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78
80장. 수문(水門)(3)
촤아아악!
하백의 힘이 담긴 해일이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켰다.
“큭……!”
심해에 가라앉은 것처럼 수압이 팔다리를 짓눌렀다.
묵직하게 온몸을 덮친 압박감에 작게 신음하며 사방을 살폈다.
멀찍이서 흩어져버린 일행들이 저마다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헤엄쳐 오는 것이 보였다.
“물속에서 싸울 셈인가?”
본디 우리는 용왕의 가호를 받아 물속에서도 육지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한데 하백의 전설이 깃든 물에는 무언가 다른 조화가 실려 있는지 눈에 띄게 몸이 둔해졌다.
이런 식이라면 전장이 바뀐 것만으로 상당히 불리해질 터였다.
“깊이 빠진 것 같지는 않은데.”
위를 올려다보자 물 밖에서 내리쬐는 빛줄기가 보였다.
“이대로 올라가면…….”
천천히 팔다리를 움직여 위쪽으로 헤엄쳐 보았다.
촤르르륵!
한데 그 순간 발밑에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발목을 잡아끌었다.
“역시 나가지 못하게 했구나.”
붙잡힌 발목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위로 올라가려는 움직임을 멈추자 소용돌이 또한 꺼지듯이 사라졌다.
물에 잠긴 몸은 늪에 가라앉듯이 계속해서 느릿하게 침잠했다.
“대왕님!”
어느새 옆에 다가온 강림 형이 팔을 뻗어 내 몸을 붙들었다.
깊게 차오른 물이 언제 다시 난폭하게 파도칠지 몰라 불안한 기색이었다.
나는 형이 감싸듯이 내 뒤에 자리하도록 내버려 두며 다른 일행들을 돌아봤다.
“야, 뭔 바위 매달아 놨냐? 그 덩치로 들러붙으면 어떡해! 우리 전하 무거워서 꼬로록 가라앉겠다.”
가까이 다가온 호구별성이 인상을 쓰며 강림 형을 훑었다.
그녀의 핀잔에도 형은 내 몸을 붙든 손에 힘을 더하며 계속해서 내 뒤를 지켰다.
그 행동이 꼭 호구별성의 말에 반대로 하겠다는 심술처럼 느껴져서 나는 그 와중에 작게 웃음이 났다.
“보아하니 물 밖으로 나가는 게 우선인 것 같구나.”
호구별성의 뒤에 선 사라가 무심한 눈으로 위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나가보려니까 발목을 붙잡더라고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목을 가리켰다.
“맞습니다. 적을 물속에 붙들어 놓는 인과가 심어져 있군요.”
그새 내 앞에 다다른 단군이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줄곧 인과를 읽고 있었는지 투명한 수포 사이로 작은 문자들이 반짝였다.
“분명 그에 대한 반동이 있을 겁니다.”
“제가 파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다가온 바리가 단군의 말을 받았다.
“토극수(土克水)니까요. 이번에는 제가 설계를 맞는 게 나을 거예요.”
그 사이 손에는 작은 큐브를 쥐고 있는 채였다.
단군보다도 훨씬 많은 문자를 흘리는 것을 보아 벌써 법칙을 설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헛, 저기 뭔가 온다!”
그때 전방을 살피던 호구별성이 허리를 쭉 펴며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저게 뭐야, 정어리 떼야?”
그녀의 말마따나 수천, 수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물고기 떼가 먹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밀려드는 군체가 어찌나 거대한지 꼭 새까맣게 용솟음치는 토네이도가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일단 1페이즈……겠죠?”
불길한 재앙처럼 다가오는 물고기 떼를 향해 검을 빼 들며 말했다.
“제법 공을 들인 친구들이군요. 상당한 자원을 투자한 듯합니다.”
단군이 문자를 흘리며 앞에 나섰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물속에서만 움직인다는 제약을 걸어 두었군요.”
“호오, 그렇다면 물 밖으로 나가면 한 단락을 꽤 쉽게 처리할 수 있단 뜻이군.”
사라가 알아들었다며 흘끗 바리를 곁눈질했다.
이렇게 되면 바리가 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법칙을 설계할 때까지 그녀를 지켜내는 게 첫 싸움이 핵심이리라.
신화전은 상대가 만든 법칙에 직접 맞서거나 그 법칙을 파훼하는 법칙을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치르니까.
파아앙!
단군이 손가락을 부딪치며 연녹색 신성을 발했다.
환하게 빛을 발한 신성은 반죽을 빚는 것처럼 형태를 이루더니,
이윽고 커다란 날개를 펼친 대왕쥐가오리가 되었다.
하얀 천부인 두루마기를 걸치고 목에는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신수, 해군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우선 이 친구를 불러 두겠습니다.”
해군을 소환한 단군이 그에게 손짓했다.
보글보글.
단군의 지시에 해군이 풍선을 불 듯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어 냈다.
삽시간에 바위만큼 부푼 물방울은 둥실둥실 쪽으로 향했다.
파아앙!
투명한 물방울이 둥글게 몸을 감싸자 바리가 차분한 눈으로 그것을 훑었다.
“무척 견고한 벽이네요.”
손에 쥔 큐브를 더욱 빠르게 회전시키며 바리가 말했다.
“문제없이 집중할 수 있겠어요.”
이제 바리는 법칙의 핵을 완성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일 수 있겠지.
우리는 그녀에게서 등진 채로 다가오는 물고기 떼를 주시했다.
“대왕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강림 형이 코앞에 다가온 물고기 떼를 향해 검푸른 신성을 발했다.
파아앙!
검푸른 신성이 대포처럼 물고기 떼를 뚫고 지나갔다.
선공을 당한 물고기 떼들이 순간 성난 벌떼처럼 움직임을 빨리하며 달려들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비늘이 마치 빗발치는 총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염병, 저거 괜히 벌집 들쑤신 거 아니냐?!”
호구별성이 암녹색 신성을 폭발시키며 성질을 냈다.
강림 형의 선공으로 물고기들이 한층 난폭해진 것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형은 호구별성의 질책에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검푸른 신성을 발했다.
파앙!
파아앙!
발설지옥의 신성이 사방에서 번쩍였다.
하나 물고기의 수가 워낙 많아 구멍이 뚫리다가도 금세 메워졌다.
흡사 질척한 늪을 바늘로 들쑤시는 모양새였다.
“이런, 함부로 마력을 쓰면 안 되겠군요.”
달려드는 물고기 떼를 훑던 단군이 순간 수많은 문자를 흘리며 말했다.
“이쪽이 방출하는 마력을 되레 흡수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새까맣게 모여든 물고기 사이를 밝혔다.
“마력으로 물고기를 쳐내면 그 힘을 흡수해서 더 많은 물고기가 생기는 구조입니다.”
“뭐야, 너무 많아서 죽여도 티가 안 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새로 메꿔지는 거였어?!”
호구별성이 질린다는 듯이 인상을 구겼다.
“그럼 마력을 배제한 공격으로만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달려드는 물고기들을 검으로 베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 정도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꽤 빠질 텐데.”
“그게 목적이겠지요. 물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최대한 힘을 빼 놓는 것.”
단군이 해군에게 손짓하며 말을 받았다.
“물 밖으로 빠져나가면 곧장 필드의 핵심법칙인 동명성왕을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상대 필드의 승리 조건은 동명성왕의 승전이니, 아마 동명성왕이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쓰러트리는 것이 이번 신화전의 결전이 될 터였다.
물고기 떼처럼 자원으로 만들어낸 존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법칙으로 직접 자신을 강화한 주몽 본인일 수도 있다.
터엉!
터어엉!
해군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물고기들이 튕겨 나갔다.
주력기인 화염을 쓸 수 없으니 신수 해군을 움직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물고기만이라면 물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겠습니다만.”
해군을 움직이던 단군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겠지요.”
어느새 드리운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허.”
그림자를 확인한 사라가 팔짱을 꼈다.
“백상아리인가?”
크기가 무척 커서 꼭 가라앉은 섬처럼 보이는 상어였다.
뾰족하게 솟은 코 아래로 칼침처럼 돋은 이빨이 우리를 향해 번쩍였다.
“민물고기가 아니잖아!”
바짝 허리를 세운 호구별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삿대질했다.
“역시 하백이 아니라 포세이돈이라니까!!”
그녀의 비명 같은 외침과 동시에 아가리를 벌린 상어가 돌진해 왔다.
“아……!”
앞을 가로막는 물고기 떼를 해치고 겨우 상어를 피했을 때였다.
수많은 물고기 떼를 그대로 집어삼키는 상어를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불을 켠 것처럼 형형한 상어의 눈이 더욱 크게 빛을 발했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커지고 있어……!”
그것을 깨달은 찰나 덩치가 더 커진 상어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큿……!”
빽빽하게 사방을 매운 물고기 떼를 쳐내며 이번에도 겨우 상어를 피해냈다.
그럼에도 틈을 주지 않고 곧장 벽처럼 앞을 가로막는 물고기 떼에 이것이 어떤 설계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도망치기엔 길을 막는 물고기가 너무 많아, 그렇다고 못 참고 마력을 쓰기 시작하면 물고기는 더 늘어나겠지.”
요컨대 상어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마력으로 물고기를 쳐내면, 그렇게 불어난 물고기를 상어가 먹고 더욱 커져서 갈수록 도망치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었다.
“물고기를 상대하지 않고 버티는 게 제일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설계를 읽어낸 단군이 말했다.
“마력이든, 체력이든, 물 밖으로 나갈 때까지 최대한 비축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따라 우리는 모두 물고기와 상어를 피해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파아앙!
하나 단지 헤엄쳐서 피하는 것만으론 역부족인지라 어쩔 수 없이 신성을 써서 그것들을 밀쳐내곤 했고, 그때마다 상어는 점점 더 덩치를 부풀리며 우리를 위협했다.
“염병, 이제 상어가 아니라 뭔 가라앉은 아틀란티스라고 해도 믿겠다!”
시야를 완전히 가릴 만큼 커져버린 상어를 가리키며 호구별성이 성을 냈다.
이제는 옆으로 피해 보겠다는 여력도 없이 그저 상어의 이빨을 피해 끊임없이 앞으로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우리를 가로막는 물고기도 너무 많이 불어나서 이제는 단순 물리 공격으로 상대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파아앙!
파아아앙!
결국 우리는 그것이 다시 더 많은 물고기 떼를 불러올 것을 알면서도 마력을 써야만 했다.
최고 수준의 설계자가 설계한 필드답게 덫을 알아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필드였다.
[ (!) 새로운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 [ (!) ‘염라’ 필드에 새로운 법칙이 추가됩니다. ]우리 쪽에 마침 상성이 잘 맞는 설계자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당해버렸을 것이다.
“법칙이 완성됐어요, 오빠.”
황충처럼 새까맣게 시야를 가리는 물고기 떼 사이로 바리의 차분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쿠우우웅!
동시에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처럼 수많은 수포가 올라왔다.
쿠우웅!
쿠우우웅!
지진이 난 것처럼 사방이 흔들리면서 공간이 재구축되듯 바닥이 솟구쳤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내가 헤엄치던 자리에서도 바닥이 솟아올랐다.
“우왓!”
빠르게 솟구치는 바닥 위로 철퍽 몸이 엎어졌다.
몸을 일으킬 생각도 못 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일행들이 모두 물 위로 치솟은 땅에 올라와 있었다.
“우와아, 아예 땅을 새로 만들어버리네!”
땅에 반쯤 몸을 눕힌 호구별성이 둥그렇게 뜬 눈으로 새로이 솟아난 땅을 둘러보았다.
한순간에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솟은 바위섬에 표류하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물을 없애는 법칙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그냥 육지를 새로 만들었어요.”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선 바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물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제약이 걸려 있으니 이 땅에 있는 한 물고기들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어라, 이거 점점 넓어지는 것 같은데?”
바리의 설명에 섬을 돌아보던 호구별성이 눈을 끔뻑이며 바닥을 가리켰다.
“네, 맞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섬이 넓어지도록 했어요.”
호구별성의 말에 바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대도 제가 섬을 만들어서 법칙을 파훼할 것을 미리 읽었을 것 같았거든요.”
콰아아앙!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섬 위로 폭격처럼 무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단군이 문자를 흘리며 공격을 퍼붓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위에서 공격해서 다시 물 밑으로 떨어뜨리겠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섬이 넓어야 버텨내기 쉽겠지요.”
까아아악!
그의 말과 동시에 위쪽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삼족오다!”
호구별성이 머리 위에서 날갯짓하는 커다란 새들을 가리켰다.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검은 새들이 음산하게 울부짖으며 크게 원을 그렸다.
날개를 펄럭이는 새들 가운데,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한 장수가 날개가 달린 말을 탄 채 커다란 활을 겨누고 있었다.
필드의 핵심 법칙인 동명성왕이었다.
저것을 쓰러트리면 상대 필드의 승리 조건인 ‘동명성왕 승전’을 파훼할 수 있으리라.
콰아앙!
동명성왕이 활을 쏘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파편을 뿌리며 땅이 깊게 파였다.
“삼족오에 이제는 천마야?! 염병할! 주몽 저놈 진짜 컨셉 확실하네!”
호구별성의 짜증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하늘 위에 선 동명성왕을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주몽인가.”
투구로 얼굴을 가린 동명성왕의 모습은 과연 네 번째 천벌에서 마주쳤던 모습과 똑같았다.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서도 틀림없는 하백의 전설이 느껴졌다.
몇 번이고 주몽에게서 느꼈던 강렬한 물의 기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