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2
시로네 일행은 남자와 여자로 다시 팀을 나누어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2개의 섬광이 두 번째 마법진을 찾아 종횡무진 숲을 돌아다녔다.
강행 돌파(6)
***
“광폭.”
시로네를 중심으로 빛의 폭발이 일어나자 마법진이 흔적조차 남지 않고 파괴되었다.
벌써 7개째 마법진을 파괴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앵무 용병단이 기습 공격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적들의 숫자도 7명이 줄었다.
하지만 시로네 일행은 오히려 안타까웠다.
눈이 돌아가서 덤빌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적들은 프로답게 차분했고, 쉽사리 전력 낭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꽤나 침착하네. 마법진 하나가 파괴될 때마다 피가 마를 텐데도, 깊게 들어오지는 않고 있어.’
파괴된 마법진의 숫자가 15개를 넘어가자 적들의 반응에도 변화가 보였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산에 있는 마법진이 전부 사라진다는 불안감이 든 것이었다.
실제로 앵무 용병단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언제까지 저럴 거야?”
“슬슬 위험한데. 마법진의 개수가 아무리 많아도 특정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몇 가지 전술을 파기해야 한다고.”
부하들은 지금이라도 싸우고 싶었다.
“조장! 어떡하죠? 저것들이 우리 살림 다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거 같은데.”
조장 또한 속이 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북쪽 숲을 요새화하기 위해 그들이 쏟아부은 돈은 5년 동안 수입의 절반에 달했다.
내버려 두다가는 설령 시로네 일행을 전부 죽인다고 해도 오히려 손해일 지경이었다.
“……전부 불러 모아. 가둬 놓고 잡는다.”
전령이 공간 이동을 전개해 각 지역의 조장들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다른 조장들도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인지 곧바로 응답이 왔다.
전투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는 건 시로네 일행도 즉각 감지할 수 있었다.
적들의 움직임은 물론 상대하는 눈빛조차 전과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게릴라전술 대신 수십 명이 한꺼번에 포위 공격하는 연합 전술을 주력으로 내세웠다는 점이었다.
시로네가 바라던 상황이기는 했으나 적들의 노림수는 궤멸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수의 적을 미끼로 시로네 일행을 특정 지점으로 유인하는 느낌이 들었다.
테스는 직감했다.
‘함정이다.’
한편으로는 적들의 전술적 변용에 감탄했다.
확실히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건 이것대로 문제네. 우리의 전략대로 상황이 전개되는 반면에 적들은 그것을 역이용하고 있어. 이러면 알면서도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기존의 전략을 전면 수정하거나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해.”
에이미가 동의했다.
“마법사가 둘이나 있으니까. 전면전을 펼칠 만큼 어리석지는 않겠지. 그런 의미로 본다면 유인하는 장소도 마법사를 제거하기 위한 함정일 거야.”
시로네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한 걸음씩 양보한 상황에서 남은 건 기세였다.
“괜찮아. 함정이 있어도 뚫고 가자. 쉬운 길을 택하는 것보다 적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게 더 맛이 나빠.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 할 상황이야.”
“괜찮겠어? 적들이 노리는 건 우리야.”
“응. 내가 어떻게든 돌파할게. 엄호를 부탁해.”
그렇게 말한 시로네가 선두로 치고 나가자 테스가 놀란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남자네, 남자.”
에이미나 리안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으나 테스에게는 분명 낯설었다.
늘 친절하고 침착한 시로네의 모습만 봐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의외로 행동파네.’
사람을 죽일 수 있냐고 리안에게 물었지만 시로네 또한 걱정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단지 마법사이기에 딱히 걸고넘어지지 않았을 뿐.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누구보다 호전적이었다.
‘검사와는 성향이 정반대지만.’
아드레날린이 느껴지지 않는 전투.
극한의 흥분 상태는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지만 시로네는 오히려 감정을 거세한 느낌이었다.
심장으로 싸우는 자와 머리로 싸우는 자의 차이겠지만, 더 오싹한 쪽은 시로네였다.
“좀 묘하지?”
에이미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서. 하지만 시로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뿐이야. 집중도가 너무 강해서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지만. 검사의 잔심殘心 같은 거라고 할까?”
생사가 오가는 대결에서 검사의 일격은 삶 전부를 쏟아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혼신의 선택 이후의 결과에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
잔심은 그런 번뇌와 미련을 지우고 다시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게 만드는 검사 특유의 정신 활동이었다.
테스 또한 검사이기에 시로네의 상태가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경지에 오르지 않는 한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실전에서 완벽한 잔심을 갖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의 잔심이라.”
“그래.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시로네는 이미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인정하는 거고. 너무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닥쳐도 시로네는 시로네니까.”
테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떤 남자도 엉덩이를 차 버릴 것 같은 에이미가 유독 시로네의 앞에서 흔들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후후. 많이 불안했구나, 에이미.’
흐뭇한 기분도 잠시, 테스는 다시 표정을 고쳤다. 그것 또한 검사의 잔심이었다.
“하지만 함정을 돌파하는 건 어려운 문제 아닐까? 무모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리안이 끼어들었다.
“마법진을 파괴하느라 시간이 지체됐어. 시로네가 한다면 나는 말리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고 앞질러 가자 테스도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에이미도 그렇고 리안 또한 얼마나 시로네의 판단을 신뢰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이 불이 붙은 모양이네. 이번에는 우리가 뒤를 받쳐 줄까? 지형을 잘 살펴 줘. 뭔가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에이미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특별히 눈에 포착되는 지점은 없었다.
“생태가 변하고 있어. 관목 사이로 선태류가 보이거든. 인위적으로 조작한 지형이 아니라면 우리는 조만간 계곡으로 들어갈 거야. 그런데 물소리는 들리지 않아. 한마디로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막았다는 거지.”
“함정이네.”
“응. 전방을 막아 놓고 양쪽에서 협공하기에 좋은 장소지. 전쟁에서는 정석에 가깝지만…….”
테스는 갈등했다.
시간이 촉박한 건 사실이지만 자연 지형을 이용한 함정이라면 설령 마법사라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공산이 컸다.
“일단 시로네를 부르자.”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스의 말대로 길목은 좁아지고 좌우 절벽은 높아지고 있었다.
그때 시로네가 리안을 데리고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빠르게 시야 밖으로 멀어지는 모습에 테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왜 저래?”
에이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시로네도 안 거야, 함정이 있다는 걸. 우리를 말려들게 하지 않을 생각 같은데.”
이 또한 정석이다. 부비 트랩을 확인할 때는 반드시 후방 엄호조가 있어야 하니까.
다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유나라는 인질이 있는 상황에서 시로네가 평소보다 더 몰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단 따라붙자.”
테스를 붙잡고 순간 이동을 시전하자 앞서가는 시로네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서로가 전력으로 질주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잠시 후 리안마저 전열에서 이탈하며 시로네 홀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순간 이동을 멈춘 에이미가 리안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거야?”
“먼저 가서 함정을 미리 소모시킬 거야. 마법진을 파괴한 마법을 쓸 것 같은데.”
광폭이 탁월한 이유는 강력한 방어력보다는 공방의 밸런스가 완벽하다는 것에 있었다.
어지간한 화살 비라면 쉽게 무력화시킬 테지만 계곡이라는 지형적 특성상 화살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혼자 들어간 거겠지.’
테스가 물었다.
“지금이라도 앞지르는 게 어때?”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시로네의 판단이 옳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거리를 벌려 두는 게 좋아. 위험한 상황이 오면 내가 나설 테니까.”
시로네를 전장에서 빼낼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갈게.”
시로네가 1인 순간 이동을 하는 속도에 맞추려면 에이미도 단독으로 움직여야 했다.
상체를 숙인 에이미가 빛으로 변하고, 한 줄기 섬광이 개울물을 가르며 쏘아져 나갔다.
***
V 자 형태로 파인 계곡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높이 20미터의 단단한 철옹성이었다.
앵무 용병단 10명이 지키고 있는 그곳에 추가 병력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보고! 2킬로미터 앞에 적 발견!”
마법진을 타고 도착한 부하의 보고에 성을 지키는 3조장이 미간을 구겼다.
“벌써?”
“예상보다 훨씬 빠른데요? 함정을 전부 가동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걸 노렸겠지. 지도를 보면 산 정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뛰고 있는 것 같은데. 만반의 준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속전속결의 장점이야. 하지만…….”
이곳은 앵무의 영역 내에서도 가장 거대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계곡이었다.
“운이 없군. 수백 명을 몰살시키려고 만든 함정이야. 절반만 가동해도 4명은 묻어 버릴 수 있지. 수비대에 신호 보내. 한번에 몰살시킨다.”
“조장님! 저기!”
부하가 전방을 가리켰다.
한 줄기 섬광이 빠르게 질주하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뭐야? 어째서 혼자야?”
“급한 마음에 먼저 달려온 게 아닐까요?”
인질이 있으니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지만 3조장은 시로네의 생각을 간파했다.
“심리전에 뛰어나군. 고작 1명을 잡으려고 광범위 함정을 사용하는 건 아깝지.”
“그럼 어쩌죠? 나가서 싸울까요?”
“뭘 어째? 빨리 함정 발동시켜.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냐? 목숨 걸고 도박을 한 건 인정하지만 우리를 너무 물로 봤어. 마법사 2명 중에서 1명만 잡아도 승기는 우리에게 기운다. 아끼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부하가 수신호를 보내자 성벽 안쪽에서 수비대에 전달하는 폭죽 신호가 터졌다.
그 신호를 따라 고개를 쳐든 시로네는 성벽 위에 포진해 있는 궁수들을 발견했다.
‘화살 공격?’
물론 적을 봤으니 공격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고작 10명의 궁진으로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들은 거침없이 화살을 쏘아 보냈고, 그제야 시로네는 자리에 멈춰 하늘을 살폈다.
보통의 화살과 다를 바 없어 보였으나 햇빛에 반사된 촉의 빛깔이 오색찬란했다.
‘마정탄.’
본능적으로 순간 이동을 시전한 시로네는 연거푸 뒤로 물러섰다.
만약 케르고 유적지에서 마정탄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상황이었다.
“시로네!”
그때 후방에서 에이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목소리만 듣고서도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으나 대답을 할 겨를조차 없이 화살에 장착되어 있는 마정탄이 먼저 지상을 폭격했다.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굉음이 터졌다.
포연이 짙게 깔린 곳에서는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고, 시로네는 가장 먼저 에이미에게 소리쳤다.
“오지 마!”
강행 돌파(7)
적들의 전략은 자명했다. 시야를 차단시킨 다음 함정을 발동할 생각인 것이다.
폭음성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시로네의 목소리를 들은 에이미는 급하게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자 포연 바깥의 계곡에서 심상치 않은 진동이 보였다.
‘낙석.’
협곡의 좌우에 나타난 것은 투석기처럼 생긴 기관 장치였다.
굵직굵직한 바위들이 장전되어 있었고, 연결된 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했다.
앵무 용병단의 조장이 소리쳤다.
“지금이다! 전부 퍼부어!”
수십 개의 바윗덩어리가 지렛대의 힘을 빌려 계곡 아래로 던져졌다.
협곡의 단면을 메우고도 남을 양이라면 고작 몇 명을 죽이기 위한 함정이 아니다. 최후의 결전지에서 적들을 몰살시키기 위한 비장의 카드였다.
‘미친놈들……!’
시로네를 이탈시켜야 한다.
그런 일념으로 순간 이동을 시전하려는 그때 회색 포연의 중심지에서 반짝 빛이 터졌다.
이어서 순식간에 연기가 바깥으로 흩어지고 광폭을 시전한 시로네의 모습이 보였다.
빛의 장막이 공기를 찢는 소리는 마치 눈앞에서 천둥이 연달아 치는 듯했다.
그럼에도 수 톤에 달하는 바위들이 빛의 장막 안으로 푹푹 파고들었다.
앵무 용병단은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 모두가 시로네가 짓이겨지는 상상을 하는 그때, 광폭의 속도가 기하급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굉음이 앵무 용병단의 고막을 뚫고 지나갔다.
단순히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래로 출렁거리는 데시벨이었다.
“크윽!”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 3조장은 황급히 시로네를 다시 살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마술 같은 광경에 할 말을 잃고 쳐다보았다.
묵직한 바위들이 광폭의 왕복 거리 중간에 끼인 채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 톤의 무게를 밀어내는 반탄력.
바윗덩어리에 금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분쇄기에 넣은 것처럼 잘게 쪼개지기 시작했다.
에이미는 전율을 느꼈다.
단순히 밀어내는 힘이 아니다. 장막을 중첩시켜서 마치 턱으로 절삭하듯이 씹어 대는 것이다.
‘바위가 아니었다면…….’
만약 저 장막에 갇힌 것이 생물이었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