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1장 또 다른 위기의 시작(2)
“…대추장. 아무리 그래도 너무 늦습니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정찰대를 파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지껏 그가 긴급 정찰을 하게 되었을 경우 구태여 따로 정찰대를 보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족이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라고 적들을 안심시키고, 고수허가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압구무는 전에 없는 초조함에 불안하였다.
안 그래도 불안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던 찰나, 믿고 있는 고수허에게서 연락이 두절되고 돌아오지 않는다.
‘혹시 나추하 놈의 군대와 만난 것은….’
그가 아무리 용맹하고 뛰어난 무인이라 할지라도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인다면 답이 없다.
만약 그게 맞다면, 압구무는 절대 나추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결심했다.
“정찰대를 보낸다.”
죽었든, 살았든, 정찰대를 보내 나추하의 병력을 확인한다.
이성을 잃는 것은 그놈을 눈앞까지 끌고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압구무의 차가운 분노를 속으로 제어하며 정찰대를 보내려는 순간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무엇인가 소란스럽지 않습니까?”
비교적 문에 가까이 앉아 있던 부하가 문득 그런 말을 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장내 사람들은 일시에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흠! 분명히 무엇인가 소란스럽군.”
“밖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 안으로 병사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그 난데없이 난입한 병사의 안색은 바다만큼이나 새파랗게 되어 있었다.
“무슨 호들ㄱ… 무슨 일이냐?”
무례한 난입에 화를 내려던 압구무였으나 병사의 표정에서 심각함을 깨닫고는 이유를 물었고, 병사는 당황하면서도 숨을 잠깐 고르고는 대답했다.
“바, 밖에. 밖에… 하아. 하아. 압구무 님! 지금 성 밖에 ㄱ, 군대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역시 나추하였던가!!”
“나추하 놈! 정말로 군대를 끌고 왔단 말인가!”
“진정하지 못하냐! 이 멍청한 놈들아!”
순식간에 떠들썩해질 뻔한 회의장을 압구무는 큰 호통 한 번으로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고 정신을 차리게 했다.
“아둔한 놈들. 여기서 주절주절 지껄인들 무슨 다른 방법이라도 있느냐! 이미 예견한 일이 아니더냐. 나와라!”
그렇게 말하곤 본인부터 그대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군대가 왔다면 우선 그 규모를 보고 대응하는 것이 올바를 터, 그렇게 성에 오른 그들은 볼 수 있었다.
“…….”
압구무를 포함한 부족의 측근들도 모두, 눈앞의 그 광경에 눈을 한계까지 뜨고, 소리 없이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성벽 너머에는 약 2천의 기병들이 대열하고 있었다.
수가 예상한 것보다 많긴 하나 그것은 그들이 놀란 이유가 되지 않았다.
보고를 하러 온 병사의 안색이 새파랗게 되었는지 압구무와 간부들은 그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아. 아아아. 아아아—!!!”
저들 사이에 압구무와 그들이 믿고 기다리고 있던 고수허의 머리가 꽃힌 창이 대지에 박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 아아아. 아아아—!!!”
병사들의 원통함과 울분에 찬 절규가 성벽에 울려 퍼졌다.
고수허는 머리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이 잘려 나간 그 신체도 옆에 똑같이 박혀 있었는데 그나마 온전한 얼굴과 달리 신체는 잘려 나간 빈 머리를 보지 않았다면 식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일부러 참혹하게 훼손시켜 모욕했으며, 그 결과를 보란 듯이 내보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 아아아! 당신. 당신–!!”
“아… 빠! 아빠아아!!”
언제 성벽 위로 올라왔는지 고수허의 아내와 어린 자식이 참혹한 가족의 시체를 보고 울부짖었다.
“누구냐! 어떤 잡놈이 저렇게 했단 말이냐!!”
모두가 한탄하며 슬픔과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고 압구무도 어떻게든 주변 시선을 생각해서 겉으로나마 냉정을 가장하려고 했으나, 벗을 잃은 분노와 혼란함으로 머리가 가득 차 화를 억누르지 못한 채 말만 삼키며 참상을 주시할 뿐이었다.
“푸하하하하!!”
성벽 위까지 그런 상황을 무시하는 박장대소가 평원에서 울려 퍼졌다.
놀란 그들의 눈과 귀는 모두 소리의 방향을 향하였고 무례한 웃음소리의 주인을 보고, 압구무는 무심코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첩가 황자?”
거기에 있던 것은 고려 왕태자를 습격하였다가 오히려 격퇴당하고 자신에게 붙잡힐 뻔하다가 겨우 도주한 동하국의 황자 첩가였다.
첩가는 기병들 사이에서 뻔뻔하게 앞으로 나와서는 자신들이 있는 방향을 보며 다시 한번 대소했다.
“푸하하하하. 내가 분명 말했을 터다! 나를 배신하고도 무사할 성싶냐고 말이다!”
자신들이 놓쳤던 망국의 황자가 수천의 기병들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놀라기에 앞서 부족의 병사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부족의 모두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황자는 압구무들의 원망과 분노가 심하면 심할수록 기쁠 뿐이었다.
“화가 나느냐? 분하느냐? 원망스러우냐? 나라를 배신하고, 나를 배신하고 자신들은 무사할 수 있다. 자신들에게는 천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느냐! 고작 고려 세자 같은 어린 놈팽이는 무섭고 내가 돌아올 것은 생각도 못 했느냐? 나와라! 내가 돌아왔다. 이 땅의 적법한 지배자이자 대하국의 황자. 포선 첩가가 역적 놈을 처단하기 위해 왔으니 이곳에 왔으니 역적 압구무는 당장 나와 그 목을 내밀어라!!”
“주, 주군.”
“추장님.”
측근들과 병사들은 출격의 명령을 내려달라는 눈빛으로 압구무를 바라보았지만, 압구무는 주저했다.
결코, 저 입만 산 황자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온 것이 너무나 수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앞에 보이는 기병들의 수가 너무 많은 것도 신경 쓰였다.
‘2천 명. 나추하를 병력들이라면…? 나추하 놈 진짜 작정했단 말인가? 그런 것치고는 나추하 놈이 보이지가 않는데….’
나추하가 습격을 한다고 해도 2천 이하로 잡았는데 정작 눈앞에 있는 병력만 하여도 2천이었다.
이는 초기에 염두에 둔 병력의 최대치였다.
2천 명 정도는 세력이 커진 압구무의 부족에서도 동원을 할 수 있으나, 토벌을 한다면 심각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하는 규모였다.
더군다나 만약 나추하가 미쳐서 문자 그대로 전부 끌어모았다면 눈앞의 병력보다 더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염두에 둔다면 성벽을 방패 삼아 막는 것이 상책이긴 하였을 터이나….
“대추장(大酋長)께선 제 남편의 원한을 갚지 않으시려는 것입니까?”
“대추장님!”
대추장(大酋長)
첩가를 몰아내고 고려와 손을 잡아 속빈로 제일의 세력으로 커졌다고 자신하였을 때 고수허가 자신에게 불렀던 호칭을 고수허의 아내와 자식이 자신을 부르며 원한을 갚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압구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출정하여 복수를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은 수성을 고집해야 하는 것인가.
수성과 출병 속의 번민에서 압구무는 선택을 내렸다.
“…문을 열어라!! 내가 직접 가겠다!”
“와아아아–!!!”
압구무가 출병을 결정한 것은 그저 주변의 애원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2천의 기병을 동원했다는 것은 나추하도 작정을 했다는 것이 되니 수성을 한다면 쉽게 막을 수 있겠으나 장기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장기전을 나추하가 예견하지 못하였을 리 없으니 분명 무엇인가를 노리고 장기화를 하는 것이 분명 하다는 점이라고 압구무는 판단하고, 그렇다면 역으로 출병하여 장기화를 전제로 한 것 자체를 부순다는 발상이었던 것이다.
라는 것이 압구무의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이었지만 친구를 잃은 압구무의 원망과 울분이라는 이유도 없을 수는 없었다.
“알겠나? 너는 성벽 밖에서 적의 동태가 이상하거나, 전령, 호시 등이 들린다면 지체하지 말고 기병을 이끌고 지원하라!”
‘저만한 병력을 저 철부지 황자에게 무턱대고 줬을 리는 없을 것인데 나추하 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필시 어딘가 복병으로 잠복하고 있을 터! 나를 성 밖으로 끌어내어 협공을 가하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나추하가 부족 내에 모든 병력을 동원하였을지 모른다고 염두 하는 것을 잊지 않고 혹시 모를 대비를 하는 것은 잊지 않는 압구무였다.
“와아아아!!”
2천 하고도 2백이 더 되는 기병들이 성문을 빠져나와 첩가를 향해 달려갔다.
“복수를!! 고수허의 복수를!!!”
* * *
“““와아아아아—!!!”””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이 미타호에 울려 퍼졌다.
수천의 몽골 기병들이 우왕좌왕하는 압구무의 병력들을 향해 무섭게 쇄도했다.
그다음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이미 앞선 사격과 복병들의 출현으로 병사들의 대부분이 사망, 혹은 전의 상실 상태가 된 상태에서 수천 기병들의 돌격은 전력을 상실시키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중과 부적인 수적 열세, 함정에 성공한 측과 함정에 빠진 측의 극과 극의 사기.
심지어 질적인 부분마저 어느 하나에 비교 해볼 만한 것이 없는 압구무와 부하들은 몽골기병들의 공격에 끔찍하게 학살되어 갔다.
그중 압구무의 최후는 특히나 잔혹하였다.
압구무에 대해선 미리 명령이라도 받았는지 몽골군들은 그를 단숨에 죽이지 않고 천천히 무력화시킨 후, 눈 하나를 빼내고, 양팔을 잘랐다. 그러고는, 목에 줄을 묶어 전장 사이를 끌고 다니며 죽인 것이다.
최후까지 전의를 상실하지 않고 싸우던 부하들도 너무나도 끔찍한 수장의 최후에 전의를 잃었고 성 내에 지켜보던 부하들 또한 덜컥 겁을 먹고 성문을 열고 구하기는커녕 나가지 못한 채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압구무를 돕든, 배신하든 몽골군들은 그들을 곱게 놓아주지는 않았다.
항복을 권유해볼 기회조차 주기 아깝다는 듯 압구무의 군대를 괴멸시킨 몽골군은 그대로 냅다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학살에 겁을 먹은 성내 사람들은 공성전이 시작된 지 1각도 되지 않아 성에선 백기가 올리며 투항했다.
그러나, 그렇게 대장과 동료들을 버리면서까지 투항한 성벽 내 사람들은 편한 끝은 오지 않았다.
압구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가 미처 그 자리에서 죽지 못하고 잡힌 불행한 병사들은, 성문이 열리자마자 성안 주민들, 모두가 보는 앞에 앞으로 끌려 나와 몽골 병사들의 창칼에 단번에 죽지 않게 생선 포를 깎아내듯이 듬뿍 고문을 받으며 죽거나 남김없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 팽형(烹刑)으로 죽는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아아아아—!!!”
당연히 동료, 가족들의 최후에 부족민들은 절규하거나 눈을 돌렸다.
부족민들의 절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몽골인들은 패잔병들의 최후만 실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착실하게 부족을 철저히 파괴하고 방화하기 시작했다.
“그, 그만! 그것을 뺏어가면 이번 겨울은 뭘 먹고 지…!”
“당신들도 겨울을 대비한 식량이 얼마나 중. 요오오! 아아아아, 자, 잠깐! 잠깐! 내가, 제가 잘못했습니아아아아아아—!!”
압구무가 주변 부락들을 치고 뜯으면서 열심히 모으고 모은 식량들을, 몽골군은 남김없이 뺏어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보다 못하고 나서는 주민들도 일부 있었으나 나서는 순간 창칼에 죽거나 혹은 패잔병들과 함께 팽형으로 죽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몽골군은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모든 것을 약탈한 그들은 집들이 태우고 처형을 계속하였고, 그렇게 붙은 건물들의 붙은 불들은 해가 지고, 다음의 새벽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하여도 언제나와 같던 평화로운 고향과 부족이 하루아침에 추장도, 가족들도, 집도, 식량도 전부 사라진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부족민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도 그들은 거기서 다시 한번 ‘솎아내기’라는 절망을 맛봐야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님!!”
몽골인들은 사로잡은 이들 중 늙은이들과 중상을 입은 자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문답 무용으로 처리하였다.
그렇게 여러 번 ‘솎아내기’를 마치자 압구무의 본거지였던 옛 동평성에는 몽골군과 수많은 시체들과 타다 남은 건물과 재. 그리고 그것을 보고 울고 있는 새로운 ‘노예’들밖에 없었다.
자신을 배신한 동포(여진족)의 최후에 첩가는 입가를 비틀며 미소를 짓고는 나무판자를 하나 아무 곳에 던지고는 군대를 이끌고 동평성을 떠났다.
판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하국의 황자 포선첩가가 반역자 압구무를 토벌하고 간다. 이 글을 읽은 자는 대하국의 황자와 예케 몽골 울루스에 고개를 숙이고 복속하라! 만약 명을 무시하고 고려에 붙거나 불복종을 하는 자들은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다.]* * *
속빈로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 몽고적들을 격퇴하고, 반란군을 진압하고, 고토를 회복하고 마침내 난신적자를 처리하고, 무신들의 집권을 끝을 내며 황실의 권위를 되찾으면서 전 백성들과 신료들의 선망과 기대를 받고 있는 고려의 왕태자 왕식은 지금 무척이나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썩을… 네 녀석을 또 보게 되었구나.”
그립지 않은 것과의 간만의 재회에 왕식은 진심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