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73
나 혼자 무한 보급! 173화
카일의 시체는 민수의 보관함에 수 습하기로 했다.
사방이 수정이라 묻을 곳도 마땅치 않으니 별수 없는 선택이었다.
“식량도 들락날락하는 데에 굳이 시체를 넣어야 한다니……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도 간 사 람 마지막은 정중하게 대해줘야죠.”
가벼운 불만을 터뜨리는 재열에게 대답하고는 시체를 짚었다.
대충 주워놓은 천쪼가리로 감싸놓 은 카일의 사지 잃은 시체.
짧게 그 앞에서 묵념한 민수가 낮 게 중얼거렸다.
“해당 유해를 보관함으로.”
번쩍!
빛과 함께 사라지는 카일의 유해.
그렇게 마지막 흔적이 사라지자 잠 시 수정의 방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한 달 넘는 사투의 결과는 생각보 다 허무했다.
지금껏 시나리오를 헤쳐 오면서 이 런 결과는 처음이다.
카일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며 민 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게 아니었다면 좋은 동료가 되었을 거야.’
스스로의 삶이 조작되었다는 걸 알 자마자 그는 자살을 선택했다.
이전의 모든 기억을 버려두고, 순 순하게 우리의 앞길을 축복해 줬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들의 든든한 동료가 되었으리라.
그래, 이런 일만 아니었다면.
이런…… 거지같은 일만 없었다면.
“X발 년……
“미, 민수 오빠?”
“가자.”
부릅뜬 눈으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벽에 걸린 무기들을 힐끔거리던 플 레이어들이 허둥지둥 그의 뒤를 따 랐다.
무기들 좋아 보이던데 하나쯤 챙겨 가면 어떠냐.
하나쯤 떠올리고 있을 그 생각들을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화났어.’
옆에서 나란히 걷던 예진이 굳어진 민수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보통 웬만해선 화를 내는 일이 없 던 민수.
그런 그가 지금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
눈에서부터 살기가 흘러넘쳐 감당 조차 못 할 지경이다.
“여긴가.”
그 사이 민수와 일행들은 수정 방 뒤쪽의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바깥의 화사함과는 달리 내부는 새 까만 어둠으로 가득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재빨리 주변 을 경계하는 플레이어들.
그들 앞에서 잠시 숨을 몰아쉰 민 수가 중얼거렸다.
“나와라. 자는 척하지 말고.”
번쩍!
“큭?!”
갑작스레 어둠을 밝히는 섬광.
경계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 히 눈을 가렸다.
느닷없는 조명에 처음엔 습격인가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윽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예
진이 침음을 삼켰다.
“드래곤……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
그 한복판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 는 황금 비늘의 드래곤.
책에서나 보던 공룡 따위는 저기에 비빌 바가 아니었다.
신장은 못 해도 100m. 꼬리까지 감안하면 200m 이상.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위용이었다.
“……정신 나갔네. 저걸 잡아야만 이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덩치가 무슨 항공모함급인데. 체 급 차이 실화야?”
“칼 휘두른다고 박히기는 할까? 아 니, 애초에 잡으라고 있는 놈이 맞 기는 해?”
“그건 해봐야 알겠죠.”
우우웅!
앞서나가는 은비의 검에서 시커먼 검강이 솟구쳤다.
어차피 잡아야 하는 놈 앞두고 궁 시렁거릴 필요는 없다.
들이받아서 각 안 나오면 도망치 고, 아니면 이 자리에서 처치해야지.
“용인 놈들이 이 밑에 있다고 한 선조가 이놈이네. 마침 잘 됐어. 당 장 회를 떠서 육포로 만들어 주
“은비야. 잠시 기다리거라.”
“스승님?”
“귀인께서 무언가 생각이 있으신 모양이구나.”
성질 급하게 나서는 은비를 말리는 갈중혁.
그사이 걸음을 옮긴 민수가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 앞에 섰다.
황금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
그리고 이제 금빛 머리를 가지게 된 보급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광경이라고 생각하며 예진이 입을 열려 할 때.
“ 일어나라.”
푸르릉!
거친 콧김을 뿜으며 드래곤이 번쩍 눈을 떴다.
기겁해서는 냅다 창칼부터 겨누고 보는 주변의 플레이어들.
멍한 눈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쓸어 본 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민수를 발 견했다.
“……마지막으로 눈을 뜬 게 언제 인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온몸이 성대라도 되는 양.
드래곤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하기 그지없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음에도 고막이 터 져버릴 것만 같았다.
눈을 질끈 감은 채 그 소리를 견 뎌내는 이들 앞에서 드래곤이 말을 이었다.
“눈을 뜨니 아카라트의 후손께서 저를 찾아오셨군요.”
“앞으로 이런 날이 영원히 오지 않 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꾸르르르릉!
바위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출렁이 는 황금 비늘의 물결.
천천히 몸을 일으킨 드래곤이 등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날갯짓 한 번으로 생겨난 풍압이 바닥의 먼지들을 휩쓸어버렸다.
자욱한 흙먼지에 사방에서 콜록거 리는 기침 소리.
그 안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 은 채로 민수가 말했다.
“네가 이 미궁의 주인인가?”
“아닙니다. 저는 한낱 문지기에 불 과합니다.”
“문지기?”
“이 미궁은 아카라트의 것. 저 또 한 이 미궁에 속한 자. 그리고 이 미궁을 지배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들은 단 하나, 영광의 아카라트를 승계하는 위대한 초월자들뿐입니 다.” 그게 누구인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묵묵히 그를 올려다보던 민수가 명 령 했다.
“고개 숙여라. 올려다보고 있으니 까 목이 아프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쿠우웅!
얌전하게 고개를 숙인 드래곤이 납 작 엎드려 목을 길게 뻗었다.
항공모함만 한 덩치의 괴수가 강아 지처럼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환일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 민수 출세했네.”
“너무 출세해서 거리감까지 느껴질 정도인데요.”
“드래곤. 너의 이름은 뭐지?”
손을 뻗은 민수가 엎드린 드래곤의 콧잔등을 쓰다듬었다.
말이 좋아 코지, 이미 그 높이만 해도 웬만한 건물 1층에 필적하는 규모.
행여 폐를 끼칠까 조심스럽게 숨을 가다듬으며 드래곤이 대답했다.
“아크라이트. 저의 이름은 아크라 이트입니다.”
“그래. 아크라이트. 우리는 저 밑으 로 내려갈 것이다.”
“주인이 자기 물건을 다루는데 누 구의 허락을 받겠습니까? 뜻대로 하 십 시오.”
허공으로 치솟는 굵직한 꼬리.
황금의 비늘이 춤추며 사라진 자리 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높이만 10m는 되어 보일 것 같은 거대한 문.
아크라이트의 꼬리가 그 문을 두들 기자, 소리도 내지 않고 문이 열렸 다.
“이 너머에 당신이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손에 넣어, 뜻대로 사용하십시오.”
“ 알았다.”
“그리고 당신께서 그럴 마음이 있 으시다면, 부디 저를 거두어주십시 오.”
“거두어‘?”
이건 의외다.
살짝 눈매를 찌푸리자, 아크라이트 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 미궁 밑에서 오랜 시간을 잠들 어 보냈습니다. 이제는 바깥 공기가 그리워지는군요. 그리고 저에게 해 방을 명령할 수 있는 자는 오직 당 신뿐이십니다.”
“……그런가.”
“뜨겁고 노란 태양과 대지의 구수 한 흙냄새, 시원한 바람의 기억이 간절합니다. 부디 저를 이 미궁에서 꺼내주십시오.”
그리 말한 아크라이트가 다시금 얌 전히 눈을 감았다.
비록 생김새는 크고 위압적이지만 그 또한 카일과 마찬가지.
이 저주받고 축축한 미궁에서의 해 방을 갈망하는 자였다.
아크라이트의 콧잔등에서 손을 뗀 민수가 명령했다.
“그렇다면 허락한다. 아크라이트. 너는 자유다.”
“아아•…”!”
“이제 미궁의 어둠은 너를 속박하 지 못할 거다.”
파아앗!
은은한 황금빛에 휩싸인 아크라이 트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어마어마한 위압감과는 다른 허무 하기까지 한 퇴장.
비로소 여유를 찾은 플레이어들이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손을 뻗은 민수가 빛 속에서 날아
오는 무언가를 움켜잡았다.
“허어.”
[아크라이트의 드래곤 하트]
[등급 : 9급]
[고대문명 아카라트의 수호 드래곤 아크라이트의 드래곤 하트. 그의 영 혼, 육체, 그리고 힘의 정수가 이 안 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이를 사용 하면 아크라이트를 소환할 수 있다.]
[특이 사항 : 수호 드래곤 아카라트 소환 가능. 아이템 상태로는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기계 및 탑승 장비의 동 력원 대체 가능.]
[가격 : 거래 불가]
“드래곤 하트라.”
10등급 바로 아래인 9등급 아이템.
드래곤을 불러낼 수 있는 소환 아 이템이라니 보상 한 번 거창하다.
아무튼, 보상도 얻고 드래곤도 싸 우지 않고 치웠으니 잘 풀린 셈이 다.
드래곤 하트를 보관함에 넣은 민수 가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다행히 2번 연속 전투는 없었군 요.”
“ 네.”
“그럼 갑시다.”
저 멀리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뚫 린 어둠.
민수의 과감한 발걸음이 그 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번 시나리오, 끝내자고요.”
시나리오 클리어가 목전에 다다랐 다.
문을 지나치자 펼쳐진 공간은 그저 까맣기만 했다.
이전까지 지나왔던 공간들과는 차 원이 다른 어둠.
깊이도 거리도 가늠할 수 없어 마 치 허공을 걷는 것만 같았다.
“민수 씨. 여기가……?”
“미궁 51층.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려온 모양이네요.”
대체 언제 내려왔는지는 모른다.
공간 자체의 높낮이를 판단할 방법 이 없다.
아니, 애초에 높낮이라는 게 존재 하긴 했을지조차도 의문이다.
‘하긴 아무래도 좋지.’
여기가 진짜 밑층이건, 붙어 있는 별실이건 알 게 뭐냐.
어차피 여기서 해결해야 하는 용건 은 하나뿐이다.
어둠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며 민수 가 손을 들었다.
“ 나와.”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민수 앞 에 갑자기 형태가 나타났다.
공간에 어둠에 먹혀버린 듯, 온통 새까맣기만 한 여성.
굴욕감에 물든 그 얼굴을 들여다보 던 민수가 어색할 정도로 환하게 웃 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IB.”
“플레이어 김민수……!”
“말 똑바로 해. 지금 내가 플레이 어인 것 같아?”
금색으로 물든 머리를 쓰다듬고 다 시 한 번 되물었다.
아카라트, 아카라트 노래를 불러댔 던 녀석이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 것이리라.
과연 그 예상대로, IB의 얼굴이 붉 으락푸르락 일그러졌다.
“너…… 결국 그걸 손에 넣었나?”
“보다시피. 그리고 이젠 플레이어 가 아니라 관리자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이건 사기야! 클리어 확률 0%로 설 계된 시나리오라고! 이딴 식으로 클 리어가 가능할 리가 없어!”
“안 믿으면 어쩔 건데? 현실이 달 라지나?”
현실을 부정해 봤자 뭐가 달라지는가.
나는 미궁에 끝에 다다랐고, 이제 플레이어가 아닌 관리자가 되었다.
‘게임’의 룰에서 완전히 일탈하여, ‘게임’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
한낱 GM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존 재가 아니다.
IB를 노려보는 민수의 눈이 서늘하 게 물들었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진 행해. 너 조지러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어 죽겠거든.”
“……아니! 거절한다! 내 주인님께 서 이 시나리오의 진행을 직접 결정 하실 것이다!”
“허어. 주인님이라?”
“이건 부정한 이용이야. 부정한 이 용이어야만 해! 아카라트의 권능은 ‘게임’이 상정하지 못한 치트 스킬 이다! 주인님께서 널 보신다면 당장 너의 존재를 ‘게임’에서 삭제해 ……?!”
“GM-IB. 중력 100배.”
콰앙!
IB의 온몸을 짓누르는 무형의 압 력.
반항하지 못한 IB가 그대로 그 자 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커헉, 컥, 컥…… 어마어마한 압력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무릎 꿇고 주저앉아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치욕적인 몰골.
손가락 하나 꼼짝 못 하는 그녀 앞에 쭈그려 앉은 민수가 입가를 비 틀었다.
“그렇게 기세등등해서 버러지니 뭐 니 난리를 쳐대더니, 막상 일이 뜻 대로 안 풀리니 너희 주인님부터 찾 나?”
“케, 케흑! 케켁!”
“뭐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주인의 권세만 빌릴 줄 아는 개였군. 스스 로 자유를 되찾을 의지도, 그럴 생 각조차도 없는.”
말을 이어나갈수록 화가 치밀기 시 작했다.
스스로 목숨보다 자유를 갈망하던 카일.
그런 자가 겨우 이런 녀석에게 조 종당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저 자기 주인의 이름밖에 찾을 수 없는 노예 주제에. 건방지게 다 른 노예를 부리려고 했나?”
“꺼흑, 꺼, 커흐흐흑……!” “중력 증가 해제. 일어나.”
“허억, 허억…… 악!”
말 한마디에 몸을 짓누르던 중력이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밑에서 치솟는 무형의 힘이 IB의 턱주가리를 올려쳤다.
기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박제에 가까웠다.
무형의 힘에 이끌려 장난감처럼 끌 려 올라와 서는 IB.
시커먼 두 눈 가득 공포를 담은 채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뭐, 뭘 바라는 거야……?”
“뭐일 것 같아?”
“워, 원하는 게 있으면 빨리 가져 가! 여기는 미궁 51층이야. 소원을 바라는 거면 빨리 빌고 사라지 ……?!”
“내가 무슨 소원을 빌 줄 알고 그 렇게 큰소리를 치는 거지?”
서늘한 민수의 일갈에 IB의 말문이 뚝 멎었다.
공포에 질린 IB의 눈을 들여다보는 민수의 서늘한 시선.
그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거리는 형체 모를 악의.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IB의 뇌리를 잠식했다.
“너, 너…… 설마……?”
“그래도 바라는 게 그거라면 해줘 야겠지.”
그리고 다음 순간, 악의를 담고 휘 어지는 민수의 눈꼬리.
차분한 분노만을 눈에 담은 채 민 수가 입을 열었다.
“시나리오 클리어의 당사자로서 소 원을 빌겠다. 소원은……
원래는 차선책이었던 소원.
하지만 카일이 죽은 지금, 최선책 이 된 소원.
그것은.
“GM-IB를 소멸시키고, 그 자리에 GM-M을 복권시켜라.”
IB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꺼번에 가 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