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1831)
1840. 광명승천도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현대 무기였다. 폭탄, 미사일 등 강력한 화력으로 대량 살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무기들.
‘무기 대부분은 [백환] 세계에 있어서 가져오려면 반복 노가다를 해야 해. 귀찮은 일이지. 무엇보다 현대 무기를 쓰면 보충할 방법이 없어.’
현실에서 현대 무기를 구한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현실의 대한민국은 총기 규제 국가였으며, 뛰어난 실력의 브로커라도 대량 살상 무기를 구하기 힘들었다. 돈이 있어도 힘들다는 뜻이다.
‘솔직히 그것들은 [백환] 세계에 계속 남겨두고 싶은데.’
[백환] 세계는 끝나지 않았다. 모든 적을 쳐 죽이긴 했어도 세계가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반란군 같은 불순한 무리가 나타난다. 그때 현대 무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메이드들을 현대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 시켰으니까. [뱀파이어 형사] 세계가 끝장난 게 많이 뼈아프다. 당연하게 얻을 수 있는 무기들을 이젠 얻을 수 없게 됐으니까.‘뱀파이어 형사 이상의 풍족한 세계가 필요해.’
차선책은 천강성의 빛이다. 내가 모르는 별의 힘 중에는 이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
‘천옥 100개가 아깝긴 해도 영영 다시 못 모으는 건 아니니까.’
지금 내가 보유한 천옥은 146개.
나는 고민하다가 천옥 100개를 사용해 새로운 별의 힘을 알아내기로 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니까. 쓸만한 게 나올 거야.’
운이 좋은 건 빈말이 아니었다. 게임 가챠를 했을 때도 좋은 캐릭터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외에도 다른 곳에서 운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경우는 드물었다.
『천옥 100개를 사용합니다.』
느껴진다. 내 공간함에 들어 있던 천옥 146개 중 100개가 사라지는 것이. 그리고 새로운 별의 이름과 힘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박힌다.
『천살성(天殺星).』
천살성은 두 가지 힘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하나는 죽음을 행하는 것. 죽음이 없는 것에도 죽음을 행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죽음이 없는 불사신이라도 천살성은 죽일 수 있다. 그 외에도 뭐든 죽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천살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생명을 죽이면 체력과 상처, 내기를 약간씩 회복한다는 것이다. 정신력은 회복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천살성의 생명력 강탈이다.
“하, 하하하! 대박을 터트렸군!”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천살성을 사용한다. 천살성의 기운이 내 몸에 강림한다.
파앗.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멈칫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뱀 앞에 선 생쥐와 같았다. 포식자를 보며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 허나 그들은 바로 공포에서 벗어났다. 지금 그들의 머리는 주술에 의해 강제로 분노가 폭발한 상태다.
“죽여!!!”
누군가가 외쳤고, 살마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달려든다.
나는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주술인가?’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는 주술이 틀림없었다. 저것을 죽일 방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마기를 침투시켜서 머리에 있는 주술만 죽이면 될 것 같군.’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효율의 문제였다. 주술을 하나 없앨 힘과 집중력으로 수백 명을 죽일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놈들을 구해야 할 이유도 없고.
‘다시 시작해볼까. 우선 마후라를 터트린다.’
나를 감싸고 있던 반투명한 방어막이 펑 하고 터진다. 방어막을 두들기던 일반인들은 그에 휘말려 전신이 터져나갔다.
그들이 죽으면서 체력이 회복되었다. 새로운 내기가 차오른다. 나는 아까보다 가벼워진 팔을 느끼며 칼을 휘둘렀다.
천마신검(天魔神劍) 격섬(撃閃).
거대한 참격이 적들을 휩쓸고 지나가며 수백 명을 참살했다. 그리고 죽인 만큼 나는 회복했다. 온몸에 활력이 넘친다.
마겁을 한 번 더 쓰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마겁을 써버리는 순간 화련비도가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박살 날 수 있으니까.
천마신검(天魔神劍) 수라난무(修羅亂舞).
세 개의 거대한 검기를 날렸다. 검기는 쪼개지며 무수히 많은 검기가 되어 인간을 도륙했다.
한 호흡에 수만 명이 죽었다. 사방에 피 냄새가 진동한다. 그럼에도 나를 노리는 인간은 끝이 없다. 지금도 인간이 밀려온다.
-서, 서방님! 괜찮아요? 지금 서방님 엄청 오싹 하거든요? 뭘 한 거예요?
“천살성이 됐지.”
-제가 아는 그 천살성이요? 제가 아는 천살성은 사람을 죽이면서 살성에 빠져 폭주한다고 하던데요. …괜찮아요?
“괜찮고말고.”
살성을 무슨.
나는 내 의지대로 칼을 휘두르며, 내 판단으로 인간을 죽이고 있었다. 살성이니, 폭주니 무언가가 끼어들 틈은 없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온몸에 피칠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피는 나중에 씻어내면 그만이다.
“이, 이 악귀 같은 놈…!”
오른팔을 잃은 놈이 치를 떨며 나를 노려봤다. 그는 동가에 있던 오기경의 무인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를 비웃으며 심장에 칼을 박았다.
“닥치고 죽어라.”
촤르르륵!
뒤에서 사슬낫이 날아와 내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색 옷으로 몸을 감싼 살수 하나가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사슬낫이 순식간에 형태를 바꾼다. 허수아비처럼 생긴 무언가로 문제는 그것의 몸에서 돋아난 사슬들이 내 몸을 붙잡았다는 것이다.
‘힘이 빠지는군. 저주의 일종인가.’
단전에서 천마신공의 기운이 고동쳤다. 당장 나를 사용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걸렸다. 끝내라.”
숨어 있던 살수들이 일제히 나타났다. 총 6명. 각각 무기를 꼬나쥐고 일제히 달려든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내 몸은 사라지고 사슬낫을 쥔 살수의 앞에 나타났다. 살수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진다. 나는 놈의 목을 잡으며 빙그레 웃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화르륵!
시커먼 화염이 일어나 살수의 몸을 삼켰다.
“끄아아아아악!”
살수는 비명과 함께 재가 되었다. 손을 턴 나는 보이는 모든 것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살수든, 일반인이든, 무인이든 개의치 않고 전부 죽였다.
지치지 않고 체력이 회복된다. 그 점에 어느 순간부터 전투에. 아니, 학살에 빠져들었다.
‘기술들을 실험하기에 딱 좋군.’
기억에 있는 천마신공을 마음껏 사용했다.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직접 사용해보는 것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에서 오는 오류를 직접 경험하며 오차를 수정한다.
나는 살육에 빠져들었고, 어느 순간 무아지경이 되어 사람을 죽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칼에는 동가의 가주가 박혀 있었다.
“괴물놈…! 대체 무슨 목적으로 우리 동가를 노린 거냐?! 우리 가문에 원한이라도 있는 거냐?!”
가주는 피눈물을 흘리며 내게 물었다.
“원한 같은 건 없다. 그냥 동가가 적당히 좋은 곳에 있어서 말이야.”
“…망할. 네놈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나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자.”
툭.
가주의 소매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벽력탄이었다.
콰아아아앙!
폭발이 일어나 나와 가주를 휩쓸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일으켜 몸을 보호했으나, 가주는 그대로 폭발에 당해 몸이 산산이 조각났다.
나는 화련비도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옆으로 몸을 돌렸다. 당연하다는 듯이 다른 놈을 죽이려고 했는데, 문득 보니 내 주위에는 살아 있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시체뿐이다.
“…미령.”
-네. 서방님.
“끝이야?”
-네. 끝났어요. 서방님이 죄다 죽여버렸죠. 설마 기억 안 나세요?
미령이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천살성에 먹힌 게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다.
“기억은 나. 무아지경에 빠져있긴 했어도 기억 상실은 아니니까. 몇 명을 죽인 거야?”
-글쎄요. 서방님이 50만 명을 죽이고… 제가 20만 명은 죽인 것 같네요.
“네가 20만 명이나 죽였다고?”
-저라고 해서 놀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서방님이 버텨주신 덕분에 대규모 술법을 사용할 수 있었어요. 저기 보이세요? 아, 서방님 쪽에서 시체 언덕밖에 안 보이려나?
무릎을 살짝 굽혔다 피며 하늘을 향해 뛰었다. 30m를 도약한 나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박살 난 도시에 커다란 바위 같은 게 곳곳에 꽂혀 있었다.
‘대규모 술법이라더니 바위를 떨어뜨려 죽인 건가.’
대량 살상 능력만 따지면 술법이 무공보다 더 효과적인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돌아가죠? 너무 늦으면 귀찮아질 거예요.
“그렇겠지. 전이술 사용할 수 있겠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공간 이동 주문서 가지고 있지? 그거 써서 돌아가.”
-네. 알겠어요. 집에서 봐요.
하늘에서 느껴지던 미령의 기척이 사라졌다.
나는 공간 이동 주문서 대신 천강성 시스템의 공간 전이 시스템을 사용해 낙워산으로 귀환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기에 바로 욕실로 직행했다. 잠시 후, 미령까지 욕실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달리 그녀는 피 한 방울 몸에 묻지 않았다. 굳이 욕실에 들어온 이유는 없었다.
“등 밀어 드릴게요.”
“알고 있겠지만, 내가 지금 좀 흥분한 상태야.”
“알고 있어요, 서방님.”
미령을 보는 순간 전투의 열기는 바로 성욕으로 변했다. 자지가 순식간에 발기한다.
미령은 내 자지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녀가 천천히 옷을 벗으며 백옥같은 피부를 선보였다.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피투성이인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백란과 약속한 시간까지 앞으로 이틀. 아무래도 그 이틀 동안 미령과 침대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
『공간 전이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공간 전이 장소: 천마신교』
약속한 시간에 천마신교로 돌아왔다.
천마신교는 조용했다. 스산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백란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현재 천마신교는 거의 비어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교주인 천마는 자기 방에 처박혀 있을 테고, 일부 장로들은 전선에, 일부 장로들은 마가로 향했을 것이다. 마교의 전투 부대는 마교와 싸우고 있을 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소천마 천유운을 즐기고 천마신공을 증명한다. 마가가 나를 지지할 것이니 장로와 천마는 나를 규탄하지 못할 것이다. 천마신교에서 천마신공은 천가의 혈통보다 훨씬 중요하니.
‘드디어 천유운을 죽일 시간이 왔군.’
1841. 광명승천도
천유운은 백란과 나의 계획을 어느 정도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천유운이 무언가를 대비하고 있을 수 있었다. 일이 마냥 잘 풀린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천유운이 준비한 것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놈을 죽이면 내가 이기는 거다.’
반대로 천유운이 죽이지 못하면 내가 진다. 계속 천마신교에 있을 수 없다. 천유운은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 할 테고, 천마신교의 대부분은 천유운의 편이다. 천마신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한 짓은 반역에 가까우니까.
‘반역의 실패는 숙청이지.’
나는 천마신교를 둘러봤다.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대부분 일반인이다. 천마신교라해서 마공을 익힌 무인만 있는 게 아니다. 경제는 무인만으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천마신교의 절대다수는 일반인이었다.
‘미래에는 내가 지배할 놈들이지.’
천유운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백란과 헤어지기 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천유운은 아마도 근신을 당할 것이라고. 그러니 천유운의 소속이라 할 수 있는 염마대에는 천유운이 없을 것이다.
이것도 백란의 계획이다. 염마대는 천마신교에서 손꼽히는 정예 부대. 지금 남아 있는 염마대원의 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 상대하기는 힘들다.
‘근신 받은 게 다행이지. 아니, 근신 받도록 유도한 건가.’
백란이 회귀천마라고 해도 천마신교의 현 상황을 훤히 꿰뚫고 계획을 세우며 실행하는 걸 보면 엄청났다.
나는 천유운이 기거하는 소천마궁으로 향했다. 천유운은 근신 중이니 그곳에 있을 것이다.
많은 게 걸려있다 보니 좀 긴장된다. 허리춤에 찬 칼자루를 매만지며 긴장감을 조절했다. 화련비도가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화련비도는 금이 간 상태였다. 마음대로 휘둘렀다간 정말로 박살 날지도 모른다. 화련비도를 수리하기 전까지는 다른 칼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스톰브레이커도 나쁘지 않지만, 손맛이 영 아니란 말이지.’
내 기준으로 스톰브레이커는 무기라기보다는 방어구에 더 가까웠다. 방어구로 사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소천마궁에 도착했다. 소천마궁 앞에는 4명의 무인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4명다 오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
‘4명 전원 오기 초단이다. 오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군.’
오기의 무인은 흔하지 않다. 천마신교에서도 대우받는다. 정예인 동시에 주력이라 보면 된다. 그런 무인을 문지기로 세워둔다?
‘아무리 소천마라도 그럴 권한이… 있나?’
문득 원작 내용이 떠올랐다. 천유운은 음흉하게 자기 기반을 닦는 놈이었다. 재능 있는 무인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지원하면서 충성심을 심으며 자신을 따르는 무인을 은밀히 양성했다.
‘이 4명은 천유운이 양성하는 무인 중 성공한 놈이겠지.’
한 놈이 눈에 띈다. 오른팔을 붉은색 천으로 돌돌 두른 놈이었다. 나락검(奈落劍) 려학이 확실했다.
그는 원작에서 천유운이 양성한 무인 중 가장 충성심이 높고 가장 재능이 뛰어났다. 그가 천유운에게 충성하는 이유는 천유운이 형제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도와줬기 때문이다.
나는 멈추지 않고 소천마궁으로 다가갔다. 결계의 존재가 느껴졌다. 역시 천유운은 상황을 눈치채고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소천마께선 근신 중입니다. 그 누구도 소천마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소천마께 전할 말씀이 있다면 제게 말해주시죠.
따로 가져온 서신이 있으시다면 소천마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려학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기계처럼 말을 쏟아냈다. 망설임 없이 쏟아내는 걸 보니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모양이다.
“나는 섬전도 염구석이다. 주군을 만나러 왔다. 중요한 보고다. 주군께 직접 보고해야한다. 문을 열어라.”
“예외는 없습니다. 누구도 소천마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갈모순도?”
“…….”
려학이 입을 다물었다. 제갈모순은 천유운의 최측근이다. 아마 안에 같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주군께 내가 왔음을 전해라. 너희 문지기의 역할이 원래 그것이잖냐. 문지기 주제에 건방지군. 문지기 주제에.”
나는 그들을 씹었다. 오기의 무인이 문지기를 하는 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꼴이었다. 그들도 그걸 알기에 내 비아냥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다.
“…주군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4명 중 1명이 궁으로 들어갔다. 그는 3분 만에 다시 문밖으로 나왔다.
“소천마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중에 따로 부르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까지 돌아가서 대기하십시오.”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유운은 자기가 본 원작 소설을 통해 인재를 수집하고 정보를 관리한다. 그 까다로운 천유운이 염구석을 믿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금 그 믿음이 흔들렸다는 건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지. 일이 일어난 것과 내가 갑자기 사라지고, 돌아온 시기까지 완벽하게 들어맞으니까.’
후에 마뇌(魔腦)라 불리는 제갈모순까지 천유운의 옆에 있었다.
‘보고하는 척 가까이 다가가서 쓱싹 하는 건 힘들겠군. 그냥 정공법으로 간다.’
[시간 가속을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7]시간이 훅 느려진다. 나는 허리춤에 매단 칼자루를 오른손으로 잡았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반응했다. 두 눈을 부릅뜨더니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려 한다. 하지만 느리다.
천마신검(天魔神劍) 환절(幻絶).
천마신검의 유일의 발도술을 사용했다. 칼집에서부터 검은색 선이 뻗어 나와 수평으로 반원을 그린다. 세 명이 그대로 칼에 베였으나, 려학은 용케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당황한 얼굴을 보니 직감 등으로 우연히 피한 모양이다. 과연 재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아직 시간 가속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려학에게 달려들었다. 려학은 이에 반응했다. 지금 그의 반응속도는 나를 뒤쫓으며 일시적으로 몇 단계 상승했다. 달리 초집중 상태라고 해야 할까.
려학이 들어 올린 검이 아래로 떨어진다. 나락검이란 별호가 붙은 이유가 저 떨어지는 검술 때문이다. 려학은 유독 떨어지는 검을 잘 사용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나쁘군.’
오기 초단과 삼정 초단. 그 차이는 단순히 집중력과 재능만으로 메꿀 수 없다. 내가 방심했다면 또 모를까, 지금 나는 진심이었다. 최대한 빨리 천유운을 죽여야 한다.
위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더 빨리 내 칼이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칼에 담긴 마기가 그린 검은색 궤적은 허공에서 잔류하다가 사라졌다.
[시간 가속이 끝났습니다.]려학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나는 4명의 시체를 지나쳐 소천마궁의 문을 잡았다.
파직!
전류가 튀며 내 손을 튕겨낸다. 결계였다.
‘뭐, 당연히 있겠지.’
평범한 인간이 머무는 곳도 아니고, 천마의 아들이 머무는 곳이다. 결계가 없다면 더 이상했다.
나는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미령이 만들어준 부적이었다. 이 부적만으로 결계를 부수는 건 불가능하지만, 결계 내부로 들어가는 가능했다. 부적을 손에 쥐고 문을 열었다. 반발 없이 열렸다. 대신 미령이 준 부적은 불에 타 재가되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를 심은 정원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곧 내 것이 될 정원이니… 흠. 나쁘지 않군.’
정웡에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소나무 아래 땅이 들썩거리더니 푸른 피부의 강시들이 우후죽순 나타났다.
‘청강시(靑偪尸)인가. 제갈모순의 짓이군.’
제갈모순은 강시술사였다. 제갈세가에서 쫓겨난 이유도 강시 연구 때문이었다. 그는 강시 연구를 마음껏 하기 위해 천마신교로 왔다.
청강시들이 내게 달려든다. 단순히 속도만 따지면 아까 상대한 려학보다 조금 더 빠르다 할 수 있었다.
‘천유운의 지원을 받으면서 온갖 귀한 약재를 강시에 때려 박았겠지. 저 시체들이 살아 있을 때도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을 테고.’
천마신검(天魔神劍) 천충수라(天衝修羅).
상체를 살짝 숙이고 칼끝을 앞으로 내밀었다. 천마기로 온몸에 감싸며 정면을 향해 돌진한다.
콰앙!
내 몸에 닿은 청강시들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사방으로 튕겨나가 널브러진다. 그래도 청강시는 움직였다. 인간과 달리 고통도 없고 생각도 없다.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적을 공격한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놈을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갈라 양단했다. 푸른 피가 나를 덮친다. 독한 냄새가 났다.
‘십중팔구 독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마후라(摩睺羅).
호신강기보다 더 단단한 방어막으로 독을 막는다. 치이이이익! 독에 닿은 방어막이 녹아내린다.
‘마후라가 아니라 호신강기를 펼쳤으면 좆될뻔 했군.’
양단된 강시는 팔과 다리로 땅을 기며 내게 접근했다. 기괴하기짝이 없는 움직임이다.
마신검(天魔神劍) 수라난무(修羅亂舞).
수십 개의 검은 검기가 주위 공간을 난도질한다. 주변은 청강시들의 피와 살덩어리로 엉망이 되었다. 그 운치 있던 소나무도 천 갈래로 찢겨 바닥을 나뒹굴었다.
모종의 시선을 느낀 나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
궁의 꼭대기 층. 그곳에서 천유운과 제갈모순이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그들에게 엄지로 목을 그어 보였다.
천유운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피 한 줄기가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지금 이 상황이 어지간히도 짜증 나는 모양이다. 어쩌면 내게 배신당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죽여야 할 놈의 위치를 알았으니 이제 가서 죽이면 된다. 내가 위로 점프하려는 찰나였다. 하늘에서 한 사람이 쿵 떨어지며 바닥에 쌓여 있던 푸른 피와 살점, 흙먼지가 치솟는다.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놈의 기세는 느껴진다. 피부를 찌릿하게 만드는, 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기세. 아니, 어쩌면 나 이상으로 강하다.
‘최소 삼정. 즉, 장로인가.’
흙먼지가 걷히고 그의 외형이 드러났다.
150cm도 되지 않는 작은 키의 중년이었다. 얼굴이 길쭉하고 주둥이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쥐를 닮아서 얍삽하게 생겼다. 빈말로도 잘생겼다고 말하기 힘든 얼굴이다.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양손이 파랗다는 거다.
천마신교의 팔장로인 청수색마(靑手色魔) 권만옥이다.
“큭큭. 소천마의 말대로 정말로 올 줄이야. 천마신공은 어떻게 얻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