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아, 호드라 님이랑 추장 님 오셨다.”
두리번거리던 리디안은 ANG 길드를 발견하자마자 해쭉 웃었다. ANG 길드는 이제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신사처럼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 그들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호드라가 워낙 착하고 순한 성격이라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해본 사람은 바로 인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ANG의 부길드 마스터인 추장도 호드라 못지않게 껄끄러운 시선을 받는 플레이어였으나, 지금은 호드라와 함께 평판이 좋아진 상태였다.
“워로드가 워낙 없는 직업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호드라 님도 와주시고.”
크라이그의 환대 반응에 리디안은 괜히 흐뭇해졌다. 현재 호드라는 늑대 동굴의 특정 패턴으로 인해 존재감이 더 커진 상태였다.
늑대 동굴은 제물 패턴 중 바바리안과 워로드의 스킬에 포함된 경직을 꼭 필요로 했다.
이 패턴이 시작되면 동굴 안에 출현하는 일반 몬스터 ‘바르그’ 중에서 특정 표식을 가진 두 마리의 개체를 찾아내 죽여야 한다. 그래야 레이드 진행상 보스들의 허기가 메워져 폭주하지 않고 안정적인 공략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식을 가진 바르그는 HP가 높고 공격받으면 도망가는 특징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바르그가 도망 모드가 된다는 점이었다.
바르그는 기본적으로 이동 속도도 빠르고 심지어 다크 템플러의 상태 이상 디버프도 통하지 않아, 상당한 골칫덩이기도 했다.
잘 모르는 이라면 매지션이 광역기로 몽땅 쓸어버리면 되지 않냐, 라고 물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함께 출몰하는 일반 바르그들은 제물 패턴 중에는 ‘무적’ 상태가 된다. 오로지 표식을 가진 바르그만 잡아야 하는 구조였다.
표식을 가진 바르그는 다른 바르그 떼에 섞여 도망만 다니기에, 딜러들의 정확한 조준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표식을 가진 바르그는 방어력이 현저히 낮고, 바바리안과 워로드의 스킬 경직이 적용되는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경직의 지속 시간이 짧은 게 단점이지만, 그 찰나에 조준력과 명중률이 높은 아쳐나 레인저, 매지션이 재빨리 합세해, 이른 시간 안에 죽이는 게 제물 패턴의 핵심이다.
죽어라, 뛰어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합이 잘 맞아야 했다. 또 쫓아다니는 바바리안과 워로드에게 고도의 컨트롤이 요구되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된 이가 호드라, 이노센트. 그리고 노르드연합의 샤봉과 칼릭이었다.
여기에 세인트를 한 명씩 더해, 또 두 개의 조로 나눠 해 표식과 달 표식을 가진 바르그를 쫓을 예정이었다.
함께 보조할 사람은 환경파괴자와 드림드림. 그리고 잡몹 팀과 이동 팀에 속한 아쳐 날개와 레인저 와츠, 마프로. 끝으로 매지션 벨벳루즈로 정해졌다.
매지션인 벨벳루즈도 기본적으로 딜러의 역할을 맡지만, 늑대를 쫓는 임무를 함께 수행한다.
매지션의 저레벨 공격 스펠인 ‘매직 체인’을 활용한 방법이었다. ‘매직 체인’은 지정 대상에게 6초간 연쇄적인 전격 대미지를 주며 빛의 잔상을 남긴다.
표식을 가진 바르그가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매직 체인이 걸린 6초 동안은 낙인이 찍혀 눈에 띄는 셈이다. 무엇보다 벨벳루즈가 워낙 눈썰미가 좋기로 유명해, 바르그를 찾는데 큰 보탬이 되니 든든할 수밖에 없었다.
“브리핑 때 들으니까, 제물 팀은 엄청나게 뛰어다녀야 한다던데. 이노 언니랑 괴자 님 힘들겠어요…….”
걱정 가득한 리디안의 말에 크라이그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요?”
크라이그의 미약한 코웃음에 안쓰럽게 한숨 짓던 리디안의 표정이 단박에 굳었다. 바로 정신 차린 리디안은 이동 팀의 다른 역할을 떠올렸다.
리디안의 이동 팀은 기본적으로 잡몹 팀과 함께 움직이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그러다 두 마리의 보스 중, 한 마리가 디버프 패턴을 사용할 시 바로 리디안이 달려간다.
같은 이동 팀에 속한 팔라딘 드리머, 바드 파파, 세인트 페페가 잡몹으로부터 리디안을 우선으로 호위할 것이고, ONE 길드의 매지션인 벨벳루즈와 레인저 마프로가 주변을 정찰하며 보조 호위한다.
스카디의 영광을 활용한 메인 힐이 아닌, 오로지 여신의 영역을 위한 포지션이었다. 당연히 디버프 패턴이 없을 시에는 스콜과 하티 사이의 가운데를 베이스로 두고 활동한다.
디버프 패턴 외에는 잡몹 팀을 돕는 셈인데, 제물 팀 역시 마찬가지로 제물 패턴이 없을 땐 잡몹 팀을 함께 도울 예정이다.
그렇다고 늑대 동굴의 잡몹 팀이 마냥 쉬울 것도 아니라서……. 가만히 자리에 서서 힐만 외우던 지난 레이드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라, 정말 크라이그 말대로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아차, 하고 깨달은 리디안은 울상을 지며 중얼거렸다.
“…큰일 났다. 혹시라도 보스 두 마리가 동시에, 혹은 연이어서 디버프를 사용하면 어쩌죠?”
그럴 땐 어디부터 먼저 뛰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크라이그가 풉, 하고 웃었다.
“가능성 없지는 않지만, 기존엔 한 마리씩 텀을 두고 썼으니까 일단 걱정하지는 말아요. 만약 그러면 나 있는 쪽으로 먼저 와주면 고맙고요.”
“…음. 그건 좀 생각해 보고요.”
“나부터 풀어 줘야 내가 리디안 님 보호해 줄 수 있을 텐데요?”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은근한 웃음에 리디안은 큼큼 헛기침했다. 하여튼, 잊을 만하면 갑자기 저런 웃음을 두른다니까. 무안함에 슬그머니 아래로 떨어지는 리디안의 시선에 크라이그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한쪽 전멸하면 바로 다른 놈이 합체하러 뛰어와서 사실, 어딜 가도 소용없어요.”
“…윽. 그냥 딱 가운데서 물리 팀이랑 마법 팀한테 힐이랑 영역이랑 같이 들어가면 좋을 텐데.”
“그게 가장 베스트긴 하죠. 근데 아무래도 보스들 거리가 좀 멀어서……. 리디안 님은 열심히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어요.”
웃음 섞인 크라이그의 목소리에 리디안은 무거운 한숨을 뿜었다. ‘죽사막’ 때도 그랬지만, 뛰는 건 정말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변수 때문에 생겨난 포지션이긴 한데. 어려울 것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네―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저도 모르게 한숨만 푹푹 내쉬는데, 게이트 바로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사람 진짜 많네? 이게 다 레이드 인원이라고? 오, 친목 길드까지 있네? 어어, 샤봉 님 하이요! 여기 와서 처음 보네요? 칼릭 님도 저 알죠? 예전에 우리 같이 피케도 하고 그랬을걸요? 어, 혹시 노르드연합 님들도 같이 레이드 가는 거? 다른 길드랑 같이 간다더니, 그게 샤봉 님네였구나? 오! 청풍명월도 있네? 대박, 이번에도 완전 재밌겠는데? 어디 보자… 누가 또 있나?”
멀리서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리디안은 윽, 하며 찌푸렸고 크라이그도 단번에 정색했다.
다람의 하나뿐인 연락책인 크라이그는 깊이 한숨 쉬었다.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들의 요청으로 다람에게 협조를 요청했지만, 사실 다람이 귀찮음을 이유로 내심 거절하길 바랐다.
지하 도시 때야 다람의 아이템이 필수적이라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이번 동굴에서는 다크 템플러의 직업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다람이 내내 입을 다물 위인도 아니었기에 크라이그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만 연달아 쉬었다. 다른 의미의 지옥 게이트가 열린 것 같다고 말이다.
“어, 어! 윤재다. 야! 윤재! 어, 리디안 님도 있다!”
어느덧 크라이그를 알아본 다람이 해맑게 손을 들어 외쳤다. 고독한이 목줄 쥐듯 뒤에서 목덜미를 잡지 않았다면 벌써 뛰어왔을 것이다. 덩달아 위치를 발각당한 리디안은 다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뭐야. 어디 가요.”
눈치 빠른 크라이그의 눈매가 실룩였다. 리디안은 땀을 뻘뻘 흘리며 웃기만 했다.
“오랜만에 만나셨을 텐데, 자리 비켜 드리려고요.”
“리디안 님도 오랜만에 다람 형 만났잖아요. 그리고 저번에도 나 두고 도망간 거 같은데?”
날 두고 어딜 도망가느냐는 날카로운 눈빛에 리디안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벌써 다람에게 기를 빨리고 싶지 않았기에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약 오른 크라이그가 손을 붙잡으려 하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리디안이 빨랐다. 잽싸게 거리를 벗어난 리디안은 뛰어오는 다람을 보자마자 그대로 줄행랑쳤다.
혼자 남은 크라이그는 차마 리디안을 뒤쫓지 못하고, 똥 씹은 표정을 한 채 다람을 맞이해야 했다. 그 속도 모르고 다람은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윤재! 윤재! 어, 근데 리디안 님 방금 계시지 않았나? 어디 갔어? 솔직히 너 말고 리디안 님 반가워서 뛰어온 건데? 뭐야, 어디 가셨어. 설마 나 피해서 도망간 거 아니지? 와, 상처받을 것 같다. 뭐야, 빨리 찾아와! 리디안 님! 어딨음?”
집요하게 두리번거리는 다람의 눈짓을 피해, 리디안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 슬금슬금 자신의 파티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 피해 봤자 소용없었다.
하필 다람이 잡몹 팀의 다크 템플러로 확정된 상황이라, 불행하게도 레이드에서 함께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래도 초반부터 기가 빨릴 필요는 없지 않겠냐며, 리디안은 스스로를 애써 합리화했다.
“아, 리디안 님 오셨네요.”
레인저 마프로와 대화 중이던 페페가 리디안을 반갑게 맞이했다. 마프로도 이젠 리디안이 익숙한지 털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세심하게 75레벨 달성을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후로 잠깐 함께 떠들던 마프로는 9강 신화 와츠의 부름에 자리를 비웠다.
“이번에도 또 같은 파티네요. 잘 부탁드려요, 리디안 님.”
“제, 제가 더 잘 부탁드려요!”
리디안은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페페는 리디안이 여신의 영역을 사용하는 동안, 대신해 보조를 맡기로 했다.
감히 페페를 자신의 보조로 사용하는 느낌이라, 리디안은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페페는 아직도 리디안의 선배 세인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페페는 그런 리디안의 마음을 바로 알아채곤 빙긋 웃어 보였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신호 오면 이동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잖아요.”
나름대로 돌려 말해 자신을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지만, 리디안은 여전히 어려운 듯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솔직함과 따스함에 페페의 입가가 더욱더 올라갔다.
“저번 산맥 사냥 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라 더 좋아요. 계속 기회가 주어지는 느낌이라서요.”
“네? 기회요?”
반문하는 리디안을 향해, 페페는 쑥스럽게 웃음 지었다.
“솔직히… 게임 때는 레벨 차이 때문에 리디안 님이랑 같이 사냥 다닌 적이 별로 없었잖아요. 근데 지금은 사냥도 자주 하고 레이드도 같이 돌아서… 그때보다 확실히 더 친해진 느낌이 들거든요.”
말하면서도 무척 부끄러운지, 페페도 볼을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드물게 듣는 페페의 속마음에 리디안은 미안한 표정을 내비쳤다.
페페의 말마따나, 게임 때는 페페가 같이 어딜 가자고 권유해도 괜찮다며 거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땐 부족한 스펙 때문에 페페의 짐이 될까 봐 그런 건데, 설마하니 페페가 마음에 담아 두고 있을 줄이야.
그걸 생각하니, 게임 때의 행동이 후회되기도 했다. 이곳에 와서 페페를 그렇게 반겼으면서, 그땐 왜 그랬나 하고 말이다. 물론 그 당시엔 여러모로 방어할 것이 많아 그랬다지만, 달라진 지금 관점으로 생각하면 참 이해 못 할 행동이었다.
리디안의 미안한 눈짓에 페페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앞으로 더 자주 사냥 다니면서 더 친해지면 되겠죠?”
“네? 그럼요. 저도…….”
해쭉 웃던 리디안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지금도 충분히 친한 거 아닌가? 혹시 친구 목록의 친밀도 수치 때문에 그러신 건가? 섭섭하지 않게, 내가 먼저 앞으로 더 자주 연락해야 하는 건가? 페페의 진의를 알 수 없어 알쏭달쏭하던 때였다.
“파티장 분들! 자기 파티 챙겨서 바로 동맹 진행해 주세요!”
신사의 외침에 곳곳에서 허공을 두드리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페페도 마찬가지였다.
[페페 님으로부터 파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 / N]빠르게 들어온 요청을 수락하자, 같은 이동 팀인 드리머, 파파, 벨벳루즈, 마프로의 머리 위로 게이지가 떴다.
[마제스티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레온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풍월주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오토마타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관우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백검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캐티스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포푸리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 [샤봉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이후로 동맹까지 척척 진행되자 다른 플레이어의 머리 위로도 게이지가 우후죽순 떠올랐다.
덩달아 머리 위 게이지 바까지 겹쳐 바글바글해진 광경에 리디안은 와, 하고 감탄했다. 이만한 대인원의 동맹은 정말이지 언제 봐도 대단했다.
“바로 맵으로 진입할게요!”
좀 다급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전에 태양 연합이 레이드를 위해 붉은 산맥에 들어가 있는 터라. 각자의 레이드 후, 신전을 두고 경쟁해야 했기에 간부들은 다소 예민한 상태였다.
“그럼 우리도 갈까요?”
생긋 웃는 페페의 웃음에 대꾸하면서도, 리디안은 서둘러 장비 창을 열었다. 항상 차고 다니던 것들이라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아이템을 체크한 리디안은 들뜬 마음으로 게이트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