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99)
우리는 선장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작은 문제가 생긴 것뿐입니다. 곧 해결될 테니 손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고 다시 객실로…”
“선장님 좆됐습니다! 암초에 박살 난 부위가 생각보다 너무 커요! 못 틀어막는다고요!”
방금 막 갑판 위로 올라온 선원이 외쳤다.
그의 옷은 바닷물로 푹 젖어있었다.
“선장님 저기 보십쇼! 포, 폭풍! 폭풍우가 옵니다!!”
어느 선원이 외쳤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새까만 먹구름이 가득했고, 파도의 흐름 또한 심상치 않았다.
“이게 작은 문제라고요?”
빈정대듯 물었으나 선장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새파래진 안색으로 ‘아, 좆됐다.’라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선장마저 포기해버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모양이다.
헛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카타리나가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크, 클라우드 우리 큰일 난 거 아니야?”
“맞아. 큰일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태평해?!”
“그거야…”
나는 가볍게 주위를 둘러본 후, 카타리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나는 이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알거든.”
“저, 정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카타리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내게 그 방법이 뭐냐고, 빨리 말해달라며 재촉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펠라 해준다고 약속해주면 말할게.”
“뭐, 뭐?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 배에 구멍이 생기고, 폭풍우에 배가 뒤집어지게 생겼는데?!”
“너야말로 이런 상황에서까지 펠라 안 해주겠다고 고집 피울 거야?”
카타리나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모기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줄게.”
“뭐라고?”
“해준다고!”
“진짜지? 나중에 딴말하면 안 돼.”
“딴말 안 해! 그러니까 빨리 그 방법이라는 거나 말… 으겍!”
무방비 상태에서 손날치기를 맞은 카타리나가 기절했다. 나는 의식을 잃은 그녀를 등에 업고 개인 객실로 돌아왔다. 배낭에서 로프를 꺼내 나와 그녀를 묶었다.
“조각은 찾았냐?”
셰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와. 이제 조난당해야 하니까.”
셰디아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의문을 담으면서도 나를 따라 갑판 위로 올라왔다. 어느새 폭풍우는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배를 향해 다가오는 커다란 파도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내가 한 말을 이해한 모양이다.
잠시 후, 커다란 파도가 배를 덮쳤다.
“에퉤퉤.”
있는 침 없는 침 고를 것 없이 전부 뱉었다.
어우 짜.
입을 쓱 닦으며 몸에 묶어놓은 로프를 풀었다. 털썩. 카타리나의 몸이 모래사장 위로 쓰러졌다.
나는 그녀의 코에 귀를 가져다 댔다.
쌔액… 쌔액…
다행히 숨은 잘 쉬고 있다.
특별히 응급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겠다. 한숨 돌린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푹 젖은 셰디아가 바닷물을 철퍽철퍽 밟으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괜찮냐?”
도리도리.
“그러냐. 그래도 잘 따라오더라. 수고했어.”
잘했다는 뜻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장작을 주워올 겸 주변을 둘러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카타리나를 지키고 있어.”
끄덕끄덕.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셰디아.
그녀를 두고 등을 돌렸다. 해안가 바로 앞에는 커다란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모닥불을 만들 장작을 줍고,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틈틈이 나무에 빗금을 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꽤 걸었는데도 숲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많이 큰 숲 같은데.’
빠져나가려면 꽤 고생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휘잉. 작지만 확실한 파공성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화살촉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으윽!”
내가 던진 단검은 정확히 맞았는지 신음이 들려왔다. 이내 나무 위에서 누군가 떨어졌다. 쇄골에 단검이 꽂힌 미형의 남자였는데, 귀가 길었다.
“엘프?”
고개를 갸웃하며 떨어진 엘프에게 다가가려던 순간이었다.
십수 개의 화살들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이 귀쟁이 새끼들이?
누군가 자신의 뺨을 찰싹 때리는 감각에 카타리나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녀는 눈을 뜨고 짜증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만. 그만 때려! 왜 자는 사람을… 어?”
불만을 내뱉던 카타리나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귀가 긴 미형의 남자와 여자들이 이쪽을 향해 활을 조준하고 있고,
자신의 남자친구가 그들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붙잡고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면 누구나 그녀처럼 반응할 것이다.
“일어났어?”
클라우드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태연한 목소리는 마치 평범한 아침 인사 같았다.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고, 그 괴리감 때문에 카타리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우리가 조난당한 건 기억하지?”
“조난?”
클라우드의 말을 들은 카타리나가 미간을 좁혔다.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들이 조금씩 꿰맞혀진다.
암초에 부딪혀 배에 구멍이 뚫렸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풍우가 다가왔었다.
클라우드가 펠라 해주는 걸 조건으로 빠져나갈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해서 수락했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지막 기억과 지금의 상황이 연결되질 않는다.
카타리나는 일단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응. 그래서?”
“조난당한 우리가 당도한 곳이 여기 거든? 그런데 이곳 원주민들은 우리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야. 다짜고짜 죽이려 들더라고.”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건 그거 때문이야?”
“맞아. 이게 없어지면 저 화살들이 모조리 우리를 향해 날아올 거거든.”
“그렇구나. 혹시 지금이 배에서보다 더 위험한 상황인 거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어떻게 귀쟁이 따위를 대자연의 힘과 비교해?”
“흐음… 그것도 그러네.”
고개를 끄덕인 카타리나.
다시 한번 주변을 쓱 둘러보고선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꿈이라고 말해줘.”
그에 클라우드는 싱긋 웃었다.
“꿈 아니니까 일어나서 걸을 준비해. 이 상태로 숲을 빠져나갈 거야
현실은 잔혹했다.
우리들은 숲속을 여행하고 있다.
비록 사로잡은 엘프의 목에 단검을 들이민 상태이고, 수많은 엘프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뭐 어떤가?
뭐든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카타리나는 셰디아를 본받아야 한다.
셰디아를 봐라.
날카로운 화살촉에 긴장하기는커녕 눈을 반짝거리며 숲과 엘프를 구경하고 있지 않나.
“처음 보는 엘프의 숲은 어때?”
“신기해. 숲의 기운이 엄청 싱싱한 게 보통 숲이랑 달라.”
나는 그냥 풍경에 대한 감상을 물은 건데.
반이 짐승이라 그런가, 조금 다른 감상을 내뱉었다.
그래도 뭐… 좋다면 그걸로 된 거지.
“내친김에 세계수도 구경하고 갈까?”
“세계수?”
“엄청 커다란 나무야.”
“저거보다?”
셰디아가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나무를 가리켰다.
나는 픽 웃었다.
“비교도 안 되지. 세계수에 비하면 저건 발톱의 때도 안 돼.”
“정말?”
셰디아의 눈이 더 초롱초롱해졌다.
이건 어쩔 수 없네.
세계수는 꼭 보고 가야겠어.
“야. 세계수 어디 있어.”
단검의 면으로 인질의 목덜미를 툭툭 치며 물었다.
인질은 매우 굴욕적인 표정을 지었다.
“크윽..! 세계수님은 너희 따위가 쉽게 언급할 만한 분이 아니다..!”
“알았어. 그래서 세계수님은 어디 계시냐? 문안 인사 좀 하러 가자.”
“절대 말 못 한다. 차라리 죽여라.”
인질은 비정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에 주변을 둘러싼 다른 엘프들은 그의 희생정신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을 했다.
이것들 왜 이래?
“내가 널 붙잡은 이유는 길잡이를 시키려는 이유 때문이었어. 그런데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 너나 여기 있는 놈들이나 다 쓸모가 없어져. 그걸 원해?”
“하, 마치 마음만 먹으면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못할 것 같아?”
인질이 입을 다물었다.
기습을 피하고 포위망을 뚫은 것만으로 모자라, 자신을 인질로 잡기까지 했으니 허세로만 보이지는 않는 거겠지.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네 말이 맞다고 한들, 레인저분들까지 뚫지는 못할 거다.”
“레인저?”
“오랜 시간 동안 피나는 훈련을 끝마친 엘프만이 들어갈 수 있는 최정예 집단이다. 우리는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레인저에 관해 설명하던 인질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침 오셨군.”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무슨 로빈후드라도 되는 것처럼 초록색 옷으로 깔 맞춤한 엘프 셋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을 본 엘프들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마치 저들이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용사, 클라우드 님. 요정왕님께서 당신을 정식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내 생각과도 조금 달랐고.
그래도 잘 된 건 있었다.
“셰디아, 세계수 볼 수 있겠다.”
불법이 아닌 합법으로 세계수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셰디아가 해맑게 웃었다.
세계수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셰디아가 해맑게 웃을 때였다.
“요정왕님이 초대하셨다고요?”
“그것도 침입자들을 말입니까?”
엘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레인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침입자가 아닌 용사님일세. 예를 갖추게.”
그의 한마디에 엘프들의 불만이 쏙 들어갔다. 아까부터 레인저, 레인저 노래를 부르더니 정말 이들의 권위는 높은 모양이다.
한편 레인저의 말에 충격을 받은 사람은 또 있었으니…
“용사..?”
카타리나였다.
그녀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클라우드 저게 다 무슨 소리야? 네가 용사라니?”
“말 안 했었나? 나 용사야.”
“…농담하지 말고.”
“농담 아닌데.”
카타리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럼 난 지금 평범하게 대륙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의 여정을 따라온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