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3
13
아타울프의 얼굴이 굳어졌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능란하게 말하던 그가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무니까, 상당히 차가워 보였다. 신의 앞이라 긴장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까 차가운 얼굴로 아타울프를 쏘아보던 레오파라는 이제 싱긋 웃고 있었다. 긴장한 아타울프를 첫 번째 신도답게 풀어주려는 듯.
“…하하, 격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타울프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다 이해하니까. 평소 남들을 격려하기만 하고 자신은 격려 받지 못한 사람이 격려를 받으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
“…….”
“하지만 그런 너야말로 가장 격려 받을 자격이 있다.”
“…하, 이거 참, 감동받은 나머지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칭찬 한마디에 그렇게 감동하다니, 겸손하구나.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된다.”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하자 아타울프가 입술을 깨물더니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감격을 주체 못 하는 모양이었다. 울기라도 하면 안아 줘야 하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안아 주고 싶진 않은데, 레오파라를 대신 시켜도 괜찮겠지?
“크흐흐흡!”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레오파라가 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두통이 또 심해진 모양이었다. 내 사도는 감수성이 예민하니까.
“이 미, 미친… 미친놈들아!”
아타울프가 고함을 질렀다.
“크하하하하하!”
레오파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둘 중 누가 더 시끄러운지 알 수 없었다.
“너희는 정말 친구가 맞구나.”
“아니야!”
“아닙니다!”
둘 다 동시에 대답하는 호흡만 봐도 친구 맞는데.
“나도 이런 친구가 있어서 미친놈이라고 욕을 먹건 말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말에 레오파라가 입술을 깨무는 사이 아타울프가 대신 소리쳤다.
“친구가 아니라 미친놈이라서 미친놈 소리 듣고도 웃음이 나오는 거지!”
“근데 솔직히 레오파라는 웃는데 네가 그렇게 펄펄 뛰니까 나도 좀 웃길라 그래.”
나는 레오파라가 나쁜 뜻으로 웃은 게 아니라고 설명하며 둘을 화해시키려 했지만, 아타울프는 더 화냈다.
“조용히 해! 그 입 좀 제발 닥쳐!”
“왜 화를 내지? 내가 공성추 하나 사 줄까?”
일단 아타울프의 고용주가 되어서 아까의 영주처럼 둘도 없는 관계를 맺는 게 좋겠지.
하지만 아타울프는 계속 고함쳤다.
“안 팔아! 너한텐 안 팔아!”
“벌써 다 팔다니, 재주도 좋다. 그럼 공성탑을 사주마.”
“안 판다고! 내 앞에 다신 나타나지 마! 꺼지라고! 다신 말도 안 나눌 테니까!”
아타울프는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그때 웃기만 하던 레오파라가 말했다.
“훗,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었지.”
돌아서던 아타울프가 등에 칼이라도 맞은 듯이 멈춰 섰다.
레오파라가 나무에 기대서 팔짱을 끼는데, 여유가 넘쳐흐르다 못해 거만했다. 그 표정을 아타울프가 못 보는 게 아쉬울 정도로.
“나의 과거가 곧 너의 미래다.”
아타울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레오파라에게 덤벼들 듯했지만, 그대로 돌아서서 가 버렸다. 분명 걷는데도 후딱 사라졌다. 사실은 달려가고 싶었던 듯. 친구끼리도 체면을 중시하는 모양이었다.
“라프트레이 형조차 울고 갈 표현이었어, 레오파라.”
난 친구가 없으니까, 내가 모르는 것도 있겠지. 지금은 일단 레오파라를 칭찬했다. 다 이해 가는 표현은 아니지만, 꼬아서 말할수록 수사학의 신은 좋아했으니까.
“고맙습니다, 테오파노 님.”
“역시 교리서는 네가 쓰는 편이 낫겠다.”
“아, 교리서 말만 들어도 두통이 납니다.”
레오파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교리서를 쓰라고 하실 때마다 제가 라프트레이 님을 섬기는 건지 테오파노 님을 섬기는 건지 헷갈려서요.”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네가 나처럼 우리 큰형 겪어 봤어?
“아, 그래, 안 할게. 쉬어.”
레오파라의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나도 자제해야겠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며 이 포위전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전투는 끝이 났고, 공격군이건 수비군이건 휴식에 들어갔다.
용병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행상인들이 있어서, 모처럼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무기에서 바늘까지 온갖 걸 팔았다. 차일을 쳐 놓고 음식을 파는 이들도 있었다.
“장이라도 선 것 같네.”
내가 신기해하자 스튜를 파는 상인이 씩 웃었다.
“아타울프가 가는 곳이면 포위전이건 뭐건 전투가 길어지니까. 우리는 매일 장날이지.”
“매일 장날이면, 농부들은 농사 일을 언제 하지?”
레오파라가 되묻자 상인은 웃기만 했다.
“그거야 우린 모르지. 우리야 용병대 따라 어디건 가는 장사꾼들이니까. 전쟁 끝나면 여길 뜨면 그만이야.”
레오파라는 더 묻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신기해하며 용병들 진지를 구경하고 다녔다.
“와, 저기 좀 봐.”
그냥 차일 좀 쳐 놓은 곳과 달리 번듯한 막사였는데, 앞에 무기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스카텔란 형의 신전에서도 못 본, 신기한 무기들이었다.
“저 톱을 봐. 손잡이 세공이 대단한데? 저 톱으론 뭘 해?”
“팔다리를 절단합니다. 가끔 두개골도 자르죠.”
레오파라가 대답했다. 예쁘고 정교하게 생긴 무기였는데, 용도가 무시무시했다.
“저 송곳 같은 건 뭐야?”
“눈이나 귀에 꽂아서 피를 빼는 겁니다. 머리를 다쳐서 부풀어 올랐을 때 머리로 피를 빼는 건 위험하니까요.”
“눈으로 피 빼는 건 안 위험해?”
“장님 됐다고 죽진 않으니까요.”
“저 가위엔 왜 뾰족한 게 세 개나 붙어 있어?”
“화살 맞은 부위에 꽂아서 화살을 빼내기 위해서죠.”
이쯤 되자 뭔가 이상했다.
“이것들 무기 아니야?”
“…의사의 의료 도구입니다.”
“진짜야? 난 또 무기처럼 앞에 주렁주렁 걸어 놔서 착각했네.”
“다양한 의료 도구가 많다고 과시하면, 그만큼 뛰어난 의사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톱처럼 큰 도구에는 장식도 합니다.”
“…그렇구나. 난 저런 도구 하나 없는데.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의술의 신전이 아니라 여기서 치료받는 건가?”
솔직히 그 신전엔 이런 흥미로운 도구는 없으니까.
“의술의 신전은 대도시에나 있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용병들은 저런 의사들을 찾지요. 그리고 테오파노 님은 하도 잘 치료하시니, 저런 도구는 필요 없으십니다.”
“너도 이왕이면 저렇게 대단한 도구를 지닌 의사한테 치료받고 싶지 않아?”
“저는 테오파노 님의 충실한 사도로서 평생 테오파노 님께만 치료받고 싶습니다.”
레오파라의 마음씨가 참 기특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나도 하나 가지고 싶어. 저런 걸로 치료하면 좀 더 멋져 보이잖아? 너도 의사한테 치료받는 기분이 들 테고.”
나는 무기, 아니 의료 도구를 살펴보았다. 이건 어디서 팔까? 특히 톱이 탐났다. 가위도 괜찮고.
“없이도 치료하는 테오파노 님이 제일 멋집니다. 제발 그 마음을 변치 말아 주십시오.”
하지만 간절히 말하는 레오파라가 나를 잡아끌었다.
“그래도, 구색이라도 갖추게 몇 개만 사서-”
“테오파노 님, 두통이 이는데 어디 가서 좀 앉아 있고 싶군요.”
“뭐? 두통이 있다고? 딱 봐도 머리에 나쁜 피가 고였네. 그럴 때는 눈이나 귀로 피를 조금 빼내면 되는데!”
그때 막사 안쪽에서 의사가 나오면서 말했다.
“아, 그런가? 마침 아까부터 자꾸 두통이 인다고 해서-”
“다 나았습니다. 갑시다, 테오파노 님!”
하지만 레오파라가 바람처럼 날 끌고 가는 바람에 더 말하지도 못했다.
“의사가 그 기구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싶었어. 그럼 나도 새로운 치유법을 배웠을 텐데.”
내가 불평하자, 레오파라가 이마를 짚었다.
“봐, 또 머리 아픈 거 아냐? 그래 봤자 난 귀에서 피 못 뽑아 줘.”
“아닙니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을 뿐입니다.”
레오파라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더니 서둘러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이 포위전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냈습니다.”
“뭔데?”
“이 성은 아까 본 그 영주의 가문 재산이 맞습니다.”
“그럼 지금 성을 차지한 자는 누구야?”
“그 영주의 아들입니다.”
“아들?”
“네.”
“아들이 아버지 성을 무단 점령한 거야?”
“여기서 복잡해지는 게, 이 성은 영주 부인의 지참금이었습니다. 영주 부인은 죽으면서 아들에게 재산을 남겼죠. 그래서 아들도 독립했습니다. 아버지의 성에 계속 있으면 결혼을 못하거든요.”
“왜 못해?”
“영지에는 주인이 한 명만 있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권력 다툼도 생기고 상속 분란도 생깁니다. 무엇보다 좋은 신붓감들은 나이 많아도 어엿한 성주와 결혼하고 싶어 합니다. 성의 안주인이 살림을 관장하는데, 안주인이 아니면 안주인에게 복종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나도 신전 하나 없이 맨날 아버지 어머니 신전에서 살았는데, 나와 결혼하겠다는 신들은 많았어.”
“…테오파노 님은 훌륭하신 분이니까요. 그리고 테오파노 님과 결혼하건 하지 않건 안주인이라면 어차피 가정과 결혼의 수호신인 피오르델리케 여신을 섬기긴 마찬가지죠. 테오파노 님의 어머님이시니까.”
“그렇구나, 역시 넌 똑똑해. 하지만 발트라하 누나가 널 탐내도 보내지 않을 거야.”
“감사합니다. 물론 저도 안 갑니다.”
레오파라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의 지참금을 물려받았는데, 아버지가 반대한 건가?”
“그의 어머니는 영지만을 가져왔지요. 본래는 이곳엔 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주가 여기도 성을 세운 겁니다. 성이 있어야 영지도 제대로 발전하니까요.”
“그래서, 그 영주는 아내가 지참금을 물려줬다고 해도 아들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성은 자기가 큰 돈 들여 세웠으니까요.”
“그래도 자식이잖아. 꼭 이렇게 공격해야 해?”
“아들은 아버지 대신 큰 영주와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 영주와 아버지의 사이가 틀어지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의 반환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아들이면서 아버지 대신 다른 영주와 손을 잡다니.”
나는 내가 아버지에게 반항한다는 걸 생각해 보았다. 상상이 안 갔다. 형제자매들이 그런다고 가정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란 정말 간이 크구나.”
“…네, 어떤 자들은 그렇죠.”
내가 감탄하자 맞장구친 레오파라가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본래 아버지가 아들의 상속에 불만을 품은 것도, 아들이 자신의 말보다 그 영주의 말을 더 잘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잠깐,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아.
“그럼 지금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따르는 대영주가 있다고 했잖아. 아버지 쪽엔 또 다른 대영주 없어?”
“…있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레오파라가 놀라서 묻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 이거 뭔 줄 알아. 이거 땅따먹기다.”
“땅따먹기라고요?”
“어, 우리 집안 내력이지.”
이번엔 내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든 신들을 믿는다. 주신 헬라네스와 모신 피오르델리케가 가장 강한 부부 신이지만, 바다의 여신 파스투란과 죽음의 신 브론테제 또한 그들의 형제자매 신으로서 막강하며, 이들이 각기 겨울, 봄, 여름, 가을의 사계를 이룬다. 사람들은 절기마다 그들에게 축제를 봉헌한다.
그 외의 신들도 인기가 많다. 학문을 배울 때는 라프트레이 신을, 전쟁을 할 때는 스카텔란 신을 찾는 식이다. 웬만한 대도시라면 모든 신전을 다 갖추고 있다. 내 신전만 빼고.
다시 말해, 모든 신들은 관장하는 영역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숭배 받는다.
“하지만 성역의 문제가 있어.”
“성역이란, 신전을 말씀하십니까?”
“그렇지. 사랑의 죄를 저지른 자가 사랑의 신전으로 도피하면 목숨은 건지잖아.”
막상 말하고 보니 예를 잘못 들었다. 사랑의 여신은 그런 이들을 살려 주긴 하지만, 좋아하진 않았다.
-그럼 비련의 사랑이 안 되잖아. 사랑 때문에 목숨을 바쳐야지, 안 죽고 살아남으면 사랑이 식기밖에 더하나? 가장 열렬하게 사랑할 때 죽으라고! 그때 죽으면 시체도 때깔이 고운 법!
-근데 왜 살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