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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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확대
“산드린 영지의 일이 마무리 됐어요.”
“그래? 수고했어.”
하지만 막상 그 모든 일을 벌인 장본인은 산드린 영지에 대한 것은 처음의 조치를 내린 후로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미 그렇게 작은 영지의 일 정도는 그가 직접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하찮은 수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형진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있었냐면 그건 또 아니다. 산드린 영주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대번에 뒷목을 잡고 쓰러져 버렸겠지만, 그 동안 그가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마차 만드는 일이었다. 바로 여신에게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던 호박 마차 말이다.
세공 장인에 오른 이후로 한동안 새로운 특화 기술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형진은 마침내 두 번째 특화 기술로 금속 가공을 선택했다. 호박 마차는 그렇게 특화 기술을 선택하고 만들기 시작한 첫 번째 작품인 셈이다.
“…”
제랄딘은 금속판을 매만지고 있는 형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추가로 보고할 내용이 있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드린 영주는 성을 넘기는 대신 이미 제랄딘이 정해 놓은 보상금과 더불어 새로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게 되었으며,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는 딸 엔델의 치료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자신은 물론이고 후손들까지도 절대 엘 파르드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는 대신.
땅을 지닌 영지 귀족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영지를 버리고 귀족으로서의 지위마저 버린 채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산드린 영주는 결국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달리 손을 쓸 방법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산드린 영주를 그와 같은 처지로 몰아넣어 성을 집어 삼키는데 단 한 사람의 인력도 쓰지 않았다. 채권 추심이 완료되는 순간, 성 바깥을 신전의 영역으로 선포하고 한시적으로 천벌의 조건을 추가한 것이 전부였다. 밧줄이나 말뚝, 그리고 팻말은 그저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한 장식이었을 뿐.
형진은 금속판을 가지고 뚱땅거리더니 이내 날개 문양의 장식판을 완성해서 마차의 창문에 고정시켰다. 잠시 위치를 조정하고 장식을 마무리 짓고 물러서는 순간 그의 시야에 메시지 하나가 나타난다.
[축하합니다! 걸작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 훌륭한 걸작입니다. 다른 이들이 이 작품을 칭송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오!”
금속 가공 분야는 아직 멀었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세공 기술이 이미 장인 단계에 올라서 그런지, 대번에 걸작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좋아. 이것은 ‘꿈으로의 초대’라고 해두지.”
형진은 일단 완성된 마차를 인벤토리에 넣은 뒤, 아틀리에 밖으로 나가 정원에 내려놓았다.
“여신님을 모셔올까요?”
“그래 줄래? 고마워.”
“별말씀을요.”
제랄딘은 곧바로 여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 보호와 균형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으로 신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와, 그럼 이제 조금 있으면 완성되는 건가요?
-네. 아마 오늘 중으로 완성될 것 같아요.
-축하드려요. 여신님!
-정말 잘 됐어요. 아, 저도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허허, 고대하시던 마차가 완성되었다니 이렇게나마 축하를 드립니다.
-여신님, 귀여워!
얼마 전 그녀에게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일대일로만 가능하던 신도들과의 대화가 이렇게 여럿을 한꺼번에 불러놓고도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여신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누는 걸 더 선호하는 신도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한곳에 모인 채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상당히 늘었다.
“여신님, 계세요?”
“네? 있어요! 잠시만요!”
제랄딘이 집 밖에서 문을 두드리자, 여신은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것을 멈추고 얼른 일어나 옷 매무새를 정돈했다. 침대 한쪽에 자리를 잡은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하엘은 그런 여신의 모습에 작은 한숨을 내쉰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품위있는 모습으로 응접실 옥좌에 자리를 잡은 여신에게 가만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던 제랄딘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서둘러서 매무새를 고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머리 한 쪽이 삐쳐 올라간 모습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잠시만요.”
“네?”
제랄딘은 품에서 작은 빗 하나를 꺼내어 여신의 머리를 가만히 빗겨 주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린 여신은 금새 볼을 붉게 물들이며 부끄러워하기 시작한다.
“이제 됐어요.”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제랄딘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곳을 찾은 본래 목적을 말했다.
“실은 진이 여신님을 모셔오라고 해서 제가 이렇게 대신 왔어요. 마차가 완성된 것 같았어요.”
“그래요? 그럼 당연히 가봐야죠!”
여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방금 전까지 보여주려고 애쓰던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모습 따위는 집어던진 채 헐레벌떡 집을 나섰다. 제랄딘은 급하게 달려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웃고는 천천히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어느 새 얘기가 퍼졌는지 정원에는 카트린과 크루그 남매를 비롯해, 오귀스트와 하마란 커플, 그리고 유아와 요정들까지 전부 나와서 아름답게 만들어진 호박 마차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 오셨다.”
“여신님, 축하드려요!”
“저도요! 축하드려요, 여신님!”
“아아아…”
여신은 정원 한 켠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차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 순간 그대로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다.
기본적인 뼈대는 강철이지만 황금으로 도금되어 그 화려함이 말도 못할 정도다. 커다란 여섯 개의 창문은 투명한 유리인데 마법으로 강화되어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깨지지 않는다. 마차의 외부는 하얀 색의 도자기 재질로 감싸여져 있어서 마치 대리석이나 상아를 깎아 만든 것 같은 느낌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우아하게 휘어진 프레임에 연결된 것은 모두 여섯 마리의 듬직한 토끼들. 본래는 사두마차 정도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무게가 더 나가게 되었기 때문에 여섯 마리를 연결하게 되었다.
눈처럼 흰 털빛의 하얀 토끼들이 끄는 하얀 색의 호박 마차. 여신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너무나 황홀해져서 눈물마저 글썽일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가 아름답다며 감탄하는 호박 마차의 모습을 보며 형진은 법랑 냄비를 떠올리고 있었다. 여기 저기 금칠을 하기는 했지만, 제작 방식만을 놓고 보면 금속 위에 도자기를 입힌 것이 영락없이 법랑 냄비와 같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 세계에는 법랑 냄비라는 것이 없으니 저들이 그것을 알아차릴 방법은 전무하지만, 그래도 냄비에 바퀴만 달아놓은 느낌의 물건을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좀 찔린다.
“자, 한 번 타보시죠.”
“지금… 요?”
“물론입니다.”
여신이 조심스럽게 마차에 타자, 어느 새인가 마부 복장으로 갈아입은 림이 으스대는 모습으로 마부 석에 올랐다. 그러자 마차의 앞 뒤에 자리 잡은 네 개의 등이 동시에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림이 고삐를 살짝 당김과 동시에 토끼들이 마차를 끌기 시작했다.
무게가 늘어난 것은 사실 금속 재질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무 가볍게 만들면 그만큼 바퀴의 접지력이 떨어져서 요동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심혈을 기울여 완충장치를 만들어 놨는데 그래서야 의미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적당히 무게를 늘려 접지력을 강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여신이 그렇게 마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러 나가는 모습을 보며 형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요? 뭔가 빠진 거라도 있어요?”
그 표정을 알아본 제랄딘이 조심스럽게 묻자, 형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흠… 기왕이면 하늘을 날도록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랄딘은 그 대답을 듣고 대번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늘을요?”
“응.”
명색이 여신인데 땅바닥을 발발 기는 마차 따위를 타고 다녀서야 체면이 서나. 우아하게 은빛 별가루를 떨어뜨리는 마법 마차 정도는 타줘야지. 사실 이건 그리 독창적인 것도 아니고, 소시 적에 사탕 빨면서 동화책 좀 읽은 착한 어린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떠올렸을 법한 일이지만, 제랄딘은 그런 경험이 없었는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이쪽과 저쪽은 어린 시절에 보고 듣고 익히는 것 자체가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만.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늘을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미엘에게 살짝 물어봤지만, 수준급의 마법 실력을 지닌 그녀도 대번에 난색을 표할 정도다. 아니, 그 필요성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그녀는 그런 식의 귀찮은 도구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 엘리시온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물론 엘리시온도 아직 컨텐츠의 대부분은 오픈되지 않은 상태다. 이동 수단 같은 것도 고작해야 말이나 테이밍한 야수 정도가 고작. 그래서 유저들 대부분은 아직 돈만 많이 들고 별다른 효용이 없는 이동 수단을 구입하기 보다는 워프 게이트를 좀 더 많이 애용하는 쪽이다.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몇 번 더 엘리시온을 왕복했지만, 여전히 허세와 망상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다. 이쯤 되면 일부러 못 본 척 한다기 보다는 마스터키로 사용되는 단장과 대미궁의 접속 장치가 특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역시 이상한 일이다. 그런 것을 만들어 두고 잊어버린다는 것이 어쩐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잊어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다른 일에 바쁘다면 몰라도.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자니, 어느새 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온 여신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그에게 달려들어 볼에 입을 맞춘다.
“너무 멋져요! 정말 고마워요! 진님!”
“보잘 것 없는 솜씨인데도 기뻐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그, 그래도 너무 고마워요!”
여신은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대담한 짓을 했는지 깨닫고 얼굴을 붉히다가 이내 도망치듯 마차로 다시 다가가 림에게 마차 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외부 행사 같은 데 쓸 용도로 사람이 탈 수 있는 마차 같은 것도 만들어 놔야겠네.”
“정말요?”
“응, 우리 마눌들 데리고 무도회 갈 때 걸어갈 수는 없는 일이잖아.”
“와아! 고마워요!”
아름다운 여신의 마차를 보고 부러운 시선을 보내면서도 차마 만들어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제랄딘은 형진의 품에 매달리며 키스를 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원래부터 무도회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었던 유아도 이번만큼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조금은 떠들썩한 시승식이 끝나자, 형진은 다시 엘리시온에 접속했다. 모처럼 생각이 떠올랐을 때 비행과 관련된 정보가 있는지 확인해 두기 위해서였다.
일단 거래소에 들렀다. 하지만 아직은 비행 마법이나 그런 비슷한 효과를 가진 아이템 같은 것조차 찾기가 어렵다. 아니, 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쪽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직은 저쪽 세계가 더 자료가 많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난감한데.”
현실 세계로는 나갈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정보를 찾는 일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나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득 거래소 밖을 지나는 한 사람의 모습이 형진의 시야에 들어온다.
“…”
잠시 헛것을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시선을 던졌지만 틀림없었다.
“하하, 그래서 말야. 중간에 딱 버티고 서니까 녀석이 덤빌 생각을 못하더라고.”
“하기야 형이 좀 유명하잖아요. 템귀로.”
“뭐, 그만큼 투자를 하니까.”
동료로 보이는 인물 서너명과 마을을 걸어가고 있는 한 명의 남자. 비록 이전과는 걸치고 있는 장비 자체가 달라졌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형진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그 녀석이다. 형진이 갑옷을 부숴 먹었던 바로 그 놈. 그리고 그 일을 운영자에게 찔러 넣어 그의 계정이 삭제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
이름 따위는 몰라도 호탕한 척 웃는 저 얼굴만큼은 보는 순간 바로 기억이 났다.
형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