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그가 온다’는 최예찬이 오래 준비한 작품 중 하나였다.
범죄, 액션물이자, 사회 풍파를 담고 있는 영화.
악인들의 전쟁을 찍을 때부터 준비해오던 작품이었고, 그렇기에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 크게 신경을 썼다.
그중 단 하나의 배역만큼은 꼭 이 배우를 써야겠다는 게 있었다.
한성태, 그리고 타투이스트.
작품을 쓰면서, 배역을 정하면서 떠올렸던 단 한 사람.
악인들의 전쟁에서 봤던 연기가 있었기에 더더욱 한성태를 쓰고자 했다.
한성태는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번에도 기대를 시켜주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성태가 영화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에게 배역을 제안한 건 몇 주 지나지도 않았고.
연습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을뿐더러, 애초에 배역의 비중 역시 영화 상 5초 정도 들어갈 게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딱 한 번.
한성태라는 그 사람이 영화의 마지막에 강한 인상만 남겨줄 수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었는데.
‘……뭐지?’
그는 한성태의 연기를 본 순간, 생각이 정지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전신 타투를 한, 한성태가 마루에 누워 있었다.
그 앞으로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의자 옆으로는 책상과 책상 위로 타투에 사용하는 도구 상자가 놓여 있다.
그래, 딱 최예찬이 원하는 구도였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한성태는 그 이상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나른한 표정과 느릿한 행동에 그의 온 신경이 빨려들어갔다.
마치, 이 자리에 한성태 그 혼자만 있는 것처럼.
주연은 따로 있는데도, 한성태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사이 또 성장했다고?’
한성태의 모습을 보며 최예찬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 재능을 갈고닦을 열정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게 이 정도로 빠른 성장을 불러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불과 1, 2년 전만 해도 대학교 신입생이었으며, 대학교 무대에서 열 몇 명의 사람을 앉혀두고 연극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랬던 사람이, 그 사이에 모두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엄청난 성장세라 말할 수 있었고 절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한성태의 모습을 보며 최예찬을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한성태와 인연을 맺은 것.
어쩌면, 그 인연의 계기가 자신이 가진 모든 행운을 쏟은 게 아닐까 하고.
그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한성태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는, 촬영이 시작된 시점에서 이미 타투이스트가 되어 있었다.
골목길 타투이스트.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없고,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최예찬도 그에게 타투이스트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성태는 타투이스트에게 이야기를 부여했다.
그의 과거가 어떠했고 현재는 어떠한지.
꿈이 무엇이었으며, 왜 타투이스트를 하고 있는 건지.
‘타투이스트는 조폭이었다.’
한성태가 부여한 이야기의 한 가지는 타투이스트의 과거가 조직폭력배라는 것이었다.
성공하기 위해 조직에 들어갔고, 높이 올라가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영역을 넓히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아니, 원래부터 그의 몸에는 흉터가 많았다.
한성태는 그가 성공하고자 하는 이유를 쫓았다.
조직폭력배가 되기 그 이전의 과거를 본다.
타투이스트는 가난했다.
고아였고 돈이 없어 한 달에 열 끼를 먹은 적이 드물었다.
항상 배고팠고, 항상 남을 질투했다.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
학교에서 거지를, 고아를 무리에 받아줄 아이들은 없었다.
배척받았고 놀림을 받았다.
일진 무리의 표적이 되었다.
학교에서 다니면서 그의 몸에는 온갖 흉터가 가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처가 늘어나고 또 늘어난다.
그러다 타투를 하게 된 계기가 생겨났다.
일진의 우두머리가 학교에 타투펜을 가져왔고, 그의 몸에 타투를 그렸다.
멋이라고는 없는, 놀리기 위한 그림.
그게 타투이스트의 몸을 덮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며 죽고 싶어졌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타투 펜을 잡았다.
자신의 몸에 타투를 그려 넣었다.
바늘 공포증이 있었지만, 토를 하면서, 울면서, 기절하면서 몸에 타투를 그렸다.
하나의 그림을 그릴 때마다, 두려움이 벗겨졌다.
그림이 늘어날 때마다 과거의 자신이 사라졌다.
그렇게 온몸에 타투가 그려졌을 때는.
그는 이미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에게 복수를 마친 상태였다.
얼굴까지 뒤엎은 타투는, 곧 그의 상징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 들어간 조직.
그곳에서 타투이스트는 이름을 날렸고 꽤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높이 올라갔고 돈을 많이 벌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공허했다.
그래서 놓았다.
조직은 도망치는 대가로 다리를 가져갔다.
상관없었다.
별로 살고 싶지도 않았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질렸으니까.
그래서 타투집을 차렸다.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골목길 깊숙한 곳에 타투 집을 차렸고.
그곳에서 그는 한적하게 시간을 보냈다.
과거의 인연들마저 그를 잊어갈 무렵.
딸랑.
한 달에 손님이 올까말까 한 그의 가게에 손님이 찾아왔다.
피로 적셔진 손님이었다.
이제는 잊고 지냈던 눈빛이 보였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타투…… 하시죠?”
“이쪽으로 와.”
타투를 하는지 묻는 그에게 타투이스트는 손짓했다.
상대는 그의 행동에 입을 다문 채 가까이 다가왔다.
몸을 돌려 타투이스트에게 등을 보였다.
‘타투가 많네.’
타투이스트와 마찬가지로 손님의 몸에도 타투가 많았다.
그 타투들은 재미 삼아, 멋을 부리려 그린 게 아니었다.
타투이스트는 타투에 담긴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타투 하나하나가 사내가 복수를 맞쳤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니까.
“이걸로 그려주셨으면 합니다.”
사내가 건넨 그림 하나.
악마의 심장에 대못을 밖는 그림.
‘복수를 전부 끝냈구나.’
그 그림에 담긴 의미를 읽은 타투이스트는 별다른 말 없이 타투펜을 들었다.
사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훌렁 벗은 사내의 등에는 정 가운데 빈 자리가 있었다.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비워둔 자리.
심장과 위치가 가까운 그 부위에 타투이스트가 든 펜이 다가갔다.
지익, 지이익.
조금은 고통스러울 텐데, 사내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다만, 몸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주체가 안 되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는 사람처럼.
들썩이는 그의 몸을 따라, 타투이스트가 든 펜도 함께 움직인다.
타투이스트는 사내에게 가만히 있으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일을 이어갔다.
사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침묵을 지켜주는 것만이 사내를 위한 행동이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천의 얼굴’이 당신의 연기를 숨죽여 바라봅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의 연기를 보며 헛웃음을 흘립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당신의 연기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며, 묘한 미소를 짓습니다.]신들의 메시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성태는 타투이스트 그 자체가 되어 연기하고 있었다.
사내의 등에 점점 번져가는 그림.
그는 사내가 원한 타루를 그려주었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뜸에 따라, 그의 주위의 시간도 느리게 흘러간다.
―커엇!
그렇게 촬영이 끝이 났다.
“후…….”
감독의 목소리에 연기를 끝낸 한성태는 짙게 숨을 내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앞에서 주연 배우가 멍하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한성태는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누워 있는 상태에서 땀이 조금 흘렀는데도, 분장은 조금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거 아예 안 지워지는 건 아니겠지?’
문득 든 생각에 조금 걱정도 되었다.
온몸을 감싼 분장이 안 지워지는 건 아닌지.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이보다 나은 연기를 찾는 게 더 힘들 것 같다고 말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당신의 연기는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합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의 연기를 보며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라며 잔잔한 미소를 보입니다.]연기가 끝나고 나서야 신들의 메시지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이 하는 말들을 보며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연기를 보며 신들이 칭찬을 하는데 어찌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수고했어요. 아까 들어오면서 눈빛 연기 좋던데요?”
한성태는 자신의 앞에 아직까지 앉아 있는 배우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가 온다’의 주인공인 ‘안성현’ 역을 맡은 김세모 배우.
그는 한성태의 말에 두 눈을 깜빡이고 있는 중이다.
생각이 많이 보이는 얼굴.
그 모습에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연기를 왜 그렇게 해요?”
대뜸 일을 열어 말하는 주연의 목소리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갑자기 무슨 소리지.
연기를 왜 그렇게 하냐니.
혹시, 자신이 연기할 때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건가.
‘마이클 같은 사람은 아닌데.’
분명, 연기하기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인사를 나눴었으니까.
“배우님이 그렇게 연기하면, 주연인 저희는 어떻게 하라고요!”
뒤이어 들려온 김세모의 말에 한성태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욕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신들도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한성태는 즐거운 기분 속에서 카메오 촬영을 끝마쳤다.
이제 한국에서의 일도 끝났으니, 미국에 갈 차례다.
* * *
“이사 날짜가 한 달 뒤였지?”
“네.”
“좋네. 딱 갔다 오면 되겠어.”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 날짜가 잡혔다.
한 달 뒤.
딱 미국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돌아올 때 이사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특별한 일이 없다면, 바로 이사갈 수 있겠지.
“짐 다 챙겼지?”
“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돼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미국에 간다.
이번 목적지는 로스앤젤레스.
보스턴에 이어, 본능의 질주가 촬영했던 촬영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한성태의 심장을 마구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한성태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우웅.
책상에 올려두었던 스마트폰이 올린다.
그가 알림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웅, 웅웅웅웅웅!
스마트폰의 진동이 책상 전체를 울렸다.
그 모습에 한성태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네. 여보세요…… 네?”
옆에서 전화를 받는 정두식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스마트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왠지 일이 터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