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황혼(黃昏)(1)
어스름이 내리깔린다.
차가운 공기와 적막이 오딘의 옥좌를 가득 메운다.
지금쯤 미드가르드는 전쟁이 한창일 것이다. 아마 토르가 대적자를 막아서고 있을 테고, 나머지 발키리들 역시 자신을 위해서 싸우고 있을 터.
‘프레이야의 배신은 예상했던 일이다.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었지. 지금 터졌다고 해서 당황할 일은 아니다.’
오딘은 한없이 침착했다. 대적자는 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토르를 넘어 이곳까지 올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그가 견제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로키.
곧 자신의 눈앞까지 도달할지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자, 이제 시간은 나의 편이다. 로키… 그리고 대적자. 너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바꿀 수 있는 것은 그저 하잘것없는 너희의 배역일 뿐인 것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딘이 그렇게 생각하며 중얼거리던 그때.
한 남자가 오딘의 눈앞에 나타났다.
후긴. 조금 전 전장에서 이탈한 까마귀.
그가 오딘의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미천한 종이 처음으로 주인에게 묻겠습니다.”
후긴은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감히 까마귀 주제에 지배자인 오딘에게 가질 수 있는 의문은 아니었다. 허나 그는 일말의 동요조차 없는 꺼진 눈으로 그렇게 물어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할 작정이었다는 의미겠지.
오딘은 후긴을 찬찬히 훑으며 차분히 답했다.
“모든 것이다.”
“모든 것입니까?”
“그렇다. 모든 것을 손에 쥐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세계의 패자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래… ‘그 검’이 내 손에 쥐여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후긴은 자조적인, 억지로 만들어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당신이 원하는 것은 제가 원하는 것과 달랐군요.”
“다르다?”
오딘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너 따위 미물이 가지는 감정이, 원하는 바가, 내게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너 역시 나를 믿고 따라왔다. 지난 수만 년 그 억겁의 시간 동안. 그렇지 않느냐? 왜 이제 와 변심한 것이지?”
“처음부터 제가 원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후긴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자부하던 오딘조차 당황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자신을 따랐던 진짜 이유는 그렇다면 무엇이라는 거지?
후긴은 이유를 금세 덧붙였다.
“……저는 모든 것을 손에 쥐면 제게 평화가 올 거라 믿었기에 당신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당신은 약탈자이고, 평화가 아닌 탐욕을 지닌 자였습니다.”
후긴은 차분히 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감정이 담긴다. 스스로 감정을 제어해왔던 마법을 해제한 것이다.
그것의 대가는 실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마법의 해제 직후. 후긴에게 자신이 기억하던 모든 감정이 선명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억과 맞물려 어떤 때는 회한으로,
어떤 때는 죄악으로,
어떤 때는 고통으로,
어떤 때는 연민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억겁의 세월 동안 오딘을 따르며 거듭 저질렀던 과오가.
이제는 짐이 되어 그를 짓누르고 있다. 후긴은 그저 그것을 감당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견뎌냈다.
저질렀던 과거의 기억을, 또한 언젠가 회귀 전 재현이 그 시간 선에서 겪었을 기억과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저 감정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나 나약한 존재가 되니 말입니다.”
“때문에 나는 네가 감정을 갖지 못하게 했다. 너뿐만 아니라 나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에게 감정은 그저 쓸모없는 변수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에게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재앙은.”
후긴이 끊어내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미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오딘.”
“불경하구나. 후긴. 나의 까마귀여. 이제 와 이런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너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오딘이 손을 놓게 들어 올렸다.
“주인 된 자로서 너를 거두겠다.”
푸욱!
뒤틀린 창대 하나가 후긴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피 분수가 솟구쳤다.
허나 이 순간에도 오딘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긴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대적자를 위해 무엇을 남겨 두었는지.
그게 이후 전투에서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인지.
* * *
“그래 알아. 너희 자매가 희생하면서 지옥 속에서도 계속 노력해왔다는 거.”
“고생했어. 정말로. 이제 곧 이 이야기는 끝을 맞이할 거야. 에필로그엔 너희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거야.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줄게.”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주지 않을래? 처음 약속했던 그때처럼.”
* * *
빛이 꺼진다.
아홉 세계의 모든 생명체가 서서히 자신의 힘을 잃기 시작한다. 마치 벽면에 걸린 기름을 먹인 횃불처럼, 사람들의 목숨은 초가 되어 일렁인다.
깊디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만들어내는 잔상. 기이한 풍경 속에서 전 세계의 레이더들은 자신들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대항하는 자로서 갖추어야 할 마땅한 힘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것으로 신과 대적해 맞서 싸워왔다.
하지만 이제 그것마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릴 방법은 이제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종말.
이제는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노르니르 시스템을 갖지 않은 자들조차 직감했다.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모든 명운은 대적자에게 걸려 있다고.
어둠이 내리깔렸음에도 계속해 폭설이 내리는 하늘을 보며 서이나가 중얼거렸다.
“…재현이……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 그 민재현이잖아.”
김유정이 말을 받았고, 루이나까지 한마디 거들었다.
“제 남편인데 해낼 수 있는 게 당연하죠!”
그와 함께 두 여자의 눈이 동시에 루이나에게로 향한다. 째릿 루이나를 노려보는 시선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뒤에서 적들을 베어 넘기던 동료들이 소곤거렸다.
“아무래도 재현이… 돌아와도 엄청 고생하겠는데?”
“역시 그렇지?”
“아마도.”
허나 그 순간마저도, 이들은 다시 적군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그 아득한 광경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것은 실로 재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마침내 세계가 황혼에 물들었다.
* * *
토르와 스미르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아무리 토르가 과거 흐룽그니르에게 공격을 당해 3할의 마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는 해도, 기본적인 격 자체가 스미르와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스가르드 최강. 그 자리에 가장 근접하다 불리는 자.
그게 뇌신 토르니까.
하지만 스미르는 계속해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덤덤히 인내할 뿐이었다. 토르는 방어 일변도로 나오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망치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너도 재미없게 구는군. 네 아비처럼 지키기 위해서 싸우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부스러졌다.
도대체 네가 지키고자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무슨 의미일까. 그래, 잘은 모르겠다.
스미르는 희미한 미소를 건 채 다시 창을 쥐었다. 이미 몇 대는 부러졌고, 몸은 망치에 두들겨 맞아 피멍으로 가득했다.
최악의 상황.
실로 악 중 최악의 상황에 부닥쳐 있는 셈이다.
하나.
“의미가 없지는 않았지.”
“뭐?”
“대적자를 앞으로 보내지 않았더냐.”
스미르의 말에 토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망치를 휘둘러왔다. 콰앙, 하는 소리를 내는 거친 뇌격이 스미르의 복부를 파고들어 피를 왈칵 쏟게 했다.
“대적자가 오딘이 있는 곳까지 간다 해도, 놈은 결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처음 너희는 대적자를 한낱 인간이라 불렀다.”
스미르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가 자신의 한계까지의 격을 모두 끌어올리며 제 눈앞의 적을 바라보았다.
뇌신. 토르는 최강의 존재다.
비록 흐룽그니르에 의해 그 힘이 격하되었다고는 하나, 아스가르드 정상에 있는 자임에는 의심을 가질 자가 없다.
허나 스미르에게 토르는 한 가지 의미를 더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를 죽인 자.
좋은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도리어 그가 집중하는 데 한계까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가 차분히 이었다.
“실제로 대적자는 나약했다. 그랬기에 스스로를 의심하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그는 계속해 다시 일어나 걸었다. 매 순간 자신을 잃어버릴 상황에 닥쳐왔지만, 그는 되레 더 빠르게 성장하고자 했다.”
스미르가 웃었다.
과거의 자신과 재현이 문득 겹쳐 보이는 듯했다.
처음 스미르는 아버지의 명으로 대유적을 지키고 있었지만, 결코 약해빠진 대적자를 안으로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돌려보내려 했다. 무력시위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때, 대적자는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거기서 비키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대적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용맹하고, 뛰어난 이였다.
당시 자신이 몇 배는 더 강했음에도, 대적자처럼 일어날 줄 몰랐고. 그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폐인이 되어 주저앉아 있었다.
허나 대적자는 아니었다.
그는 일어났고, 걸었다.
절대로 할 수 없다 여겼던 것들을 조금씩 이뤄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대적자는 그런 인물이었다. 스미르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었다.
“대적자는 강하다. 누구보다 빠르게 최고의 신이라 불리던 오딘과 로키, 그리고 네놈의 자리까지 올라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그럼에도 토르. 너는 오딘이 그를 이기리라 생각하는가?”
“이 새끼가 감히…!”
토르로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욕하는 일이자, 아스가드르 전체를. 나아가 자신의 존재를 모욕하는 발언이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빠르게 정리하겠다. 결정을 내린 토르가 뇌격을 잔뜩 머금은 망치를 든 채, 적을 향해 쇄도했다.
타앗!
그런 뒤, 하늘의 뇌운을 끌어모아 내리치려던 그 순간.
“한 가지 알려주겠다.”
‘무슨…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스미르.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던 그에게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이 솟아나 토르를 얽매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 창은 아버지의 숫돌을 갈아 만든 것이다.”
“설마…!”
“그래. 네 이마 속에 박힌 것과 같은 것이지. 또한, 이 창은 오직 너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전격을 약화시키며, 이마의 숫돌과 반응해 그 마력을 빼앗는 물건이거든.”
“웃기는 소리군. 그래 봐야,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나는… 너 따위보다 아득히 드높은 아스가르드의 토르다! 그게 나의 이름이란 말이다!”
토르가 일갈하며 이를 갈았다. 금세라도 스미르에게서 벗어나 그를 갈아 마실 요량으로 격을 개방한 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 이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슨… 나와 최소 동급의 마력을 내고 있다고…?’
스미르가 자신의 격과 거의 맞먹는 힘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미르가 미소지으며 창대를 쥔 손에 전력을 담았다. 언뜻 보기에도 조금 전, 토르의 그것과 맞먹는 수준의 마력.
어째서 그러한 일이 가능했느냐, 그 이유는 간단했다.
때는 며칠 전, 그가 다렌을 찾았을 당시였다.
[희생의 각인을… 새겨 달라는 말이오?] [그렇다.]스미르는 다렌을 찾아가 희생의 각인을 새겨달라 말했다.
돌아온 다렌의 답은 싸늘했다.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요! ‘희생의 각인’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르오? 그걸 사용하면 당신은 반드시 죽게 될 거요!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는 말이오!] [알고 있다. 내가 그것을 사용하면 죽을 거라는 것 정도는. 허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너도 알지 않나.] [제기랄! 내 손으로 저를 죽일 무기를 만들어 달라니…… 나도 나지만, 대적자가 그걸 용납할 것 같소!] [대적자는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납득할 것이다. 내가 내린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알고서도 슬퍼하고, 괴로워 해 줄 것이다.어떤가? 다렌. 그 정도 인간이라면 나 스미르가 희생할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희생의 각인.
그것은 제 생명을 한순간에 모조리 태워 소진해버리는 대신, 낼 수 있는 전력의 세 배 이상의 격과 마력을 분출할 수 있는 각인이었다.
스미르는 이를 자신의 창에 새겼다. 아버지의 숫돌을 이용해 끝을 갈았고, 이제 드디어 토르와 마주해 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빌어먹을 거인 새끼가!”
안면에 피와 함께, 욕지거리가 쏟아진다.
토르는 즉시 빠져나오기 위해 땅을 고르려 했으나, 스미르는 그를 움직일 수 없도록 세게 끌어안았다. 그런 뒤 창을 서서히 그의 몸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냐! 이런 짓을 하면 네놈도 죽을 터! 그것을 모르는 게 아닐…… 쿨럭!”
토르가 재차 일갈하다 피 가래를 쏟았다. 스미르 역시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었다. 거대한 체고는 금세라도 무너질 듯 떨리고 있었고, 눈가의 핏줄이 다 터져버렸다.
시야가 암전된다.
허나, 그런 스미르의 눈에는 그저 초연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대적자. 나아가라. 그리고 어떻게든… 이 지옥을 끝내라. 먼저 헬헤임으로 떠나 미안하게 됐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적자.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게 진심으로 기뻤다.
그 순간에도 발악하는 묠니르의 뇌격이 자신의 살갗을 태우고, 또 태웠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그를 앞으로 내보낼 수만 있다면.
여기서 자신은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스미르는 생각했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죽음으로서 자신을 살려냈던 것처럼, 이제는 그도 누군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와 함께 가자 토르. 헬헤임으로.”
‘아버지 당신도, 이런 마음이셨군요.’
그 목소리와 함께, 토르가 비명을 터뜨렸다.
스미르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아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젠장…!! 네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거구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숨이 붙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허나 그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