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그때 스님이 다급하게 끼어들며 외쳤다.
“그만, 그만! 멈추시오! 이 비무는 온당치 않소!”
금안으로 스님에게 붉은 차양막 아래에서 기파가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음을 하는 것이 다. 다급한 느낌이 기파로도 느껴졌다.
스님이 말을 이었다.
“오늘······ 백리소저는······ 준결승도 치르지 않았소. 게다가 이쪽은 기권승을 하였으니, 둘 사이에······ 체력적으로도 공평치 않소!”
나는 검을 매만지며 말했다.
“거둘 수 없습니다. 이대로 거둔다면······ 모양새가 어찌 되겠습니까?”
귀가 밝은 이들이었다. 수군거리는 관객들의 반응을 모를 리 없었다.
“그건······ 아니! 그대의 주장 자체가 틀렸소. 결승전은 본래 내일이었소. 아무리 비무 당사자끼리 동의 했다 한들 약속된 날을 이렇게 졸속으로 바꾸다니! 마치 당연한 것을 내가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 마시오!”
그때였다.
“내가 허락하지.”
비무장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게는 아주 익숙했지만,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목소리였다.
붉은 차양의 관객석으로 풍채 있는 노인이 걸어왔다. 다들 노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가벼운 걸음걸이였는데, 마치 해일이 밀고 들어오는 기세였다.
할아······! 가주님!”
할아버지가 오실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옆에는 할아버지의 존재감에도 전혀 묻히지 않는, 자체적으로 빛이 나는 외양의 아버지가 계셨다.
‘어디 가셨나 했더니만!”
할아버지를 마중하러 가신 모양이었다.
느긋하게 비무장을 둘러본 할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때맞춰 온 것 같군.”
나와 눈이 마주친 할아버지가 씨익 웃음 지었다.
그 미소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백리 세가주!”
“뭐? 백리 세가주? 정말인가? 백리 세가주가 오다니!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할아버지의 등장 깜짝 놀란 사람들이 소란을 피웠다.
“어서 가서 불러와! 오늘 심상치 않다고! 놓치면 안 돼!”
“이렇게 직접 보니 역시 대단하군. 이번 비무 대회에 오길 잘했군. 십대 강자를 셋이나 보다니. 위 맹주나 태고 진인과는 또 달라.”
혼란과 경탄 속에서 태고 진인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백리 세가주,오랜만이오. 가문을 바로 세우느라 심신이 고단할 거라 여겼는데 풍문은 역시 믿을 게 못 되는군.”
“글쎄. 그건 내가 할 소리 아니오? 마교 놈팡이들 쫓아다니다 어느 날 객사하지 않을까 했는데, 건강해 보이오.”
같은 격의 고수들끼리나 할 수 있는 농이었다. 감히 다른 이들은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태고 진인의 옆자리로 향했다. 맹원들이 황급히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보였다.
“아들 결승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만 손녀의 결승을 보러 오다니 의외로구려.”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는 시시때때로 가문을 떠나 돌아다니시길 즐기셨다.
그러나 마교의 무림맹 습격 이후로는 가무에 계속 머무르셨다. 떠나더라도 호남성을 벗어나지 않았다.
“후후, 늙으면 세상만사가 다 지루해. 재미있는 일이 없어. 그런데 이런행사를 놓칠 수 있겠소?”
“맞는 말이오.”
두 분은 나란히 마주 섰다.
수염을 쓰다듬은 할아버지가 비무대의 스님을 향해 말했다.
“무림맹 비무 대회를 처음 개최할 때의 목적은 서로의 무공을 겨룸으로써 경험을 나누고 화합을 이루고자 함이었지.”
“······.”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스님은 감히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세인들에게 보여 주고자 검을 휘둘렀소? 언제부터 규칙 위에 비무 대회가 있었소? 비무 대회를 위해 규칙이 있는 것이지. 아니 그런가?”
* * *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추도문이라는 이름 모를 문파가 이렇게 결승에 올라오리라고는.
“누가 이길 것 같소?”
“에이, 그래도 백리 소저겠지.”
“위구중을 단칼에 죽인 것 못봤소? 백리 소저가 그리 할 수 있겠소?”
“어허, 백리 소저가 준결승에서 보인 모습 못 보았소?”
의견이 분분했다.
내가 오늘 결승을 치루겠다고 하는 것을 막으려 든 이유도 이와 같았다.
무림맹에서는 내가 승리하길 바랐지만, 내가 승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백도 무림에서 벌어지는 비무 대회였다. 구파 일방과 10대 세가의 이름은 언제나 굳건했고 오랫동안 그들만의 축제인 것이 당연했다.
위지백 이후로 명문가 태생이 아닌 이가 있는 첫 결승이었다.
야율에게서는 아무런 기척도 기파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척을 갈무리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야율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기척을 죽이고 있었다. 그에게는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인 습관이었다.
금안으로는 그의 단전을 비롯한 기맥을 가득 채운 검붉은 기운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는데, 맨눈에는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옷자락이 미풍에 살랑거리기만 했다.
야율이 내 뒤편에 시선을 두며 전음했다.
「 말 안 했나 봐? 」
「 후회학 있어. 」
「 돌아가도 말 안 할 거잖아. 」
나는 침묵했다.
야율이 눈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 남궁류청이 목숨을 걸고 비무하려 들까 봐 걱정돼서 말 못 한 거잖아? 」
야율이 마교도이고 천마지보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남궁류청이 이걸 그냥 비무로 받아들일 리 없었다.
무림맹이 믿을 수 없는 집단이 된 이상 무림맹에게 신고하기보단 직접 막으려 들 테고, 그렇다면 생사결이나 다름없는 싸움을 할 것이 뻔히 그려졌다.
야율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말 하지 못했다.
위구중을 죽이고도 마교도인걸 들키지 않은 야율이었다. 남궁류청 혼자 조사한다고 한들 야율이 마교도인 증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야율이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날 별로 안 막고 싶었나 봐?」
「그럴 리가.」
「아니면 저 놈을 걱정한 건가?」
내 침묵에 야율이 살짝 웃었다.
「아, 아니면 나를 걱정했나?」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모두 틀렸어.」
의아한 야율의 얼굴을 보며 전음했다.
「내가 막을 수 있어서.」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하하하!”
야율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가 웃음을 그치길 기다렸다.
「미안.」
야율이 아직도 웃음기가 남은 채 사과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위지백은 실각했어.」
「아, 들었어.」
그게 끝이야?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주 간단한 답이었다.
아무런 감정 하나 담겨 있지 않았다. 분노도 증오도 없었다. 마치 여기 돌이 있어, 정도의 이야기를 듣는 반응이었다.
뭘 기대했던 걸까, 알면서도 씁쓸했다.
“······.”
야율은 잠시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 아,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세상엔 쓰레기가 가득하댔잖아.」
나는 답하지 않고 굳건한 벽을 향해 담담히 검을 겨누었다.
이미 서로 간 인사를 나눈 상태. 비무는 시작되어 있었다.
야율의 인피면구에서 점차 미소가 사라졌다.
야율과는 어렸을 적부터 오랜 기간 함께 지냈고, 수련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다. 직접 겨룬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오히려 야율에게만 도움이 될 뿐이었다.
야율은 내 검법에 익숙했지만, 나는 야율의 검법이라고는 내 목을 칠 때 그 순간밖에 알지 못했다.
징-
마치 안개가 검날에 흡수되는 모양새로 검날에 빛무리가 맺히고.
화아아악!
쇄도하듯 야율을 향해 파고들었다. 검날에 맺힌 기운이 강대하여 손아귀늬 검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찰나의 순간 야율의 간격에 들어갔다.
빛이 모인 검이 야율의 신형을 내리그었다. 야율은 당황치 않고 그대로 내 옆구리를 노렸다.
아직 허공에 떠 있던 발로 땅을 박차며 높게 뛰어올랐다. 몸을 돌리며 멈추지않고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흐릿한 빛무리가 검이 지나간 경로를 보여주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차이를 두고 목덜미 바로 앞에서 검이 막혔다.
야율의 굳은 낯빛 위 안광이 검붉게 빛났다.
짧은 사이 검이 향하는 방향을 막아낸 것이다. 어느새 야율의 검이 검붉은 빛깔로 뒤덮여 있었다.
충돌로 일어난 돌풍이 비무대 위를 휩쓸었다.
탁.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착지하며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서로 검을 쥔 손에 힘을 가했다.
백색의 검기와 검붉은 색의 검기가 서로를 살라 먹을 것처럼 일렁였다.
준결승에 오르는 것이 정해진 날 밤 찾아온 이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가 쓰러진 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밝은 달빛 아래, 들고 온 것을 건넸다.
– 이건 뭐야? –
– 네게 도움이 될 거야. –
얇게 엮은 서적이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서책을 읽어 내려간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율의 무공이 담겨 있었다.
언제나 필요한 순간 도움을 줬다. 그가 더는 내가 알던 제갈화무가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