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 * *
“오늘 볕이 정말 좋아요, 아가씨.”
금쇄가 내가 비스듬히 앉아 있는 쪽 창문을 열었다. 서늘한 바람이 훅 들어찼다.
금쇄와 소녹은 둘 다 내가 깨어났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방 밖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작게 들렸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헤어지기 전과 똑같이 굴었다.
마치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한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어깨에 두툼한 외투를 걸치는 금쇄를 향해 물었다.
“혹시 내가 없는 동안, 무슨 고초를 당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지?”
내가 천마의 혈육이란 것이 밝혀졌을 때, 나를 모시던 이들도 같이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걱정하실 일은 없었어요. 일단 여기까지 소식이 오는 데 오래 걸리기도 했고. 솔직히 예전에 마님과 큰 소저께서 살아 계실 때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죠.”
나는 피식 웃었다.
하긴 그 두 사람이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그럴 때가 있었지. 너무 오래 전 일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큰 소저는 흡성마공과 비슷한 사술을 쓰다가 결국에 그 사술에 죽었다면서요? 그 얘기때문에 큰 마님이······ 하여튼 그때 조금이나마 헛소리를 지껄이던 자들은 지금 소녹 눈도 못 쳐다봐요. 고 총관님도 소녹이 꽤 마음에 드셨는지······.”
금쇄가 그간 있었던 일을 한창 떠들고 있을 때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녹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소녹은 내가 없는 동안 내 처소 전반에 관한 일을 관리했다.
내가 깨어난 지금은 오히려 더 바빠진 듯 보였다.
내 시중은 금쇄 아니면,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남궁류청이 주로 들었다.
소녹이 내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할아버지에게서 온 거네?”
할아버지는 지금 무림맹 본단이 있는 무한에 머무르고 계셨다.
천마대총의 전투가 끝나고 할아버지는 백리세가로 돌아와 달포 정도 머무르다 무림맹으로 향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미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무한에 머물고 계신지 몇 달째였다.
나는 금쇄와 소녹을 돌려보내고 서신을 펼쳤다.
평소 할아버지의 필체는 굵직한 편인데 거기에 급하게 쓰기까지 했는지 갈겨 쓴 서체는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바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아직 여기 해결할 일들이 산더미라 쉽게 몸을움직일 수가 없구나.]안부를 서두로 시작한 서신은 무림맹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천마대총의 전투에서 승리한 무림맹은 한동안 흩어진 마교 잔당을 추적해 처리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이제는 마교도의 본산인 천만대산을 노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세한 상황은 써넣지 않았으나 대충 짐작 가능했다.
천마대총에는 무림맹이 기대하던 마교의 보물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영약, 신공, 신병이기. 금은보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들이 엄청난 손해를 보며 목숨을 걸고 그곳까지 향한 보상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이건 승리했대도 손해뿐인 전투였다.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로 마교의 본단이 있는 천만대산을 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남은 마교도들은 세 개의 세력으로 나뉘었다더구나. 총군사파와 본래 후계였던 1공자파, 그리고 오월궁으로.오월궁은 마교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그들은 이제 천마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며 북쪽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더구나.]
안 그래도 약해진 마교가 세 개로 쪼개지기까지 했다니 이번 기회를 놓치기는 아쉬울 터.
그리고 여기 오월궁은 어머니가 계시던 마교 세력이었다.
협곡의 부상자들과 패배자들을 수습해 데려간 것도 오월궁이었다는 이야기도 서신에 적혀 있었다.
[맹에서는 오월궁의 독립을 인정할 것인지, 인정치 않고 마교로 취급할 것인지 의견이 꽤 분분했으나 결국 일단은 정사지간으로 두고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어차피 맹도 당장 오월궁을 신경 쓸 겨를도 없으니 네 모친 – 모친이란 단어를 썼다가 줄로 죽죽 그은 표시가 있었다- 네 출신에 대해 앞으로 왈가왈부하는 자들은 다 죽여도 된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핫, 아니, 할아버지도 참······ 죽이라니.”
그 뒤로는 몸조리 잘 하고, 잘 해결되고 있으니 믿고 편하게 쉬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서신을 처음부터 읽어내려 가고 있을 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날이 아직 차.”
“답답해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남궁류청의 손에는 방금 꺾어 온 듯한 흰 꽃 송이가 달린 나뭇가지가 있었다.
도화, 복숭아꽃이었다.
내가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훌쩍 봄이 온 것이었다.
남궁류청이 내게 그 꽃가지를 넘겼다.
“자.”
“······예쁘네. 고마워.”
나는 꽃가지를 받으며 웃었다.
‘왜 자리를 비웠나 했더니.’
본래 남궁류청은 꽃 같은 것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었다.
“복숭아꽃 좋아해?”
“응.”
“왜?”
남궁류청이 낯이 확 굳었다. 그리고 살짝 붉어진 귓가가 보였다.
“알면서 묻지 마.”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와 복숭아꽃을 보기로 한 약속.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뭐야?”
고개를 들자 남궁류청이 내가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한테서 온 거야. 아참, 남궁세가주 얘기도 잠깐 나왔는데 잘 지내시는 것 같더라.”
“그래?”
남궁류청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나는 이를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 얘기도 있었어.”
어머니라는 발음이 너무나어색했다.
“마교에서 독립해서 북쪽에 자리를 잡을 것 같대.”
“괜찮아?”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알아서 잘 살겠지. 사실 지금에 와서는 별 감정이 없어.”
“······.”
“아니면 어머니가 내게 전하라고 한 말이라도 있어?”
“······없었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침울한 기색이 느껴졌다.
왜 제가 슬퍼하는지, 속으로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연이 닿으면 만날 날이 있겠지. 그저······ 잘 지내셨으면 좋겠어. 그게 다야.”
그때 갑자기 내게 휙 덤벼드는 자그마한 기척을 느꼈다. 기척의 의지도 선명하게 읽혔다.
나는 들고 있던 꽃가지를 재빨리 높게 들었다. 흰 덩어리가 내 손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목소리 높여 소리쳤다.
“너! 또, 또, 또! 내가 안 된다고 했지! 넌 왜 내가 받은 복수아꽃만 보면 먹으려고 하는 거야?”
결이가 자신은 복숭아꽃을 노린 적 없다는 듯이 창턱에 철퍼덕 앉아 갑자기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
아직도 복숭아꽃을 노리는 마음이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아닌 척하기는.
그때 남궁류청이 말했다.
“또라니? 원래 예전부터 노렸다는 거야?”
“어? 아······ 어······ 그게······.”
어릴 적 헤어지고 난 후 남궁류청은 매해 복숭아꽃이 필 무렵 서신에 말린 꽃송이를 넣어서 보냈다. 그리고 결이는 그걸 귀신같이 찾아다 먹거나 망가트리곤 했다.
눈치 빠른 남궁류청은 이미 내 머뭇거림으로도 결론을 내린 듯했다.
그의 싸늘한 시선이 결이를 향했다.
결이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남궁류청을 흘끗 보았으나 콧방귀를 끼고 – 정말 콧방귀였다 – 내게 머리를 문질렀다.
나는 결이를 살짝 가리며 말했다.
“심성이 나쁜 녀석은 아니야.”
남궁류청이 눈썹을 치켜 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앞으로 계속 주면 되니까.”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배시시 웃었다.
금쇄를 불러서 꽃가지를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달라 전하고 결이를 안아 들었다. 무게감이 일반 고양이의 느낌이 아니었다.
“왠지 더 무거워진 것 같은데.
결아, 대체 너는 그동안 어디 있다 온 거야?”
결이와의 연결로 살아 있는 건 알겠는데, 너무 희미하여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이를 보면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를 것 같고, 정신도 없었기에 그간 굳이 오라고 강제하지는 않았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그야 제갈 세가주 옆에 있었겠지. 네 고양이도 아니잖아.”
“아······.”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침묵을 이어가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무······ 장례는 치렀어?”
남궁류청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 생각해 보니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에 함께 있던 건 나뿐이었으니.
나는 가슴 한쪽을 가시에 찔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그를 기억해 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제갈화무가 넘긴 기억들을 떠올렸다.
남궁류청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자식 아직 안 죽었어. 살아 있는 사람을 장례치를 수는 없잖아.”
“······?”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나는 얼떨떨한 낯으로 물었다.
“제갈 화무가····· 살아 있다고?”
“그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잘 살아 있어.”
“허어어어?”
품에 있던 결이가 갑자기 뛰어내려 어디론가 후다닥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