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10)
외전 4화
나는 깜짝 놀라 남궁류청을 홱 돌아보았다.
남궁류청이 말을 이어나갔다.
“다만 고용자와 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그저 동행하는 것으로 하죠.”
“예? 하지만······.”
손을 들어 학진평의 입을 막은 남궁류청이 말을 이어 나갔다.
“혹여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힘을 보태겠습니다. 다만 감당 안 되는 상황이 온다면 끝까지 상대치 않고 빠질 것입니다. 그러니 표사와 호위무사들은 저희가 없는 셈 치고 고용하십시오.”
그러니까 결국, 돈도 안 받고 동행해서 마교가 나타나면 싸워주겠다는 소리 아냐?!
학진평이 입을 바보같이 벌렸다가 벌떡 일어나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조금 서러운 감정도 들었다.
나만 단둘이 하는 여행에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거야? 나만 좋아했던 거야?
당연히 남궁류청도 나와 생각이 같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건가?
“······잠깐 얘기 좀 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궁류청에게 따라오라고 눈짓했다.
나는 객잔에 딸린 안뜰로 나갔다. 어둠에 잠긴 안뜰은 객잔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은은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동행한다니? 우리 아까 거절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천주면 바다가 닿아 있잖아.”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바다가 보고 싶어졌어.”
“갑자기?”
“······.”
남궁류청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팔짱을 꼈다.
아니, 그래. 우리가 그런 말을 나누긴 했었다. 게다가 목적지를 따로 정한 것은 아니었으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졌을 수도 있지.
“바다 좋지. 좋은데, 굳이 동행할 필요는 없지 않나?”
“돈 없다며?”
“······.”
허를 찔린 나는 입을 뻐끔거렸다.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저자들과 동행한다면 비용이 들지 않을 거 아냐?”
“그건······ 그렇지.”
설마 우리에게 객잔비랑 밥값을 따로 부담하라고 하겠는가? 양심이 있다면.
남궁류청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정 싫다면, 알았어. 안 되겠다고 거절하고 올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승자박이로구나.
* * *
무양표국은 열흘 정도 객잔에 더 머무르며 표행을 준비하고 출발했다. 우리도 동행했다.
습격도 없이 평화로운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는 날, 나는 남궁류청이 조금 이상해졌다는 걸 눈치챘다.
이동하는 내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길 반복했고, 얘기할 때도 어딘가 정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들다가도 뒤돌아서면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눈을 마주치는 게 한두 번이 아녔다.
나는 남궁류청을 향해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할 말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
“아니, 없어. 아무것도 아니야.”
이러한 상황이 며칠 반복되자 처음에는 걱정이 되다가 나중에는 두통마저 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모든 일은 원인을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남궁류청이 이상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날을 찬찬히 따져 보았다. 그리고 무양표국과 객잔에 들어간 날부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날 남궁류청이 이상 태도를 보일 만한 사건은 전혀 없었다.
‘아니면, 밖에 나갔다가 개방에서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나?’
나는 학진평에게 무림맹과 마교, 남궁세가와 백리 세가의 일들을 은근히 떠보았다.
하지만 세상은 별일 없이 매우 평온했다. 그나마 강호에 최근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무림맹 추적대와 혈선녀의 충돌 정도?
그다음은······.
“지금 백도 무림에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곳이라고 하면 백리 세가죠.”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거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얼마 전에 백리 세가주의 넷째 아들인 백리의강이 소가주가 되었잖습니까.”
나는 안도하며 말했다.
“아아. 뭐, 다들 짐작하던 일 아니었나요?”
“그렇긴 하죠. 그래서 다들 축하연이 열리겠거니 하며 기다렸는데, 백리 세가에서 축하연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고 합니다. 이에 아쉬운 사람들이 보낸 선물이 대문을 넘어서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고 하더군요.”
학진평은 조금만 말을 걸어도 열정적으로 줄줄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줄이 어디까지 이어졌었는지, 어디서도 선물을 보냈다는지, 어떤 귀한 선물이 있었는지 등등.
정보를 얻어 내기 쉽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런데 축하연을 열지 않은 건 사실, 백리의강의 외동딸인 백리 소저의 위중함을 숨기려고 그런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허?”
기가 막혀 낸 내 탄식을 어찌 해석했는지 학진평이 목소리를 낮춰서 은근히 말했다.
“예. 백리 세가에서는 문제없이 깨어나고, 건강하다고 말했지만, 문을 나선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
“백리 소저가 천마를 쓰러트렸다던데 다른 이들에게 내보이지 못하거나, 다신 일어나지 못할 상처를 입었을 만하죠.”
“제가 듣기로는 백리 세가 가솔들과 친척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 있다던데요.”
큰아버지 댁 유산 논의 때 멀쩡한 걸 다들 보았을 텐데 대체 왜 이리 소문이 난 거야?
“백리 세가 사람들의 말을 어찌 믿겠어요? 제 가문을 위해서라면 그리 말해야지요.”
“······.”
내 속을 모를 학진평이 말을 이어갔다.
“지금 마교가 얼마나 백리 소저에게 이를 갈고 있겠습니까? 숨기는 것도 이해합니다. 게다가 지금 젊은 백도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백리 소저가 영웅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반사적으로 조소가 튀어나왔다.
“천마의 손녀라고 죽이려 들 때는 언제고. 태도 변하는 게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네.”
학진평이 살짝 당황한 듯 나를 보았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지금은 백리 소저와 혼담을 논하려는 이들로 백리 세가의 문지방이 닳을 지경이라는데요.”
“쓸데없는 짓이네요.”
그때 학진평 옆으로 다가온 왕장고가 끼어들었다.
“백 대협은 백리 소저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신 거죠?”
“대협의 연배에, 실력이시라면 무림맹에서 열린 비무 대회에 참석하셔서 좋은 성적을 거두렸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참석했으면 당연히 우승이죠.”
내 말에 학진평과 왕장고가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학진평이 말했다.
“자신감이 대단하시군요!”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자신감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이죠. 설마 두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순간 학진평과 왕장고가 당황한 낯을 했다.
왕장고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뇨. 사실 저도 백리소저의 소문은 과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백 대협이 우승하시리라 믿습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하네요.”
한바탕 심술궂은 장난을 치자 기분이 조금 풀렸다.
남궁류청과 단둘의 여행을 방해한 대가로 이 정도 심술을 부려도 되지 않겠는가!
나는 남궁류청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어딘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 보였다.
학진평과의 대화는 건질 것이 없었으나, 상황이 이 정도가 되자 의심이 가는 부분은 있었다.
해가 기울자 표사들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야영 준비를 했다.
며칠째 계속 이어지는 광경이 익숙했다.
넓은 공터에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식사 준비를 했다. 잡다한 일은 표국의 사람들이 해 주어서 손이 가지는 않았다.
나는 주변의 안전을 살피고 돌아온 남궁류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이리 와 앉아.”
옆자리에 앉은 남궁류청에게 식사를 건넸다.
길에서 먹는 밥이라고 해 봐야 별 볼일 없었다. 말린 육포에 약간의 쌀, 율무 가루 등을 넣어 끓인 꿀꿀이죽 같은 식사였다.
표행의 목표는 빠른 이동이다 보니 길에서 호화로운 식사는 힘들었다.
“오는 길에 눈에 보이길래 뜯은 향신료인데, 이거 넣길 잘했다.”
“응.”
“내일은 야영 안 하고 객잔을 잡을 수 있을 거래. 다행이지?”
“그러게.”
나는 남궁류청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원래도 나와 남궁류청의 대화는 대부분 내가 말을 걸고 남궁류청이 답하는 식이었다. 남궁류청은 본래 말이 별로 없는 성품이긴 했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나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살그머니 손을 뻗어 남궁류청의 손을 잡았다.
정말 그냥 손등을 잡듯이 손을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남궁류청이 손을 빼내며 말했다.
“물이 떨어졌네. 근처에서 샘을 봤어. 갔다 올게.”
나도 더 표정을 관리하기 어려웠다. 생긋 웃으며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
“그럴 필요······.”
나는 웃는 낯 그대로 남궁류청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할 얘기가 있지 않아?”
“······.”
남궁류청이 입을 굳게 다문 채 몸을 돌렸다.
나와 남궁류청은 숲으로 들어갔다. 야영지에서 시선이 닿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멀어진 다음 멈춰 섰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이러는 거야? 별일 아니라는 말은 하지 마. 네 태도, 이상하니까.”
살짝 미간을 좁힌 남궁류청이 주변에 기막을 펼쳤다.
은은하게 들리던 야영지의 대화소리부터 졸졸 흐르는 냇가의 물 소리, 바람에 수풀이 흔들리고 벌레 우는 모든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둘만의 고요한 장소에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양표국 때문에 그래?”
“······.”
“너 무양표국이랑 만난 이후부터 이상해졌잖아.”
“아니야.”
“아니면 학신평 때문이야?”
남궁류청이 인상을 찡그렸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조소했다. 그리고는 자못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눈이 있다면 내가 저 녀석보다 훨씬 낫다는 걸 알 텐데. 나랑 저자를 비교한다고? 하.”
“······.”
나는 잠시 말을 이었다.
아니, 학진평을 남궁류청과 비교한다는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그래. 이 오만한 태도가 남궁류청이지.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까지 왜 그렇게 구는 거야? 여기까지 와서 아니라고 넘어갈 생각 하지 마.”
“······.”
“류청!”
“······청이라고 부르기로 했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청이? 설마 가명을 말하는 건가? 그게 여기서 왜 나와?
남궁류청이 음울한 눈을 한 채 말했다.
“그런데 너는 별로 부르고 싶지 않은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