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29
229
* * * *
9월 22일의 아침.
강석이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곳에서 비밀스럽게 나무를 다듬는 그 시각.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끌어내!”
대한민국 미술대전 전시회장에서는 때 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
서울 일러스트페어나 아트페어 열린 것처럼 소란스러웠던 전시회장이 얼음처럼 얼어붙은 상황. 한 남자만이 고요한 침묵 속에서 유일한 불협화음처럼 쩌렁쩌렁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입 막고 조용히 끌어내!”
“힘 빼! 힘 빼라고!”
“으아아으읍! 으으읍!”
붉어진 얼굴. 맨살이 드러날 정도로 끊임없는 몸부림. 거의 상의가 반쯤 벗겨진 상태로 끌려나가는 사내를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침묵 속에서 누군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전시회장, 특히 일주일째 전시중이던 앞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일행을 돌아보았다.
놀람과 당황으로 상기된 낯을 한 몇몇의 사람들은, 사내를 끌고 나가는 경호 인력을 응시했다. 또 몇몇은 경호 인력 중에서 사람들을 진두지휘하는 장정의 손에 들린 것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망치.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공구함에서나 볼법한 망치였다. 끌려나가는 사내에게서 압수한 물품이었다. 귀에 꽂은 인이어 무전기를 통해 장정이 누군가에게 상황을 전달하며 멀어지는 걸 지켜보던 관람객 중 젊은이 몇 명이 숨을 터트렸다.
“미친···”
“찍었어?”
“어. 나 지금 업로드 중.”
정영호가 핸드폰을 친구들에게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로 귀끝까지 붉어진 채였다. 강석의 고교 동창이자 불상제작을 의뢰해 을 탄생시킨 불상제작동아리 부장으로서 이 일은 용서 못한다.
“내가 총대 맨다.”
“너 그러다 개인정보보호법이랑 초상권 침해로 고소 먹어.”
“고소하라 그래.”
감히 을 망치로 찍어내리려고 하다니. 이건 용서할 수 없다. 정영호가 울분을 터트리듯 엄지로 타자를 빠르게 쳐내렸다. 지켜보고 있던 청화예고 동창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초상권 침해로 인한 벌금은 통상적으로 30만원 내외다. 초상권 침해의 대상자 즉,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범위에 따라 상이해지지만 정도가 미약하다면 딱 그 정도였다.
“냅둬. 정영호 쟤 강석 팬카페까지 가입한 골수팬이야.”
“나만 가입했냐?”
“그나저나 내가 이런 걸 실제로 목격할 줄은 몰랐다. 와. 심장 아파. 그러니까 이거 뭐야···그 조각상에도 이런 일 있었잖아. 어디였지? 그 코랑···”
정영호와 같이 불상제작동아리였던 최이삭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흐렸다. 그 사이를 박혜연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눈은 저 멀리 사라져가는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빛은 굉장히 서늘했다.
“라슬로 토트 반달리즘 사건.”
“어어 맞아!”
1972년 5월 21일.
라슬로 토트라는 이름의 호주인이 본인을 예수라 주장하며 망치를 들고 갑자기 상을 15번을 내리쳐 코와 눈이 훼손되고, 그리고 한쪽 팔과 손가락마저 떨어져나간 반달리즘 사건. 실제로 그 당시에 30여조각이 소실되었고, 는 복원되었으나 30여조각은 결국 되찾지 못했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실제로 그때부터 역사적인 작품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전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곤 했다.
“방금 그렇게 될뻔한 거잖아. 와. 진짜···와, 나 손에 땀 맺혔어. 다리가 후들거린다.”
최이삭이 마른 세수를 했다.
대한민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신예의 작품이 박살날 뻔했다. 물론, 복원할 작가도 살아있고 작품이 탄생된지는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작품이 박살나도 되는 이유는 아니었다.
“가만 보면 이 새끼들이 예술 작품에 지들 분풀이를 해대.”
“그니까!”
“어떻게 저렇게 아기 동자들이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작품을 내리칠 생각을 하지? 저건 무슨 개또라이냐.”
“또라이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아냐.”
동영상을 올려버린 정영호가 말을 거칠게 내뱉었다. 천벌받을 놈. 강석의 작품을 좋아하는 정영호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씩씩거렸다.
그런 정영호를 진정하라고 달래던 주솔찬이 주변을 돌아보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영훈은 없네?”
“···너 모르냐?”
“뭐가?”
“이영훈 그놈 이번에 미술대전 구상부문 대상 먹고 군대 쨀려고 했다는거 들켜서 매스컴 탔잖아. 병역비리. 몰라?”
“············어어?! 우리가 아는 그 이영훈? 그 찡찡이가?”
“야, 주솔찬 요즘 복수전공으로 회화 선택해서 야작 투트랙 하느라 정신없잖아. 봐줘라.”
“그래도 뉴스 좀 보고 살아라. 그것 때문에 요즘 대한민국 미술협회 이사장부터 물갈이 해야 한다고 난리인데 그걸 모르고 있냐.”
“그건 맞지.”
“아! 열받아! 맞아. 생각해보니까 솔직히 방금 끌려간 놈도 협회 지금 정신없다는 거 알고 경호 부실할 줄 알고 온 거 아니야? 이···!”
정영훈이 씩씩거리며 음모론을 조성하는 말에 최이삭도 일리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긴, 솔직히 요즘 협회에서 전시회장 그냥 도루묵 방치해둔건 맞지. 내가 저번에 미지선배한테 전해들었는데 고두한 쌤이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경호원들도 강석이 개인으로 고용한 인력이라고 했대. 그 씨엘로 갤러리? 거기랑 협력업체인 곳에다 하청넣었다고 하던데?”
“뭐?”
“그거 진짜야?”
“어. 진짜라니까? 미지선배 고두한 선생님 작업실 소속이잖아. 고쌤 강석이랑 친하고. 알지?”
“와······그럼···와! 이건 진짜 충격이네. 이거 뉴스에 제보하면 이번에 대한민국 미술협회 싹 다 갈려나가는 거 아니야? 병역비리에 안전문제까지 터졌잖아···!”
주솔찬이 하는 말에 정영호, 박혜연, 최이삭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았다.
···진짜 될 지도?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강석이었다. 강석이 병역 비리로 대상을 놓칠 뻔했고, 안전 문제 부실로 인해서 교황청과 봉은사 그리고 불교 단체 몇몇과 사우디의 아슈라 왕자까지 탐내었던 강석의 이 망가질 뻔했다.
“이거 잘하면 스노우볼이 제대로 굴러가겠는데···?”
“야, 박혜연. 너 방송국 쪽에 아는 인맥 있지. 너네 어머니 완전 청담동 마당발이시잖아.”
“···연락 넣어볼게.”
“정영호. 너 아까 영상 처음부터 찍었지?”
“어, 완전 처음부터. 나 아까부터 팬카페의 인증후기 올린다고 계속 찍고 있었잖아.”
강석은 작품에 대한 사진 촬영과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차피 작품은 실물로 보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촬영에 관대한 편이기도 했다.
“좋아. 이거 한 번 제대로 굴려보자.”
넷이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전시회장 구석에서 조용히 한쪽 손을 뻗어 크로스를 맺었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크로스!
주솔찬의 해맑은 외침이 전시회장 구석에 울려퍼졌다.
강석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작업을 하는 사이. 강석이 모르는 곳에서 작은 눈덩이가 굴러가고 있었다.
* * * *
고요한 작업실.
강석의 조각도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탁탁 조금 거칠게 작업실 귀퉁이를 적셨다. 강석은 일반적인 나무 조각도보다 훨씬 미세하고 얇은 조각도로 아주 천천히 목재를 다듬고 있었다.
이미 수족관 같았던 대형 목재는 수직으로 4개의 구역이 나뉘어진 채였다. 멀리서 보자면 꼭 거대한 인형의 집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었다.
문이 달린 앞쪽 벽면만이 박살난 것 같은 건물의 구조는 시원시원했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연스러운 동굴처럼 각 층별로 아직 깎이지 않은 나무 덩어리들이 잔뜩이었다.
강석은 그 나무 덩어리들을 살금살금 다듬고 있었다. 살살살 칼로 연필을 깎듯 조금씩 조금씩 나무 덩어리의 겉면을 다듬어가며 강석은 후, 하고 작은 바람을 불었다.
쌓여있던 나무 껍집들이 가을 낙엽처럼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석은 급할 거 없다는 듯 물티슈로 특수제작한 조각도의 날을 닦았다. 0.5cm 아니, 0.3cm도 안될 것 같은 조각도의 날에 묻어있던 미세한 가루들이 떨어져나간 것을 확인한 강석이 이번에는 린넨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나무 목재를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지하수에 파여진 동굴처럼 이리저리 깔끔하게 잘려나가지 않아 덩어리진 귀퉁이들과 동굴에 생겨난 석순과 종유석처럼 이리저리 뻗어난 돌출물들이 있는 나무 목재의 한쪽을 강석이 조각도로 쓰다듬었다.
칼을 갈듯 조각도로 나무 목재를 돌삼아 밀 때마다 돌출물의 뭉툭한 끝이 다듬어져갔다. 강석은 이 돌출물들과 덩어리들로 이 황량한 인형의 집 같은 목재를 꾸밀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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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햇빛을 닮은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나무 목재 구석구석을 비추며 강석이 미간을 좁혔다. 그즈음 강석은 나무 목재 아래 받침대에 줄지어놓은 조각도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방금까지 사용하던 0.1cm 조각도보다도 훨씬 얇은 날을 가진, 날이 0.04cm 정도 되어보이는 조각도였다. 강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날이 0.02cm 정도 되어보이는 건들면 베일 것 같은 가시같은 조각도로 바꿔 들고는 의자를 돌려 앉았다.
메스보다도 날카로워보이는 조각도 두개를 양손으로 각각 하나씩 잡고는 수술을 하듯 목재를 만져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초소형 물레 위에 흙을 놓고 도예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초소형 실 뭉터기를 뜨개질 바늘로 풀어나가는 것 같기도 했으며, 외과의사의 수술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강석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도 그가 한번 목재를 핥퀼 때마다 그냥 나무 뭉터기였던 돌출물들은 하나의 조각상이 되어갔다.
아주 얇고, 얇게, 또 얇게, 겨우겨우 균형만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 나무 껍질 사이로 강석이 조명을 당겼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조명 아래 빛나는 주홍빛 조명이 나무껍질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그리고 밀빛에 가까웠던 나무껍질이 햇볕을 머금듯 주홍빛으로 물들어갔다.
그 사이로 조각된 천사상과 천사가 들고 있는 물병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황금처럼 물들어져갔다. 다 나무로 만든 조각이었다.
마치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르네상스식 조각상들이 즐비한 4층 건축 모형을 완성시킬 기세로 강석은 양손을 움직였다.
만약 누군가 이걸 지켜보고 있으면 누가 봐도 작품을 만드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누가 이게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전에 예열용 손풀기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강석은 진짜 돌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돋보기도 끼지 않고 1cm 반의 반절도 되지 않는 나무 손을 다듬는 적갈색 눈동자가 열망으로 반짝거렸다.
이걸 언젠가 실제로 조각할 생각을 하니까 신이 났다.
한 번 연습했으니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양손의 조각도를 들고 나무를 괴롭혔다. 강석의 바닥에는 나무껍질과 가루들이 지금까지의 강행군을 증명하듯 낙엽처럼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행위는 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점점 그저 통짜 나무였던 것은 조악한 DIY 인형의 집에서 고급스러운 인형의 집, 나아가 하나의 작품으로 변모해갔다.
그저 덜 깎인 나무덩어리 흔적이었던 것들은 아름다운 돔이나, 기둥 장식과 창문으로 바뀌어나갔고 석순을 닮은 조각상들은 세공이 들어간 목욕탕의 구조물과 조각들로, 그리고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어 땅에 닿을 것 같았던 종유석을 닮은 돌출물들은 샹들리에와 공중장식들로 바뀌어갔다.
인테리어를 바꿀 일이 없다는 듯 모든 것이 하나의 나무로 이어져있는 건축 모형은 끝도없이 화려해져갔다.
이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나, 수준으로. 강석은 그럼에도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마치 열흘 가까이 작업하지 못했던 한을 풀듯이 강석의 손이 움직였다.
그렇게 아침에 시작된 작업이 밤 늦게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 순간. 정적 속에서 진동 한 번이 울렸다. 강석은 무시하고 계속 손을 움직였다. 그때 연속적으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기계처럼 손을 움직이던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가 핸드폰을 향해 돌아갔다. 약간의 짜증이 담겨있던 적갈색 눈동자에 익숙한 글씨 하나가 맺혔다.
[시모레 카사니]피렌체로 보냈던 친구로부터의 연락이었다.
230. 그것을 해야 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멋져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