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2)
72화
* * *
다행히 두 분이 진짜 격돌하는 일은 없었다. 천산염제가 한발 양보해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더 이상했다.
‘저 할아범이 양보할 만한 사람은아닐텐데.’
남궁 세가주께 제대로 혼나셨나?
급하게 내온 차를 따르는 동안 숨 막히는 침묵 뿐이었다.
마음 같아선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졸렸다.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거기다 창궁관에서 열심히 수련하다 나왔고, 아버지를 보고 한바탕 울고 난리를 쳤으며, 남궁 세가를 한참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아, 졸려 미치겠다.’
익사할 것 같은 침묵은 내게 자장가와 같았다.
하지만 두 분이 무슨 대화를 할 지 걱정되어 나갈 수 없었다.
흔들리는 고개가 툭 옆에 기댔다. 야율의 어깨였다.
그대로 잠들려던 순간, 천산염제가 입을 뗐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천산염제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씁, 어느새 살짝 흘러나온 침을 닦던 난 그대로 굳었다.
“저 아이를 내게 주거라.”
아니, 다시 자세히 보니 내 곁의 야율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깜짝이야.’
잠시 안도했다 다시 놀랐다.
야율을 달라고?
아버지가 되물었다.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 제자로 받을 테니 넘겨라.”
이게 무슨······?
그때 야율의 손이 내 손을 덮듯이 꽉 쥐었다.
손등에 닿는 열기가 뜨거웠다.
야율을 돌아보자 눈동자가 마주쳤다.
절박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인 걸까?
여기서 가장 차분해 보이는 것은 아버지였다. 본받고 싶을 정도의 평정심이었다.
“천하 십일강이신 천산염제 선배님의 제자라니.”
아버지가 눈을 내리깔고 잠시 고심하곤 말을 이었다.
“실로 대단한 자리입니다만, 제안이 갑작스럽군요. 저 아이의 무엇을 좋게 보신 것인지요?”
“걱정할 필요 없다. 노부는 이미 저 아이에 대해 다 알고 있으니.”
흡성마공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아버지의 평정심이 깨졌다.
아버지가 야율을 흘끗 보았다.
내 손을 쥔 야율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어쩌다가······ 아니, 내 부덕이지.”
천산염제가 나를 보며 물었다.
“아직 말 안 한 게냐?”
아버지의 의아한 시선이 날 향했다.
나는 살짝 억울함을 담아 말했다.
“······처소에서 말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뜬금없이 천산염제를 마주쳐 모든 순서가 일그러졌다.
천산염제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아주 효성스러운 딸을 뒀더구나.”
“예?”
영문을 알 수 없던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사연을 따져 묻기엔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아버지가 다시 천산염제를 돌아 보았다.
“알고 계신다면 말씀드리기 편하겠군요. 야율, 저 아이는 마공을 배웠기에 다른 무공을 배울 수 없습니다.”
마공이 달리 마공이 아니었다.
정파 심법들과는 달리, 마공이라 부르는 심법들은 한번 배우면 다른 심법엔 손댈 수 없었다.
다른 심법을 배척하는 걸로도 모자라 억지로 다른 심법을 배우려 한들 주화입마에 빠져 죽는 지름길일 뿐이었다.
그리고 마공 중에서도 악명 높기로 손꼽히는 것이 흡성 마공이었다.
하지만 천산염제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흡성마공을 익혔다 한들 본신의 무학을 이어받는 데는 문제없다. 아니, 오히려 노부의 무학을 이어받아야 하지.”
무슨 뜻이지? 천산염제의 무공은 마공과 상관없이 배울 수 있단 소린가?
아버지가 내 의문을 질문했다.
“선배님의 무공이 마공을 억누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 노부의 구화적염결을 익힌다면.”
구화적염결.
천산염제를 천하 십일강으로 만든 무공이었다.
이 점만 보더라도 얼마나 대단한 무공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무공이 문제가 아니다.
천하 십일강 중 한 명인 천산염제가 제자를 들이겠다 하면 이를 배우려는 사람이 전 중원에서 몰려들 터였다.
‘그런데 왜 하필 야율이지?’
의문이 들지만······ 천산염제의 말이 모두 사실이고 구화적염결을 야율이 배울 수만 있다면 그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이런 걸 바로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아버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믿기 힘들 정도의 기연이군요.”
“노부가 이런 거짓을 말해 무슨 이득이 있지?”
“······.”
“이게 고민할 거린가? 당장 수락해도 모자랄 터!”
천산염제가 탁자를 내려치며 위협했다.
긴장한 듯 내 손을 쥔 야율의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참고 참다가 작게 속삭였다.
“야율.”
그제야 야율이 화들짝 놀라서 손에서 힘을 뺐다.
천산염제와 아버지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 야율에게 물어봐야죠. 야율이 가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요?”
솔직히 누가 이런 기회를 놓치나 싶었다.
‘조금 아쉽네.’
그간 정이 꽤 들었는데.
나는 편히 말하라는 듯 야율을 보면서 웃었다.
그때 천산염제에게서 답이 나왔다.
“물을 필요 없다. 저 아이는 싫다 했으니.”
아버지가 놀라 야율을 바라봤다.
나도 놀랐다.
야율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정말 거절했느냐?”
“네.”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 물었다.
“왜?”
내 손을 부서트릴 듯 쥐었던 야율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이건 더없이 좋은 기회야.”
내 눈을 마주한 야율이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가 좋아.”
“······.”
“······.”
침묵이 처소를 감쌌다.
여기가 좋다.
천산염제의 제안을 거절하기엔 정말로 하잘것 없는 답이었다.
아버지는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야율을 바라보았다. 이해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만하지.’
나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런데도 아버지는 담담한 낯으로 천산염제를 향해 고했다.
“선배님께 대답이 되었길 바랍니다.”
천산염제가 헛웃음을 흘리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 하나 묻지.”
“하문하시지요.”
“저 아이에게 이리 마음 쓸 이유가 있는가? 고작해야 만난 지 몇 달. 특별할 것 없는 연일 텐데?”
“만난 기간으로 인연의 깊이를 따질 수는 없지요.”
“내게 들켰다면 다른 이에게도 들킬 터. 네 친부인 백리패혁은 이 사실을 아는가? 무림맹의 백로단주로서는 어떤가? 만약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텐데. 평생 저 아이를 어찌 숨길 생각이지?”
“처음부터 그 정도 각오는 하였습니다.”
“그래서 네 딸을 잃을 뻔한 것도 각오에 포함되나?”
“······.”
아, 이건 좀······ 꽤 치명타였다.
담담함을 유지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가장 크게 변했다.
거의 일그러진 것에 가까웠다.
천산염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냥 노부에게 넘기거라. 저 아이를 위해서도 자네를 위해서도 훨씬 편할 것이다.”
알려진 천산염제의 성품을 생각할 때 이렇게 말로 온화하게 설득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쉰 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떴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낼 순 없습니다.”
천산염제가 기가 찬다는 듯 숨을 토하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쯧쯧, 내 시비를 지키겠다 제 손바닥을 찢어 먹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그 아비에 그 딸인가? 아직 세상에 이런 멍청한 놈이 살아 있다니. 아니, 오히려 잘됐군!”
분명 거절을 들었음에도 기꺼운 기색이었다. 천산염제가 말을 이었다.
“극양지체라고 들어 보았나?”
아버지의 침묵 속에 내가 답했다.
“그거 희귀한 ······ 불치병 아니에요?”
의원 중에는 그런 병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아는 이유는 내 몸을 고치기 위해 온갖 책들을 섭렵해서였다.
본디 기운은 여러 조화로 나뉘었다. 그 중엔 음과 양이 있는데, 극양지체는 그중 양기가 극도로 발달한 체질을 일컫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불치병이라기보단 희귀한 체질이었다.
하지만 불치병이라고 말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불치병. 맞는 말이지. 날 때부터 극한의 양기는 자라며 전신의 혈맥을 말라붙게 만들어 빠르면 지학(15세), 늦어도 약관(20세)을 넘기지 못하고 산 채로 타는 고통 속에 요절한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것일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천산염제의 손가락이 야율을 향했다.
“그리고 저 아이가 바로 그 극양지체다.”
하. 무심코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나는 수도없이 보았던 야율의 기맥을 떠올렸다.
‘극양지체라고?’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약간 이질감이 느껴진다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흡성마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극양지체여서였다니?
또 그 말은 야율이 이대로면 최소 열다섯 살, 많아야 스무 살 전에 죽는다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