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72
72화
“곧 50% 아래로 떨어집니다. 이제 좀 패턴이 변하고 몇 개 추가될 겁니다. 우선 힐러랑 메인 딜러 위주로 나무 감옥 디버프 들어올 건데, 이건 해제 불가입니다. 10초 기다리면 풀리니 대기해 주시고요. 메인 공격인 가지 채찍에 기절 상태 이상 추가되니 디버프 담당분이 신경 써주세요. 인질한테는 HP 흡수 패턴 추가되니 메인 힐러분들이 잘 봐주시고요. 특히 보조 딜, 탱분들은 나무 정령이 가까이 못 오게 가드해 주세요! 여기서 대미지 더 증폭되면 골치 아파요!”
할 일이 늘어나자 여유롭던 힐러들의 표정이 단박에 구겨졌다.
나무 감옥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던 리디안은 여러 차례 긴장을 삼켰다. 그리고 한참 뒤, 동시다발로 생겨난 감옥에 포함되며 패턴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표시 없이 발밑에서 솟아오른 나무 덩굴이 온몸을 칭칭 옭아맸다. 압박감은 없지만, 특수 상태인지 움직일 수도, 스펠을 외울 수도 없었다.
몇 명의 움직임이 봉쇄되자 남은 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메인 힐러인 리디안이 봉쇄당하자 이모탈의 입도 바빠졌다. 하지만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재수 없게 두 사람이 동시에 걸리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리디안은 감옥 패턴에도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이후로도 바뀐 공격 패턴을 맞이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이곳에서의 레이드가 처음인 도도, 시우, 페이지는 마제스티의 지시를 착실하게 이행했고 네임드다운 공격력을 보여 줬다.
“그래도 ONE 덕분에 미리 공략대로 대비하니 어려울 일은 없네요. 저번처럼 당황할 일도 없고.”
한참이 지나, 가까이 있던 앵두군의 말에 이모탈과 리디안이 깊게 동의했다.
마녀의 무덤 때는 바뀐 변수에 대해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한 명도 죽지 않고 클리어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대견스럽긴 하다.
“어, 쓰렉 놈 시체 사라졌다.”
“뭐야, 벌써 10분 지났어?”
“보스도 다 잡아가네.”
“뭐야, 인간 타이머임? 우리 알람 해주려고 일부러 와서 뒤진 거 아니지?”
사라진 쿠렉의 모습에 또 한 번 폭소가 터졌다. 지금쯤 게이트 앞에서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을 거라고, 누군가의 예언에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윤재, 진짜 신의 한 수였다. 간접 PK, 몹사 오졌다, 진짜.”
“야, 그래도 그렇지. 재수 없어서 검닉 됐으면 어쩌려고. 그리고 그 새X 빡쳐서 우리 길드원 공격했으면? 진짜 겁도 없이 바로 공격기를 넣냐?”
“나도 한 대 치려다가 망설였는데, 검닉 될까 봐. 하필 피가 500 아래라, 타이밍 맞추기가 어렵더라고.”
몇몇 질타에도 크라이그는 심드렁했다. 어차피 섀도우 헌터는 다수 공격 스킬도 거의 없고, 반격할 정도로 시간도 없었던 데다, 검닉 됐어도 별문제 없다는 눈치였다. 역시 배짱이 어마어마했다.
다들 쿠렉 얘기로 떠드는 사이, 고목나무 왕의 HP는 10%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다 잡은 것과 다름없어 모두 긴장을 풀고 떠들고 있었다.
모두가 여유로운 그 안에서도 조바심 깊은 몇몇이 잔뜩 긴장한 채로 집중했으나, 별일은 없었다. HP 5%가 남은 시점에서 도도가 소환수 자폭 스펠인 ‘군주를 위한 희생’을 사용했고, 동시에 쏟아진 딜러들의 공격기에 고목나무 왕이 쓰러졌다.
쿵, 무너진 거목의 모습에 리디안은 다소 기대에 찬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고목나무 왕이 사망했습니다.] [굵은 거목의 신념 을 입수했습니다.] [불멸자의 원한을 품은 로브 를 입수했습니다.] [블리자드 스톰 을 입수했습니다.] [경험치가 11,210 올랐습니다.] [685,000 골드를 입수했습니다.]반짝이던 리디안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이템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드롭된 것들은 70레벨 초반에나 인기 있을 보급형 유니크들이었다.
그래도 블리자드 스톰은 나쁘지 않았다. 매지션의 70레벨 공격 스펠로 성능이 좋아 수요가 좋은 편이었으니까.
살짝 고개 돌려보니, 다들 드롭 상황이 비슷해 보였다. A급 난이도라 해도 맵 자체가 헬하임에서 가장 낮은 난도에 속한 곳이라 그런지, 드롭 수준이 높지 않은 듯했다. 좋아하는 사람은 70레벨 전후의 중저레벨 길드원들뿐이었다.
그제야 리디안은 자신이 이미 아이템을 다 맞춰 눈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스카디의 영광에 프레이야의 지혜 세트를 구비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아이템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 뒤늦게 깨달은 리디안은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렸다.
“오예! 스톤 떴다!”
“여기서 젤 좋은 건 스톤밖에 없지? 스펠도 거진 70레벨 기준일 거고.”
“흠. 산맥 정도는 돼야 종결 템이 쏟아지는 건가?”
“저번 죽사막에서 짜릿한 맛을 봐서 그런가, 만족스럽지가 않네.”
“근데 A급인데 왜 이렇게 쉬워?”
“뭐, 공략도 완벽했고. 지난번 죽사막 레이드에 비하면 애교지.”
“맞다. 태양 애들 레이드 돈다며, 죽사막으로. 언제래?”
“걔네 아직 파티도 못 짰을걸? 곧 돈다, 돈다고 하더니. 깜깜무소식임.”
“아마 힐러 모자라서 여기저기 찔러 보고 있을 거다.”
“X신들.”
다들 왁자지껄 떠드는 사이, 두리번거리던 리디안은 살짝 찌푸려진 크라이그의 표정을 목격하곤 풋, 웃었다. 딱 봐도 또 이상한 아이템을 먹은 게 분명했다.
순간, 장난기가 생겼다. 평소 놀림받던 일도 있었고, 이 기회에 복수나 할까 싶어 리디안은 히죽 웃었다. 일반 몹도 다 정리된 터라 리디안은 그대로 다가가 기웃거렸다.
“크라이그 님, 이번에는 좋은 거 먹었어요?”
표정만 봐도 아닌 걸 알면서도, 리디안은 굳이 그렇게 물었다. 당연히 놀리기 위해서였다. 그 빤한 속내를 알아챈 크라이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뇨. 전 안될안이라서요. 리디안 님은 또 좋은 거 먹었나 봐요?”
“아마 크라이그 님보다는요?”
어쩐지 뿌듯한 웃음이었다. 크라이그는 기가 차면서도, 오늘은 저를 놀리겠다고 다가와 우쭐대는 모습이 귀여워 오랫동안 실소를 흘렸다.
“그러네요. 리디안 님은 축캐니까 저보다는 좋은 거 나왔겠네요.”
“저도 뭐 그닥 좋지 않긴 해요. 그래서 크라이그 님은 뭐 먹었는데요?”
“고목나무 꽃이요.”
크라이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하나 꺼내 보여 줬다. 동백꽃을 닮은 빨간색의 커다란 꽃 한 송이었다.
리디안은 와, 하고 감탄했다. 생화의 느낌은 없는데, 뭔가 반짝반짝하고 딱딱한 것이 꼭 보석 같았다. 리디안은 꽃 아이템을 이리저리 살폈다.
“장비는 아니고. 음… 일반 아이템인가 봐요?”
“네. 그냥 교환용 재료일 거예요.”
“형! 형! 그거!”
아이템을 요리조리 살피는 사이, 저 멀리서 테세우스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재빠르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테세우스는 크라이그 손 위에 놓인 고목나무 꽃을 보며 아는 척했다.
“형, 이거 NPC한테 가져가면 보석으로 교환할 수 있어요. 그걸로 연금술사가 네르투스 상자 만들 수 있고요. 저한테 재료 남는데, 하실 생각 없어요? 꽃 하나에 상자 다섯 개는 나와요. 이건 일반 아이템이라 사용 가능할걸요? 그리고 제가 그냥 공짜로 만들어 드릴 수 있음!”
네르투스 상자? 어디서 들어봤는데? 리디안이 갸웃하는 사이, 크라이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급형 랜덤 박스? 그거 캐시 템보다 확률 낮잖아.”
네르투스의 상자는 연금술사가 제작할 수 있는 랜덤 박스로, 일종의 이벤트 레시피였다. 이른바, 서민용 랜덤 박스.
아이템이 복합적으로 나오는 캐시 샵의 랜덤 박스와는 달리, 네르투스에서는 모든 장비류 아이템만 특정 확률로 나온다. 그 장비에는 종결 템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어, 흙수저들이 기를 쓰고 재료를 모아 연금술사에게 제작 의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한때 ‘썩고목’이 인기 레이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과금, 확률 게임답게, 당연히 특정 아이템의 확률은 극악. 캐시 아이템의 발끝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로 역시 돈이 최고다, 라는 명언을 남긴 채 플레이어들의 시간만 잔뜩 잡아먹고 그대로 잊힌 비운의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크라이그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네르투스 상자엔 흥미가 없었다. 그거 지를 바엔 현질 해서 캐시 샵 랜덤 박스를 지르고 말지. 그래서 관심 없다며 테세우스를 밀어냈지만…….
“와, 거기서 종결 템도 뜬다면서요. 테세우스 님이 재료도 지원해 주신다는데, 한 번 만들어서 열어 보면 안 돼요? 다섯 개나 되고, 또 공짜 랜덤 박스잖아요. 조금 궁금한데…….”
조심스러운 요청에 크라이그가 멈칫했다.
랜덤박스의 참맛을 모르는 무과금러가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 참맛을 모르니 혹시― 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거다.
순수한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에 크라이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럼… 아이템 줄 테니까 리디안 님이 만들어서 열어 볼래요?”
불쑥 아이템을 내미는 손길에 리디안은 황급히 손사래 쳤다.
“아뇨! 이건 크라이그 님이 해야죠!”
“왜요. 리디안 님 축캐잖아요.”
“제 아이템은 아니잖아요. 주신다고 해도 다른 사람 걸 가로채는 느낌이라 싫어요.”
이런 부분에서는 쓸데없이 완고했다. 테세우스도 어쩐지 해보라는 눈치였고, 크라이그는 끈질긴 눈빛에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가던 이노센트도 한마디 했다.
“우리 리디가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봤네. 종결 템 나올 확률이 1%도 안 되는데 말이지.”
“어휴, 1%면 양반이지. 종결 템이면 0.005% 정도일걸?”
“캐시 랜박도 최고 좋은 템 확률 1%는 되지 않아?”
“에이~ 그 확률 의미 없는 거 다들 알면서. 네르투스는 그냥 돈 없는 플레이어 엿 먹이려고 만든 템이죠. 꼬우면 캐시 지르라는 뜻으로.”
“캐시 랜박도 솔직히 우롱이지. 드롭 템별로 확률 공개 투명하게 안 하는 거 보면 뻔하지.”
랜덤 박스 인성질에 하도 당해 해탈한 이노센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그 얘길 듣곤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기대하는 건 리디안을 비롯한 무과금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다들 극악의 확률을 몰라 순박한 눈을 반짝거렸다.
“길드원분들! 고목나무 레이드 바로 해산할게요! 저는 신세계 길마 조지러 가야 해서, 먼저 실례할게요!”
뒷정리도 하지 않고 마제스티가 급히 자리를 떠났다. 어지간히 빡친 모양이라고, 부길드 마스터와 간부들이 급히 그 뒤를 뒤따랐고 남은 길드원들도 재잘거리며 입구로 향했다. 리디안 때문에 자리를 지키려던 테세우스는 늘 그랬듯, 일반인에게 끌려갔다.
남은 건 리디안과 크라이그뿐이었다. 리디안은 저 혼자인 것에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네르투스 상자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이고 약간의 작은 희망에 대한 욕망이 더 컸다.
크라이그는 눈빛으로 재촉하는 리디안의 모습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지만, 리디안이 원하니 만들어 보여 주는 수밖에…….
“그래서 어디로 가면 돼요?”
다소 신이 난 물음에 크라이그는 아이템을 들어 확인했다.
[고목나무 꽃] [‘고목나무 왕’이 흠모하는 ‘베르단디’에게 바치기 위해 간직하고 있던 희귀한 꽃. ‘베르단디’가 몹시 좋아한다. 세계수에 머무르는 ‘베르단디’에게 가져가면 소정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