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나는 서신이 쌓인 탁자에서 일어나 남궁류청의 옆자리로 향했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있는 그의 손에는 자수틀과 바늘이 쥐어져 있었다.
자수틀에는 푸른 청송이 우뚝 선 모습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와, 거의 다 했네?”
본래는 용이나 호랑이가 어떻겠냐고 했다가, 남궁류청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받았다. 그리고 타협한 것이 청송과 구름이 그려진 도안이었다.
남궁류청이 청송을, 내가 구름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청송과 구름은 수준 차이가 확연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하지?그 뒤로 한 번도 안 했다며?”
“그건 내가 묻고 싶다. 이게 구름이야?”
“귀엽지 않아?”
“퍽이나.”
자수하는 남궁류청은 아주 까칠했다. 제가 해 준다고 한 말이 있으니 투덜거리진 않았지만, 잘하다가도 이렇게 문득문득 불만을 토해 내는 것이다. 남궁류청이 또다시 구름 자수를 가지고 잔소리를 시작하려 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의 입을 막는 아주 효과적인 말이 있었다.
“아이고, 비가 오려나? 손바닥이 쑤시네.”
“······.”
남궁류청이 곧장 입을 다물고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하여간 그게 몇 년 전의 일인데, 그 얘기만 꺼내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몇 번을 반복해도 성가신 취급을 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저렇게 입을 꾹 다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나는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잡아 주면 안 아플 것 같은데.”
그때 금쇄가 문발을 걷으며 방에 들어왔다.
“아가씨, 열심히 하시는 공자님 괴롭히지 마세요.”
“내가 언제 괴롭혔다고 그래?”
“10년간 아픈 적 없던 손바닥이 자수할 때마다 아픈 게 괴롭히는 거죠.”
“금쇄, 내 사람 아니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간식을 가지고 왔죠. 추오당에서 이번에 새로 만든 당과래요. 진진이 외출했다가 사 왔더라고요.”
“오.”
금쇄가 탁자에 알록달록한 당과를 담은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남궁류청이 든 자수틀을 보고 거의 다 완성했다며 감탄했다.
“공자님, 언제든지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내가 도와줄 거니까 금쇄는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어! 류청, 목 아프지, 주물러줄까?”
“······솬대지 마.”
“아가씨!”
어개를 으쓱한 나는 당과를 하나 집어 들어 남궁류청의 입에 넣었다.
“어때?”
“······달아.”
한쪽 볼이 불룩해진 남궁류청은 좀 전보다 훨씬 더 귀여웠다.
그렇게 남궁류청의 찻잔을 채워주고 당과도 먹여주며 노닥거릴 때였다.
또다시 누군가 방에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금쇄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하인인 언두였다.
“아가씨, 공자님께서 찾으십니다.”
* * *
넓은 집무실.
아버지는 산처럼 쌓인 서류에 둘러싸여 있었다. 옆에 선 장 부관과 계속 대화를 하는 모습이 지금도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회귀 후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가끔 서류를 처리하시는 모습을 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백발 때문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바쁘시면 다음에 올까요?”
“아, 왔느냐?”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공자님, 그럼 잠시 쉴까요?”
“그러도록 하지요.”
장 부관이 방을 빠져나가고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골치 아프신가 봐요?”
“후우. 그냥 검을 드는 쪽이 편하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가 내게 손짓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지켜봤다.
곧 아버지가 서류 더미 아래에서 길쭉한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 길이가 익숙했다.
“받거라.”
상자를 열어 보자 역시나 검이 들어 있었다.
“네 체형에 맞춰서 새로 만든 것이다. 네 검이 부러지기 전에 아버지께서 주문을 넣었던 것이었는데 이번에 완성되었더구나.”
새로운 검은 전보다 좀 더 묵직하고 길어져 있었다.
“오래 앉아 있어서 몸을 좀 풀었으면 하는구나. 의원에게 듣기로 이제 검을 들어도 된다던데.”
“네. 며칠 전부터 조금씩 다시 검을 잡고 있었어요.”
“그럼, 그걸 들고 따라오너라.”
백리 세가는 무가답게 곳곳에 수련장이 있었다. 아버지의 집무실 근처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수련장의 중앙까지 걸어 들어간 아버지가 검을 들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었다.
바로 비무에 돌입해 선공을 날렸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내공을 다시 빠륵 쌓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잃어버리기 전의 반도 되지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아버지라도 이제 좀 상대할 만하지 않을까, 자신만만하게 생각하고 검을 부딪친 나는 깜짝 놀랐다.
챙-!
검에 담긴 힘이 예전과 전혀 달랐다. 검을 쥔 손바닥부터 어깨까지 그 충격에 찌르르 울릴 정도였다.
나는 눈을 홉떴다.
‘뭐야, 대체 어떻게?’
아버지의 검에는 별달리 진기가 담겨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검과 비교하면 내 검에 담긴 진기는 몇 배가 넘었다. 그런데도 속절없이 밀렸다.
원래도 아버지는 진기 운용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섬세한 편이었다. 금안을 가지고도 아버지께 많이 배웠을 정도니.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아버지를 넘어섰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버지의 운용 능력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와 검을 부딪치는 그 짧은 순간에만 검에 진기를 담았는데, 그러다 보니 소모가 거의 없었다.
또한 뭘 어떻게 했는지 오히려 진기를 가득 담은 내게 반탄력이 모두 돌아왔다.
“잡생각이 많구나.”
비무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나의 패배로 끝났다.
주저앉은 나의 목덜미에 아버지의 검이 닿아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낯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강해지신······ 거예요?”
“내공독 때문이다.”
“네?”
아버지가 천천히 설명을 이었다.
내공독으로 인해 아버지는 시시때때로 운기가 불가능해졌다. 나는 그 상황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사실 운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몸이 멀쩡한 건 아니었다고.
평소에도 진기를 뜻대로 쓰기 어려웠고, 아버지는 그를 극복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내공독을 해독해 훨씬 더 정순한 내공을 다시 쌓고 있는 지금, 완전히 자유로워진 아버지는 진기 운용 능력이 지고의 경지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그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나는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마친 아버지가 내게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고작 이 실력으로 정말 천마를 쓰러트린 게냐?”
고······ 고작이라니. 하지만 방금전 허무하게 패배했기 때문에 억울해할 수도 없었다.
“음······ 운이 좋았다고 했잖아요. 제 실력이 아니었어요.”
“그럼 어쩌자고 천마를 네가 쓰러트렸다고 한 것이냐?”
“사실이기도 하고······ 뒷일은 생각 안 했어요. 헤헤.”
“벌써 널 꺾어서 명성을 높이려는 자들이 이렇게 몰려들었다.”
“천마를 상대하느라 기력이 소모돼서 예전 실력을 못 낸다고 하면 되죠.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그 말에 사람들이 넘어갈 것 같으냐?”
“······”
아버지가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네가 천마지보의 힘을 쓰지 않은 걸 안다.”
순간 흠칫 놀랐다.
“영원히 쓰지 않을 생각이냐?”
“······”
“어차피 천마는 죽었다. 이젠 네 것이다. 누가 네게 뭐라 하겠느냐.”
“······.”
침묵하던 나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곧 돌아오신다는구나.”
“아······ 할아버지께서 오신대요? 무림맹 일은 다 해결하셨나?”
“그리고 아비를 소가주로 올리실거라더구나.”
아버지를 소가주로 인정 못 하던 이유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독 때문이었으니 해독을 한 지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가니 연회를 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아버지, 축하드려요.”
하지만 내 말에도 아버지는 그다지 기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별로 좋지 않으신 건가요?”
“······잘 모르겠구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버지,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오월궁은 독립해서 새 문파를 세웠대요.”
“알고 있다.”
나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 말했다.
“······괜찮으신 거예요?”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허공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모든 일에는 시기와 때가 있단다.”
“아버지······.”
“그러니 너는 나 같은 선택을 하지 말거라.”
“네?”
“저번에도 말했지만 다시 한번 당부하마.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거라.”
“······”
나는 과연 앞으로 뭘 하고 싶은가.
제갈화무와의 질문은······ 내게도 유효한 것이었다.
“네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아비가 여기에 있을테니. 여기가 네 집이다.”
아버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멍하니 그 손을 바라보다가 마주 잡았다. 마주 잡았다고 느낀 순간 어느새 덜렁 일으켜져 있었다.
“아버지.”
“그래.”
“저······”
머리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혀 정리되지 않아 복잡한 머리를 하고 말했다.
“저, 폐관 수련에 들어갈래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