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 * *
이튿날 오전.
거의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잘 요양하면 문제없이 나을 거래요. 젊고 건강한 데다가 무공까지 익혔으니. 아가씨 예상이 맞았어요.”
“그렇구나. 이제 온 거면 식사는 했어? 안 했으면 앉아.”
나는 완자탕을 내려놓는 하인에게 지진의 식사도 내오게 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진진이 물었다.
“어제 온 그 의원은 아가씨랑 같이 있던 그자가 보낸 건가요?”
“그자?”
나는 의아하게 진진을 바라보다 물었다.
“얼굴 못 봤어?”
“보긴 했는데, 밤이 깊은 데다가 정신도 없었고 인상도 너무 흐릿한 느낌이라 기억이 잘 안나요.”
술법인 건가? 당당하게 맨얼굴로 돌아다닌다 했더니만 숨겨 둔 수가 있었다.
“응. 그자가 보낸 거야.”
야율이 이번 일에 엮여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야율의 성격에 몇 년 전의 일로 원한을 가졌다면······.
‘벽가장처럼 그냥 죽이겠지.’
그냥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꾸밀 이유도 없으며, 팔을 부러트리는 것에서 끝날 리가 없다는 걸.
‘야율은 장철이 누군지 잘 기억도 못 하겠지······.’
예상컨대 아마도 진진이 온 지구 주루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받지 않았을까.
의원을 보내 준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호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원이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된 건 아니었다. 야율이 보낸 의원이 도착하고 반 시진 후에 공손월이 무림맹 의원과 왔으니까.
‘누가 의심해서 조사라도 하면 어쩌려고.’
생각할 수록 야율의 속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생각에 잠겨있을 때 진진이 나를 향해 물었다.
“이번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걸까요?”
오전 나절 벌써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장가장에 소식이 닿으려면 한참 걸릴 테고, 심지어 장가장은 우리 가문과 아무 연관도 없어. 뭐라고 항의할 수 있겠어.”
진진이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찻물을 마시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어.”
그때 방 밖에서 기척이 느껴지고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리 소저,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가 오셨느냐?”
“공손 세가의 공손월 소저이십니다.”
진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일까요? 공손 소저 어제 밤새 장 공자 객잔에 머물러서 무척 피곤할 텐데요.”
나는 진진의 말을 뒤로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 * *
“식사 중이셨다면서요?”
공손월은 내게 할 말이 있다며 함께 조금 걷자고 했다.
“괜찮아요. 전 다 마친 참이었어요.”
“그렇군요.”
그리고는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나는 먼저 용건을 꺼내길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한참이 지나도 공손월은 입을 열 기색이 없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까 고민하는 찰나 공손월이 입을 열었다.
“그 검은 애용하시는 건가 봐요?”
“검이요?”
뜬금없는 말이었다.
나는 허리춤에 단 고아한 느낌의 검을 보았다.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예. 아버지께서 성년이 된 기념으로 주셨죠.”
“백리대협님, 정말 좋으신 분이죠.”
“제 아버지를 뵌 적 있나요?”
“네. 아버지 곁에서 몇 번 뵈었죠. 세상에 저렇게 수려한 분이 계시는 구나 감탄했답니다.”
나는 흐믓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버지가 좀, 아니 엄청 매우 많이 잘생기셨지.’
몇 마디 너스레를 떨고 공손월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얘기에 지금까지 본 것중에 가장 밝은 표정을 지으시네요. 입꼬리가 귀에 닿으실 것 같아요.”
“그런가요? 하하하.”
“사이가 정말 좋으신가 봐요. 백리대협께서 소저를 무척 아끼신다는 말도 정말인 듯하고요.”
부럽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공손 소저의 아버님이신 총사님께서도 소저를 많이 아끼신다고 들었는걸요.”
“저는······ 그렇죠.”
공손월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장 공자일 때문에 왔어요.”
상대의 기분을 띄워 주고 본론을 꺼내는 모습이었다.
“장 공자의 일은 이대로 묻힐 거예요. 너무······ 노여워 마세요.”
“총사님의 뜻인가요?”
“근래 겨우 백리 세가와 맹주님이 협의할 마음이 들었는데······ 작은 일로 분란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없다고 하셨죠.”
예상한 그대로라 화도 나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분란을 우리쪽에서 먼저 일으킨 줄 알겠어요.”
말하는 공손월은 죄책감 어린 낯빛으로 눈을 내리깔고 말을 이었다.
“같은 정파 연합끼리 이 시기에 분란을 일으켜서는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심지어 벽가장의 일까지 벌어졌는데요.”
순간 나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냥 습격받은 사실을 말하는 걸가? 아니면······.
“벽가장의 일이라면 아직 범인이 누군지 밝히지 못 한 것 아닌가요?”
“아직 명백한 증거는나오지 않았죠. 하지만 달리 누가 그런 짓을 벌일 수 있겠어요? 마교 말고요.”
“······.”
공손월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안도하였다.
‘아직 야율이 한 짓인 건 모르는가 보네.’
그리고 안도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야율이 직접 벽가장의 멸문을 주도하였다고 자백까지 하였는데도 나는 야율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야율의 일을 알리고 붙잡는 것이 내가 비무대회에서 야율을 탈락시키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걸 알면서도.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공손월은 내 복잡한 속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류청과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예?”
“아, 어제 장 공자의 일 때문에 본단에 갔을 때 찾아 갔는데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소저여서요.”
“······.”
설마 수련에 집중할 거라고 공손월에게 말하지 않은 건가? 물론 수련에 집중한다는 것부터 거짓말인 듯했지만.
어쨌든 장가장이 남궁세가와 가까운 편이니 공손월이 남궁류청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련에 좀 집중할 거라고 며칠 만나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요.”
“아······.”
공손월의 얼굴이 흐려졌다. 흐려진 정도가 아니라 새파랗게 질린 모습이 누가 보면 내가 괴롭히는 줄 알 정도였다.
‘너무 충격을 크게 받는데······?’
아니 나만 안다는 게 저렇게 충격받을 일인가?
나도 모르게 위로의 말이 나왔다.
“류청이 원래 그런 걸 잘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 그렇게 음······ 마음 쓰지 마세요.”
그때 공손월이 씁슬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마음이 무슨 상관일까요? 어차피 류청은 소저를 좋아하는 걸요.”
“······.”
갑자기 화살이 이쪽으로 향한다고? 좀 전의 위로를 취소하고 싶어졌다.
공손월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소저는 류청을 좋아하시나요?”
나는 한숨을 삼키며 공손월의 눈을 마주 보았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할 만큼 가깝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
잠시 입을 다물었던 공손월이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류청이······ 아 찬, 아버지 앞에서 친밀한 척하느라. 공자는 제가 이름 부르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아 해요.”
“그런 거저한테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셔도 돼요.”
“꽤 매정하시네요.”
“······.”
‘아니, 하!’
내가 대체 왜 얘랑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계속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겠다면 이만 돌아가겠다고 하려던 참이었다. 공손월이 말했다.
“소저가 어젯밤에 만나고 온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
“백리 소저, 저를 얼마나 믿으시나요?”
* * *
– 소저는 그간 은밀하게 맹주님을 조사하셨죠. 하지만 딱히 알아내신 게 없을 거에요. –
-이대로 서문을 통해 나가시면 제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을 다라가시면 의문을 가지셨던 것에 대한 답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소저의능력이라면요.-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본선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하였다.
나는 함께 온 백검단원중 가장 발이 빠른 한 명만 호위로 대동했다.
초반에는 공손월 부하가 말을 바꿔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말도 타지 않고 경공술을 펼쳐 엄청난 거리를 뛰었다.
그렇게 도착한 깊은 산중.
대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공손월의 부하는 길마저 끊기고 인적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간 후 멈춰 섰다.
“제가 안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입니다.”
나는 고요한 숲속을 바라보았다.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진법이 펼쳐져 있네요.”
“예. 맞습니다.”
금안으로 바깥에서만 살펴본 바로도 꽤 복잡한 진법이었다.
공손월의 부하가 말했다.
“들어가 보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때 내 뒤를 따르던 호위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엔 며칠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하루에서 이틀 전에 지나간 흔적이었다.
흔적을 살피던 난 몸을 바로 세우며 물었다.
“그래서요? 이젠 정말 알려 줘야 할 것 같은데요. 이 수상한 곳에 왜 오자고 했는지.”
오는 내내 말을 아끼던 공손월의 부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긴······ 위 맹주님의 은신처입니다.”
“은신처?”
백검단원도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위 맹주께서 은신처를 따로 두었다는겁니까?”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얘기가 있었나?’
아니 내 기억에는 전혀 없었다.
소설에서도 위지백의 은시너에 대해 다루는 걸 본 적 없었다.
이 정도로 비밀스러운 은신처라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예감에 가까웠다.
소설인지 진짜 삶인지 알 수 없는 기억들 속. 그 기억 속에서 내가 전혀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비밀들은 좋은 결과였던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고개를 휙 돌린 후 검지를 입술에 올렸다.
“쉿.”
그리고는 공손월의 부하와 내 호위를 이끌고 수풀 사이로 숨어 들었다.
거의 숨을 멈추다시피 기척을 죽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인기척 하나 없던 숲속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눈만 드러낸 새카만 옷차림에 허리에 찬 무기들. 소속을 알 수 없는 수상한 강호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주변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여기 흔적이 있습니다.”
“이건 하루에서 이틀 정도 된 듯 싶군요.”
“각주님, 이 흔적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흔적이었다. 식은땀이 절로 났다.
“어디로 이어졌나?”
“갑자기 여기서 끊겼습니다.”
“그렇다면 진법 안으로 들어갔겠군. 다들 조심하도록. 우리도 들어간다.”
그 말을 끝으로 모두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기척이 멀어지자마자 숨어 있던 나와 일행은 멈추었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들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뜻은 통했다.
그렇게 우리 또한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