 낼 때였다.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여성을 짧은 비명과 사내가 버럭 화를 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사과를 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어째 사과하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소란이 일어난 곳은 내 바로 옆 방의 문 앞이었다.
그리고 소란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은 남궁류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