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 * *
나는 방을 둘러보았다. 방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나는 처소를 정리했다. 귀중품을 따로 챙겨 상자에 넣어 잠그고, 옷가지들과 금품을 챙겼다.
금쇄가 방에 들어와 내게 읍했다.
“아가씨, 당부하신 일들 다 끝마쳤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금쇄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이 있나 싶어 바라보았다.
금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로 가실 건가요?”
“응.”
“그럼 언제 돌아오실 건가요?”
“나도 몰라.”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금쇄 뒤로 또 다른 이가 방에 들어왔다.
“아가씨, 저예요.”
진진이었다.
방에 들어온 진진은 곧장 내게 귓속말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진진에게 말했다.
“그래. 너는 이제 아버지께 가. 그리고 말한 대로 하는 거야.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진진이 바로 방을 빠져나가고 나도 금쇄와 함께 뒤따라 나갔다.
나는 문지방을 넘어서 멈춰 섰다.
“류청, 여기서 뭐 해? 아직 안 갔어?”
남궁류청은 나를 무표정한 낯으로 바라보다가 말없이 몸을 휙 돌려서 떠났다.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 * *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는 소란스러운 거리의 소음에 묻혀 사라졌다.
죽립을 깊게 내려쓰고 말에 탄 이들이 걷는 대로에는 커다란 대문이 자리했다. 그 대문 안으로 많은 이들이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심 부관, 받게.”
심지평은 제 상사가 건네는 물건을 받고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백리 세가의 출입해일세.”
심지평은 멍청한 낯으로 눈을 끔뻑거릴 뿐이었다.
과거 초대 서신을 들고 온 남궁완을 문지기가 막아선 실수 이후, 백리 세가에서 사죄의 의미로 남궁완에게 준 것이었다.
“뭘 하는 거지? 받으라고.”
“아, 예. 이걸 왜 제게······?”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제발 제 생각이 틀리길 바랐다.
제 상사인 남궁완이 대꾸했다.
“왜겠나? 자네가 가서 그 자식을 끌고 나오게. 어디 이 상황에서도 무시하고 뻗대는지 한 번 보자고.”
“······소가주님은 안 들어가시는 겁니까?”
“내가 저 집에 왜 들어가나?”
심지평은 멍하니 입을 벌리며 최대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 표정을 본 상사가 그를 미덥지 못하게 여기고 이 명령을 취소해 줬으면 했다.
“괜히 소란 피울 생각 없네. 자네가 조용히 들어가서 데리고 나오게.”
“······.”
희망은 없었다.
심지평이 미약하게 반론을 펼쳤다.
“저 혼자 백리 세가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래서 출입패를 줬잖나? 게다가 자네는 류청과 저 집에 한동안 머물렀으니 나보다 저 잘 알 텐데, 뭐가 문제야? 계속 그딴 머저리같은 표정 짓지 말고, 당장 갔다 와.”
“······.”
심지평은 백리 세가주의 팔순 축하연에 남궁류청의 보좌를 맡아 방문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때 여러 사고가 터지면서 예정보다 상당히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니 여기에 그보다 더 백리세가와 안면 있는 자는 없었다.
‘아 , 왜 제게 이런 시련을.’
남궁완은 남궁류청에게 한시바삐 돌아오라고 서신으로 야단법석을 떨며 재촉할 때는 언제고 직접 데리러 갈 상황이 되자 엄청나게 미적거렸다.
계속해서 꾸물거리는 남궁완을 소부인이 내쫓듯 내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까워지던 백리 세가의 대문을 바라보던 심지평은 용기를 끌어모아 말했다.
“소가주님,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얼굴은 보고 가셔야지 않을까요?”
“심지평.”
“옛.”
“네게 의견을 물었나?”
“······아니요.”
“그럼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안 되겠군. 안 되겠어.
쉽게 풀릴 일이 아니었다.
남궁완은 제 부하들과 가깝고 친우처럼 지내지만 의외로 선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부하들에게는 결코 제 속내를 내보이지 않았다. 아니, 딱히 부하들에 한해서만은 아니었다.
불같이 감정적이고 멋대로 구는 것 같지만, 정말 그를 흔들 정도의 감정은 오히려 절대 밖에 내보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어지 모를까? 백리의강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를 속인 것에 큰 충격을 받았을 거란 것을.
그래서 더 무서웠다.
남궁완은 백리연의 친모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이후, 백리의강에 대해서 부하들에게 일언반구 한 적 없었다.
친아들인 도련님과는 그래도 이야기를 나눈 듯 싶지만······ 물론 그것도 말다툼에 가까운 형식이었지만, 백리연 친모의 이야기로 언성을 높인 적은 그때가 끝이었다.
심지어 그 친아들은 또 백리 세가에 틀어박혀서 서신 한 통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백리 세가에 방문하게 되었으니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될 테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 어찌 풀리지 않을까 희망을 지녔거늘.
‘만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니!’
심지평이 답답함에 가슴 언저리를 꾹 누를 때 선두에 있던 남궁완의 말이 갑자기 속력을 확 줄였다. 심지평 또한 뒤따라 고삐를 당겼다.
무슨 일인가 싶었을 때 은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그 청량한 목소리에 심지평은 답답하던 마음이 싹 쓸려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소가주님.”
긴 침묵이 이어지자, 남궁완 왼편의 다른 부하가 어쩌느냐는 듯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불렀다.
결국, 남궁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왜 여기 나와 있지? 아, 그래.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보군.”
“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부상을 입으셨다고 들었는데,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그러는 너는 몸이 안 좋다고 하던데 이렇게 밖에 나올 절도는 되는 모양이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심지평은 저도 모르게 백리 세가의 문지기를 바라보았다.
백리 세가의 문지기들은 두 눈을 부릅뜬 것이, 자신만 남궁완의 말이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남궁완이 말을 이었다.
“아니, 그래. 차라리 잘되었구나. 내가 올 것을 알았다면 내가 왜 왔는지도 알겠지?”
심지평이 눈을 꽉 감고 끼어들었다.
“소가주님! 일단 말에서는 내려서 말씀하시는 게······.”
“······.”
남궁완이 그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잠시 오금이 저렸으나 어쨌든 모두 다 말에서 내릴 수는 있었다.
말에서 내린 남궁완이 백리연을 살피듯 쭉 훑어보다 멈칫하고 말했다.
“그 상자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인 듯 남궁완이 말을 다 맺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선물이에요.”
심지평은 재빠르게 상자를 받았다. 나비와 당초 문양 자개 장식이 화려한 흑목 상자였다.
신비평은 어서 열어보라는 듯이 남궁완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남궁완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백리연 , 쓸데없는 짓이다.”
그 뒤로 나직한 목소리가이어졌다.
“오랜만에 나와 봤는데, 여기는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처음 제가 아버지 손을 잡고 이 대문을 들어올 때는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요.”
대문을 바라보는 백리연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맺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를 처음 마주친 곳도 여기였죠.”
“······.”
남궁완이 기세등등하게 상자를 열어젖혔다. 안에 뭐가 들었든 소용없을 거라는 마음이 읽혔다.
그리고 상자가 열린 순간 차분히 가라앉는 듯한 시원한 향이 확 올라왔다가 흩어졌다.
“이건······.”
푸른 소나무 자수를 놓은 향낭이었다.
심지평은 남궁완을 흘끗 바라보았다. 예전에 백리 소저에게서 받았다고 한참 자랑하던 향낭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소저가 그걸 어떻게 알고 새로 만든거지?
의문은 바로 해결되었다.
“류청에게 제가 드린 향낭을 뺏기셨더라고요.”
“······.”
“마음에 드세요?”
심지평은 최대한 얼굴에 아무 표정도 나오지 않게 꾸며 냈다.
‘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낼 것을, 괜히 쓸데없이 고민만 했네.’
그래, 그래. 자식들 사이부터 공략하면 백리대협과의 사이도 언젠가는 풀리겠지.
근데 그럼 도련님과 백리소저가 혼인하게 되는 건가? 가문은 어지 되는 거지?
고민이 하나 해결되나 싶다가도 끝이 나질 않았다.
“너는······ 정말 늘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나.”
긴 침묵 끝에 남궁완이 향낭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그때 그들이 서 있는 거리 뒤쪽으로 말발굽 소리가 다가왔다.
누그러졌던 남궁완의 기세가 다시 매서워졌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심지평은 고개를 돌려 백리의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소문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머리가 정말 하얗게 바래 있었다. 백색 의복과 합쳐지자 신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낯이었다.
‘소가주님께서 오시는 걸 백리대협께선 모르셨던 건가?’
백리의강은 굳은 낯으로 말에서 내려왔다.
앞에 서 있던 백리연이 달려가 제 아비에게 와락 안겼다.
“아버지, 남궁완 아저씨가 오셨어요!”
백리의강은 익숙하게 딸을 안아 자세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자네가 여긴 어쩐 일로······?”
“자네 보러 온 건 아니니 신경쓰지 말게.”
“······”
아아아아, 소가주님.
다시 풀어지는 듯하던 분위기가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그런······”
“그럼 저를 보러 오신 건가요?”
“뭣?”
남궁완이 눈을 잔뜩 치켜떴으나, 차마 더는 백리연에게 험하게 굴 수 없는지 이를 꽉 깨물었다.
심지평은 남궁완의 턱에 힘줄이 바짝 선 것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백리 소저에게도 험한 말을 하면 그게 사람이겠나?
만면에 웃음을 띤 백리연이 제 아비의 팔짱을 끼고 남궁완의 등을 떠밀었다.
“아저씨, 오랜만인데 어서 들어가요. 들어가서 얘기해요.”
“나는······.”
심지평은 번개처럼 나서며 굽신거렸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소저. 안 그래도 목이 마르던 차였는데. 어서 들어갑시다.”
“심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