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42화
‘난 진짜 마가 끼어도 단단히 낀 게 분명하다.’
‘최하급 정령의 왜곡된 숲’ 게이트 앞 공터.
정현이 볼썽사납게 드러누운 채 생각했다.
미신을 믿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건 그런 유의 이론이 아니고서는 해명이 불가능했다.
돌아오는 길에 수연이 설명해 준 내용이 기가 찼다.
“이게, 정령의 분노는 사냥 페이스가 너무 높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저희가 해당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서 미리 얘기를 못 해 드렸어요. 죄송해요.”
사냥을 너무 잘해서 발동되는 패턴이라니.
무슨 그런 개떡 같은 일이 다 있단 말인가?
이제 보스나 빌런 같은 걸로 안 되니까 별의별 괴상한 현상을 다 끼워 넣는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작 3레벨 게이트에서 이 모양인데 고레벨 게이트로 가면······ 어우, 상상하기도 무섭다.’
뭐, 자신이야 괜찮다.
특성이 특성이니만큼 게이트가 억까를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과 함께 사냥을 해야 하는 동료 헌터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당장 순형 일행을 보라.
원래대로라면 평범히 사냥을 즐기고 있었을 이들이 자신이 합류한 이후 평생 한 번 만나 볼까 말까 한 일들을 죄다 겪고 있다.
······그만큼 숙련도 레벨은 잘 오르고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성과는 나쁘지 않다.’
우선 정령의 분노 때 잡은 정령들은 죄다 정령석을 떨궈 놓고 죽었다.
나름의 보상인 모양.
게다가 코인도 아까 확인해 보니 9개나 모여 있다.
특성 상점 레벨업이 목전인 차에 가장 큰 소득이었다.
‘지금 레벨업까지 남은 게 6코인이니까······ 레벨업하고 뭘 살 수도 있겠고.’
생각을 마친 정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령계에서는 그나마 잘 걷던 사람들이 지금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꼴로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나마 수연이 드러눕지는 않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을 뿐.
아마 다른 사람들과 조금만 친했다면 그녀 역시 퍼졌을 것이라 말해 주는 안색이었다.
“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순형.
그 목소리를 기점으로 다들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속성별로 얻어맞아 후유증이 남기는 했지만 집에는 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으니까.
“역시 형님이랑 사냥하면 짜릿짜릿한 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 고생하셨습니다.”
‘그게 짜릿짜릿한 건가? 뒈질 뻔한 건데?’
이젠 조금 위험해진 게 아닌가 싶은 상수의 눈빛.
너무 강한 자극을 많이 받으면 더 이상 그보다 낮은 것에는 반응할 수가 없다더니 목숨을 거는 것에도 그런 법칙이 통용되나 보다.
여하튼 그렇게 순형 파티가 다 떠나가고, 공터에는 정현과 수연만이 남았다.
가려면 일찌감치 갈 수 있었는데 어쩐지 우물쭈물하는 눈치.
“뭐 하실 말씀이라도······?”
결국 보다 못한 정현이 묻자 고민하던 수연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정말 실례인 거 아는데······. 혹시 특성이 어떻게 되세요······?”
‘하긴 진짜 이상해 보이긴 하겠지.’
속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이는 정현이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솔직히 수연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는 하지만, 대답을 해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혹시 주임님이 물어보라 하시던가요?”
“아, 아뇨! 그냥 제가 너무 궁금해서요. 암기술이라기에도 좀 이상하고, 완전 민첩 계열도 아닌 것 같고······.”
원체 체구가 작은 수연이었기에 잔뜩 당황한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장난기가 드는 정현이었다.
‘그냥 둘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 안 되나?’
어차피 조금 장난기를 섞어서 말한다면 믿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말해 주고 싶지 않아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
아니면 정현의 활약상을 보았으니 정말 재각성자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민첩 계열 특성입니다.”
“그럼 등급만이라도······ 아니, F급은 아니시죠?”
“에······ F급은 아니죠.”
여기서 F급이라고 해 봐야 상황만 더 이상해질 터.
이제는 F급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능력이었으니까.
물론 실제로도 F등급은 일찌감치 졸업한 뒤였고 말이다.
“수연 씨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저는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렇 게 인사한 정현이 몸을 돌렸다.
수연의 마음이 왠지 다급해졌다.
인사팀으로서 이대로 정현을 보내면 안 될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다.
“어어, 태워다 드릴까요?”
마침 차도 타고 왔겠다. 생각나는 대로 던져 본 제안이건만.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던 정현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뭐 감사히 타고 가겠습니다.”
‘······?’
어쩐지 조금 과하게 덥석 받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결국 연을 한 겹이라도 더 쌓는 데는 성공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 그럼 가시죠.”
***
“어우, 죽겠다.”
매번 똑같은 말을 하면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정현은 집에 도착했다.
서브 탱커 역할올 불사했던 정현이었기에, 정령의 공격도 그만큼 더 많이 몸으로 받았다.
물론 직접적인 상처는 도윤의 치유로 대부분 나았다.
“정령 공격이 후유증이 이렇게 크면 말을 해 줬어야지······.”
하지만 무기나 물리 공격에 의한 상처와 달리 정령의 공격으로 인한 통증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표현하자면 불이 닿은 곳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했으며,
물이 닿은 곳은 묵직했고.
번개가 닿은 곳은 약간 마비된 듯한 데다,
바람이 닿은 곳은 쓰라린 느낌이었다.
수연의 말로는 정령이 다루는 속성이 일반 자연계와 달라서 그렇다는데, 일반 자연계고 나발이고 치유를 했으면 나아야 할 것 아닌가.
“흐흐흐······.”
하지만 정현의 입에서는 왠지 모를 웃음이 흘러나왔다.
혹시 이제는 통증을 즐기는 수준에까지 올라선 것인가?
물론 그런 건 아니었고.
“특성 레벨이 이제 3이란 맡이지······.”
현재 보유 코인 : 9]
눈앞에 떠 있는 감격스러운 코인 현황 때문이었다.
“이건 리롤 망해도 인정이지!”
정현의 말처럼 사실상 이번에 쓸 코인은 뭔가를 특별히 얻는다기보다 특성의 레벨을 올리는 데 소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신적 피해도 덜할 것이다.
우선 저번에 눈여겨보았지만 코인이 딱 하나 부촉해 구매하지 못했던 암행 특성을 구매.
나머지는 레벨업을 위한 마지막 리롤이었다.
그때, 옆집에서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듯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게임하냐?”
평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소리를 지르곤 했지만 옆집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도 갖고 있던 정현이었기에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은 좀 조용히 해 볼게요······.”
과연 그 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정현도 두고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일전에 헌터 협회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레벨업 알림이 떠올랐다.
이로써 「특성 상점」은 정현의 첫 3레벨 특성이 된 셈이었다.
“일단 레벨업은 했고······ 그럼 확률부터 한 번 구경해 볼- 커헙!”
그렇게 기대감을 잔뜩 품고 「특성 상점」의 확률을 열어 본 순간.
정현은 깨닫고 말았다.
「특성 상점」은 감히 그의 기대를 저버리거나 할 만한 특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음 레벨까지 필요 코인 : 70
장착 가능 특성 / 저장 가능 특성 : 0 / 5
특성 확률 : F 40%, E 30%, D 18%, C 7%, B 4%, A 0.7%, S 0.3%]
“드, 드디어······.”
드디어 F급 확률이 50% 아래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비루한, 그럭저럭 이제 안녕!’
이에 더해 이제 정현의 주력 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D등급 확률이 대폭 상승했다.
확률로 따지자면 자그마치 4배.
거기다 고작 2%였던 C등급 역시 7%로 대폭 올랐다.
4.5%의 확률로도 D등급이 제법 떴으니 이제 C등급 역시 마냥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저 괴물같이 느껴졌던 진욱, 그리고 역시 C등급의 탄탄함을 엿볼 수 있었던 수연과 같은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응? 이건 또 뭐야.”
게다가 단순한 레벨업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정현의 눈앞에 알림창이 새로이 떠올랐다.
코인 확률 계산, 돌발 코인 퀘스트 해금.
코인 확률 계산 : 이제 각 몬스터에서 코인이 나올 확률이 가시화됩니다.
돌발 코인 퀘스트 : 전투에 돌입할 때 특정 조건을 만족할 시 추가 코인을 획득할 수 있는 퀘스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친! 왔다!”
처음에는 이것이 뭔가 싶어서 천천히 글씨를 읽어 내려가던 정현이 침대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완전한 승리를 만끽하고 있던 옆집에서 분노한 반응이 돌아온 것은 덤이다.
“오늘은 조용히 해보겠다면서!”
“죄송합니다 아저씨! 정말 죄송하니까 나중에 제가 고기 한번 쏩니다!”
“커, 커험.”
나중에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아저씨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고기를 사줘야 한다고 한들 어찌 이 기쁨을 참을 수 있겠는가.
자고로 좋은 일은 나눠야 더욱 커진다는 선현의 옛 말씀을 충실히 따르기로 마음먹은 정현이었다.
다행히 서로 없이 사는 원룸살이에 고기를 쏜다니 아저씨도 그리 싫지는 않은 눈치처럼 보였다.
이제 3레벨 상점 확률로 갱신된 목록에 무엇이 있다 한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리라.
정현은 굳게 다짐하고 상점 목록을 열었다.
「희미한 속성 부여」(F, Lv.1), 1C
「백리안(百里眼)」(D, Lv.1), 3C
「후끈한 화염 마법」(E, Lv.1), 2C
「눈에 띄는 도끼술」(E, Lv.1), 2C
「봐줄 만한 주먹질」(F, Lv.1), 1C]
그렇게 막상 목록을 확인한 정현의 표정은 이내 애매해졌다.
“어?”
D급이 하나 뜨긴 떴다.
「백리안」.
쉽게 표현하자면 정아가 가지고 있는 「십리안」의 상위 호환이었다.
특성을 획득할 경우 시야는 물론이고 궁술에 필요한 능력치가 함께 올라간다.
아마 정현이 사용하는 암기술과도 나름대로 조합이 잘 맞을 것이다.
대체로 안력 강화 특성은 인기가 좋기도 했고.
그러나 정현은 곧바로 구매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 코인 조금만 더 많았으면 샀을 텐데!’
D등급이 뜬 것은 좋았지만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남은 코인은 5.
만약 「백리안」을 3코인에 구매한다면 남은 코인은 두 개다.
한 번 더 목록을 갱신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결국 그뿐이었다.
리롤을 한 번 더 돌릴 수 있다곤 해도 당장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는 특성을 구매할 코인이 남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암기술이나 내가 갖고 있는 특성 중에 D가 나온다면······.’
분명 이번 코인 소모의 목적은 특성의 레벨업이라고 정현 자신 역시 생각했으나 막상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되니 고민이 되었다.
예컨대 몸놀림이나 전투 감각 등을 D등급으로 올릴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보장되어 있으니까.
“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사는 게 맞긴 한데······.”
분명 그의 머리는 물불 가리지 말고 「백리안」을 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쩐지 이걸 샀다가는 굉장히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라는 찝찝함이 실행을 망설이게 했다.
그때,
“후후후, 낌새를 보아하니 오늘이야말로 복수의 날이로군.”
옆방에서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제까지 정현이 괴롭힌 게 괴롭힌 것이었으니 이해는 한다만.
‘나이도 지긋하게 드신 분께서 굳이 복수까지 하시려고······.’
설마 이런 식으로 복수를 꿈꾸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나저나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한다는 것인지 내심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정말 호간소음(?)으로 화가 났다고 한다면 벽을 사이에 두고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진작 문을 두드리고 찾아왔을 터.
‘저번처럼 그냥 갱신하라고 몰아가시려는 건가?’
그리고 정현의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
덤으로 아저씨의 복수 계획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것도 실감했다.
“지금 좋은 게 떴다 하더라도 그다음에는 더 좋은 게 뜰 수 있는 법.”
“음음.”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력적인 선택지를 앞에 두고 쉽사리 리롤을 결정하는 것은 너무 무지성한 짓이 아닌가?”
“응?”
정현의 오른쪽 눈썹 바깥쪽이 치켜 올라갔다.
분명 해 봐야 저번처럼 갱신을 하라고 유혹할 즐 알았는데 전략이 조금 바뀐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털어 비싼 걸 사자니 어쩐지 아깝고.”
“으으······.”
“이걸 사자니 후회되고!”
“제발, 제발 그만!”
듣다 못한 정현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쩐지 정령 공격에 당한 후유증보다도 옆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더 괴로웠다.
“아아! 냉철한 이성이냐, 야수의 심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으아악! 갱신!”
결국 정현은 자신도 모르게 갱신을 외쳐 버리고 말았다.
분명 직접 선택한 길이건만, 왠지 억지로 한 것만 같고 어느 길을 가더라도 후회로 가득할 듯한 찝찝함.
“후후후, 역시 오늘은 내가 이겼군. 거기선 안전 투자지.”
그리고 승리를 확신한 옆집 아저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패배했다······. 근데 저 아저씨도 너무 한가한 거 아닌가.’
눈가로 눈물마저 찔끔 흘러나오는 상황.
그러나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떠하랴.
지나간 「백리안」은 잊고 새로이 찾아온 특성들이라도 살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