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60
교랑의경 560화
“대노야, 진짜예요. 그 몹쓸, 아니, 교랑이 화괴 다툼에 돈을 다 쓰는 바람에 점포 운영이 어려워졌는데, 제가 혼수를 팔아가면서 점포를 지켜냈다고요. 심지어 제 장신구들까지 팔았어요.”
정 이부인이 다급하게 정 대노야의 뒤를 쫓아가며 사정했다. 하지만 정 대노야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꾸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점포에 쏟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장부를 그리 오랫동안 쥐고 있었는데 빼돌린 돈이 얼마일지 누가 알아? 내가 돈을 도로 돌려달라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워 어쩔 줄 모를 판에,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해?”
세상에! 정말 억울해 죽겠네!
“대노야! 양심을 걸고 하늘에 맹세컨대 진짜라니까요!”
정 이부인이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손으로 가슴을 쳤다.
“양심을 걸고 하늘에 맹세한다니까요! 정말로!”
사람이 어쩜 저렇게 속이 시커멀 수가 있어! 세상에 도리가 존재하긴 하는 거야?
내 돈! 내 장신구들! 그리고 장부에서 매일 늘어나는 복리까지! 며칠만 기다리면 한 달을 채우는데, 며칠만 더 기다리면 그 돈이 다 내 손으로 들어오는데!
아이고, 하느님!
“더는 이렇게 못 살아. 이렇게 살 바에는 내가 나가 죽어 버려야지!”
정씨 저택의 마당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4월 초,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이었다. 퇴조를 알리는 악공들의 중주가 울리자 옥좌에 앉아 있던 천자는 조당을 떠나고, 진소 등의 중신들은 근정전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해서 중요 사안들에 대해 토의했다. 그리고 조회에 참여했던 나머지 문무백관들은 황궁 밖으로 나갔다.
고 관인은 여느 때처럼 여러 관리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아첨을 들으며 웃고 떠들었다.
“고 관인이 치욕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병가를 내어 조회에 참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 관리가 먼발치서 고 관인 무리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다른 관리가 음, 하면서 대꾸했다.
“그럴 리가 있나. 고 관인이 병이 없는데 있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조회에 불참할 사람은 아니지. 정말 다친 사람도 병가를 내지 않고 조회에 참석했지 않나.”
대답하던 관리가 턱으로 한쪽을 가리키자, 먼저 말을 꺼낸 관리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과거시험을 치르고, 관직을 제수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진사들이 웃으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 정 진사 말인가?”
관리가 웃으면서 정사낭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긴 뒤 말을 덧붙였다.
“관복의 소매가 긴 것이 아쉽군.”
정사낭의 소매를 바라보는 시선은 비단 한 명뿐이 아니었지만, 정사낭은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듯 동료들과 웃으며 걸어갔다. 심지어 어떤 이가 일부러 그에게 망신을 주려고 다가와 다친 곳은 어떻냐고 물었을 때, 정사낭은 시원스럽게 소매를 걷어 올리고 웃기까지 했다.
“별일 아니네. 조금 상처가 난 것뿐이니.”
조금 상처가 난 것뿐이라고?
“분명 손목이 부러졌다고 들었는데?”
다친 곳을 묻던 관리가 놀란 얼굴로 반문하자, 정사낭이 쾌활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 서로 술 마시고 흥이 올라 살짝 손발을 쓰며 다툰 것뿐이네. 그런 자리에서 근육과 뼈가 상할 정도로 싸우면 쓰나. 자네가 그리 말하면, 고 관인이 뭐가 되겠나!”
자신이 고 관리를 모함한다는 식의 발언을 듣자, 관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더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가세, 가자고. 오늘처럼 다 같이 모이는 것도 힘든데, 내가 한턱내겠네.”
정사낭이 웃으면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만 관으로 화괴를 얻은 자가 한턱내겠다는 소리를 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몰려왔다.
“주 낭자도 오는 거요?”
누군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당연하지.”
정사낭의 낭랑한 웃음소리에는 젊은이 특유의 득의양양한 기세가 잔뜩 서려 있었다. 정사낭의 웃음소리를 들은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족히 사백 명은 넘는 진사 가운데 이름을 알리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정사낭은 이 어려운 것을 단 며칠 만에 해냈다. 물론, 덕승루 화괴 다툼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지만.
“역시 젊은이의 의지는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하군.”
누군가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의 표정만 보면 젊은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뱉은 말에는 젊은이를 향한 부러움이 가득했다.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람에, 황당한 일이군. 저리도 창피한 줄을 모른다니. 쯧쯧. 체통을 지켜야지.”
다른 누군가가 몹시 언짢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뭐라 떠들든 간에, 화괴 다툼은 기껏해야 젊은 나이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황당무계한 일로 여겨지게 됐다. 썩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정사낭의 사생활이고, 아직 젊은 사내다 보니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다. 조정 대신 중에서도 젊은 시절에 황당한 일을 벌인 자가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리를 뜨는 사람들과 귓가를 스치는 말들 때문에 고 관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 녀석이 얼굴에 철판을 깐 게 분명합니다. 감히 고 관인을 상대로 전쟁을 평화로 바꾸는 연극 따위를 꾸미다니. 관인, 언제부터 저놈과 이번 일에 대해 논하지 않기로 하신 겁니까?”
시종이 씩씩대면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고 관인이 눈썹을 치켜뜨고 시종을 향해 호통쳤다.
“내가 바보더냐?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너 같은 잡것이 그걸 다시 내게 읊어 주는 의도가 뭐야? 일부러 내 면전에 대고 욕하려는 게냐?”
일부러 아부를 떨려고 씩씩거리며 했던 말인데, 고 관인의 노여움을 살 줄 몰랐던 시종은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고 관인은 더는 시종을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멀어지는 정사낭을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저런 체면도 없고 창피도 모르는 놈을 봤나!
하지만 정말로 창피를 모르는 사람만이 더욱 유유자적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정사낭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지낼수록, 화괴 다툼 사건은 더욱 별일이 아니게 되는 셈이니, 고 관인도 자연스럽게 이번 일을 웃어넘겨야만 했다.
고 관인이 이번 일을 웃어넘기지 못한다면, 도리어 하찮은 일들을 걸고넘어지는 소인배이자 풍류를 제대로 즐길 배짱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고 관인이 이를 부득 갈면서 읊조렸다.
“퉤!”
누군가가 고 관인의 뒤에서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침을 뱉었다.
지금 누구한테 침을 뱉는 게야?
화가 잔뜩 나 있던 고 관인이 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몸을 돌리자마자 인상을 펴고 미소를 지었다.
“평왕 전하.”
고 관인이 웃는 얼굴로 예를 표했다. 조복을 입은 채, 뒷짐을 지고 걸어오던 소년이 거만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고 관인은 평왕이 화가 났지만, 자신에게 콧방귀를 뀌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평왕 앞에 서 있던 이가 고 관인 자신이 아니었다면, 평왕은 아마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을 테니까.
“전하? 어찌 기분이 안 좋으십니까?”
고 관인이 물었다.
“기분 좋지. 내가 왜 기분이 안 좋아? 설마, 진안 군왕이 무평 민란을 잠재우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아직 못 들었나?”
무평 민란이 끝나고 평화를 되찾았다는 소식이 대조회에서 알려지고, 곧이어 경성 곳곳에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소식은 내궁에도 금세 전해졌다. 진안 군왕이 승전보를 알리는 인편에 태후와 황후에게 올릴 선물을 보낸 덕분이었다.
“짐승만도 못한 놈 같으니라고!”
궁전 안, 귀비가 오랫동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시중을 드는 이들은 그녀가 깨부순 찻잔 조각을 흔적도 없이 치우고, 귀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놈이 보낸 선물 중에 내게 보낸 선물은 없었다고?”
내시가 난감한 얼굴로 귀비를 따라 궁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마마, 선물은 현지에서 파는 조그마한 장식품일 뿐입니다.”
“아무리 약소한 선물이어도, 격식을 지켰다는 게 중요한 것이야. 그 짐승보다 못한 놈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약삭빠르게 사람들의 환심을 샀는데. 경왕이 다친 요 몇 년 동안도 그랬어. 본궁에게도 늘 깍듯하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는데 이번엔 왜 하필 내 선물만 빼먹었느냔 말이야!”
귀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그러게요. 이것 참 이상하네요. 그럴 리가 없는데. 진안 군왕이 격식 차리는 데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데, 혹시 선물을 전달하던 이가 실수한 건 아닐까요?”
내시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번 일이 정말로 이상하긴 해. 평소대로라면 진안 군왕이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닐 텐데.
“이상해? 이상할 것도 없지. 예전에는 안 그랬을지 몰라도, 이제는 사람을 가리겠다는 뜻이야. 많이 컸다 이거지. 혼자 밖으로 나가 정무를 처리하고, 병사들까지 거느리게 됐잖아. 게다가 이번엔 승리까지 손에 거머쥐었으니 얼마나 재주가 좋아? 그리고 제일 무엇보다도······.”
귀비가 냉소를 지으며 말하다가 서성이던 것을 멈췄다.
“명망을 얻었다는 게야.”
“마마, 이게 무슨 명망이라고요.”
내시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째서 아니야? 이런 게 명망이지! 이젠 온 경성 사람이 다 알잖아. 송자동자는 자식만 낳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싸움도 잘하고, 칙사 노릇도 제대로 한다는 것을!”
귀비가 목청을 높이고 말했다.
“마마, 그렇다 한들 뭐가 바뀌겠습니까.”
내시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마마께서 점점 근심이 많아지시네. 특히나 진안 군왕과 관련된 소식을 들으면 더욱 그래. 별것 아닌 일에도 저리 이성을 잃으시니.
고 대인께서 경성을 떠나기 전에 마마를 잘 돌봐 드려야 한다고 하신 게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었구나.
마마께서 정말 좀······.
“뭐가 바뀌겠냐고?”
귀비가 고개를 홱 돌리고 내시를 노려보았다.
귀비는 조회에 나가지 않아도, 황제가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귀비의 귓가에 황제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짐이 그럴 줄 알았소. 진안 군왕은 절대로 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
이러셨겠지. 귀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 상공께서 폐하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반박하셨습니다.”
내시가 서둘러 말했지만, 귀비는 내시를 노려볼 뿐이었다.
“어쨌든 폐하는 그리 말씀하셨잖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든, 꺼내지 않든 간에, 폐하께서는 분명히 속으로 그리 생각하실 게다!”
어쩜 내 주위에는 이리도 멍청한 것들만 있는 건지.
귀비의 침이 얼굴에 잔뜩 묻은 내시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벌써 4월인데, 태자 책봉 이야기는 왜 아직도 결론을 못 내렸지?”
귀비가 물었다.
“아, 태자 책봉은 이미 중서문하성을 통과했는데, 폐하께서 무평의 재해와 민란이 잠잠해진 후에 다시 논하자고 하셨습니다.”
내시가 대답했다.
“다시 논하자고? 다시 논할 게 뭐 있다고?”
귀비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황후마마께서 4월은 태후마마의 탄신일이 있는 달이라, 이번 진안 군왕의 승전보와 함께 성대하게 축하하자고······.”
내시가 말끝을 흐렸다.
“황후? 황후가 말했다고? 황후가 언제부터 말을 할 줄 알게 됐어?”
귀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다그치자 내시는 귀비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미소 지었다.
“마마, 황후마마의 병세가 많이 나아진 듯합니다. 그저께는 태후마마를 뵈러 가시기도 했고요.”
이젠 바깥출입까지 한다고?
“본궁은 왜 그 일을 몰랐던 게야? 그렇게 큰일을 왜 본궁이 모르느냔 말이다!”
귀비가 경악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후궁에서 일어난 일인데, 내 눈을 피해갔어?
황후가? 그 병약한 여인이 다시 후궁을 쥐락펴락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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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보통 팔 품 이하의 관리여서 대조회를 참여할 자격이 안 됩니다. 작품의 전개에 필요한 부분이어서 넣은 장면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