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 * *
나와 일행 모두 황급히 지하 창고에서 벗어나 남궁완 아저씨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이곳 부인들이 서측원이라 부르는 곳이었는데 넓은 정원이 특징인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눈에 띄는 건 거의 한 덩어리처럼 뭉쳐 있는 곱고 화사한 여인들이었다.
숫자로만 들었을 때보다 이렇게 직접 보니 더 충격적이었다. 속이 안 좋아질 정도였다.
여인들은 밤이 깊어져서인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로의 어깨에 기대서 잠든 이도 있었다.
남궁완 아저씨는 정원을 밝히고 있는 커다란 화롯불 곁에 계셨다.
손에는 서책을 들고 빠르게 넘기고 있었는데, 발치에는 산장에서 가져온 듯한 서책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남궁완 아저씨가 우리의 기척에 고개를 들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찾았느냐······.”
하던 말을 멈추고 믿기지 않는 다는듯 나를 바라보았다.
“······백리연?”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실질적인 날을 따지자면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심정상으로?
“네가 왜 여기 있는 게야!”
“나중에 얘기해요.”
남궁류청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남궁류청의 심각한 표정에 남궁완아저씨 또한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부자 사이 아니랄까 봐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남궁완 아저씨가 말했다.
“설명하거라.”
남궁류청이 대답했다.
“위 맹주의 처소 지하에서 본래 창고로 쓰던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비운 듯 보였고, 기름 단지와 화약 등만이 쌓여 있었습니다.”
“기름과 화약이라고?”
“네. 그리고 연이가 이곳에 오며 저희 뒤를 쫓아온 추적자를 목격했다고 합니다.”
남궁완 아저씨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보며 물었다.
“추적자라니?”
“복면을 쓴 강호인들이었어요. 그들이 진법 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어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요.”
시야에 부인들이 닿았다.
조금 떨어진 곳의 부인들은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없어서인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힐끗거릴 뿐이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법 속으로 대인원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우시겠지만 계속 여기 있다면 언제 그들이······.”
쾅!
말하던 와중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꺅!”
“무슨 일이야!”
별로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불이야!”
순찰을 나가 있었는지 남궁 세가의 무사 한 명이 황급히 뛰어와 소리쳤다.
“소가주님! 동쪽 산등성이에서 부터 불이 치솟았습니다.”
남궁완 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건가? 이렇게 되면······.”
남궁완 아저씨가 부인들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야밤에 이 험한 산세를 무공도 익히지 못한 여인들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불이 난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이 난 곳이 여기서 먼 곳이라는 것. 불행인 것은 바람이 이쪽으로 불고 있다는 것이었다.
쾅! 펑!
이어서 또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위지백 처소 지하와 같이 만들어 놓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소가주님, 불이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남궁 세가의 무사가 어서 명령을 내려달라는 듯이 말했다.
“······.”
남궁완 아저씨가 침묵할 때, 부인 한 명이 일어나며 말했다. 가장 앞에 있던 서른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의 부인이었다.
“저희 모두를 데리고 나갈 수 없어서 그러시는 거죠?”
“······.”
목소리는 살짝 떨렸으나 표정은 꽤 담담했다. 두려운 기색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겁먹은 목소리 아래에서도 뭔가 초연한 느낌이 들었다.
부인이 말을 이었다.
“무사님들이라면 빠져나가실 수 있으시죠?”
남궁완 아저씨가 괴로운 낯으로 말했다.
“가능하다.”
부인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몇 사람만 데리고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하시죠?”
남궁 세가의 무사들 몇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럼 부탁드려요. 증인으로 세울 수 있는 몇 명만이라도 데리고 빠져나가 주세요.”
차마 우리가 고려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하지만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다 살릴 수 없다면 일부라도 살리는 수밖에.
부인이 괜찮다는 듯 애써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여기서 모두 같이 타 죽을 수는 없잖아요.”
심지어 이미 서로 간에 말을 맞춰 놓았는지 셋을 골랐다.
“왼쪽에서부터 순서대로 산산, 여아, 소옥 이렇게 셋이에요.”
부인의 목소리는 말을 할 수록 점차 차분해졌다.
“산산은 가장 어리고, 여아가 가장 늦게 들어왔고, 소옥이 여기에 가장 오래 머물러서 아는 게 많아요. 혹시 여기서 더 줄여야 하나요?”
남궁류청을 처소로 안내했던 옥아도 빠져 있었다.
“······.”
모두 남궁완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결정을 내려 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그때 나는 남궁완 아저씨 뒤쪽에서 기이한 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향했다. 멀리서 나는 소음, 그리고 화롯불이 타오르는 소리 말고는 조용하던 이곳에서 내 움직임은 확연히 눈에 띄었다.
“어디 가는 게냐?”
나는 멈추지 않고 발을 옮기며 말했다.
“혹시 여기가 본래 탈출로였나요?”
“그래.”
탈출로는 아주 대놓고 있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도 넉넉할 정도로 커다란 석문이었다.
“문을 살펴보았을 때는 특별한 열쇠, 출입패 같은 것이 필요한 듯 보이더구나. 당연히 이곳에는 없었지.”
남궁완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문을 부술까 고민해 봤지만, 석문의 두께가 상당해. 문을 부수다 통로 자체가 무너질 것 같더구나. 안에 충격을 가했을 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고.”
나는 아저씨의 말에 더는 대꾸도 하지 않고 석문 앞에 홀린 듯 멈춰섰다.
석문 중앙에는 독특한 모양의 깊게 파인 홈이 있었다. 이곳에 출입패를 넣어야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곳을 덮었다.
모두 내가 무엇을 하나 의문을 가질 때쯤.
달칵, 툭, 달칵, 달칵. 쿵.
무언가 여러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쿠쿠쿠쿠쿵-!
그리고 굳건하던 석문이 둔중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앞으로 열렸다.
안에는 넓은 공터,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길이의 새카만 동굴이 보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들 경악한 표정이었다.
“모두 들어가죠.”
메케한 연기와 회색 재가 열풍을 타고 날아왔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듯 치솟는 불길에 밤하늘이 석양처럼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쿵.
석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로 들어오던 메케한 연기가 석문이 닫히며 뚝 끊겼다.
몇 사람이 긴장이 풀린 듯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공간이 조금 있다고는 하나 80명의 부인들이 다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모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불길이 코앞까지 번져 있었다.
“다시 여는 건 쉬워요. 똑같은 방식으로 열면 돼요.”
“그건 천만다행이군.”
혹시나 만약에 여기가 탈출로가 아니거나, 이 탈출로를 못 써먹겠다 싶다면 불이 꺼졌을 때쯤 다시 되돌아 나가면 될 것이다.
뭐······ 그 뒤에 이 부인들과 산을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지만.
“가지.”
남궁완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앞장섰다.
동굴 안에 들어찬 연기가 느릿하게나마 한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공기가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인공적이던 길이 끝나고 자연 동굴이 나타났다. 본래 있던 동굴을 탈출로로 만든 모양이었다.
뚝, 뚝, 뚝.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이따금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 더 내려가던 남궁완 아저씨가 의심을 거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안에는 따로 기관진식이 없는 듯하군.”
남궁완 아저씨가 남궁세가의 무사들에게 손짓했다.
남궁 세가의 무사들이 절도 있게 인사한 후 동굴 안쪽으로 빠르게 앞서 나갔다.
정찰을 보내고 나서야 남궁완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네 아비도 네가 여기 있는 걸 아느냐?”
“오는 길에 전서구를 보내놓긴 했어요.”
시간상 빨라야 이제야 간신히 도착했겠지만.
한숨을 내쉰 남궁완 아저씨가 한소리 하고싶은 걸 참는 표정으로 이어서 질문했다.
“저 문을 어찌 연 것이냐?”
“······.”
나는 좀 전과 달리 잠시 침묵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석문의 기관진식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다고?”
“네. 출입패를 석문에 맞추면 특정 진기의 흐름을 통하고 문이 열리는 방식이에요.”
“흥미로운 방식이로군. 그런데 너는 출입패가 없지 않았냐.”
“제가 그 특정 진기의 흐름을 모방했어요.”
남궁완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방? 그게 가능하다니······.”
남궁완 아저씨조차 들어 보지 못한 기관진식을 내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예전에 내가 갇혔던 만신의의 은신처, 그곳의 문이 저런 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몇 달 동안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만신의의 거처와 이곳이 똑같은 방식을 사용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