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1)
71화
결국 아버지가 침잠한 음색으로 말했다.
“······알았다.”
거짓을 싫어하는 아버지치곤 생각보다 선선한 수락이었다.
이내 아버지가 질문했다.
“연아, 그럼 내 기맥도 볼 수 있느냐?”
“네!”
이미 한 번 살폈다.
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의 실력이 막상막하라 알려진 것처럼 내공으로는 두 분의 우위를 따질 수 없을 정도였다. 남궁 세가 무인들이 상앗빛을 띠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버지는 푸른빛이 도는 백색이었다.
홀린 듯 기맥을 살피던 나는 뒤늦게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불편한 눈빛.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
자신의 몸을, 내력을 알아볼 수 있다는 걸 기꺼워하는 무인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해요. 앞으로 아버지는 살피지 않을게요.”
“아니, 아니다. 그저 조금 불안해서 말이다. 정확히 알려지지않은 능력이니.”
아버지의 말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그래도 앞으론 조심해야지.’
고민하던 기색의 아버지가 운을 뗐다.
“연아, 네가 그 능력을 숨기고 싶은 건 알겠다. 하나 완에게는 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왜요?”
“이 아비는 만신의에 관해선 솔직히 거의 아는 게 없다. 만신의는 남궁 세가와 연이 있다 들었으니 나보단 잘 알 것이야.”
“그런 거면 괜찮아요!”
어차피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건 백리 세가였으니까.
백리 세가의 할머니와 큰아버지, 고모. 그리고 내 사촌들.
‘방심하게 두는 게 좋아.’
할머니와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견제하긴 했지만 제대로 대립각을 세우진 않았다.
할아버지가 흔들림 없이 큰아버지를 지지하고 있기도 하였고, 아버지의 태도가 가주 자리에 관심이 전혀 없다는 걸 나타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결벽적으로 가문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약관이 되기도 전 제 한 몸 지킬 수 있을 실력이 되자 검 한 자루만 들고 강호로 나섰다.
무림맹에서 자리를 잡기 전까진 계속 세상을 떠돌며 약자를 돕고 악인과 싸웠다.
이름이 높아졌지만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또한 슬슬 혼인을 하는 게 어떠냐는 할아버지의 말조차도 무시했다.
가주가 되는 데는 본신의 무력도 중요했지만, 후계의 존재도 무력만큼 중요했다.
혼담이 몇 번 오갔으나, 아버지는 모두 거절했다. 아버지를 속으로 지지하던 이들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자신의 딸이라며 웬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심지어 그 아이에게 백리 성까지 받도록 입적했다.
아직 소가주 자리는 확정되지 않은 상황.
만약 아버지가 데려온 아이가 아버지 같은 재능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공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아이의 재능을 살피기도 전에 짓밟았다. 나를 주화입마에 빠지게 한 것이다.
아버지가 내 곁에 없으니 기회였을 것이다.
그들은 갓 내공 심법을 배워 기초 중의 기초를 수련하고 있는 나를 교묘하게 부추겼다. 영약 하나면 단번에 강해질 것처럼 나를 홀렸다.
하지만 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아이에게 영약은 주화입마에 빠지는 지름길이나 다름없었다.
‘길바닥의 거지 출신이었던 내가 영약을 탐낸 것 자체가 이상했지.’
영약이 뭔지도 모르던 아이였다.
주화입마도 뭔지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영약을 탐내다 얻게 된 것이다.
그래도 피가 이어진 친지이거늘, 이런 졸렬하 수를 쓸 거라고는 아버지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언젠가······ 아!’
그때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손을 잡아당겼다.
“아버지! 빨리! 빨리 제 처소로 가요!”
아버지가 고개를 기울였다.
“밤이 깊다. 네 처소는 내일 가자꾸나.”
“안 돼요! 오늘 꼭 보여드릴 것이 있단 말이에요!”
공청석유!
어서 아바지에게 공청석유를 보여 드리고 싶었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펄떡거렸다.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내가 발을 구르며 재촉하자 아버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났다.
“대체 무엇이기에 그러느냐?”
“가면 알아요!”
나는 아버지를 이끌고 남궁 세가를 뛰었다.
한참을 뛰고, 또 뛰고, 또 뛰었다.
‘으아! 더럽게 넓어!’
나는 숨을 헐떡이며 멈췄다.
얼마나 온 거지? 밤이라 더 거리가 가늠 안 됐다.
옅은 숨을 내쉰 아버지가 주변을 살짝 훑고 나를 안아 들었다.
‘음, 그래. 이 안정감이야.’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익숙하게 아버지 목을 껴안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느냐.”
“이쪽이요!”
“시각이 늦었다. 목소리를 낮추거라.”
아버지가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경공을 이용해 빠르게 달렸다.
‘지붕을 타거나 담벼락을 넘으면 금방일 것 같은데.’
하지만 절대 허용된 길을 벗어나면 안 됐다.
언제 적의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 무림 세가엔 길을 벗어나면 공격하는 살벌한 기문진식들이 가득했다. 이건 백리 세가도 마찬가지였다.
경공을 이용해 빠르게 달리던 아버지가 갑자기 차분하게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멈추신 거지?’
곧이어 순찰 중인 남궁 세가 무인을 마주쳤다.
경계하던 무인이 아버질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무인이 검집에서 손을 떼고 포권했다.
“백리 대협을 뵙습니다. 실례지만 이 시각에 어쩐 일이십니까?
“연이가 처소로 돌아가고 싶다하여 나왔네.”
“안녕하세요.”
난 아버지 품에 안겨서 인사했다.
“아, 소저가 오늘 창궁관에서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방향은 아십니까? 안내해드릴까요?”
“괜찮네. 수고를 끼칠 수 없지.”
“알겠습니다. 음, 길을 벖어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인이 다시 순찰로로 향했다.
무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나는 애써 참던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말거라. 내 누구 때문에 이러한데.”
한숨과 함께 아버지가 다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아버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대놓고 웃었다.
“아하하하.”
“조용히.”
“흐윽, 흑, 흐흡.”
이를 깨물고 참았지만 잘되진 않았다.
아버지가 혀를 차며 순식간에 전각 몇 개를 지나쳤다. 순찰하던 무사들도 두 번 더 마주쳤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발걸음이 차분해진 건 당연했다.
곧이어 내 처소가 보였다.
“저기예요!”
바닥을 박차고 빠르게 다가가던 아버지가 우뚝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안겨 있는 내게는 아무런 충격도 오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게 경공술.’
감탄하는 나와 달리 굳은 얼굴의 아버지가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 누가 있다. 」
갑자기 머릿속으로 울리는 듯한 목소리. 아버지의 전음이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어느새 소리없이 뽑아 든 검이 쥐어져 있었다.
“여긴 내 딸의 처소이외만 어르신은 누구신지요?”
“딸? 그럼 네가 백리의강이겠군.”
방금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날아가고 숨소리마저 조시말 정도로 날카로운 기운이 주변에 가득 깔렸다.
야밤의 달빛까지 구름에 가려진 마당은 보통 시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안으로 본 마당은 달랐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내공이 보였다.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버지, 천산염제예요!”
“천산염제?”
되묻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당장 아버지께 달려들 것만 같던 날카로운 투기가 사라졌다.
“쯧, 재미없군. 원래는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아니었거늘 저 머저리가 그르쳤어.”
흥이 깨졌다는 듯 혀를 찬 천산염제가 쥐고 있던 걸 밀치며 뒷짐을 졌다.
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야율! 괜찮아?”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와 함께 작게 “괜찮아.” 라고 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 할아범은 왜 자꾸 남의 처소에 머대로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심지어 천산염제에게 공청석유를 뺏기고 하나 남은 거라는 건 아버지께 공청석유를 드리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마주치다니. 아버지께 일부러 숨긴 것 같아졌잖아!
아버지가 공손히 이야기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먼저 인사드리지 못함을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빼 든 검을 거두진 않았다.
“하지만 제 딸의 처소에서 무얼 하시는지 해명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노부가 누군질 알면서도 검을 거두지 않다니. 과연.”
투기를 가라앉힌 건 천산염제뿐이고 아버지는 오히려 더 날카로워졌다.
설마, 싸우시려고요? 일부러 싸우지 말라고 정체를 알려 드린 건데!
‘허허. 나도 모르겠다.’
뭐, 아버지가 쉽게 당하시진 않으실 테고.
한 합이라도 격돌하는 순간 남궁 세가의 무사들을 모조리 깨워 모을 테니 따지자면 아버지가 아니라 천산염제가 위험하다고 볼 수 있었다.
‘눈치 봐서 야율이나 데리고 빠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