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 * *
심판인 승려가 한 사람씩 호명했다.
“남궁 세가의 남궁류청!”
“우와아아아아아”
“추도문의 적야!”
“와아아아아아!”
한번 부를 때마다 고함으로 비무장이 떠나갈 듯했다.
야율은 무표정했고 남궁류청은 뚱한 표정이었다. 비무 대회 내내 저런 표정이었다. 워낙 잘생긴 외모였기에 그런 표정마저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지금도 남궁류청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여인들의 목소리가 유달리 컸다.
둘은 스님이 외치는 순서에 따라 기수식을 취했다.
“······.”
“······.”
무슨 말이라도 나눌 줄 알았지만, 둘 다 입을 꾹 다문 채였다.
한 수 잘 부탁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인사말마저 없었다.
잠시 기다린 스님이 소리쳤다.
“그럼 비무를 시작하시오!”
나는 가슴을 졸인 채 바라보았다. 기대에 가득 찬 이들로 고요해진 그 순간.
남궁류청이 돌연 자신의 검을 납검했다. 그리고 말했다.
“기권하겠습니다.”
“······.”
비무장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지 못한 이들의 침묵으로 적막했다.
고요한 비무장에 남궁류청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퍼졌다.
“스스로 제 명예를 먹칠한 무림맹의 비무 대회에서 얻은 승리라니 그게 바로 불명예겠군요.”
뜨악.
나는 정말 기겁했다.
무시무시한 적막이 흐르는 사이 남궁류청이 말을 이었다.
“마교라는 핑계로 불의를 옹호하는 무림맹이라니, 민초를 보호하고 의협을 행하여 백도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무림맹은 그렇게 처단해야 한다고 외치던 흑도와 다를 게 무엇입니까?”
“······.”
충격에 말을 잃었던 이들이 조심스럽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저게 무슨 말이오?”
“흑도? 불의라니?”
“미친 자식······.”
옆자리에 있던 서하령이 내 속 마음을 읽어 낸 듯 말했다.
“돌았네, 진짜.”
서하령도 위지백의 실각 사건의 내막을 알았다. 그럼에도 저렇게 말할 정도로 이것은 거의 무림맹의 뺨을 후려친 격이었다.
‘류청 생각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남궁류청은 적야가 야율인 것을 알지만 아직 야율이 마교인 것까진 알지 못했다.
위지백의 처분이 이 꼴로 끝난 마당에 비무 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 자체가 답답할 텐데, 심지어 상대가 야율이라니.
나는 청력을 높혀 비무대 위에 집중했다.
관중이 수군거리는 사이로 야율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짓이야?”
“······.”
남궁류청은 그저 고요하게 노려볼 뿐이었다.
야율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쓸데없는 짓을. 뭐, 나야 좋지만.”
야율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검을 거뒀다.
비무대에 스님이 황급히 올라가 소리쳤다.
“남궁 공자! 이게 지금 상황이오? 정말 기권할 생각이오?”
“예.”
단호한 대답에 숨을 들이켜고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비무 대회는 장난이 아니오!”
남궁류청이 스님을 노려보곤 무표정한 낯으로 몸을 홱 돌렸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청명하도록 푸른 옷자락이 펄럭였다가 가라앉았다.
스님이 남궁류청의 뒷모습을 향해 붙잡듯이 소리쳤다.
“이대로 내려가면 상대가 무서워 도망갔다는 꼬리표를 달 것이오. 그대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도 상관없소?”
“세 치 혀가 무서운 건 당신들이겠지.”
남궁류청은 그대로 곁눈질도 하지않고 비무대를 내려갔다.
기권패.
정말로 기권하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어쩔 줄 모르던 스님이 한숨을 내쉬며 야율의 승리를 외쳤다.
비무가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우렁차게 울리던 함성은 없었다.
“남궁 공자의 말이 의미심장하지 않소? 준결승까지 와서 이렇게 요란하게 기권하다니.”
대신 웅성거리는 소리가 비무장을 가득 채웠다.
수백 명이 동시에 웅성거리는 것이 마치 벌 떼가 날갯짓을 하고 있는 듯한 울림이었다.
“상대하기 두려워서 기권한 것 아니오? 무림 제일가라는 명칭이 수치스럽군.”
“글쎄. 나는 생각이 다르오. 저 담대한 풍모를 보시오. 당신 눈엔 저게 두려워서 내려가는 것으로 보이오?”
여기서도 남궁류청의 외양이 빛을 발하였다.
추레한 외견의 사내가 겁에 질려 내려갔다면 절대 이런 평가를 받지 못했으리라.
“남궁 공자의 성품이 근방에선 아주 유명하오. 제 아비를 쏙 닮아서 마음에 안 드는 건 엎고 본 다는데. 저 불같은 성미가 참지 못할 일이 있었던 것 아니오? 대체 무림맹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러고 보면 이상했소. 사흘간 갑자기 비무 대회를 중지하질 않나, 우르르 기권하질 않나. 위 맹주가 갑자기 맹주직을 내려놓지를 않나.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니오?”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남궁류청의 성품에 대한 이야기도 그의 태도에 관해 여러 해석을 하도록 만들었다.
관중들이 상황을 파악하려 들 수록 반대로 다른쪽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붉은 차양막 아래의 관객석.
멀리서도 남궁완 아저씨가 눈을 부릅뜬 모습이 잘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남궁완 아저씨께 꽂히는 시선들이 따가웠다.
공손 총사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내려가면 대체······ 게다가 결승은 저 정체모를······.”
태고 진인이 살짝 일으켰던 몸을 의자에 묻으며 말했다.
“흠, 남궁 소가주의 자제가 무척 열정적이군. 젊음이 좋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치기어린 아이의 장난으로 취급하는 모양새였다.
“허나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겠소. 객기가 넘치는군.”
“저 나이는 아직 세상 무서울 게 없을 나이지요.”
어느새 남궁완의 낯빛은 언짢은 얼굴로 바뀌었다.
이 대화에 남궁완과 비슷하게 불쾌한 낯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소수였다.
대다수를 차지한 이들은 제 양심을 지적한 남궁류청을 깎아내려 받은 모욕을 해소하려 했다.
“철이 없군요. 아직 일가를 이루지 못한 이유를 알겠소.”
“말은 번지르르합니다만, 글쎄요. 저 적야라는 고수가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죠. 대의를 안다면 여기서 이리 물러나선 안 되는 걸 알텐데. 이래서야 백리소저의 어깨가 무겁게 되었군요. 패한다면 그야말로 백도 명문의 망신일진대.”
“그래서 남궁 공자에게 거는 기대가 컸거늘, 됐습니다. 그저 처음부터 그 정도의 그릇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요.”
남궁완이 사나운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제 아들은 세 치 혀가 무서워 악행을 묻기 급급한 이들과는 그릇이 다르죠.”
“크흠.”
“커흠.”
“남궁 소가주!”
헛기침 소리를 배경으로 공손방 총사가 황급히 소리쳤다.
태고 진인은 미간을 좁힌 채 남궁완을 돌아보았다.
“남궁 소가주의 말씀은 남궁 공자의 태도를 남궁 세가의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소리요?”
남궁완이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공손방 총사의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 내렸다.
“류청의 뜻이 남궁 세가의 뜻이고 남궁 세가가 바로 류청이오!”
붉은색 차양막 아래 관중석에 집중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몇몇 벌써 눈치 빠르 자들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중석의 분란을 숨길 생각도 겨를도 없어 보였다.
당장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은 대립. 내게는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과거에 남궁류청이 매번 위지백이 맹주로 있는 무림맹과 저런 식으로 대립했으니까.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내 편인 척하는 남의 편이 무림맹.
그런데 남궁완 아저씨가 온전히 무위를 유지하고, 위지백을 맹주직에서 쫓아내고도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늘 저렇게 투쟁하게 되니 주인공의 가문이었던 걸지도.
하지만 이번에도그렇게 둘 생각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대로 발에 기운을 모아 박차 올랐다.
탁!
가벼우 착지 소리와 함께 높게 뜬 옷자락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내 앞에 야율이 마주 서 있었다.
아직 비무대를 내려가지 못한 스님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리 소저? 지금 뭐 하는 것이오?”
나는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느긋하게 비무대 위를 걸었다.
“뭐긴요? 결승만 남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지만.”
야율의 지루해 보이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그의 눈이 웃는 것이 보였다. 내 뜻을 읽은 것마냥 그가 말했다.
“좋아.”
어리둥절한 스님의 얼굴을 뒤로하고 검을 겨누었다.
“백리 세가의 백리연, 추도문의 적야에게 결승 비무를 신청한다.”
놀란 스님이 숨을 들이켰다.
“무슨······!”
내가 비무대에 뛰어든 순간부터 관객들은 다시 비무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야?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결승이야?”
남궁완 아저씨를 비롯한 태고 진인과 붉은 차양 아래 있는 이들, 그리고 비무대를 내려간 남궁류청마저도 모두 비무대에 집중했다.
야율이 검을 뽑아 나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