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9)
99화
백리연은 분명 처음에는 비밀로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붙어 있는 시간이 길었다.
거기에 금안까지 들켜 버렸기에 백리연은 야율에게 자신의 능력을 대략 알여주었다.
하지만 야율은 백리연이 직접 설명해 주기 전에도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걸 눈치 냈다. 눈동자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더듬고, 벽이라도 들여다보면 곧이어 그 방향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물론 백리연이 이를 모두 티 나게 행동하진 않았다. 늘 조심스러웠다.
다만 백리연이 조심하는 것보다 그녀를 관찰하는 야율의 시선이 더 깊었던 것뿐이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그의 습관과도 같았다. 어릴 적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집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람 관찰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바위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여기 옷이다.”
천산염제의 심공을 익히며 내보낸 노폐물과 땀으로 의복은 다시 세탁하여 쓰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야율은 물속에서 나와 옷을 모두 입고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한 채 물었다.
“이제 돌아가는 겁니까?”
차가운 물속에서 허옇게 질려있던 뺨에 옅은 홍조가 돌았다.
그꼴을 보자 천산염제는 왠지 심기가 꼬여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만 좀 더 있어야겠다.”
“······어찌해서요?”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뭔 질문이 그리 많으냐!”
“······.”
침울해진 야율의 낯빛에 만족한 천산염제가 선선히 설명해 주었다.
“남궁 세가에
지금 무림맹주가 와 있다.”
무림맹주 이름은 위지백.
백도 무림 정파 연합의 수장으로 천하십일강으로 꼽히는 사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가장 늦게 천하십일강 자리에 오른 말석에 가까웠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나도 모른다.”
천산염제가 거의 드러눕듯 방만한 자세를 하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넌 천귀조 사건의 생존자이지 않으냐? 천귀조 사건을 언급했다가 맹주가 널 보고 싶어할지도 모르니 떠날 때까지 그냥 여기서 좀 더 수련이나 하여라.”
“얼마나 머물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천산염제는 꽤 짜증나 보이는 야율의 표정을 보고 조소했다.
“뭐, 맹주도 시간이 남아돌진 않을 테니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심법을 전수받고 수련하는 내내 표정에 변화라곤 하나도 없던 아이였다.
통증이 꽤 심할 텐데도 너무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자신의 기억이 잘못됐는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백리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여러 표정을 내보였다. 그나마 아이같아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범상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것이 분명했다.
천산염제는 야율의 거절에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화가 치솟았다가 종래엔 의문이 들었다.
제자를 원하는 절박한 마음은 둘째 치고서라도 정말 이유가 궁금하여, 진지하게 까닭을 물어보기도 했다.
대답이 가관이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힘을 가지면 바로 죽일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천산염제는 그 말에서 아주 어릴 적부터 억눌렀던 살의를 엿보았다.
저런 살의를 오랜 기간 쌓아 왔다면, 마공을 배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억누르려 한다는 게 놀라왔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면 되지.
나 정도의 힘을 가진다면 네가 몇 명 때려죽인다고 해도 아무도 네게 뭐라 못 할 것이다.”
“의강 님께서도 아무 말 못하실까요?”
“······.”
천산염제는 말문이 막혔기에······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
화가 나서 백리연의 처소라는 것도 잊고 마당에서 야율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 정도로.
천산염제가 입을 열었다.
“아니면 네 얘기나 좀 해 보든지. 천귀조와는 어쩌다 얽히게 된 것이야?”
배사지례를 올리고 진짜 제자가 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은원을 함께 하고 되었다.
“네 스승으로서 때려죽일 놈들은 알아야지 않겠는가?”
천산염제가 남의 사정에 관심이 깊은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야율이 아무리 그의 제자의 일이라 한들 이렇게 물어볼 만큼 궁금하지는 않았다.
살다보면 알게 될 테고, 모른다면 몰라도 될 일일 테고.
그것이 천산염제의 평소 태도였으나, 야율의 일이라면 달랐다.
야율의 심마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심마란, 마음 즉 정신이 마에 지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무공 수련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며, 재수 없으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 복수심, 증오, 살의가 심마에 가장 쉽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딱 봐도 야울의 수련을 저해할 최고의 방해물인 것이다.
즉, 천산염제는 야율이 과거의 일에 미련 두지않고 오롯이 수련에만 집중했으면 했다.
입을 꾹 다문 야율과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천산염제가 성질에 맞지 않게 어르고 달래며 남궁 세가 근방에 있다가 무림맹주가 떠난 걸 확인하자마자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당근까지 내밀고 나서야 야율의 입이 열렸다.
“제 모친의 성은 벽이고 함자는 기 자 현 자 입니다.
실랑이를 통해 인내심이 바닥이다 못해 해저에 박힌 천산염제가 버럭 소리쳤다.
“네 모친의 성함을 듣는다고 내가 어찌 알······ 뭐? 벽기현?”
벽기현.
한때 손꼽히는 후기지수로 백리의강, 남궁완 옆에 나란히 거론되던 이름 중 하나였다.
대단한 실력의 검객으로도 이름을 떨쳤지만, 벽기현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던 건 일단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던 외모와 온화한 품행, 그리고 독특한 출신이었다.
벽기현의 원래 신분은 노비였다.
부모가 노비였던지 벽기현은 기억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 시절부터 이리저리 팔려 다녔다.
그러다 무가인 벽가장으로 팔려간다.
그곳에서 벽기현은 검을 배우게 되는데, 그 자질이 대단해 결국 벽가의 양자로 입적될 정도였다.
대단한 자질에 형산파의 장문인이 직계 제자를 제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벽가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며 거절한다.
벽가에게는 더없이 영예로운 일이기도 했지만, 대문파 장문인의 직계 제자가 된다면 가문을 위해 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도 무림의 빛나는 후기지수였던 벽기현은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뚝 끊어졌다.
* * *
그 시각. 남궁 세가의 창경각.
공무와 관련한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쓰는 곳으로 기둥이 굵고 높은 기세가 남다른 전각이었다.
그곳을 백색 무복 차림의 기골이 장대한 반백의 사내가 들어섰다.
태사의에 앉아 있던 남궁 세가주, 남궁무철이 웃으며 맞이했다.
“어서 오게나. 위지 맹주.”
“오랜만입니다, 전 맹주님.”
백도 무림 정파 연합인 무림맹의 수장이자 천하십일강 중 한 명인 위지백이었다.
포권지례를 올리는 위지백에게서는 용맹한 기개가 절로 풍겼다.
남궁무철이 웃으며 말했다.
“전 맹주가 무엇인가? 그냥 남궁 세가주라고 부르게.”
“그러도록 하지요.”
짧게 답한 위지백은 곧장 남궁 세가주 곁에 선 남궁완을 보며말했다.
“소가주도 오랜만일세. 한 2년 만인가?”
“그쯤 된것 같군요.”
“가끔 얼굴도 비추고 그러게나. 자네는 후배들의 귀감이니. 아들의 위명도 대단하던데.”
“허명일 뿐이지요. 하필 오늘 근처 절로 참배를 가서 인사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위지백이 남궁완 반대편에 자리한 백리의강을 보았다.
“단주도 오랜만일세.”
백리의강이 담담하게 두 손을 모았다.
“맹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남궁무철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설명했다.
“어차피 의강은 맹의 자리를 맡은 이니 함께 불렀네.”
“예. 상관없습니다. 저야 한 번에 보면 편하고 좋지요.”
“모두 앉지.”
가장 배분이 높은 남궁 세가주의 말에 위지백이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하인이 찻잔을 채우고 물러가고, 위지백이 찻잔을 들며 남궁 세가주를 바라봤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그리 보이나?”
“이 자리에 오르고 보니 알겠습니다. 여기서 투덜 저기서 투덜, 종일 하는 거라고는 징징거리는 놈들 입을 어떻게 다물게 해 줄지 고민하는 것뿐이더군요.”
“이제 내 고충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군.”
껄껄 웃은 남궁 세가주가 온후하게 말했다.
“자네는 잘할 수 있을 것이야.”
“열심히 해야지요.”
“그럼. 한창 바쁠 시긴데, 여긴 어쩐 일인가?”
위지백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뭘 숨기겠습니까?
남악회와 천소보요채와의 싸움이 나날이 격해지고 있어 중재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남궁 세가주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음, 나도 들었네. 벌써 몇 번 소요가 일어났다고. 둘 다 세가 크니 정말로 칼을 빼들면 많은 피가 흐를게야.”
남악회와 천소보요채, 둘의 세력은 비슷했다.
제대로 격돌한다면 양쪽 모두 회복하기 힘들 처참한 피해를 볼 것이 뻔했다. 당연히 둘 다 그 정도의 싸움을 하고 싶어 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존심에 화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존심을 지키며 화해할 명분이 필요했고, 무림맹주가 향하는 이유였다.
“중재하러 가는 길에 남궁 세가를 지나치니, 얼굴을 뵐까 하여 잠시 들렀습니다.”
그때 남궁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하면 그 아이는 왜 데려온 것입니까? 반갑지 않은 손님, 아니 손님도 아니지요. 불청객을 데려오셨던데요.”
위지백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가주, 자중하게.”
남궁완은 조소 어린 낯으로 찻잔을 들었다. 위지백도 언짢은 기색으로 찻잔을 들었다.
남궁 세가주는 둘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든지 말든지 허허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