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22
022화
“이 작가님 사촌 동생이 홍 작가님이셨어요?”
“나야말로 당황스럽다. 이정 씨, 소희랑 아는 사이였어?”
“언니가 소개시켜 준다는 사람이 이정 씨였어?”
서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 예상치 못한 인연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 일단 나 뭐 좀 시키고 올게.”
홍 작가 자리를 뜨고, 이 작가가 서프라이즈에 실패했다며 뻘쭘하게 웃었다.
“그럼 제의받았다는 게 소희의 그…?”
“네 스핀오프요.”
“세상에, 신인 배우 한 명 만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게 이정 씨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돌아온 홍 작가의 손에는 그때 이정이 준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달아 보이는 음료가 들려있었다.
“너! 단 거 그만 먹으랬지! 아주 당뇨로 저세상 가고 싶어?”
“아 진짜! 내가 밖에 나와서까지 잔소리 들어야 해? 이정 씨도 있는데 창피하게 진짜.”
“홍소희!”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언니, 동생이라기보단 조카와 이모 같은 대화에 이정이 피식 웃었다. 사이좋아 보이는 자매였다.
“미안해요. 우리 집안에 가족력이 있어서 제가 이런 쪽으로 좀 예민하거든요.”
“언니 집안 사정 좀 막 뿌리지 마.”
가족이라서인지 서 교수와 함께 봤을 때 보다 훨씬 자유로운 언행에 이 작가가 민망한 듯 홍 작가의 옆구리를 꾹꾹 찔렀지만 홍 작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희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신인 배우 한 명 만났다는 얘기만 들었지 자세한 건 못 들어서.”
“ 추천해 주신 서 교수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먼저 오신 손님이셨습니다.”
“진짜 사람 인연 모를 일이라니까.”
이 작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 교수를 통해 홍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신기한 우연인 상황에 이 작가가 소개해 준다던 사람마저 홍 작가라니.
“ 꼭 해 주면 안 돼요?”
“요?”
이전에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제목에 이정이 되묻자 그녀가 가방에서 대본을 꺼냈다.
“이번에 막 확정 난 제목이에요. 정식 이름은 .”
사전적인 ‘카메오’의 의미와는 조금 맞지 않지만 퍽 직관적인 제목이었다.
대본의 상단에는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있었는데, 주연인 안규승 역을 제외한 모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원래 안규승 역이었던 박도혁 씨는 결국?”
“네. 완전히. 그때 이정 씨랑 만나고 나서도 두세 번 정도 더 조율해 봤는데 갈수록 터무니없는 조건만 제시하는 바람에 연출 쪽에서 그냥 커트하자는 결론이 났어요.”
일일이 말할 순 없지만 나름 니리온의 팬이었던 보조 작가가 무려 탈덕을 결심했다고 한다.
“야, 그런데 박도혁 쪽이 그렇게까지 안 한다고 한 이유가 뭐야? 시즌 1도 성공했고, 곧 시즌 2도 나올 건데 자기가 주연인 스핀오프가 있으면 더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이정 역시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시즌 1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웬만한 드라마보다 화제성 높은 를 하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이유가 뭘까?
“진짜 말하기 싫었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박도혁이 지예한테 들이대다가 좀 문제가 생겼어요.”
홍 작가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지예요? 에서 최연홍 역할 맡은 그 배우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아요.”
안규승 역을 제의받고 난 뒤 시즌 1을 정주행하며 배우들에 대해 파악했던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그가 기억하기로 최연홍 역할을 맡았던 최지예 배우는…
“미성년자잖아요?”
“그렇죠.”
“뭐? 미친 거 아니야?”
이제 겨우 19살인 고등학생, 그에 반해 최도혁은 28살 성인이었다.
“설마 폭행은 아니죠?”
“다행히 거기까진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는 모양새가 영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도 박도혁을 쓰려고 했던 거예요? 이게 밖으로 퍼지면 어떻게 수습하시려고?”
몰랐던 사실에 이정이 제 목덜미를 주물렀다. 여기서부턴 단순히 개런티와 아집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예가 먼저 일 커지면 귀찮으니까 그냥 박도혁이랑 하자고… 괜찮다고…”
“그걸 진짜 괜찮다고 받아들인다는 게 말이 돼요?”
홍 작가의 변명에 이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무리 숨긴다 한들 알려지는 순간 여론은 최악으로 변할 악수를 왜 자처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번에 완전히 쫑나면서 그쪽 기획사랑 각서 썼어요. 이젠 진짜 밖으로 퍼질 일 없을 거예요. 애초에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도 채 열 명이 안 돼서…”
완전히 소문이 났다면 미래의 이정이 몰랐을 리 없으니 실제로 이 일이 밖으로 퍼진 적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계속 상대 역을 시키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 아무리 본인이 괜찮다고 했다지만 그건 좀 아니지.”
가만히 있던 이 작가도 이정의 말에 동조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이런 일이 있으니 둘 중 한 명을 빼야 한다고 하면 제작지원팀에서는 당연히 지예를 빼라고 했을 테니까. 지예도 그래서 그냥 촬영하는 쪽을 선택한 거였어요.”
제작지원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 비교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배우를 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그 탓에 홍 작가는 차라리 박도혁이 알아서 나가주어 고마울 정도라고 했다. 개런티 조정을 받아드렸을 때도 혹시나 수락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고.
“그 지예라는 애도 신인이라고 했지?”
“응 이게 첫 작이야 그 애도. 소속사도 없고.”
누구든지 신인은 힘이 없다. 이정보다도 어린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원래 그냥 말 안 하려고 했어요. 팀 내에서도 정확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고, 새로 온 사람이 이 사실을 알아서 좋을 게 없잖아요.”
“그런데 왜?”
그녀의 말대로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않나 싶은 내용이었다. 미래의 그가 모를 정도라면 끝까지 소문은 퍼지지 않았고, 이정은 아직 에 출연하기로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정 씨랑 꼭 하고 싶어서요. 알아요. 쓸데없이 솔직했던 거. 굳이 드러낼 필요 없었던 문제고 어찌 보면 그런 사람과 같은 배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조차 불쾌할 수도 있겠죠.”
“불쾌하진 않습니다. 당황스러울 뿐이에요. 홍 작가님 말씀대로 굳이 드러낼 필요 없는 문제니까요.”
한숨을 쉰 이정이 비어 있는 안규승 역의 배우란을 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다만 제가 출연을 확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왜 이런 말을 해 주시나 싶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하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계속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에 이정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자 홍 작가가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허리를 꼿꼿이 펴며 말했다.
“서 교수님도 모자라 언니한테까지 소개를 받고 나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반쯤은 충동적이라 솔직히 지금 집에 가면 엄청 후회할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정말로 이정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이번 일로 우리 스태프들이 못 미더울 수도 있지만 저희가 작품 하나는 정말 잘 뽑았거든요. 니리온의 조직적인 악플만 없다면 무조건 대박 날 거라고 확신해요.”
“제가 그 조직적인 악플을 없앨 수 있다는 확증은 없지 않습니까?”
“그때 말한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말, 농담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서 교수님의 제자에 언니의 추천까지. 연기력도 흠잡을 데 없고요.”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이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었다.
“하아…”
홍 작가를 만나고 에 관심이 생긴 것은 분명하지만 완전히 수락할지에 대해선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작품보다도 작품 외적인 것으로 인해 실패했던 만큼 이정이 잘한다고 해서 성공할 거란 보장이 없었던 탓이었다.
만약 오늘 이 작가와 대화하기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가차 없이 거절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그랬다. 기적같이 돌아와 다시 잡은 기회인 만큼 누구보다도 문제없이 쭉 달려나가고 싶었으니까.
“홍 작가님.”
그러나 이 작가의 조언대로 지금은 이이정이란 사람을 좀 더 알려야 할 때였다. 이정은 무엇보다 연기가 하고 싶었던 거니까.
“해 보겠습니다.”
“정말요?”
망해도 괜찮다는 낙관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성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미래를 알고 있으니 미래만을 따라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오만한 생각일지 몰라도 박 감독과 이 작가를 통해 의 흐름을 바꾼 것처럼, 도 한번 바꿔보고 싶었다.
“네. 안규승 역, 제가 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