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53)
“소명바이오 대표 도상수요. 반갑소.”
“처음 뵙네요, 태인케미칼 신성호입니다. 같은 신 씨던데 어디 신 가입니까?”
여기가 코스피 거래소도 아니고.
증권 앱에서 항상 보던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만 그랬을까.
무슨 내가 회전문도 아니고, VIP들이 돌아가면서 날 찾아와 인사를 나누곤 했다.
쿵짝짝, 쿵짝짝, 왈츠라도 춰야 할 판국.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도 이게 다 나중에 도움이 될 거다, 마음을 다지면서 응대하던 중.
세오그룹 회장, 최웅의 차남.
마이클 최가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미스터 신, 이번 옥션 라인업 미쳤습니다. 이건 진짜 미췬 수준이에요. 서이수는 푸우······.”
마이클은 입술을 푸루루 털면서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이번 센츄리를 빛낼 탤런트예요. >무음>도 대단했지만 >월광>은 오, 마이······ 우리 아부지는 절대 못 살 겁니다. >소우주>로 만족해야 돼요.”
크큭, 이건 뭐 신종 패드립인가.
“그런데 미스터 신, 제가 미스테리어스한 게 하나 있숴요.”
“뭔가요?”
“멜라니 플로이드는 어떻게 잡은 건가요? 뉴욕 갤러리들도 계약 못 따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데······ >이수> 판매권을 어뮤즈 갤러리에 위임한 거 맞죠?”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어쩌다 보니? 그게 다예요?”
뭐, 그렇게 대답을 원하시면.
멜라니가 버린 스케치북이랑 물물교환을 했다고 하면······ 좀 이해되시려나?
“아, 하나 더 있숴요.”
“네.”
“중간쯤에 이름이 뭐더라······ 이Q민?”
“아, 이설민 작가요.”
“예스, 이설민! 그 작가 작품 2점이 저는 엄청 맘에 들던데,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요. 어디서 활동하는 분이죠?”
오······.
>소우주>를 추천한 사람이라더니 확실히 보는 눈이 좋으시네.
그러나 이설민이라면.
아직 내가 확답할 수 없는 인물.
나는 답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가는 길에 프리뷰 도록 드리니까요. 거기에서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시크릿? 오케이.”
마이클은 손을 마구 내저으며 멀어졌고.
나는 웃을 뿐이었다.
이설민.
그 짜릿한 서프라이즈를 벌써 공개할 순 없었다.
*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VIP들.
나와 고태양은 겨우 틈을 내서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우리에겐 아직 더 크고 중요한 이벤트가 남아있었기 때문.
“대표님, 20분이면 준비는 끝날 것 같습니다.”
“네, 지사장님. 그분도 거의 도착했답니다.”
진성, HN, 지엘, SKK, 코스코······.
그야말로 재계서열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는 VVIP들에게 프리뷰를 선보일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바로 민채연의 외할아버지.
HN그룹 총수, 정기현의 존재 때문이었다.
‘침착하자······.’
얼마 전, 약간의 소동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내가 채연이와 만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시는 분.
그리고.
「초특대 행운의 편지」의 주인공.
[ 자네가 원해서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주는 거야. 내가 자네를 예뻐해서 주는 거라고. ] [ 그 모든 게 자네 대답 여하에 달려있단 말이네. 그러니까 말해보게. 어느 회사를 원하나? ]프리뷰 전시장을 다시 체크하고.
건물 로비로 걸음을 옮기며.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초특대 행운」을 종결하고, 증폭시켜야 할지.
그러려면 그분한테 예쁘게 보여야 할지.
‘나이 서른에 재롱잔치라도 해야 하나.’
채연이와는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지······.
며칠째 생각은 많았지만.
아직은 그 무엇에도 확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잘 보여서 나쁠 건 없다는 점.
계급장 다 떼고 생각해도.
채연이네 외할아버지 되는 분이었고.
크리스티의 관점에서도.
정기현 회장은 진성의 진승건 못지않은 큰손이었으니.
‘컬렉션이 아주 대단하시던데.’
머리가 복잡할수록 기본부터.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나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조금 뒤.
마침내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
“하하, 신 대표!”
오늘 프리뷰 이벤트의 1등 공신.
>HN솔루션> 대표, 김치호였다.
“아, 대표님!”
나는 바로 달려나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오시는 길 험하진 않으셨어요?”
“그럼요, 경매소 목 좋네요. 장사해도 되겠어.”
“하하, 오늘 대표님이 소개해주신 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앞선 프리뷰, 아주 잘 마무리됐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랬으면 다행이고요. 빚 갚기 힘드네, 정말. 하하하.”
황복 독으로 맺어진 의리.
우리는 힘차게 맞잡은 손을 흔들었고.
그때.
“크흠!”
김치호의 등 뒤에서 나 들으라는 듯 커다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아······ 김치호 대표님이랑 같이 오셨나.’
바로 시선을 옮겼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아, 신 대표. 여긴 저희 정기현 회장님입니다.”
이제는 「초특대 행운의 편지」에서 얼굴마저 완전히 드러나서 못 알아볼래야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사람.
나는 그에게 얼른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뭐야······.’
나는 자연스레 깨달았다.
며칠째 날 괴롭혔던 고민들이 다 부질없었던 것임을.
이쁜 짓을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다른 VIP들을 대하듯 미리 준비했던 멘트도 다 필요 없었다.
“듣던 대로 인상이 아주 좋으시네······ 나는 정기현이요. 그대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분명히 우리는 초면인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날 지그시 바라보는 정기현의 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뭐지······.’
만약 상대가 또래 여자애였다면.
날 좋아하는구나, 착각할 법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 절절한 눈빛에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겨우 평정을 되찾고 답했다.
“네, 소개가 늦어 죄송합니다. 저는 현재 크리스티 서울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신유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저희 프리뷰를 찾아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정기현은 세상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내가 말을 좀 편하게 해도 되겠나?”
“그럼요. 당연하죠. 편하게 하십쇼.”
그러자.
정기현은 별안간 내 두 손을 부여잡았다.
“그래, 신 대표. 이것저것 잴 것 없어. 내 솔직하게 말하지.”
뭘······ 요?
“저번 일, 사과하고 싶네. 여기 김 대표에게 자네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 그런데 듣다 보니 너무 마음에 들더구만. 그래서 내가 마음이 급했어. 인연이라는 게 인위적으로 될 게 아닌데, 아무래도 내가 자네한테 실례를 범한 것 같네.”
아아······.
덕분에 저희는 잘 놀았습니다만······.
“아닙니다. 다 결과적인 이야기니까요. 그분은 정말 좋은 분이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죠.”
“아니야, 내가 미안하게 됐어. 그 말을 꼭 직접 해주고 싶었네.”
아니, 회장님이 이렇게 직접 사과를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
‘채연이한테 얘기해주면 좋아하겠어.’
나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다 회장님이 절 좋게 봐주셔서 생긴 일인데······ 저는 너무 감사하죠.”
“클클클······ 김 대표, 이 친구 보게. 자네가 왜 인증마크 찍었다는지 내가 대번에 알겠네, 알겠어.”
그래, 이쯤이면 서로 진심을 잘 전한 것 같다.
그런데.
왜 제 손을 안 놔주시나요······.
“그런데 신 대표. 내가 이러면 늙은 놈이 찰거머리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 만나고 있는 처자가 있는 건 알지만 우리 손녀 다시 만나볼 생각은 없나?”
정기현.
그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아, 물론 저는 너무 좋죠.
시간이 없어서 못 만나지, 볼 수만 있으면 매일 보고 싶죠.
그렇지만.
아직은 민채연발 엠바고가 걸려있는 상황.
나는 정중하게 사양하려고 했는데.
정기현이 갑자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에잉, 쯧. 기분 잡치게.”
뭔 일인가 싶어서 황급히 표정을 살폈더니.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보고 있는 정기현.
누굴 보고 저러나 했더니.
나도 아는 얼굴이었다.
“신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지니움>의 아트딜러.
비공식적으로는 진성그룹의 아트테크 컨설턴트, 허진태.
그리고 허진태의 뒤에서.
얼굴 위에 내려앉은 어둠을 시나브로 걷어내며 나타난 사람.
“정 회장, 안색이 좋아 보이네?”
“안 좋을 게 뭐 있겠나.”
진성그룹의 총수.
진승건이었다.
‘······저 분이구나.’
>무음>을 팔라고 내 야식을 방해하던 사람.
서울 경매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비워놓지 않으면 혼꾸녕이 날 줄 알라던 사람.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일행이 한 명 더 있었다.
“유원 씨, 오랜만이네요?”
>마켓킬리> 대표, 진예나.
그녀가 진승건의 팔짱을 끼고, 같이 들어오고 있었다.
‘뭐야, 당신이 왜 거기서 나오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나는 잠시 얼이 빠져 있었고.
진승건이 고태양에게 말했다.
“고 지사장, 여기 내 손녀딸인데. 같이 입장해도 되지?”
“당연하죠,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크리스티 서울> 지사장 고태양이라고 합니다.”
고태양은 진예나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팔짱을 풀고 고태양을 그대로 지나쳐 내게 다가오는 진예나.
“신 대표님, 이따가 작품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되죠?”
뭔데, 당신도 재벌가 여식이야?
비장의 무기 어쩌고 하던 게 이거였어?
‘미치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진 대표님.”
그 순간.
정기현과 김치호가 침음을 흘린 건······ 내 착각인가?
어쨌든.
마치 재계서열을 다투듯 제일 먼저 도착해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진성과 HN의 유력인사들.
그들의 이야기가 적당히 정리될 때쯤.
나는 로비 안쪽으로 팔을 뻗었다.
“프리뷰 관람 전에 잠시 오프닝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가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좋아요.”
나는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가.
커다란 컨퍼런스 룸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VIP 프리뷰에서 내가 짧은 발표를 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단 10개의 좌석만 마련되어 있다는 점.
두 자리씩, 5열로.
“이쪽입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정중히 팔을 뻗으며 1열로 걸었고, 뒤따르는 구둣소리가 컨퍼런스룸에 나직하게 울려퍼졌다.
이내 다다른 1열.
단 두 개의 좌석.
진승건은 나를 지나치며 중얼거렸다.
“고맙소. 그런데 의자는 하나 더 있어야 겠구만. 머리가 하나 늘었으니.”
나는 싱긋 웃고는.
정기현에게 말했다.
“정기현 회장님, 그리고 김치호 대표님. 여기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뭣이?”
바로 날 노려보는 진승건.
그 노기가 몹시 흉흉하여 없던 애도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진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좌석은 프리뷰 신청 순으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2열에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의자는 하나 더 갖다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분명 제일 좋은 자리를 마련해두라 했을 터인데!”
이러다 진짜 혼꾸녕이 날 것 같은 분위기 속.
구원군이 나타났다.
“아이고, 진 회장. 늙어서 그러면 추태야. 그냥 앉으란 대로 앉아. 김 대표, 이리 오게.”
익살맞은 얼굴로 휙 우리를 지나친 정기현.
그는 의자에 철푸덕 앉더니 내게 웃으며 말했다.
“자리가 아주 푹신하고 좋구만. 고맙네.”
그 순간, 나는 또 다시 느꼈다.
눈에서 꿀만 떨어지랴.
“클클클······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별사탕에 천도복숭아에 천혜향까지.
날 바라보는 정기현의 눈빛에는 새콤달콤한 오만 것들이 찐득하게 묻어 있었다.
단년 계약인 건 아시죠?
자신을 부르는 손짓에.
김치호는 바로 얼굴을 기울여 귀를 갖다댔고.
정기현은 작게 속삭였다.
“자네 말이 틀리지 않아.”
“하하, 그렇죠. 쏙 빼닮지 않았습니까.”
정기현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내가 지금 맞게 본 게 맞나, 이 두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더군.”
“맞습니다.”
“헌데······ 허우대만 닮은 게 아니야.”
정기현은 오랜 무언가를 떠올리듯 말하며.
스르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컨퍼런스룸 문을 열고, 지엘그룹 회장과 함께 들어오는 신유원.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정기현은 짧게 말했다.
“진짜 그놈인 줄 알았어.”
“그 정도였습니까?”
“······.”
정기현은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 눈에 담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확신이 넘치는 눈빛.
예의를 갖춘 와중에도 당당한 태도.
그래서인지.
상대가 대한민국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회장이라 할지라도 주눅들지 않는 언행까지.
[ 진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좌석은 프리뷰 신청 순으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2열에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의자는 하나 더 갖다드리겠습니다. ]정기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 세상에 어떤 젊은이가 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진성그룹 회장한테 뒤로 가라, 룰을 지켜라, 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클클.’
수십 년 기억을 되짚어봐도.
그런 이는 극소수, 한줌에 불과했고.
‘그놈도 그랬더랬지······.’
정기현은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회상도 잠시.
몸을 뒤로 돌리고 있는 꼴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정 회장, 지금 뭐하나?”
미간을 잔뜩 찌푸린 진승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