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mmoned a max level demon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72화
누군가의 초대.
그것도 아마 꽤 불손한 이유일 것이다.
“거절하는 것도 참 뭐하잖아? 그렇지?”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그놈을 향해 말했다.
분명 내 말을 듣고 있겠지.
녀석도 딱히 숨을 생각은 없는지 내 말을 듣자마자 바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린놈이 겁이 없군. 아니면 그만큼의 재주가 있는 건가?”
노인이었다.
다른 괴인들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인간의 꼴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자.
앙상한 체구를 감싸고 있는 붉은 마기……. 그들이 혈마력이라고 부르는 힘을 담고 있는 추한 육체.
“잘 왔다. 제국의 어린 개로 전락한 흑마법사. 용케도 이곳까지 왔군.”
“……오긴 개뿔, 댁이 끌고 왔으면서.”
내 비아냥거림을 무시하고, 노인은 제 할 말만 한다.
“네놈을 안타깝게 여겨 다른 어린 개들과 다르게 네게만은 한 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마.”
마음에 안 드는군.
“자기소개는 안 하냐? ……제국 1급 수배범 멜프랑 엘테네틸?”
“…….”
떠들던 그가 입을 다물었다.
애써 마음속 동요를 억누르고 있겠지만, 몹시 놀랐으리라.
“……애송이?”
“약 30년 전쯤, 이곳이 아직 혈목의 숲이라 불리기 이전. ……이 근방에서 자취를 감춘 수배범이 하나 있었지?”
어떤 죄로 인해 법에 따라 수배령이 내려진 흑마법사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제국의 기사들이 그를 추격했음에도 잡지 못했지.
이윽고 30년이 지난 뒤 그는 과거와 사뭇 달라진 몰골을 드러내게 된다.
숭배자 멜프랑.
‘1페이즈의 중간 보스.’
요컨대 지금 이 숲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일으킨 흑막 아래에서 활동하는 중간 관리직 같은 역할.
그리고 더욱 많은 경험치.
“……어떻게 알고 있지?”
“고작 30년으로 숨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말아야지. 이 노망난 늙은이야.”
무엇보다 저 늙은이의 수배서는 아직도 제국에 버젓이 걸려 있다.
알아본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생각보다는 자질이 있는 모양이군. 그 나이에 악마까지 거느린 경지에 도달한 건 결코 요행이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감탄과 경계.
그 붉은 눈동자가 일그러지며 틀림없이 나를 재차 가늠하기 시작했으리라.
“한때 흑마법사의 길을 걸었던 몸으로 어린것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초대했거늘……. 조금은 오산이었나.”
내심 기쁜 건가.
딱히 듣기 좋은 말이나 해 주려고 그의 정체를 입에 담은 건 아니었는데.
“그래서 용건은? 까마득한 옛 후배의 실력을 칭찬해 주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그 말대로다. 아무리 잘난 네놈이라도 지금 이 숲에서 일어나는 일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겠지.”
“글쎄다. 딱히 관심 없거든.”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자, 멜프랑은 그제야 자기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듯 코웃음을 친다.
“흑마법을 깨우친 몸이라면 필시 지금의 처우에 불만이 있을 것이다.”
“…….”
“네 자질은 제국의 개가 되기에는 아깝구나. 우리들의 대의를 듣고 합류할 마음이 있느냐.”
나는 입을 다물고 놈의 용건을 들었다.
역시였다.
‘고작 한다는 게 스카우트 제안인가.’
흔히 말하는 ‘너, 내 동료가 되라’인가.
직접 당하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군.
‘하긴 그게 ‘시안’의 본래 행적이겠지만.’
이것 또한 본래 게임의 시나리오대로라고 할 수 있다.
‘그래, 게임 때의 ‘시안’은 저 웃기지도 않는 스카우트에 넘어갔던가.’
게임 시절 시안은 어디까지나 강력한 힘을 바라는, 열등감에 푹 절어 있는 애송이였으니까.
하물며 2장의 시점에서는 본격적으로 주인공이나 히로인들의 재능과 비교하며 이를 갈기 시작할 무렵.
시안의 역할은 저 멜프랑의 제안에 넘어가 괴인들과 합류해 주인공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을 방해한다.
큰 힘을 주겠다는 어이없는 약속에 홀딱 넘어가서.
“나더러 댁들과 똑같은 꼴이 되라고?”
“어머? 그건 좀 누나 입장에서는 싫은데? 시안은 지금이 딱 좋아. 저런 피부는 쓰다듬는 맛이 없잖니.”
“……동감이야.”
그런데 그걸 게임 시절의 시안은 넘어갔단 말이지?
……제정신인가?
‘저걸 보고도 인간을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물론, 시안은 괴인이 되지 못했다.
정확히는 부려 먹히기만 했을 뿐이다.
전형적인 열정 페이.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네놈도 흑마법을 수련한다면 딱히 거부감은 없을 터.”
“헛소리 마셔, 이 노인네야. 그거 편견이거든?”
흑마법을 수련한다고 괴물이 되고 싶을 거라고 판단하는 건 진짜 웃기지 않나.
역시 꼰대는 꼰대.
정신 나간 노인의 말만큼 들을 가치가 없는 것도 없다.
“네게도 그분의 가호를 받을 수 있도록 타진해 주마.”
“그분이라……. 댁이나 다른 괴인들을 만들어 낸 놈을 말하나?”
“예의를 갖추도록 해라.”
놀고 있네.
“고작 괴물 따위에 고개를 숙일 정도로 자존심이 없지는 않아.”
“……네놈!”
분노와 경악이 반반.
거절할 거라고 상상도 못 한 건가.
“거기에다 댁이 말하는 힘이라는 건 그 괴물에게 영혼을 저당 잡혀 그따위 육체를 부여받는 걸 말하는 거겠지?”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영혼을 저당 잡혀 얻는 것은 추한 육체.
그리고 혈마력이라고 일컫는 변질된 마력.
“댁들 꼬락서니는 내 취향이 아니고, 하물며 괴물 따위에게 머리 숙이고 싶지도 않아.”
거절한다.
운명대로라면 시안은 여기서 기뻐하며 기꺼이 고개를 숙였던 모양이지만, 내가 왜?
미쳤나?
“까놓고 말해서 멋이 없다고.”
“……네놈!”
“거기에 유혹하는 방법이 글러 먹었잖아?”
기왕이면 예쁜 누나를 모셔 와서 꼬드기든가.
“그럼 넘어갈 거니?”
“……아니.”
“흐응~.”
안 넘어가요. 진짜.
그러니 이쪽을 물끄러미 보지 마시죠? 에밀리 씨?
“잘못 봤군! 흑마법을 추구하기에 이 힘의 위대함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거늘! ……역시 제국의 개로 타락했단 말인가.”
놈은 무엇을 착각했는지 안타까운 척 넋두리를 한다.
“제국의 개라……. 그것도 조금 전부터 계속 귀에 거슬리는 소리군.”
차라리 돈과 욕망의 망자라고 불러 주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칭찬은 아니지만.
“좋다. 그렇다면 다른 어린 개들과 마찬가지로 제물로 삼을 수밖에 없군. 어리석은 것, 후회할 것이다.”
“오케이. 딱 사망 플래그 세워 주시네.”
노기를 드러내는 그와 달리 나는 여유롭게 키득거리며 싸울 준비를 한다.
그 대사는 딱 처맞기 전의 악당이 내뱉는 유언이나 다름없었다.
“후회하는 건 댁이야. 멜프랑. 내가 댁을 처리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잡혀 왔다고는 생각 안 하나?”
“……오만하구나.”
처음부터 나는 ‘시안’의 운명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왜 일부러 잡혀 왔는가?
뻔하지.
‘중간 보스 잡으러.’
기꺼이 목숨을 헌납하려고 나를 초대해 줬는데, 쓰러트려 주지 않는 건 손해 아닌가.
본래라면 멜프랑을 찾아내 토벌하는 과정이 꽤 번거로웠을 것이다.
거대한 혈목 내부를 분주히 뛰어다녀야 했겠지.
‘말하자면 내가 시안이기에 가능한 숏컷인가…….’
붙잡힌 순간, 그 시나리오를 떠올렸기에 기꺼이 끌려온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중간 보스를 처죽인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바라 마지않는 선택지가 아닌가.
“실수한 거야. 상대를 잘 파악했어야지.”
물고기를 낚으려다가 상어를 낚은 셈.
반대로 잡아먹힌다?
“어리석긴……. 제국의 개가 된 것도 모자라 제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는군.”
놈은 오만하게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힘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붉은 마기가 놈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며 그 힘의 크기를 여지없이 선보인다.
혈마력.
혈목과 계약하여 인간의 틀을 벗어 버린 것들에게 깃든 삿된 힘.
“다른 어리석은 어린 개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통해 깨닫거라.”
놈이 지팡이를 까딱이자, 괴식물의 줄기들이 나를 향해 뻗어 오기 시작한다.
단순한 식물의 줄기가 아니다.
생물이라면 저것에 닿은 순간, 그대로 부식되어 녹아 버리고 혈목의 양분이 되겠지.
혈목의 줄기.
그리고 저것이 내포한 사악한 기운을 다루는 게 지금의 멜프랑의 능력.
“누가 어리석은지는 곧 알게 되겠지.”
피할 필요는 없다.
놈의 공격 패턴을 이미 꿰고 있다. 조금 전 대화를 나누는 동안, 틈틈이 준비해 둔 마법을 완성하여 캐스팅하였다.
-흑염멸폭풍.
고열의 화염과 날카로운 폭풍이 동시에 몰아치는 이중 속성의 4서클 흑마법.
콰아아아아앙!
검은 열기를 머금은 소용돌이가 거칠게 전진한다.
고열과 바람이 할퀴고 태워 버리는 흉악한 위력의 마법.
“4서클이라고?!”
멜프랑은 경악했다.
일부 특별한 천재를 제외하면 대개 4서클에 돌입하는 나이대는 30대가 평균.
하물며 설정상 타락하기 전 멜프랑의 경지 또한 4서클.
“하지만 너랑은 격이 다르지.”
내가 일으킨 열풍이 혈목의 줄기를 집어삼켜 태워 버린다.
그대로 기세를 잃지 않은 열풍이 놈을 덮치자, 멜프랑은 간신히 방어 마법을 펼쳐 그 열기를 차단한다.
잿더미가 된 것은 면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기력을 소모했겠지.
“어떻게 이놈이…… 믿기지 않는군.”
무엇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으리라.
자신의 인생의 4분의 1 정도밖에 살지 않은 애송이가 인간이었을 때 자신의 경지를 이미 뛰어넘었고.
타락하여 힘을 얻은 자신마저도 압도하고 있다.
고작 첫수를 겨룬 것만으로도 알았으리라.
그럼에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건 인간의 어리석은 면 때문.
“그럴 리가 없다! 제국을 타도하기 위해 그분에게 맹세하여 숭배자가 된 이 몸이! 절대 질 리가 없다!”
“……시끄럽군.”
검은 뇌격을 날려 놈을 주춤거리게 한 사이, 그 틈을 타 놈의 뒤에서 재소환된 에밀리는 팔을 휘둘러 놈의 몸통을 찢는다.
“정말로 썩어 버린 나무를 찢는 것과 다를 바가 없네.”
“고작 악마 따위가!”
몸통이 두 동강이 났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놈이 괴성을 지르며 에밀리에게 반격했지만, 에밀리는 이미 재소환되어 내 옆으로 돌아왔을 뿐.
“이미 저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네.”
“그렇겠지……. 진즉에 인간으로서의 구성품은 전부 제 주인에게 먹혔을 테니.”
혈목인은 그저 영혼을 바치고 그 외의 것을 전부 내준 다음 어느 괴물이 부여해준 조악한 찌꺼기를 뭉쳐 만든 몸뚱이를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먹이를 나르기 위해 개량된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놈들의 정체.
“저열하군.”
직접 보니 정말로 비웃을 건덕지밖에 없군.
“이노오오오오옴!”
멜프랑은 절단 난 신체를 복구하며 노성을 터트렸지만, 이미 결판은 났다.
고작해야 중간 보스.
너 같은 건 숱하게 잡아 보았기에 상대해 줄 맛조차 나지 않는다.
“더는 시간이 아깝군.”
괴성을 지르는 놈을 향해 화염을 쏟아 내며 완전히 불태워 버렸다.
《숭배자 멜프랑을 쓰러트렸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29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레벨업 보너스 스킬 포인트 5pt를 획득합니다.》
《잔여 스킬 포인트 : 33pt》
나름 중간 보스답게 경험치가 꽤 되는군.
《1페이즈의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본래라면 ‘시안’을 회유하고 다른 숭배자들을 이끌고 계략을 펼쳐야 할 중간 보스는 여기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잠시 후 2페이즈에 돌입하게 됩니다.》
“오냐. 느긋하게 기다려 주마.”
그사이에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여긴 놈의 은신처이자 공방.
30년 넘게 놈이 괴물을 숭배하며 연구를 해 온 곳이겠지.
“그사이 보물이나 좀 찾아 둘까.”
자고로 악인의 소굴을 털면 보물 상자를 찾아 까뒤집는 건 국룰이니까.
“하지만 고양이 아가씨랑 성녀한테 시안 네가 무사하다는 걸 알리지 않아도 되니?”
“아……. 그러고 보니 걔네들을 두고 온 셈이 돼 버렸나.”
달성감에 들떠서 잠시 미뤄 둔 사실.
나는 납치당한 거였지?
순식간에 끌려왔던 터라 그녀들에게는 조금도 설명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어쩔래? 신호라도 보낼까?”
“……그건 조금 나중에.”
괜찮을 거다.
응, 분명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