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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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임무
그렇게 달리다가 프리츠는 자신이 뭔가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곳은 엄연한 현실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수사관이 와서 현장을 살피고 증거를 수집한다. 프리츠는 오직 목표를 처치하고 아이를 구출하는 데만 신경이 팔려 있었을 뿐, 자신이 남겼을지도 모르는 증거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퀘스트가 지정하는 대로 무작정 그것을 따르기만 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흔적을 지우는 편이 좋을까. 하지만 어떻게? 그는 지금까지 그런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증거를 지우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더 큰 흔적을 만들어 놓고 올 수도 있는 일.
마음속에 갈등과 주저함이 생기자 걸음이 늦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멈칫하던 프리츠는 문득 아이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니?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괜찮… 아요.”
구출될 때까지만 해도 공포와 안도가 뒤섞여 미처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인지할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프리츠에게 안겨 어디론가 옮겨지기 시작하자, 아이는 지금껏 눌러 참고 있던 이런 저런 고통들을 느끼며 신음하고 있었다.
프리츠는 혀를 차며 얼른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역시나 열이 느껴진다. 잘 보니 묶여 있었던 팔과 다리에 상처도 나있었다. 만약 오래된 창고의 흙먼지로 인한 감염이라면 파상풍이나 패혈증 같은 증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상태라면, 감기 같은 가벼운 병으로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프리츠는 아차 싶은 생각에 우왕좌왕했다. 그러다 문득 인벤토리에 담겨져 있는 회복약을 떠올렸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인벤토리에서 회복약을 꺼낸 다음, 아이의 손바닥에 이렇게 적었다.
-이걸 먹어라. 아픔이 사라질 거다.
“약… 인가요?”
-그래. 천사들의 약이다.
“…”
아이는 약이라는 말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프리츠가 내미는 대로 회복약을 마셨다.
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이 아이의 입속으로 흘러들어가자 살짝 딸기향이 느껴진다. 설마 이런 상황까지 고려해서 약을 준비한 것일까.
“으… 콜록콜록!”
아이는 약을 먹다 말고 사래가 들렸는지 잠시 재채기를 하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왜? 뭔가 문제라도?
“그게… 안 아파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구출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긴장이 풀어지자 극심한 현기증과 함께 몸 전체에서 격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배에서는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으며, 묶여 있었던 팔다리는 쿡쿡 쑤셨다. 그런데 방금 전의 그 약을 먹고 나자, 그런 통증들이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대단해요! 진짜 천사였군요!”
“…”
프리츠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이마를 다시 짚어보고 팔다리를 살폈다. 놀랍게도 어느새 열은 식어 있었으며, 팔다리의 상처도 깨끗하게 아물어 있었다. 남은 흔적이라고는 묻어 있던 먼지 같은 것 뿐. 생각 같아서는 그것도 깨끗이 닦아주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럼 다시 갈까.
“네!”
비록 눈이 가려져 있었지만 아이의 표정은 훨씬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검은 날개의 천사가 자신을 구하러 와준 것이라고 철석 같이 믿고 있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이렇게 아픈 것을 순식간에 낫게 해주었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라도, 이것이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프리츠는 그렇게 표정이 밝아진 아이를 소중하게 안은 채 화살표가 가리키는 장소까지 급히 달려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혹시나 남았을지 모르는 증거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는 이내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자신처럼 햇병아리 초짜가 아닌, 정말로 죽음의 천사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보스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란 확신이 그의 불안을 날려 버렸다.
그것은 신뢰였으며 또한 믿음이었다. 종교적 열정이나 신앙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지만, 누군가가 지켜보고 뒤를 받쳐준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는 불안을 떨쳐 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마침내 화살표가 가리키는 장소에 도달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한쌍의 남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보스가 되어 버린 검은 날개의 천사와, 그의 짝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흰 갑옷의 여기사다.
[임무가 갱신되었습니다.] -놈의 은신처가 멀지않은 곳에 있다. 서둘러라. (완료!)-놈이 안에 있다. 찾아내어 그 영혼에 공포를 새겨 넣어라. (완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갇혀 있는 아이를 찾아내 구출해야만 한다. (완료!)
-수고했다. 아이를 데리고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라. (완료!)
-축하한다. 나머지 일은 진에게 맡기면 된다. 모든 일이 완료되면 그가 너에게 보상을 줄 것이다.
“후우…”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요안나가 다가와 아이를 건네받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저희들에게 맡기십시오.”
“감…”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려다가 프리츠는 화들짝 놀라며 아이를 돌아보았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말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으나, 이미 요안나의 품에 안긴 아이는 새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든 상태였다.
“그럼 일의 마무리를 지어야겠군요. 가실까요.”
“네.”
형진은 다시금 거대한 흑요호의 형상을 불러냈다. 그리고 곧바로 모두를 태우고 가장 움직였다.
미국에는 뭐든 다 있을 것 같지만 없는 것도 있다. 파출소 같은 것도 그런 것으로서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일일이 각 지역마다 파출소를 설치해서는 재정이 감당되지 않기 때문에 지역 경찰서나 보안관들이 차량이나 모터사이클 등을 이용해 방범이나 순찰활동을 하게 된다.
지금 이들이 있는 지역 역시 인구 밀도가 극히 희박한 곳이라 가장 가까운 경찰서라고 해도 상당히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총소리가 두 번이나 울려 퍼진 시점에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고 파출소에서 즉각 경찰이 출동했겠지만, 이곳은 그런 일이 벌어져도 알아차릴 만한 이웃조차 없다. 유괴범이 개의치 않고 바로 방아쇠를 당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형진은 흑요호를 몰아 가장 가까운 카운티에 위치한 보안관 사무소로 향했다.
“이쯤이면 되겠군.”
보안관이라고 하면 서부시대의 개 타고 말 파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현대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도시 경찰보다 한 단계 위의 상위 경찰 조직으로서 존재한다. 실제로 뉴욕이나 LA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들은 영세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서 SWAT팀 같은 것이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만약 그런 도시 경찰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비상사태가 터지면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에서 지원 병력과 SWAT팀, 폭발물 탐지 로봇 같은 것을 지원하게 된다.
지금 도착한 곳 역시 바로 그러한 카운티 보안관이 배치된 사무소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구대쯤은 되는 곳이다.
형진은 보안관 사무소 옥상 위에 흑요호를 내려 앉게 한 다음, 요안나가 안고 있던 아이를 건네받아 아래로 훌쩍 뛰어 내렸다.
야간 순찰을 준비하던 보안관들은 갑자기 허공으로부터 시커먼 검은 날개로 몸을 감싼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자 기겁을 해버렸다.
“누구냐!”
“손들어!”
아무리 미국 경찰이라도 보통은 이렇게 보자마자 놀라서 고함을 지르거나 총을 꺼내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크고 검은 날개로 입구를 가로막고 안으로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공포라는 감정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기이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쉿.”
흑요호의 검은 기운으로 빈틈없이 몸을 감싼 형진은 날개로 소중하게 품고 있던 아이를 꺼내 보였다. 그리고는 꼬리로 아이의 몸을 휘감아 가까운 곳에 서있던 보안관에게 건네주었다.
경황중이긴 해도 보안관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난 인물이 일리노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죽음의 천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은 일부러 흉내를 낼 수조차 없는 그런 것이었기에, 보안관들 가운데 몇몇은 덜덜 떨면서 형진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무사히 건네주자, 형진은 다시 품에서 글자가 또박또박 인쇄된 명함 같은 것 하나를 꺼내어 다른 보안관에게 건네주었다.
종이 조각을 받아든 보안관이 얼른 내용을 확인해 보니, 그곳에는 자신들의 관할 구역 가운데 한 곳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건…”
어두운 밤, 갑자기 나타난 죽음의 천사. 그리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잠들어 있는 아이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뜻밖의 주소. 보안관들이 이 모든 것의 관계를 미처 인지하기도 저에, 볼 일을 마친 형진은 훅 하고 꺼지듯 그들의 시선에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이미 마스터레벨에 도달한 은신 능력은 실로 가공스러워서, 보안관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폐쇄회로 카메라까지 설치되어 있는 사무소 한복판에서 모습을 감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흔적은커녕 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헉!”
“바, 방금 그건…”
보안관들은 잠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가 얼른 사무소 바깥으로 나가봤지만 이미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다른 보안관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몇몇 보안관들은 아이와 쪽지를 확인했다. 방금 죽음의 천사에게서 건네어진 아이가 실종 상태라는 것을 그들이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것의 의미를 깨달은 보안관들은 다급하게 차를 타고 쪽지에 적혀 있던 주소로 향했다.
급히 차를 타고 달려간 보안관들은 그곳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한 인물을 발견했으며,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던 지하의 토굴에서 아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 또한 발견했다.
“…”
프리츠는 거대한 흑요호의 등에 올라탄 채 그런 보안관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없이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제대로 실감이 나질 않는다.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고 아이를 구해냈다는 사실이 어쩐지 꿈결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몸에서 풍겨지는 혈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는 이것을 꿈으로 단정했을지도 모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마무리를 지어볼까요.”
“저는… 합격입니까?”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프리츠를 향해 형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다행… 이군요.”
불합격이라면 지금 이순간 기억이 지워진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떠올랐으나, 한편으로는 안심한 채 쌔근거리며 잠이 들었던 아이의 모습이 화인처럼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은 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그 대신 한 사람을 살렸다.
살인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미화될 수 없는 일. 그래서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자신의 보스가 말했던 공포와 죽음의 의미를.
-죄라는 이름의 가치에 대한 가책과 두려움이 형상화된 것이 곧 공포이며, 죽음은 이러한 공포를 해소하는 가장 빠르고 적절한 수단으로 정의됩니다. 그러한 신을 모시는 성도로서, 우리들은 이와 같은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적절한 의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프리츠는 앞서 형진이 했던 말을 가만히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가슴 속에 온전히 담았다.
“손을.”
“…”
아까와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자, 형진은 그의 손등에 자신의 문장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프리츠에 시야에 다시금 메시지가 나타난다.
-놈이 안에 있다. 찾아내어 그 영혼에 공포를 새겨 넣어라. (완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갇혀 있는 아이를 찾아내 구출해야만 한다. (완료!)
-수고했다. 아이를 데리고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라. (완료!)
-축하한다. 나머지 일은 진에게 맡기면 된다. 모든 일이 완료되면 그가 너에게 보상을 줄 것이다. (완료!) [축하합니다!] -‘암살신의 성도’ 퀘스트를 무사히 완수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공포의 낙인’이 부여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각인의 집행자’ 전직이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인벤토리’를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팩션 공헌도’가 10 증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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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