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 * *
“도와줘서 고맙구나.”
“앞으로 두 오라버니는 큰아버지께서 챙기세요. 혹시나 허튼짓 하지 못하도록 잘살피고요.”
“걱정 말거라.”
할머니의 유산은 큰아버지가 모두 맡고, 큰아버지가 쌍둥이들의 생활을 살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누구도 쌍둥이들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고, 그들은 대로한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큰아버지가 거의 한 달 넘게 질질 끌던 것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의 해결이었다.
내가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할머니에게 ‘효’를 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미 가문 사람들은 고모가 내게 한 짓을, 그리고 할머니가 이를 묵인하고 오히려 협조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와 내 사이가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달랐다.
심지어 큰아버지는 할머니의 친 아들. 이곳에서 불효자라는 죄목은 그 무엇보다 최악이었다.
특히나 체면과 평판을 중히 여기고 이제 그것밖에 남지 않은 큰아버지가 할머니의 유언에 대놓고 반기를 들수 없는 까닭이었다.
“이게 할머니의 상속 재산 목록인가요?”
깨알같은 검은 글자들이 종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 맞다. 너 때문에 지킬 수 있었구나.”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그 종이를 반으로 쫙 찢었다.
“이건 제가 받아 갈게요.”
“뭐, 뭣?”
“그럼 제가 맨입으로 도와준 줄아셨어요? 저도 받아 가는 게 있어야죠.”
큰아버지가 경악한 낯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큰아버지, 들으셨죠? 류청의 일.”
나는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고작해야 이깟 일로 찾아와서 뺨을 날렸죠. 이건 대가예요.”
“그건······!”
“아니면 제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
나는 청당 문 쪽을 살짝 바라보았다. 얼마든지 다시 논의해도 된다는 듯이.
큰아버지가 입을 꾹 다물었다. 당장 뭐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일단 머리를 굴리고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소를 숨기며 일어났다.
“그럼, 저도 이만 가 볼게요.”
“그래.”
청당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네게 미안하구나.”
잠깐 멈칫했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정오의 볕이 내리 쬐고 있다. 나는 아래로 펼쳐진 계단 앞에 섰다.
죽 늘어선 푸른 기와의 지붕들.
변하지 않는 풍경이었다.
‘······지긋지긋하다.’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음에도, 전과는 달리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날아갈 듯한 만족감도 없었다. 그저 피곤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곧이어 내가 나오길 기다린 듯한 가문 권속 방계 친족들이 나를 우르르 에워싸며 말을 건넸다.
적당히 상대하고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길을 비키듯 물러났고 그 사이로 장 부관이 나타났다.
“아가씨,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며 좌중을 쓱 훑어보았다. 몇몇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몇몇은 아쉬운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장 부관과 함께 그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멀어진 뒤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정말 송구합니다. 마음 편히 쉬셔야 할 텐데, 괜한 일로 번잡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장 부관을 바라보다 물었다.
“제게 하실 말이 있으신가요?”
정곡을 찔렀는지 잠시 굳은 낯을 한 장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대공자님을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의아하게 바라보다 픽 웃었다.
“왜요? 뭐, 명 오라버니가 제가 천마의 딸인 게 밝혀지자 한동안 제 세상인 것마냥 설치고 다녔나 보죠?”
“······.”
“또 다신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말하고 다니기라도 했나 보죠?”
장 부관이 씁쓸하면서도 살짝 안도한 낯을 했다.
“나이가 드니 괜한 걱정만 느는군요. 혹시나 상처를 받으실까 봐 말씀드린 것인데······. 이미 알고 계셨다면 다행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몰랐어요. 방금 장 부관 반응을 보고 확신했죠.”
물론 그 전에 아버지와 남궁류청의 반응을 보고 짐작하고 있었다.
반년이었다. 반년. 내가 정신을 잃고 있었던 기간이.
솔직히 회복하리라 믿기 어려운 기간이긴 했다. 의원도 내가 깨어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한 상황.
“그런데도 도와주셨군요.”
나는 어개를 으쓱하고 소매에서 찢어진 반쪽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이건!’
바로 알아본 장 부관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종이를 건네자 장 부관이 얼떨떨하게 받아 들었다.
“할머니의 유산 목록의 반이에요. 고모의 사술에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에게 나눠 주세요.”
“아가씨······.”
장 부관은 탄복한 듯 싶었다.
“그럼 저는 이만 피곤해서 돌아가 볼게요.
“아, 아가씨. 하나 더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바라보자 장 부관이 목소리를 낮춰 내게 속삭였다.
나는 장 부관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확실한 건가요?”
“행로가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그저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남궁 공자님께 들은 소식이 있으신가 하여 말씀드립니다.”
“아뇨, 전혀 들은 바 없어요.”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아버지도 아시나요?”
“아직 모르십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확실한 일이 아니다 보니까요.”
“그럼······ 일단 이 일은 아버지께 비밀로 해 주세요. 가능하신가요?”
장 부관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했다.
현재 가문의 중요한 일들은 폐관 수련에서 나온 아버지가 처리하고 있었다.
“어려우시면 제 말은 듣지 않아도 돼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장 부관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죠. 일단 최대한 비밀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 부관과 헤어지고 나는 곧장 처소로 향했다.
처소에 다가갈수록 점차 발걸음이 빨라지다 마지막에는 거의 달리고 있었다.
처소에 도착하자마자 마당에서부터 소리쳤다.
“류청! 류청! 류청!”
내 소란스러운 모습에 하인이 그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한 번만 불러도 들려.”
남궁류청은 처소 외곽의 수련장에 있었다. 나이 들수록 후원에서 수련하기 힘들어지자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개인 수련장이었다.
남궁류청은 언제 찾아왔는지 모를 진진과 대련 중이었다.
나는 바로 소리쳤다.
“나 빨리 향낭 만들어 줘!”
찔러 들어가던 진진의 검이 흔들리고 남궁류청이 이를 침착하게 쳐냈다. 아니, 침착하지 않았다. 쳐내는 힘이 과하게 들어간 까닭에 진진이 검을 놓쳤다.
빙글 돈 검이 하필이면 하인에게 향하고, 하인에게 닿기 직전 우뚝, 허공에 멈춰섰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인은 다리가 풀린 듯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진진, 검을 놓치다니, 수련 좀 다시 해야겠다?”
“죄, 죄송합니다!”
진진이 후다닥 와서 검을 받아가고 하인에게 사과를 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검을 거둔 남궁류청이 인상을 찌푸린 채 내게 다가왔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만들어 주기로 했잖아!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지?”
“······.”
“와, 공자님 향낭도 만들 줄 아십니까?”
“그야 당연하지. 자수는 도련님의 기본 소햡!”
내 입을 막은 남궁류청이 나를 질질 끌고 갔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천마를 내가 쓰러트렸다고 말한 것을 매우 후회했다.
서하령이 보낸 서신에도 천마 관련 이야기가 한가득이었다.
[어머니도 너를 한번 보고 싶어하셔. 몸이 괜찮아지면 우리 집에 놀러 와. 아니, 제발 한 번만 꼭 좀 와 주겠어?엄마가 요새 나를 얼마나 갈구는 줄 알아? 아침 밥상머리부터 백리소저는 천마를 쓰러트렸다는 말로 시작해서 열심히 수련하라는 말로 끝난다고! 그 실력으로 언제 수향문을 이끌 수 있겠냐고.
그렇지 않아도 천마대총에서 내가 멋대로 굴었다고 벌로 면벽 수련을 100일이나 받았는데, 내가 도와준 것도 있는데 나 한 번만 살려 주라······.]
이렇게 서신으로 방문 요청을 하는 서하령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따로 약속도 잡은 적 없고,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계속해서 가문에 찾아왔다. 대부분 나와 한번 검이라도 맞대 보기 위해, 비무를 하자고 찾아오는 것이다.
정말 내가 천마를 쓰러트릴 만한 실력을 지녔는지 궁금해서, 그리고 그런 실력자를 꺾어서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나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거절하고 있었다. 그 말에 얌전히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둥, 식견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는 둥 거머리처럼 들러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내 실력을 보기전 까진 절대 물러나지 않을 기세였다.
“아니, 할아버지는 이런 일 없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그야 네가 만만해서겠지.”
“으, 젠장.”
“예상 못 했어?”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시무룩하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이 알려진 적 없단 말이야······.”
나는 탁자에 엎드려 팔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전에 너한테도 가끔 비무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네. 내 일이 아니라서 잊어버렸나 봐.”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남궁류청도 이런 도전자들이 넘쳐나는 시기를 거쳤다.
사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
조용해진 남궁류청은 왠지 모르게 불만스러운 낯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