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서토 정벌 (2)
아란카는 즉시 동쪽 성벽으로 달려갔다.
“헉!”
하얀 연기를 푹푹 뿜어내는 화포들이 그의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두 연대 소속 화포 부대들이 보유한, 온갖 화포들이 일제히 포탄을 토해 내고 있었다. 현재 동해부 제1군 연대 소속 화포대들은 각기 3호 불랑기포 10문과 홍이포 3문, 중완구 2문, 대완구 2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울러 홍이포를 ‘공성포’라 이름했듯, 불랑기포도 ‘자모포’라 바꿔 부르고 있었다.
“뭐, 뭐가 이렇게 많아?”
뻐벙! 뻥!
퍽! 주르르르!
홍이포 포탄에 얻어맞자 성벽도 무사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요긴하게 쓰고자 급히 수리한 고성이었다. 더구나 동편 성벽이 가장 온전한 편이라, 오히려 손을 대지 않은 게 문제였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침식 작용을 받아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란카는 다시 북쪽 문루로 뛰어갔다.
흥안성 각 변의 길이는 대략 500미터 정도에 불과해 양쪽 성벽을 오가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편 성벽이 위험합니다. 곧 무너질 겁니다.”
아란카는 곧바로 뇨후트에게 보고했다.
“놈들 병력이 대략 팔천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럼 삼등분했단 말인데…….”
뇨후트는 상식적으로 판단해, 태건 군이 전력을 균등하게 셋으로 나눠 포위했다고 생각했다.
“어서 대책을.”
아란카가 빨리 결단하라고 재촉했다.
“남쪽은 어떤가?”
그의 질문에 다른 부장이 대답했다.
“북쪽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 기병을 보내 남쪽을 쳐서 퇴로를 확보하자! 나머진 일단 수비에 전념하다가 활로가 열리면 뒤따르게 하라!”
“예. 알겠습니다.”
섣불리 모든 병력을 빼면 성 전체가 순식간에 함락당하게 된다. 그로 인해 성 밖에서 꼼짝없이 포위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일단 기마대부터 내보내기로 했다.
* * *
남문이 열리고 니마차 군 기병이 쏟아져 나오자, 태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남쪽 언덕에 대기 중이던 기병들을 호출했다. 그와 동시에 남쪽에서 진을 치고 있던 보병들이 썰물 빠지듯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보병들이 빠지자, 자연스레 화포를 방열한 채 대기하고 있던, 제3연대 소속 화포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쏴!”
화포 부대장이 즉시 발포하라 명령했다.
퍼퍼퍼퍼펑!
열 문의 불랑기포가 우렁찬 포성과 함께 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니마차 기병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제3연대 포병대의 모든 불랑기포 자탄에는 조란탄이 장전되어 있어, 니마차 기병대는 성문을 나서자마자 치명적인 타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화포 부대까지 거리가 약 800미터나 남아 있다 보니, 자칫 한두 차례 더 포격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역시 조란탄이 효과가 좋군.”
사실 태건 군의 주력은 흥안성의 남문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적들이 포위되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면 자연스레 남쪽을 돌파할 것이라 예상하고 남문 앞에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빨리 자포를 장전하라!”
“서둘러!”
화포 부대 군관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무리 장전이 빠른 불랑기포라 하더라도 눈앞에 기마대가 달려오고 있으니, 한 번이라도 더 발포하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 차례만 더 쏘면 될 것 같군.”
성 밖으로 나온 니마차 기병대의 수는 무려 2천이었다. 조란탄에 당한 여파가 커서 이들 모두가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태건의 바람대로 또 한 차례 조란탄이 발사되었다.
퍼퍼펑! 퍼펑!
화포병의 숙련도에 따라 장전 속도가 다르다 보니, 아까와 달리 포성이 드문드문 울려 퍼졌다. 그러나 효과는 오히려 더 좋았다. 산발적으로 발포되자, 조란탄의 살상 효력이 더욱 배가된 것이다.
“편전수 준비! 쏴!”
화포병들이 사격을 마치자마자 제3연대장 전지로가 우렁찬 목소리로 편전을 발사하라고 명령했다.
“사수 준비! 쏴!”
두 차례의 화포 공격으로 니마차 기마대는 벌써 오백이 떨어져 나갔지만, 이미 속도를 붙였기에 멈출 수도 없었다. 이들을 향해 또다시 편전과 일반 화살이 날아갔다.
태건은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들자, 곧바로 말에 올랐다.
살아남은 니마차 기마대는 소총수 사거리까지 다가갈 엄두도 못 내고 결국 말머리를 돌렸다. 동남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무려 천 기에 달하는 태건 군 기마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2연대와 3연대 소속 기마대였다. 제1연대 기마대 500여 기는 북쪽 성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태건은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 나갔다. 이제 절반도 남지 않은 적 기마대는 태건 군에 금세 따라잡혀 또다시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 * *
남문 성루에 서서 니마차 군 기마대가 처참하게 당하다 결국 후퇴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뇨후트는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아군 기마대가 성문 가까이 다가오자 궁병들이 활을 들었다. 바짝 붙은 동해부 기마대를 떼어놓기 위함이었다.
“헉! 이런…….”
뇨후트는 가장 아끼는 부하 아란카가 그만 등에 화살을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화살을 쏜 이는 제3연대 기병대 대대장이었다. 그는 성에 더 접근하면 동해부 기병대에서도 희생자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기마대를 멈춰 세우게 한 뒤, 이들을 이끌고 남쪽 본진으로 돌아갔다.
그 덕분에 살아남은 니마차 기병은 모두 성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뇨후트는 재빨리 성루에서 내려와 아란카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습니다. 갑옷 덕분에 등에 조금 상처만 입은 정도입니다. 그보다 동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성벽은 이미 무너져 내렸네. 그런데 조선군이 웬일로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데?”
“휴! 그렇다면 우리가 속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모든 면에서 주력은 남쪽에 있었습니다. 보병의 수가 꽤 많았고, 기마도 무려 천이나 되었고요.”
“그럼 남문을 열고 나오게끔 하려고 그런…….”
“예, 우리의 조바심과 두려움을 자극한 셈이죠.”
“미치겠군!”
뇨후트는 너무나 허탈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된 결단으로 결국 기병 천오백이 순식간에 사라진 셈이었다.
“적진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성벽 위에 있는 병사가 소리치자, 뇨후트는 재빨리 성루로 올라갔다. 아란카도 아픈 몸을 이끌고 그를 따랐다.
두 사람이 성루에 오르자, 백기를 들고 온 사자가 여진어로 소리쳤다. 그는 콜칸인 포로였던 김와일란으로, 현재 제2연대 소속 기병대 대대장을 맡고 있었다.
“동해자치부 태건 대장군의 전언이다! 지금이라도 항복하라! 그럼 성내 모든 이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 지금까지 이 약속을 어긴 바가 없으니, 내 말을 믿고 항복하라!”
김와일란은 이 말만 던지고 다시 유유히 돌아갔다.
사자가 돌아가고 한참 지났는데도 뇨후트와 아란카는 말을 잃은 채 허공만 응시했다. 긴 침묵 끝에 뇨후트가 입을 열었다.
“저들 말에… 따라야 하겠지?”
“그렇습니다. 승산이 없는 데다, 저들이 건가퇴와 그 주변에 있는 우리 부족민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말게. 저들은 어떤 경우에도 민간인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으니.”
“하지만 걸리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조선인과 조선 편에서 선 와르카인 노예를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동량개 부락의 이라대가 선물한…….”
“남둘루 마을에서도 노예를 보유했던 이를 엄하게 처벌했답니다.”
“휴! 그렇군. 그게 문제군.”
“또한 우린 아직 4천에 가까운 병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버티면 저들도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 조건을 걸고 협상하시지요.”
물론 그의 말은 허세에 가까웠다. 성내에 살아남은 병력은 삼천오백 정도였다.
“흠. 맞는 말이긴 한데…….”
“제가 사자로 가겠습니다.”
아란카가 사자로 나섰다.
* * *
양쪽 진영 중간에 마련된 항복 협상장.
태건은 아란카로부터 협상을 제안받자, 뇨후트가 직접 나오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니마차 측은 뇨후트와 아란카가, 태건 군은 태건과 김와일란이 나섰다. 통역을 따로 두지 않고 김와일란에게 맡긴 것이다.
태건이 먼저 뇨후트에게 물었다.
“피로인은 잘 있겠지?”
“그, 그렇소.”
거두절미하고 피로인의 안부부터 묻자 뇨후트는 다소 당황했다.
“우리도 조선군이 노예… 아니, 피로인 문제를 엄격히 다룬다는 얘길 들은지라, 잘 대해 주었습니다.”
아란카가 뇨후트를 대신해 나섰다.
“건가퇴 지방 밖에는 없고?”
“그렇습니다. 이라대 추장한테 선물로 받은…….”
선물이란 단어가 나오자 태건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쿠, 쿠알라 지방에도 있으나…….”
“거긴 우리가 토벌했으니 상관없고.”
“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항복하는 대가로 원하는 건 뭐요?”
피로인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자 태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북쪽 후르카 강 유역으로 물러나겠습니다. 병력은 물론이고 건가퇴에 정착한 우리 주민들까지 모두 데리고.”
아란카가 준비해 온 답변을 했다.
“후후! 힘을 키운 다음, 또 쳐들어오게?”
“아,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여기서 살면 되지 않나? 여기서 산다고 불이익을 주진 않을 건데?”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태건의 복속 요구를 아란카가 나서서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그럼 죽든지.”
태건이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뇨후트는 심하게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돌아가시지요.”
아란카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뇨후트에게 말했다. 태건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협상은 결렬된 셈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백기를 들고 아란카가 남쪽 태건 군 진영으로 다가와 태건을 찾았다.
“생각이 바뀌었나?”
“그렇습니다. 포로는 어떻게 처리하실지 듣고자 찾아왔습니다.”
“간단하네.”
태건이 김와일란을 바라보자, 그는 쓴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얘기를 포함해 콜칸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아란카는 김와일란의 사연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콜칸 대추장의 아들이라고요?”
“그렇소. 우리 콜칸인 포로 중 아직까지 노역하는 이는 삼 할도 되지 않지. 대부분 나처럼 군에 발탁되어 육군과 수군에서 복무하고 있소. 뭐, 노역하는 이들도 불만 없이 잘 지내고 있지요. 처우도 괜찮고, 심지어 급여도 받지. 무엇보다 가족과 면회도 되니, 다들 안심하고 풀려날 날만 기다리며 일하고 있소.”
“소문이 사실이었군.”
태건 군은 기존 조선군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따위 협상으로 시간 질질 끌고 싶지 않군. 내 조건을 간단히 말하지. 천 명! 뇨후트 암반과 병력 천 명만 놓아주고 나머진 포로로 잡겠다. 풀려나는 그 장졸들의 가족도 데려가게 해 주겠다. 나머지 포로는 동해부의 방침에 따라 5년간 노역형에 처한다. 북방으로 갈 자들은 무장이 해제된 채 풀려날 거다. 알다시피 가는 길에 쿠알라가 있으니까. 거기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음. 겨우 천 명이라니…….”
태건은 아란카의 투덜거림을 무시한 채,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쪽에서 피로인을 찾아 모두 내게 데려오라. 단 한 사람이라도 빼돌릴 경우, 그 부락의 수장과 빼돌린 자의 목을 치겠다.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아란카, 그쪽은 포로가 되어 남아야 할 것 같은데?”
아란카가 뇨후트의 오른팔이란 사실을 안 이상, 그를 보내 줄 수는 없었다. 아울러 잘 회유하면 나중에 크게 쓸 수 있는 인재란 생각이 들어 아란카를 붙잡기로 한 것이다.
“예?”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 내가 통 크게 양보했으니 무조건 내 조건을 따르라.”
태건은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와일란은 태건의 말을 통역해 준 다음,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부족의 명맥을 잇게 해 줬군. 우리 대장군의 명에 따르시오. 더 양보해 주진 않을 테니.”
“아, 알겠습니다.”
아란카는 결국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