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1)
3. 알 수없이 홀러가는
그러니까 대체 이게 어찌 된 상황인 걸까?
백리연은 제 앞에서 저를 매섭게 노려보는 자를 마주 보았다. 딱딱하고 서늘한,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빛. 거기에 잔뜩 날이 선 경계심.
남궁류청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남의 침실에 멋대로 들어와? 지금 이게 명문 세가의 소저가 할 행동이라고 보나?”
“일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 무슨 오해? 내가 보고 겪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오해라는 거지?”
남궁류청이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한심하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백리연, 제발 정신 좀 차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백리연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매만졌다.
아, 이게 꿈이라면 누가 좀 깨워줬으면.
.*. *. *. *. *. *.
사고 이틀 전.
터벅, 터벅.
일정한 걸음 소리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원형 모양의 공동에 울려 퍼졌다. 발소리를 따라 공동 안의 유일한 빛이 움직이고, 이어서 가장 깊은 곳, 공동 중앙에 자리한 기이한 형상이 드러났다.
거대한 비석. 그리고 그 비석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피처럼 검붉은 부적이 붙은 나무 막대가 간격을 두고 꽂혀 있었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때 엄청난 검풍이 불어닥쳤다.
쿠콰쾅-!
부적부터 비석이며 뒤편의 벽까지 맹수의 발톱이 지나간 것마냥 갈라진 직후, 나무 막대들이 갑자기 썩어 버린 것처럼 부스러져 사라졌다.
“된 건가?”
“일단은 그런 것 같네.”
남궁류청의 물음에 백리연이 답했다.
남궁류청을 바라본 백리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째 드디어 고생이 끝났는데, 표정이 별론데?”
남궁류청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너무 시시해서.”
“그건 그래.”
검집에 검을 넣은 남궁류청과 횃불을 든 백리연이 비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비석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잔뜩 적혀 있었고, 반으로 쩍 갈라진 안쪽에 희미한 무언가가 보였다.
남궁류청이 손을 뻗어 비석 안에 보이던 것을 집어 들었다.
“이건…… 목패?”
“이게 화무가 말한 그건가?”
남궁류청이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그렇다기엔 아무 힘도 느껴지지 않는데.”
백리연 또한 동의한다고 답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목패에서 아주 희미하게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백리연은 재빨리 금안의 힘으로 기운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리고 다급히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다.
“류청, 방금 전 목패에서 기운이……”
하지만 남궁류청은 갑자기 무슨 일이냐는 듯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목패에서 뭐?”
“……방금 아무것도 못 느꼈어?”
“아무 느낌 없었는데?”
인상을 찌푸린 백리연이 그녀가 멈춰 놓았던 붉은 기운을 다시 살피려 했다. 그러나 분명 보고 멈춰 놓기까지 했던 불길한 붉은 기운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백리연은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남궁류청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정말 괜찮아?”
“뭘 말하는 거야?”
“손이 따갑다든가, 어디 아프다든가. 아니면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든가.”
“아무 느낌 없어.”
“그래? 줘 봐.”
목패를 한참 바라보던 백리연의 낯이 이내 일그러졌다.
“속았네.”
“뭐?”
“이거 가짜야.”
“허?”
“응. 아무 능력도 담겨 있지 않아.”
백리연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이곳에 천마의 유산이 있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결국, 가짜였지만.
‘그렇다면 아까 보였던 그 불길하기 그지없던 핏빛 기운은 뭐지?’
남궁류청이 이마로 흘러내린 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가짜라니. 왠지 생각보다 쉽더니만.”
“그건 그래. ……그래도 위험하게 그렇게 막 집으면 어떻게 해?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러니까 내가 집어야지.”
단호한 목소리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사람의 말문을 막아 놓고 태연하게 비석을 살피던 남궁류청은 뒤늦게 백리연의 시선을 눈치채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던 남궁류청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입가에 닿은 온기에 백리연이 당혹스럽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뭐야?”
“아, 원하는 것 같아서.”
입술이 맞닿은 채 움직이는 느낌은 손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내 핑계를 대시겠다?”
“그럼 아닌가?”
살짝 벌어진 틈 사이를 남궁류청이 파고들었다.
.*. *. *. *. *. *.
백리연은 서신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 기척에 창밖을 내다보던 남궁류청이 고개를 돌렸다.
“다 했어?”
“..응..”
백리연은 수신인에 제갈가라고 적은 봉투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노력해 줬는데. 안타깝게 됐네.”
가만히 지켜보던 남궁류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최선을 다했어.”
“애초에 제갈화무 혼자도 해결할 수 있는 일에 굳이 발을 얹어서 끼어든 거잖아.”
“그렇긴 하지……”
남궁류청의 말이 맞았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직접 끼어들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백리연은 오랫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던 옛친구를 떠올렸다가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단둘이 바람도 쐬고 시간도 가지고 좋지 않아?”
“유일하게 좋은 점이지.”
“지금 애들은 뭐 하고 있으려나?”
아이들 얘기가 나온 순간 남궁류청이 코웃음을 쳤다.
“뭐 하겠어? 장인어른이랑 함께 있어서 좋아 죽겠지.”
“하하, 왜 그래? 서운했어?”
“서운은 무슨! 제 아비가 떠나는데 나와보지도 않으려고 하고!”
“하하하! 외조부를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좋은가 봐. 이상하단 말이야. 아빠는 원래 애들한테 인기 없는데.”
남궁류청과 일을 처리하러 떠나기 전에 백리세화와 남궁희를 백리의강에게 맡겨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백리세화와 남궁희는 엄마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외조부와 외증조부에게 정신이 팔려 관심이 없었다.
배웅도 하지 않으려는 것을 백리의강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배웅해야 한다고 나무라자 그제야 잘 다녀오시라며 인사했다.
백리연은 얌전하게 인사하던 세화와 작은 손을 마구 흔들던 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혀 슬프거나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아니, 희는 오히려 아빠엄마가 없다니까 반기는 기색이었다.
백리연이 말했다.
“하여간 너무 오냐오냐해서 문제라니까.”
생각해 보니 제일 오냐오냐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
남궁류청이 말은 저렇게 해도 또 애들 앞에 가면 헤실헤실 풀어져 버릴 터였다.
“그래도 화아가 이제는 검에 관심을 가져서 다행이지.”
“애들 얘긴 이제 그만 하지?”
“ 응?”
“여기 네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갑작스러운 말에 백리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다.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그의 뺨에 손을 올렸다.
“정말 너한테도 너무 오냐오냐해 주는 것 같아.”
그렇게 무사히 돌아와 달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고, 밤을 보내고 다를 것 없는 다음 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 *. *. *. *. *.
“일어나!”
“뭐야……? 아침부터. 양심도 없지 정말. 피곤해 죽겠어.”
“헛소리 말고 일어나지 못해!”
백리연은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며 간신히 눈을 떴다.
“아니 정말 뭐야……? 무슨 일인데?”
“네가 왜 여기 있어?”
“뭐?”
멀리 방의 벽에 붙다시피 선 남궁류청은 새빨개진 얼굴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옷…… 옷 좀 제대로 입어!”
백리연은 의아함을 느끼며 옷가지를 단정히 했다. 그래 봐야 중의를 추스른 것에 불과했지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남궁류청은 숨통 이 트인 듯 보였다.
백리연이 입을 가리며 길게 하품을 하고 물었다.
“음, 아침부터 어디 나가려고?”
언제 챙겨 입었는지 남궁류청은 중의에 겉옷까지 차려입은 상태였다.
남궁류청이 이를 빠득 물고 물었다.
“허튼소리 말고. 네가 왜 여기 있냐고. 해명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왜 여기 있냐니? 우리 원래 같이 잤잖아.”
“무슨 헛소리야! 우리가 같이 자 다니! 내가 너랑 왜!”
“••••••응?”
백리연은 그제야 기이함을 느끼 고 남궁류청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어젯밤과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었다. 같이 잠들었던 모습 그대로. 겉옷도 어제 벗어 둔 것이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부드러운 온기를 머금거나 타오르듯이 맹렬히 바라보던 눈빛이 아니었다. 바짝 독이 오른 잔뜩 경계하는 눈빛. 그 차가운 시선 안에는 미약하게 경멸의 빛이 보였다.
그리고 이 시선은 매우 익숙했다. 한때 남궁류청은 이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주 오래전에.
누가 얼음물을 머리에 끼얹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