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4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84화
* * *
사라는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는 두 명의 못난이들을 바라보았다.
“벨루나.”
“…….”
“벤야민.”
“…….”
저 둘은 그렇게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너희 정말 이럴 거니?”
눈살을 찌푸리는 사라에게 벨루나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마탑과 상의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조금만 이렇게 곁에 있다가 가겠습니다.”
“벨루나 너까지 왜 그러는 거야…….”
“그것까지만, 허락해 주세요.”
사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답지 않게 간절한 눈을 하고선 그녀를 바라보는 벨루나의 눈빛에 마음이 약해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러던 애가 저러니까 진짜……, 힘드네.’
벨루나는 사라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박혜연과 사라 밀런의 삶을 살던 그녀보다는 살아온 세월이 적었겠지만, 어쨌든 벨루나는 사라 밀런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올리븐은 소년 때부터 함께했고, 벤야민은 성년이 되기 전에 데려왔지만 벨루나만큼은 다 자란 성인이 되어서야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벨루나 또한 어렴풋하게 제 스승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녀에게 깍듯했고, 그와 동시에 어른스러웠다.
그런 벨루나가 저렇게 아이처럼 눈망울을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치만, 클로드 님이…….’
사라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저쪽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클로드를 보았다.
이 둘이 사라를 따라다닌 뒤부터 클로드가 사라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메이, 클로드 님에게 해치지 않으니 괜찮다고 전해 줄래?”
“네, 사라 님.”
사라는 메이를 통해 클로드와 의사소통을 했다.
단단히 토라진 클로드가 그녀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메이가 착착착 걸어가 클로드에게 사라의 말을 전달하자 아이는 까치발을 들어 메이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여 주었다.
사라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는 메이의 표정 변화를 구석구석 빈틈없이 모조리 살펴보았다.
메이가 미간을 좁히면 가슴이 철렁했다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 다시 희망이라는 게 차올랐다.
“사라 님.”
“응, 클로드 님이 뭐라셔?”
“무섭다고 하시는데요……. 저분이.”
메이의 손가락은 벤야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얼굴을 내민 클로드는 새파랗게 날이 선 시선으로 벤야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아기 고양이가 힘껏 온몸에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건 그것대로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클로드가 사라도 함께 피하니 그건 또 그것대로 괴로웠다.
“잠깐 뒤로 물러서 봐.”
사라의 말에 벤야민과 벨루나가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클로드가 두 걸음 다가왔다.
‘이거다.’
사라는 드디어 클로드의 마음을 풀어 줄 공략법을 찾아냈다.
“벤야민은 스무 걸음 뒤로.”
“……네.”
그는 순순히 사라의 말대로 뒤로 성큼성큼 걸어 물러났다.
안전거리가 확보되자 저 멀리 숨어 있던 클로드가 쪼르르 사라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괜찮아요, 클로드 님?”
“응, 나 저 아저씨 무서워.”
“그럴 만도 하죠.”
사라는 클로드를 끌어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다.
클로드는 그렇게 유모의 품을 차지한 채 뒤로 보이는 벤야민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
그러자 저 멀리서 벤야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벨루나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암브로시아 공자께서 아주 귀여우시군요. 과연 스승님께서 아끼실 만합니다.”
“그치? 우리 클로드 님 귀엽지?”
“예, 아주 귀여우면서도 의젓하십니다.”
사라의 품에 안겨 있던 클로드의 시선이 또르르 굴러와 벨루나를 향했다.
벨루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최대한 친절하게 웃어 보이려 애쓰며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클로드는 마치 탐색이라도 하는 시선으로 벨루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벨루나는 조금이라도 무서워 보이지 않기 위해 손가락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벨루나는 바로 알아챘다.
이곳에서 스승의 곁에 붙어 있으려면 저 작은 꼬맹이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저 누나 좋아.”
“……!”
마침내 클로드의 허락이 떨어졌다.
벨루나는 황궁에서 난리를 피운 게 자신이 아닌 벤야민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세상에, 벨루나가 마음에 들었군요.”
그 관대한 마음씨에 사라는 감동한 모양이었다.
내심 클로드와 제자들 사이에 마찰이 있을까 봐 걱정했다.
그래도 이렇게 클로드의 허락이 떨어지니 사라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마탑과 협상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그 기간만 클로드가 잘 버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감사합니다.”
벨루나는 허리를 숙여 사라의 품에 안겨 있는 클로드와 눈을 맞추며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이 의외였던지, 아니면 퍽 마음에 든 모양인지 클로드는 벨루나에 대한 경계를 조금 풀었다.
그러곤 다시 저 뒤에 있는 벤야민에게 날 선 시선을 던졌다.
클로드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눈치챈 사라는 재빠르게 벤야민에게 말했다.
“벤야민, 네가 여기 있는 동안 정 내 곁에 머물고 싶다면 앞으로 그 거리를 유지하도록 해.”
“……!”
벤야민은 순간 무어라 말하려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클로드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올리븐은?”
“아무래도 충격이 큰 모양입니다. 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있습니다.”
“……더 울라고 하렴.”
사라는 냉정하게 말하며 뒤를 돌아 걸어갔다.
올리븐은 여러모로 안쓰러운 아이라서 사라가 조금 무르게 군 적이 많았다.
다 큰 제자의 어리광을 받아 주고 토닥여 주었더니 나쁜 버릇이 든 모양이었다.
정말 잘못 키웠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였다.
사라는 이제부터 그에게 조금 더 냉철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가 볼까요, 클로드 님? 배고프죠?”
“응, 배고파.”
곧 에단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사라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에단의 얼굴을 어떻게 보면 좋을지 고민했다.
“메이, 공작님은?”
“이미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어젯밤 그녀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던 에단은 한참 동안이나 일어나지 않았다.
어찌나 깊게 잠들었던지.
마법으로 그를 침실까지 옮겨다 주고 턱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어도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 뒤로도 사라는 한참 동안이나 에단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공작님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어.’
선대 공작이 아비 자격이 없는 사람인 건 잘 알고 있었다.
에단이 직접 그녀에게 말해 주었으니까.
다만, 어머니까지 에단에게 상처를 줬을 줄은 몰랐다.
‘대체 어떻게 견뎠을까.’
에단 암브로시아라는 남자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힘을 탐하는 아비와, 그를 혐오하던 어미, 그리고 언제든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암브로시아의 저주까지.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공작위를 이어받아 훌륭하게 가문을 이끌어 갈 수 있었을까.
그 무게를 어떻게 짊어졌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사라는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식당에 먼저 자리하고 있는 에단을 발견하자 사라는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라.”
저 멀리서 걸어 들어오는 그녀를 발견하자 무표정했던 에단의 얼굴이 봄날의 햇살처럼 부드럽게 풀어졌다.
사라는 그 모습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느리게 보인다고 생각하며 눈을 깜빡였다.
“솔직히 저렇게 웃는 건 반칙 아닌가?”
“응? 뭐라고 유모?”
“아니에요. 우리 어서 가요.”
무심코 속의 말을 중얼거린 사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 클로드에게 웃어 보이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