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3
32화 신입생 사냥 (2)
일반적으로 아공간(Demi-plane)은 쉽게 말해 인간이 마법을 통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 공간에서는 흔히 아는 4차원처럼 시간을 넘나들거나, 공간의 제약을 없애는 등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실체의 형태로 왜곡할 수 있다.
이러한 왜곡을 이용해 구자인은 ‘신입생 사냥’이라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아공간에 거대한 필드를 제작하고, 그 안에 생도들을 쏟아 넣은 뒤 서로의 명찰을 빼앗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필드의 크기는 무려 2,150만 제곱미터. 이는 국내 일반적인 대학 스무 개를 합친 것을 훌쩍 뛰어넘는 압도적인 규모에 이른다.
또한, 제작된 필드에는 온갖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이를테면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각종 덫과 함정부터 치유의 샘, 악몽의 숲, 신입생을 위한 쉘터 등.
재현은 이러한 장치를 활용해 김유정과 함께 재학생을 사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겼다.
조금 전, 자신과 함께 워프하게 된 서이나의 존재.
‘솔직히 서이나는 끌어들이는 게 우리로서도 가장 좋아. 하지만.’
척 보기에도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외모와 행동거지다.
섣불리 말이라도 붙이려다 되레 실수라도 하게 되면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터.
첫인상을 좋지 않게 심어 주면 후에 되돌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잠시 고민하던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헤어진다. 서이나는 전력상 중요한 인물이지만 없다고 계획에 차질이 생기진 않아.’
재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김유정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출발하자. 여기 3일이나 있어야 해. 일단 쉘터부터 찾는 게 나아.”
쉘터는 신입생들이 재학생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공간.
비록 몇 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3일이나 진행되는 이벤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쉘터가 필수다.
과거 재현은 쉘터를 찾지 못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아웃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벤트에 참가하는 생도에 비해 쉘터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벤트가 막 시작된 지금, 가장 먼저 쉘터를 찾아 나서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단은 본거지를 마련해 둬야 변수에 대응할 수 있다.’
그게 결론. 재현은 재빨리 움직여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근방은 탁 트여 있고, 숨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발을 떼려던 순간, 돌연 김유정이 재현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 민재현. 저 사람도 같이 데려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뭐? 저 사람이라면 혹시…….”
재현은 김유정이 턱짓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곳엔 당혹스러운 눈으로 필드를 훑고 있는 서이나의 모습이 보였다.
김유정은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하잖아. 저 애는 같은 마법계 생도기도 하니까 지금 포섭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하필 이럴 때만 김유정은 이성적인 판단을 곧잘 내리는 걸까?
눈앞에 있는 서이나는 물론 훌륭한 패이지만 그만큼 주의해야 한다.
회귀 전에 재현이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때로 매우 잔인해진다고 했으니까.
재현은 생각했다.
만약 서이나를 같은 팀으로 포섭했는데 자신들을 배신하게 되면?
그러면 아무리 재현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곳에서는 B급 이상의 스킬이 원칙적으로 봉쇄되어 있으니까.
자신이 가진 상위 딜링 스킬인 《전격의 사슬》은 무려 A급.
적어도 이 안에서만큼은 스탯이 높은 재현이라 할지라도 서이나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팀으로 받아들이려면 내가 확실히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김유정은 논외다.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그 강함이 얼마나 되든 상관없다.
하지만 서이나는 다르다.
“저 앤 너무 강해. 자칫해서 배신이라도 하면 둘 다 끝이야.”
안호연만큼은 아니지만, 서이나 역시 꽤나 유명인사다. 마법에 관심이 많은 김유정이 그녀를 모를 리 없었다.
“에이 설마. 같은 신입생에 마법계. 저 애도 바보가 아니라면 알 거 아냐. 초기에 무투계 재학생이라도 만나면 끔살이야. 여기서 힘을 모아야 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힘이 되는 사람들을 모은다면 앞으로의 일정이 확실히 편해질 테니까.
재현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현은 서이나를 포섭할 자신이 없었다.
회귀 전, 서이나에 대해 공개된 정보는 극소수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과묵하며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서이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잘 믿지 않는다.
‘그건 아마 가정사와 연관이 있겠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재현은 서이나의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뉴스와 기사에서 보고 들은 것이 전부지만, 적어도 지금은 여기 있는 생도 전원보다 자신이 그녀에 대해 아는 정보가 훨씬 많을 터였다.
그는 아쉬운 얼굴로 고고한 흑발의 소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다른 좋아하는 물건이나 취미 등이 공개되었다면 좀 더 접근이 편했을 텐데.
하지만 서이나에 대해 공개된 것은 앞서 재현이 기억해낸 것이 전부다.
‘어떻게 해야 하지? 확실히 여기서 포기하기엔 아까운 인재다. 하지만.’
고민하던 찰나.
김유정이 먼저 서이나에게 다가가더니, 선뜻 말을 걸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같은 마법계 신입생인 김유정이에요.”
“……서이나예요.”
명백한 적의가 담긴 눈빛.
재현은 서이나가 자신과 동류라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을 쉽게 믿지 않고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저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이나는 다루기 쉽지 않다.
직감적으로 재현은 그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김유정이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다니지 않으실래요? 저 애도 마법계거든요.”
“네? 하지만…….”
우물쭈물하며 고민하는 듯한 태도. 재현이 작게 침음했다.
‘신중한 데다 친구 없는 건 확실히 알겠네.’
재현은 서이나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유정은 계속해 서이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입생이 불리한 이벤트니까 같이 뭉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특히 마법계는 여럿이 모이는 게 훨씬 더 싸우기 쉽기도 하구요.”
“……그건 그렇지만요…….”
김유정의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이 아주 어색해 보인다.
처음 버스에서도 느낀 거지만, 서이나는 확실히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재현은 머리가 아팠지만, 더 고민할 시간 따윈 없었다.
재현이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같이 다닐지 안 다닐지는 아무래도 나중에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서이나가 조금 맹한 표정으로 재현을 바라보았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
김유정은 이미 뒤돌아 자신의 스태프를 꺼내 손에 쥔 상태였다.
곧 서이나 역시 재현의 말뜻을 깨닫고 공중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가 이리로 오고 있어.’
쌔액― 쿠웅!
공기를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내리꽂혔다.
소리는 정확히 두 번 반복되었다.
재현은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역장을 펼쳤다. 그러자, 그 안이 투명하게 투시되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몸에 더럭더럭 살이 붙은 남자 하나와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온 금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 쪽이 먼저 입술을 달싹였다.
“올해는 포인트 좀 쉽게 벌어 갈 모양인데? 벌써 신입생을 세 명이나 찾다니.”
“그러게. 이번 사냥 끝나고 맛있는 거나 실컷 먹어야지.”
김유정과 서이나는 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하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재현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두 재학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옆에 있는 두 사람과 명백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학생인 것 치곤 너무 약한데?’
* * *
명찰에는 재학생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권소율, 남자의 이름은 신준상이라고 적혀 있다.
재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권소율과 신준상이라면……?’
익숙한 이름이었다.
회귀 전 재현은 이들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저 선배들 무투계야. 일단 여기서 도망가는 게 낫지 않을까?”
김유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말은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 하에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재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잡았다.
“아니. 여기서 잡아야 해.”
신준상은 검술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아마 따돌리는 것도 어렵겠지만 가능할 터.
하지만 문제는 권소율 쪽에 있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권소율은 한 번 설정한 타겟을 300km까지 추적할 수 있는 고유 스킬인 《탐색》을 가지고 있어. 지금 해치우지 못한다면 다른 재학생과 연합해서 다시 공격해 올지 모른다. 어떻게든 여기서 끝내야 해.’
권소율이 입꼬리를 올리며 재현 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현 역시 그 기세에 밀리지 않고 한 걸음 내디디며 마력을 개방했다.
‘여기서는 내가 캐스팅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선 안 된다.’
이사장인 구자인에게 자신이 가진 패를 모두 보여 주는 것은 독이다.
재현은 여기서 어디까지나 실력이 뛰어난 마법계 생도를 연기해야 한다.
신화급 아이템을 손에 넣고 하루아침에 강해진 인간이 아니라.
우우웅…….
개방된 마력이 마치 물감처럼 번지듯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권소율의 미간이 잠시 일그러졌으나,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녀석…… 싸울 모양인데? 심지어 마력도 꽤 준수하고.’
저 신입생이 도망치지 않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권소율은 결론을 내린 뒤 재빨리 검을 고쳐 쥐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금세라도 달려들 기세로 마력을 흩뿌린다.
신준상 역시 마찬가지.
밀어닥치는 긴장감과 함께 3대 2의 싸움 구도가 형성되었다.
김유정이 하는 수 없다는 듯 재현의 옆에 섰다.
“으…… 알았어. 싸우면 되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면 돼?”
“일단 기다려.”
김유정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재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재현은 별다른 긴장감 없는 표정으로 앞에 선 둘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이런 녀석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1분이면 끝낼 수 있지만.’
그때, 머릿속에 스친 아이디어.
재현은 이 싸움을 좀 더 극적으로 몰고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구자인과 밀레스 아카데미의 교관들에게 입증해 줄 생각이었다.
신준상이 귀찮다는 듯 하품하며 검을 어깨에 걸쳤다.
“이 애들 싸울 모양인데? 귀찮게.”
“방심하지 마. 특히 저 잘생긴 놈. 좀 위험해 보여.”
“그래 봐야 신입생이지. 야 우리가 이벤트 한두 번 뛰어 보냐? 잘 봐. 내가 순식간에 싹 정리해 놓을 테니까.”
신준상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손을 휘휘 저은 뒤, 곧장 땅을 찼다.
매서운 검격이 미끄러지듯 재현을 향해 날아온다.
백색의 일반적인 롱소드.
마력을 머금어 푸른빛을 띠지만 재현이 회귀 전에 다루던 것에 비하면 날이 없는 수준으로 무디다.
‘나한테 검을 날리는 놈은 오랜만이네.’
재현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가볍게 검격을 피해냈다.
발을 구르고 몸을 회전하고, 연속된 동작이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준상의 눈이 점차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지? 내 검을…… 다 피한다고?’
쌔액! 쌔액!
검은 계속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낼 뿐 재현의 털끝에도 닿지 못했다.
한편, 재현은 힘을 들이지 않고 신준상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낸 뒤 그를 발로 찼다.
퍽!
“어?”
신준상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뒤로 밀려나며 그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어지럼증이 일며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이게 무슨……?’
마법계 신입생의 발차기에 무투계인 자신의 단단한 몸에 상처가 생겼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지금 명찰 놓고 가면 더 안 괴롭힐 테니까 놓고 꺼져. 3초 준다.”
불시에 들려온 재현의 목소리.
신준상과 권소율이 동시에 경악했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이길래 선배인 자신들을 상대로 저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단 말인가?
기껏해야 아직 신입생에 불과한 생도일 터인데.
재현은 경악에 물든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천천히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3, 2, 1…… 땡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