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7)
57화
* * *
조용히 문이 열렸다 닫히며 탁탁탁, 석판을 딛는 가벼운 발소리가 멀어졌다.
남궁무철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의강이 좋은 딸을 두었구나.”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거칠게 걸어 나왔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 분이 연이의 공청석유를 빼앗았다니요!”
남궁완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목덜미에 핏대까지 세우고 있었다.
“다 듣지 않았느냐? 말한 대로다.”
“아버지!”
“내 귀 아직 멀쩡하다.”
이를 아득 간 남궁완이 쿵쿵거리며 다가와 탁자를 내리쳤다.
가장자리에 잉어와 연꽃을 화려하게 상감한 탁자가 금이 쩍 가며 운명했다.
“공청석유, 주십시오!”
“뭘 하려고?”
“돌려줘야지요!”
남궁무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언제는 류청에게 주고 싶다더니?”
“그놈이 뭐가 예쁘다고 줍니까!
오늘 석찬 자리에서 연이에게 하던 짓을 보십시오! 그놈은 냉수면 족합니다!”
남궁무철이 나직 온기가 사라지지 않은 방석을 눈짓했다.
“앉거라.”
“아버지!”
“일단 앉아!”
콧김을 뿜으며 남궁완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남궁완을 보며 남궁무철이 혀를 끌끌 찼다.
“머리 좀 식히거라. 어찌 이리 바보 같아? 저 어린 아이도 얻은 교훈을 너는 못 얻는단 말이냐!”
“무슨 교훈이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교훈이요? 아버님의 의형제가 한 짓을······!”
남궁무철이 찻잔의 물을 남궁완에게 촥 뿌렸다.
대비라도 한 듯 남궁완이 찻물을 피했으나, 몇 방울이 옷깃에 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남궁완이 이를 털어 내며 성질냈다.
“할 말 없을 때마다 그러지 마시지요!”
“네놈 정신 차리라고 한 거다!”
깊은 한숨을 내쉰 남궁무철이 말했다.
“네가 지금 저 애에게 공청석유를 돌려준대도 저 아이는 감당 못한다.”
“감당 못 한다니요?”
“네가 공청석유를 돌려준다 하더라도 또 누군가 뺏어 가려 든다면, 저 아이는 손도 쓰지 못하고 뺏길 것이다.”
“감히 남궁 세가에 있는 연이에게 누가 손을 뻗는단 말입니까!”
“내 의제가 연이가 공청석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다고 생각하느냐?”
“······.”
“연이가 만신의의 연단실에서 살아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공청석유의 존재를 아는 자들도 분명 나올 것이다. 이미 조용히 넘어가기엔 글렀다.”
“그 사실을 왜 이제야 알려 주시는 겁니까?”
남궁무철이 미간을 문질렀다.
“저 아이가 온 지 이제 이틀이다!”
“······.”
“네가 정 돌려줘야겠다면 가지고 있다가 의강이 오거든 그에게 넘기거라.”
남궁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의강이 받겠습니까? 거기다 의강은 지금······! 의강이 지금 영약을 먹었다간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 지금 의강은 공청석유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
“그래도 딸아이가 만신의의 연단실을 찾아낸 걸 보면 하늘이 의강을 버리진 않으신 게지.”
* * *
나를 처소 중문 앞까지 데려다 준 노복이 고개를 숙인 후 몸을 돌렸다.
나는 입을 두들기며 길게 하품했다.
‘빨리 씻고 자야지. 아, 귀찮다. 꼭 씻어야 하나······?’
처소로 걸음을 재촉하던 난 우뚝 멈춰 섰다.
처소 앞뜰에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야율이었다.
야율은 처마 밖에서 달빛을 받으며 발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율? 여기서 뭐 해?”
내 목소리에 야율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야율이 나를 보곤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야율을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설마 너······ 나 나간 이후로 계속 그러고 있었던 거야?”
“······.”
야율은 말없이 날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머리를 짚었다. 오늘 석찬에 야율이 따라오겠다는 걸 막았더니 배웅한 그 자리에서 기다린 모양이었다.
“저녁은?”
“······”
“안 먹었어?”
“······”
대답이 없는 걸 보면 안 먹었네, 안 먹었어.
“기다리지 말고 먹어야지! 언제 돌아올 줄 알고!”
“그냥······ 무슨 일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남궁 세가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어떤 간 큰 사람이······ 있었네. 하하.”
나는 허탈하게 웃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걱정해서 그러고 있었던 거야?”
“응.”
어휴.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고개를 내저었다.
“가자.”
“어디 가? 처소는 이쪽인데.”
“부엌. 먹을 게 남아 있나 보자.”
“안 먹어도 돼.”
“내가 배고파서 가는 건데?”
“······.”
* * *
기척을 느낀 야율이 눈을 반짝 떴다.
마당 쪽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새벽, 어스레한 방 안에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걸 안 야율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시비일 리는 없었다. 백리연이 처소에 시비를 두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여 시비는 낮에만 필요할 때 잠깐 씩 들어올 뿐, 밤에는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율은 시비를 물린 것이 자신 때문인 걸 알았다. 그가 남궁 세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안전을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야율이 소리없이 처소 밖으로 나갔다.
여자아이 한 명이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야율은 그 아이가 이틀 전에 왔던 아이로, 서하령이라고 알려 줬던 걸 기억해 냈다.
서하령이 야율을 보고 멈칫했다가 다가왔다.
“왜 연이가 아니라 네가 나와?”
“연이?”
“응! 우리 어제 이름 부르기로 했거든!”
서하령이 가슴을 펴며 으스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 맞아. 그래서 연이는?”
“자.”
“아직도 잔다고?”
야율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하늘을 흘끔 보았다.
“연이가 오늘 나 수련하는 거 보러 온댔는데 아직도 잔다고?”
“나는 몰라. 돌아 가.”
말한 야율이 처소로 몸을 돌릴 때였다.
귀찮은 사람 취급이 역력한 모습에 왈칵 인상을 찡그린 서하령이 버럭 소리쳤다.
“싫어! 확인해 볼 거야. 연아!”
갑자기 서하령이 막무가내로 야율을 제치고 처소로 뛰어들어 갔다.
야율이 서하령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그 짧은 사이 멀어진 서하령을 야율이 황급히 쫓았다.
“어······ 진짜 자네.”
우렁차던 서하령의 목소리가 개미만 하게 바뀌었다.
야율이 낮게 소리쳤다.
“당장 나가.”
* * *
“하령이 아침에 왔었다고?”
세상에. 부지런하네. 그냥 한번 보러 가 본다고 했을 뿐인데 꼭두새벽부터 찾아올 줄이야.
야율이 조금 짜증난 얼굴로 말했다.
“침실까지 들어왔다 갔어.”
“응?”
“갑자기 뛰어들어 가서 못 막았어. 잡을 수 있었는데······.”
“괜찮아, 잘했어. 네가 힘이 세서. 또 멍들면 안 되니까.”
다행히 저번에 내가 다른 이에게 함부로 힘을 휘두르지 말라고 한 걸 기억한 모양이었다.
“눈은 괜찮아 보이던?”
“눈?”
“응. 부어 있거나 그러진 않았어?”
야율은 곰곰이 생각하곤 말했다.
“기억 안 나.”
고개를 끄덕인 난 수저를 내려 놓았다.
곧이어 시비가 들어와 그릇을 모두 걷어갔다. 야율도 방을 나갔다.
다시 야율이 돌아왔을 때 나는 겉옷을 챙겨 입고 신발을 찾고 있었다.
돌아온 야율이 내게 약사발을 내밀었다.
“이거.”
멈칫한 내가 약사발을 받아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다시 신발을 찾아 신고 일어났을 때였다.
야율은 아직도 약사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스레 찔린 내가 먼저 말했다.
“나갔다 와서 마실게.”
야율이 눈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제도 그렇게 말하고 안 마셨어.”
“내가······ 그랬나? 하하하.”
“응. 그랬어.”
“······.”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 뻔뻔하게 고개를 들었다.
“원래 애들은 약 먹는 거 싫어 해.”
“······.”
야율이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