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91
091화
“섬이 소란스럽군.”
카츠 카이슈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창문을 열어 창밖을 보니, 감옥을 지키던 병사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쾅쾅!
병사들의 뒷모습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카츠 카이슈는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두들기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들어올 것이지, 문은 왜 두드리는 것이오.”
“카츠. 나, 오쿠보다.”
“오쿠보?”
오쿠보 데이다라.
그는 카츠 카이슈와 같은 사쓰마 번의 가신 출신이었다.
카츠 카이슈가 문신이라면 오쿠보 데이다라는 사무라이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지금은 둘 모두 구치노시마 섬에 유배된 처지였지만 말이다.
벌컥.
곧 문이 열리더니, 오쿠보 데이다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어떻게 밖으로 나온 건가?”
“별거 아니야. 간수들이 다 도망쳤거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수용소를 지키는 간수가 어디로 달아난단 말인가.
“내가 우연히 간수들이 하는 대화를 들었는데, 지금 섬에 도이 놈들이 쳐들어온 모양이야.”
“도이? 류큐를 침략했다는 그, 대두국이란 자들을 말하는 건가.”
“그래, 대두국.”
카츠 카이슈는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쓰마의 영토가 대두국이란 국가에 침략을 받은 것.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에겐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이 섬에 갇힌 순간부터 사쓰마 번은 그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번이 되었으니 말이다.
“대두국의 병사들이 우리를 죽이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그들이 우리를 죽일 걸 걱정할 게 아니라,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 게 맞지 않겠어?”
“사쓰마에서 벗어날 생각인가?”
“나는 이런 곳에서 죽을 사람이 아니거든.”
오쿠보 데이다라의 말에 카츠 카이슈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기회라면 기회였다.
이 빌어먹을 유배지를 빠져나갈 기회.
‘그런데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일본 국내로는 어디로 도망쳐도 의미가 없었다.
설령 쇼군이라 해도 굳이 사쓰마와 척을 지면서까지 그를 지켜줄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대안은 외국뿐이었다.
“어디로 갈 거지?”
카츠 카이슈는 그리 물으면서 그 역시 속으로 어느 나라로 갈지 고민하였다.
‘조선에 갈까? 아니면 명? 대륙의 강자로 새로 떠오르는 청나라도 나쁘지 않을 수도.’
그가 언급한 나라 중 어떤 나라와도 인연이 없었지만,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때 규슈 최고의 천재라 불리던 그였다.
그가 가진 능력이라면 어떤 나라에서도 나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는 김에, 그들의 나라에 정착해볼 생각이다.”
“대두국에 정착한다고?”
오쿠보 데이다라의 말에 카츠 카이슈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던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신생 국가잖아. 얼마나 기회가 많겠어?”
“하지만 그들은 사쓰마와 전쟁하고 있다.”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니겠어?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내 말은, 사쓰마와의 전쟁에서 패하면 류큐처럼 사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더는 사쓰마에 애착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쓰마의 강함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아는 대두국은 약소국이었으니 사쓰마를 상대로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쎄. 대두국이 류큐처럼 약하지는 않을걸? 그들이 약했다면 사쓰마의 영토인 이 구치노시마 섬까지 공격할 수는 없었겠지.”
카츠 카이슈는 그런 오쿠보 데이다라의 말을 들었음에도 대두국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지 않았다.
대만이란 조그만 섬에서 새로 건국한 나라의 국력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이번 전쟁에 동원한 수십 척의 배가 그들이 거느린 수군의 전부일 것이다.
‘사쓰마를 공격한 건 어디까지나 허장성세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사쓰마 번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수를 저지른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이 같은 카츠 카이슈의 생각은 겨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콰콰콰쾅!
구치노시마 섬은 작은 섬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볼 수 있었다.
근해에 떠 있는 수십 척의 거선을.
그리고 그 수십 척의 거선에서 쏘아대는 엄청난 포격을 말이다.
“허어. 흑선이 여덟 척이나 되다니. 함포도 삼십 문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저 정도 수군이면 어느 정도 수준인 거지?”
“확실한 것은 당(남명)의 지방 정권이 보유할 함대는 아니다. 지금 바다에 떠 있는 저 배들만으로도 소국이 거느릴 함대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말이야.”
오쿠보 데이다라는 크게 감탄하였다.
안 그래도 대두국의 국력을 높게 평가하는 그였다.
그런데 막상 대두국의 실체를 확인하니 자신이 알고 있던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충격을 받은 건 카츠 카이슈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법에 문외한인 그였다.
당연히 배에 관해서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봐도 저 함대의 규모는 작은 나라가 보유한 수군치고 지나칠 정도로 거대했다.
‘신생 국가의 수군이 이 정도라니. 수군을 저리 키웠다는 건, 그만큼 부유하다는 뜻이 아닌가.’
저 정도의 함대를 보유하려면 돈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부어야 했다.
즉, 대두국은 신생 국가이면서 어느 정도 부국강병을 이루었다는 뜻.
카츠 카이슈로서는 자연히 대두국이란 나라에 대해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드는 게 가능할 수도···.’
***
요한은 유배지에 갇혀 지냈던 일본 인재들을 한 명씩 회유하였다.
자신을 왕으로 섬긴다면 엄청난 대우를 해주겠다며 대두국으로 따라오라고 회유하였던 것이다.
“제가 비록 번에서 변절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다이묘를 향한 저의 충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회유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유배지에 갇힌 상황에서도 여전히 시마즈 미츠히사에게 충성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포로로 끌고 다니는 수밖에. 만약 너의 주군이란 자가 너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언젠가 풀려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너는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갈 것이다.”
“······!”
아무나 유배지로 끌고 오지는 않았다.
죽이기에 아까운 인재이거나, 한가닥 하는 집안을 가진 이들만 유배지로 끌려 왔다.
그리고 이를 다르게 말하면, ‘몸값’이 비싼 이들만 유배지로 끌려 온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요한은 사쓰마와 전쟁하는 상황에서도 전쟁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협상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포로의 가치는 대단히 중요하였다.
이들 한 명 한 명이 수십 냥, 어쩌면 수백 냥의 은자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그렇게 다이묘의 충신을 자처한 이에게 비참한 미래를 알려준 요한은 무덤덤하게 ‘다음’을 외쳤다.
다행히도 다음 차례로 면접한 이는 사쓰마에 대한 충성심이 옅어 보였다.
‘문제는 내 신하가 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거지만 말이야.’
요한은 혀를 찼다.
생각했던 것보다 인재를 얻는 게 쉽지 않았다.
이게 다 대두국의 인식이 변방 소국이라 그랬다.
남명이나 청나라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온갖 아부를 떨어댔겠지.
하다못해 조선이었어도,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제시할 선택지는 오직 두 가지다. 대두국의 신하가 되거나, 포로가 되는 것.”
“···전하의 신하가 되겠습니다.”
양자택일을 강요해야 가까스로 회유에 성공하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끌어들인 인재는 전혀 신뢰할 수 없으니, 중요한 일을 맡기기는 어려웠다.
문사든, 무사든 중간 관리자로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사쓰마를 상대로 이긴다면 이들의 생각도 달라지겠지.’
요한이 믿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회유한 이를 돌려보낸 요한은 다시 ‘다음’을 외쳤다.
곧 한 사내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는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강해 보였다.
“오쿠보 데이다라라고 했지? 그대는 여를 왕으로 섬기겠는가, 아니면 사쓰마의 충신으로서 죽겠는가.”
“소신은 처음 전하를 봤을 때부터 마치 주님을 본 거 같은 경이로운 기분을 느꼈습니다.”
“대두국에서 출세하길 원한다면 아부가 아닌, 능력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요한이 그리 지적하자, 오쿠보 데이다라가 당차게 말하였다.
“그럼 지금 전하의 앞에서 제 검술 실력을 보여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라고 하자, 오쿠보 데이다라는 곧 일본도 한 자루를 들고 자신의 검술을 선보였다.
‘검술 하나는 대단하긴 하네.’
흑기군에서도 이 정도로 검술 실력이 뛰어난 이는 없었다.
요한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중히 써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래도 훈련소는 가야 한다.”
“훈련소 말입니까?”
“가보면 알 거다.”
“······.”
오쿠보 데이다라는 요한의 말을 듣고 찝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환하게 웃었다.
어찌 됐든 대두국의 국왕인 요한으로부터 중용하겠다는 확언을 들었으니 그로선 기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카츠 카이슈,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역으로 요한에게 질문하였다.
“제가 대두국의 신하가 되면, 저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까? 대두국의 주류 세력은 당인(중국인)들이라 들었는데, 그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습니까?”
최고의 자리, 즉 재상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의 현재 신분이 일개 포로라는 걸 생각하면 실로 건방진 물음이었다.
사실 이런 성격이 그를 유배지까지 끌려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거침없는 그의 성격은 늘 시마즈 미츠히사의 심기를 건들곤 하였으니까.
물론 요한은 권위보단 효율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즉, 능력만 뛰어나다면 성격이 어떤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요한은 이런 카츠 카이슈의 물음에 당당하게 대꾸하였다.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 뭐, 나보다 능력이 좋다면 왕 자리도 넘겨줄 수 있어.”
“······!”
설마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발언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것인지, 요한의 대답에 카츠 카이슈는 입을 떡 벌렸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는 진심이 아니었다.
아무리 요한이 인재를 중시한다 해도,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까지 넘길 생각 따윈 단 1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거라면 나라를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같이 말했을 뿐.
실제로 재상 정도는 능력만 있다면 언제든 기회를 줄 생각이 있었다.
현 재상(정확히는 국무총리)인 진정부터가 능력만으로 재상이 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더 묻고 싶은 거 있나?”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기독교인인가?”
“그렇습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만 말해주고 싶군. 나의 왕국에서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차별을 당하는 일은 없을 거다. 반대로 특혜를 받을 일도 없지. 단,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카츠 카이슈는 그 말에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차별을 당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두국이란 나라, 대단히 포용성 있는 나라로군. 어떤 사람이든 차별을 하지 않는다니. 심지어 재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지만, 이곳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걸 목표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생각을 해보면 국왕인 요한의 출신부터 대두국에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선인이었으니 말이다.
대두국에 조선인 비율이 얼마나 되겠는가?
카츠 카이슈는 대두국 내의 조선인 비율이, 많아야 수백 명 수준일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요한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두국에서라면 얼마든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
국왕인 요한도 주군으로 섬기기에 무척이나 매력적인 존재였다.
요한은 일본어도 곧잘 하였고, 무엇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
능력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나라를 세웠을 정도니까.
이런 나라라면, 그리고 이런 주군이라면 충성을 바칠 수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