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64)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64화
18장 멸마의 밤(2)
“설마 이토록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인 줄은 몰랐는데…….”
시온이 떠나간 청성궁의 서재 안에서 5황녀 디에나가 중얼거렸다.
“단순히 암습을 계획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그녀의 눈에는 짙은 놀라움이 어려 있었다.
황위 계승을 위한 황족 간의 경쟁전.
이것은 최초의 황제인 영겁제 이후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지만, 대부분 뒷공작과 암투로 이루어졌다.
다른 황족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친다고 하더라도 거의 독살이나 암살자들을 이용한 암살, 그리고 목표가 황성에서 나올 때를 노려 별동대를 보내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황족과 황족 간의 전면전 즉, 서로의 존망을 걸고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킨 적은 400년의 역사 속에서도 무척이나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온이 디에나에게 제안한 것은 거의 그 정도 급이었다.
‘거기다가 사열식을 노리는 것도 아니었지.’
국정 회의에서 사열식을 당기자고 하길래 그녀는 시온이 3황자 에녹을 밖으로 끌어내 치려고 하는 줄로만 짐작했었다.
하지만 정작 시온이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깊은 심계와 대범함은 디에나로서도 소름이 돋을 정도.
‘파격적이고 무척 위험하긴 하지만…….’
정말 이대로만 된다면 에녹의 존재 자체를 황성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었다.
뒤이어 이어질 후폭풍을 감당할 만한 대책도 이미 세워져 있었고.
“생각해 보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아니, 어떻게 본다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더불어 이 일을 성공시킴으로써 디에나 자신에게 올 이득을 생각한다면…….
‘어차피 수락한 이상 더는 무를 수도 없어.’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은 디에나가 손짓을 해 뒤에 시립해 있던 로이드를 불렀다.
“예, 디에나 전하.”
“지금 가용할 수 있는 정령 군단이 얼마나 되죠?”
“황성 밖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7번대와 8번대를 제외한 전부입니다.”
“당장 청성궁으로 불러들이세요. 사열식 때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지시에도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인 로이드가 서재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서재 안에서.
“이왕 시작한 것. 제대로 하는 게 좋겠죠.”
차갑게 번뜩이는 5황녀의 눈이 밑으로 침잠했다.
* * *
적성궁의 지하에 있는 복도의 가장 끝에는 거대한 철문으로 막힌 방이 하나 존재했다.
지하에서 이루어지는 인체 실험을 관리하는 3황자의 측근들조차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곳.
그곳은 오직 3황자 에녹만이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 문 너머에 있는 존재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철컹!
에녹은 그러한 철문을 망설임 없이 연 후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함께 그의 온몸을 짓누르듯 쏟아지기 시작하는 막대한 마기.
벌써 수백 번을 드나들었고 조금씩 마기마저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중이었지만, 에녹은 이곳에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이 마기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디르알, 자리에 있나?”
그에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 안의 어둠을 향해 묻는 에녹.
그러자.
“하하, 당연히 있습니다. 제가 여기 말고는 이 황성에서 어딜 갈 수 있겠습니까.”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에녹을 향해 걸어오며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어두운 남색 정장을 걸친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마치 뱀처럼 옆으로 찢어진 눈과 뾰족한 귀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에녹은 저 모습이 남자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족.’
그것도 에녹 자신조차 그 힘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강대한 마족.
그게 바로 저 남자, 디르알의 정체였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갑자기 앞에 나타난 디르알은 에녹에게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당신을 황위 바로 앞까지 모셔다드리지요. 그 대신 저와 함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에녹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디르알을 위해 지하에 실험장을 만들어 주었다.
곧이어 그러한 실험장에서 인간, 요정, 거인족, 수인 할 것 없이 흑마법에 의한 무차별적인 실험이 가해졌지만, 에녹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장려했다.
그런 실험으로 인한 성과가 고스란히 에녹 자신의 마법 실력 진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니까.
거기에 더해 본래부터 가학적인 성격을 지닌 에녹이었기에 즐기는 것 또한 있었다.
“안 그래도 뵈려고 했는데 역시 우리는 통하는 게 있는 것 같군요.”
“헛소리는 그만하고 실험은 어떻지?”
“전하께서 계속해서 실험체를 구해주신 덕분에 꽤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구현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더?”
“적어도 몇 주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의 말에 에녹의 눈에 미약한 아쉬움이 감돌았다.
이번에 디르알이 진행하고 있는 실험만 성공하게 된다면 에녹 자신의 마법과 천성해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진보를 이룰 수 있었으니까.
‘이번 사열식이 열리기 전까지 완성된다면 완벽하겠지만…… 뭐, 상관은 없겠지.’
에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이틀 앞으로 다가온 황가 사열식을 떠올렸다.
원래는 한 달 뒤에 열려야 했지만, 요즘 최고의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시온 아그네스에 의해 당겨진 상태였다.
대체 자신의 빌어먹을 막냇동생이 무슨 생각으로 사열식을 당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에녹은 그것을 철저하게 역이용할 생각이었다.
“아 참, 사열식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그런 에녹의 속마음이라도 읽은 것일까?
디르알이 손가락을 튕기며 에녹을 향해 물었다.
“완벽해. 디르알 네 말대로 시온 그 녀석이 사열식을 당긴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나를 황성 밖으로 끌어내기 위함이겠지.”
그에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에녹.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었다.
성 밖으로 나간 황족이 아무리 철저한 호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성안에 있을 때보다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시온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러한 틈일 것이었다.
분명 황성 밖에 어떠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을 터.
“그를 대비해서 오늘 저녁부터 미리 적성궁 안에 있는 전력까지 몰래 성 밖으로 빼놓을 생각이야.”
물론 사열식에 동원되는 전력만 있어도 시온 따위가 파놓은 함정 정도는 가볍게 짓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실패한 전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시온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기에 에녹은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완벽하게 짓이겨 주지.’
만약 시온 쪽에서 습격을 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시온을 노리면 되니까.
에녹은 이번 사열식 때 무리를 하더라도 확실하게 시온의 목숨을 취할 작정이었다.
“오, 그 정도라면 변수가 없는 한 시온 황자를 확실히 죽일 수 있겠군요!”
그렇게 살기로 번뜩이는 에녹의 눈을 바라보며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던 디르알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에녹 전하. 요즘 시온 황자에 대해서 들려오는 소문이 심상치 않으니 말입니다.”
“상관없어. 이번에는 그 소문보다 열 배는 강해도 충분히 박살 낼 자신이 있으니까.”
그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에녹.
그만큼 이번 사열식에 많은 걸 준비했고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열식 날 그의 발밑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시온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뿐.
‘절대 간단히 죽여주진 않을 거야.’
더는 도망갈 수 없는 궁지까지 몰아넣고 완벽한 절망에 빠졌을 때 최대한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죽어가게 하리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인지 에녹의 눈동자 가득히 어리는 희열.
“…….”
마족, 디르알은 휘어진 눈으로 그런 에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는 끝까지 그가 알고 있는 시온 아그네스에 대한 소문이 에녹이 알고 있는 소문과는 다르다는 말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 * *
플로시마르 연대기 속 달이 붉은 이유는 무엇일까.
시온이 연대기 안으로 들어온 후 의문을 가진 것 중 하나였다.
그에 대해서는 연대기에도 정확한 이유가 나오지 않았지만, 몇 가지 가설은 존재했다.
시온은 그중 달이 세계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가설을 좋아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명이 죽게 되면 그 영혼은 달에 담기게 되며 그러한 영혼이 담길수록 달이 더욱 진한 붉은 빛을 띠게 된다는 가설.
‘그다지 맞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아마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저 달은 시온 자신에 의해 더욱 붉게 물들게 되리라.
“시온 전하.”
그때 침성궁 밖에 존재하는 작은 정원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던 시온의 뒤로 조용히 티에리가 다가왔다.
“3황자 쪽에서 움직였습니다.”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다른 모든 것은 완벽하게 준비되었고 남은 것은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될 열쇠 하나뿐이었으니까.
지금 티에리는 그 열쇠가 준비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시온은 천천히 뒤로 돌아 티에리를 바라보았다.
예전과는 달리 단 한 치의 의심조차 존재하지 않는 티에리의 눈.
그 눈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시온을 향한 경외와 충성이었다.
그야말로 광신도에게나 볼 수 있는 눈빛.
하지만 시온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눈빛이기도 했다.
시온이 황제였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눈빛이 저랬으니까.
“리우시나는?”
“이제 막 휴브리스에 진입했습니다.”
“그럼 맞춰서 올 수 있겠네.”
그 말과 함께 슬쩍 웃은 시온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정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가실 겁니까? 천살의 마녀가 황성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가시는 게…….”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하는 티에리를 향해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 디에나의 정령 군단 번대 하나를 전멸시킬 때부터 국정 회의에서 사열식을 당기는 걸 제안한 것까지.
전부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었으니까.
‘사실 사열식을 당긴 것은 다른 이유지만.’
시온이 에녹을 제일 먼저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황족 중 가장 쉬운 상대이기도 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3황자가 적성궁 지하에서 마족과 함께 진행 중인 인체 실험.
지금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에녹은 그 실험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게 되고 그로 인해 급속도로 강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이르게 되는 시기가 바로 원래대로라면 한 달 후 열리게 될 사열식.
그때의 에녹은 세계 최강자 중 하나인 이벨린과 비슷할 정도로 죽이기 힘든 상대가 된다.
‘연대기에서 사열식 때 디에나의 습격이 실패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국정 회의에서 사열식을 당길 때 말했던 일주일.
그것은 다름 아닌 시온이 생각하기에 에녹을 죽일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저벅, 저벅.
생각을 마치고 정원을 빠져나와 황성을 천천히 걷는 시온의 뒤로 마치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지는 불길한 어둠.
그러한 어둠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일까?
스륵, 스르륵.
어디선가 나타난 자들이 걸어가는 시온의 뒤를 고요히 따르기 시작한다.
수십, 아니 수백.
순식간에 그 숫자를 불려가며 하나의 군단을 이루는 자들.
시온은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군단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았다.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는 보름달.
오늘 밤 저 달의 붉은 빛은 더욱 진해지게 되리라.
스스스-
서서히 시온의 눈 속에서 휘돌기 시작하는 검은 별빛.
드디어 첫 번째 황족 사냥을 시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