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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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냠냠
요안나는 결국 그날 밤 그대로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려고 마음먹었는데, 모처럼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이렇게 혼자만 다른 방에 남겨져 버렸으니 잠인들 오겠는가. 그냥도 잠을 설칠 판에 시차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신경이 굵은 사람이라도 결국은 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결국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늦은 시간에라도 그가 슬쩍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그녀가 잠들지 못하도록 만든 한 가지 이유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올 즈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온다.
참고로 왕성의 모든 침실은 자동 잠금 장치가 설정되어 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쓸데없이 첨단기술이 적용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이런 자동 잠금 장치에도 예외가 있었다. 바로 이 성의 주인인 형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왕성의 그 어떤 방이라도, 그가 열고자 한다면 언제든 열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오직 당사자인 형진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그는 왜 굳이 나중에 비난 받을지도 모르는 이런 비밀을 만들어 둔 것일까.
그거야 당연히,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서다.
이전에 겪었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교훈삼아, 형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조명은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어슴프레 밝아오는 새벽의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쳐 들어와 방 안을 살짝 밝히고 있다. 물론 그런 조명이 없었더라도 안의 상황을 살피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형진은 지금 심연의 눈가리개까지 착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형진은 이순간 자신의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상태다. 그 정도로, 지금 이 순간 그는 경건하기까지 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었다.
은신과 잠행을 발동한 그는 발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가섰다.
“…”
침대 위에는 요안나가 살짝 흐트러진 모습으로 이불도 덮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꼴깍.
그물 스타킹과 말려올라간 치마 사이에 드러난 하얀 허벅지. 그리고 흐트러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뽀얀 가슴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가슴 뛰게 만든다.
형진은 문득 흐트러진 요안나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치솟는 무언가를 깨달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이 위대한 순간을 무로 되돌리려 드는 흉악한 욕망의 손길을 뿌리쳤다.
참아야 하느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더란 말이냐.
형진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자꾸만 고개를 들고자 하는 욕망의 기운을 가라앉히고는 이내 경건하기까지 한 손길로 가만히 침대 시트로 손을 가져 갔다.
그의 핏줄을 타고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심장을 뛰게 만든다. 그저 시트 자락을 잡은 것 뿐임에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형진은 고조되는 긴장을 가다듬으며, 마침내 시트를 잡은 손을 번쩍 치켜 올리며 외쳤다!
“언능 못 일어나!”
“꺄악!”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겨우 잠이 들었던 요안나는 갑자기 터져 나온 고함소리와 함께 시트가 훌렁 뒤집어지면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자 크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요안나는 고개를 들어 이런 짓을 저지른 장본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트 자락을 양손으로 잡은 채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느끼는 것처럼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후아아아아…”
이거다. 바로 이거였다. 이것을 위해 나는 오늘까지 살아있었던 것이다!
저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요안나가 당혹스러운 시선을 보내거나 말거나, 형진은 시트 자락을 부여잡은 채 오랜 만에 성공한 시트 뒤집기의 쾌감을 전신으로 받아들였다.
“쯧쯧. 또 시작이군.”
일찍 일어나 깨끗이 씻은 뒤 식당으로 들어서던 크루그는 그 소리를 듣고는 혀를 찼다.
“어… 설마 메이드 언니가 새로 들어온 거에요?”
형진의 외침 소리만 듣고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대번에 알아차린 건 크루그만이 아니었다. 살짝 졸린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크루그와 함께 식당에 들어서던 카트린조차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식재료를 준비하고 있는 유아에게 질문을 던진다.
“네. 무척이나 예쁜 분이에요. 오시면 잘 맞이해 주세요.”
유아의 호구 마인드는 오늘도 대폭발. 다른 이들은 그런 유아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굳이 따져 물으려 하지는 않았다. 당사자들이 괜찮다는데 괜히 자신들이 끼어들어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는 일이니까.
잠시 시간이 지나자, 어쩐지 개운하고 산뜻해 보이는 형진의 뒤를 따라 메이드복을 입은 요안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부터 식구가 된 요안나다. 자, 요안나. 인사해. 내 식구들이다.”
“요안나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어쩐지 부스스한 느낌. 잠을 설친데다 그나마도 느닷없이 시트 뒤집기를 당해 정신까지 없는 상태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요안나에게는 기이한 매력이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꽃과 바람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여신과 비교할 정도로 그녀가 강렬한 매력을 지닌 것은 아니어도, 보는 이의 시선을 끄는 매혹적인 자태를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잘 부탁드려요. 전 카트린이라고 해요!”
“크루그입니다.”
“오귀스트라고 합니다. 식구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마란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할 데 마그 백작입니다. 하핫! 이런 미인을 얻으시다니, 형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식구들이 저마다 그렇게 말을 건네자 요안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웠다.
하지만 아직 식구들의 소개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 보호와 균형이라고 해요. 진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꽃과 바람입니다.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잘 부탁드려요.”
“황혼과 망각…입니다. 보잘 것 없는 여신이지만, 친하게 지냈으면 해요…”
“저,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식구들이야 그렇다 쳐도 여신들까지 그렇게 소개를 하자 살짝 멍했던 정신이 확 깨어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요안나 역시 공포와 죽음을 모시는 신녀. 비록 모습이 작다한들 그녀는 이 작고 귀여운 여신들의 신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에헴! 저는 림이라고 합니다! 스승님의 하나뿐인 제자죠.
-전 람이라고 해요. 폐하께 요정여왕의 지위를 강탈당한 비운의 전대여왕이랍니다. 흐윽…
-램이에요!
-롬이라고 합니다. 큭큭큭… 역시 변태왕 폐하. 어디서 또 이런 미인을…
뒤이어 요정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소개를 하기 시작하자 요안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만. 이러다가 한도 끝도 없겠다. 자세한 소개는 식사가 끝난 다음 천천히 하고, 일단 자리에 앉아!
“네!”
-넵! 스승님!
간신히 요정들에게서 벗어난 요안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형진의 뒤에 섰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흘깃 보고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앉아.”
“하지만…”
“됐으니까 앉으라고.”
“네…”
마지못해 식탁 옆으로 다가서자, 요리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일곱명의 미엘이 그녀에게 의자를 권했다.
“여기 앉아요.”
“네…”
어제 분신을 만드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다시 이렇게 일곱 명의 미엘이 각기 아이를 안아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적응이 안 된다. 게다가 모두 모습이 같은 것도 아니고 저마다 미묘하게 연령대까지 다른 모습이라 요안나는 더욱더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빠아?”
하지만 미엘에게 안겨 있던 아기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그렇게 소리를 내자, 요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귀엽다. 비록 자신이 낳은 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귀엽다. 질투가 날 법도 한데 단지 그의 아기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역시 자신도 정상은 아닌 모양이다.
“크루그. 어때? 잘 배우는 것 같아?”
“별로요. 아무래도 아바타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 더디네요.”
“역시 그런가. 힘들겠지만 고생해라.”
“네.”
오늘도 어김없이 화덕에서 화려한 불쇼를 선보이며 형진이 크루그에게 말을 건네자, 옆에 앉아 있던 카트린이 슬쩍 끼어든다.
“오빠.”
“응?”
“오늘도 언니들이랑 던전 돌 거에요?”
“아마도.”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
“네가? 별로 도움이 안 될 텐데.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알아요. 같이 가도 레벨 같은 게 안 오른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그렇다면야… 상관은 없다만.”
그런 식으로 요리를 하며 식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요안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그 모습까지 전부 마음속에 새겨두겠다는 듯이.
어쨌든, 그렇게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자 형진은 여신들과 함께 엘리시온으로의 접속을 서둘렀다.
“요안나를 잘 부탁해.”
“네. 걱정 마세요.”
“굳이 당신을 담당으로 붙인 이유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에요.”
교육 담당이라고는 했지만, 미엘은 사실상의 감시역이기도 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공포와 죽음의 신녀인 그녀가 폭주하거나 했을 경우라도 그녀라면 제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사태라도 유아를 통해 희망과 생명의 힘을 빌리면 미엘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긴 그 정도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엔 공포와 죽음께서 신녀를 통제할 테지만 그래도 만약의 사태는 대비해 두는 것이 좋다.
“그럼, 아빠 다녀올게.”
“빠아!”
“그래.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요.”
“빠앗!”
아기들을 하나씩 안아주는 것으로 인사를 마친 형진은 여신들을 대동한 채 엘리시온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음? 두 분 뿐인가요?”
“네. 아름이랑 새름이는 오늘 오전부터 훈련 일정이 잡혀 있다고 해서요.”
“아하.”
저마다 게임 밖에서의 생활이 있을테니 무조건 자신의 일정에 맞추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운동선수의 경우에는 하루를 쉬면 열흘치 훈련 성과가 날아간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더욱 그렇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빈님. 오늘 갈 곳은 확인해 두셨죠?”
“네. 미리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아바타 상태에서 벗어나 본신을 되찾은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바타를 통해 단련해 두었던 여러 가지 스탯 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건 확실히 속이 쓰린 일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형진은 어젯밤 공포와 죽음께 이런 것들을 어떻게 다시 되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아바타를 되돌려 줄 순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역시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사념체 백 개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그것이라면 본신을 유지한 상태에서도 아바타를 별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될 테니까.]형진은 그제서야 공포와 죽음이 그런 보상을 내려준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단순히 인형술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본신과 아바타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기 위한 보상이었다.
“아… 그럼 그걸 보상으로 내려주신 이유가…”
[뭐… 그건 알아서 생각하도록 하고.]
어쩐지 좀 쑥스러워하는 듯한 기색. 형진은 그런 느낌을 전해 받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형진이 그렇게 감사의 뜻을 전하자, 공포와 죽음은 다시 말을 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네가 앞으로 본신을 단련시키면 그 성과 역시 아바타에 다시 적용이 된다. 아바타란 기본적으로 본신을 기반으로 삼아 만들어지는 것이니, 본신의 능력이 상승하면 아바타의 능력도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 “네? 하지만 엘리시온에서는…”[그거야 제한을 걸어둬서 그런 거고. 본래의 아바타는 그렇지 않으니까.] “아하…”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본신 상태에서는 아바타처럼 매크로 수련으로 스탯을 올릴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해서 엉뚱한 신이 강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영약과 노가다만이 답이라는 얘기다. 당연한 얘기지만 본신은 아바타보다 성장률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이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