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66
265장. 아우라의 그녀들 (1)
“마리~ 이번 작품 완전 환상이었어요. 요즘 클래식계를 뒤집어 놓은 베토벤의 재림자 다니엘 장과 똑같은 실력입니다! 정말 대단해요!”
“고마워요. 알랭~. 부족한 작품 칭찬해 줘서~.”
프랑스에 도착한 이후 일체 모든 연락을 끊고 그림에만 몰두한 손유리다.
세상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무슨 소리에요. 르노와르가 했던 말 기억하죠? ‘그림이란 즐겁고 유쾌하며 예쁜 것이어야 한다. 세상에는 이미 불유쾌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또 다른 불유쾌한 것들을 만들어 낼 필요가 어디 있나~?’ 지금 딱 마리의 그림이 그런 느낌입니다. 도대체 나이도 어린 아리따운 마담께서는 누구의 사사를 받았나요? 이 캔버스에 그려진 장미는…… 다양하고 매혹적이며 가득한 수려한 색채감이 살아 있어요! 아름다움이란 말이 그대로 함축된 그림입니다!”
“너무 격찬이에요…….”
“오! 마리. 당신은 천재예요!”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프랑스 중견 작가의 격찬에 손유리는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천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보여줬던 그림에서 얻은 영감으로 실력이 확 늘었다.
외로운 프랑스에서 느꼈던 고독과 우울, 불안,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을 성장시켰다.
그 결과 손유리는 벽 하나를 넘었다.
마음이 상상하는 대로 색채감을 표현해낼 수 있게 됐다.
사랑의 날카로운 아픔과 이별의 깊이가 영혼을 성장시켰다.
“너무 띄우지 말아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의 발끝도 못 따라갑니다.”
“정말? 그게 가능해요? 지금 마리는 일정한 경지에 올랐어요. 그런데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이에요. 전 평생 따라갈 수 없어요.”
“……젠장. 말을 들어보니 마리의 마음을 훔친 멋진 도둑이 있는 것 같군요. 제 뜨거운 마음을 거절하는 마리의 심장을 차지한 남자, 맞죠?”
“……미안하지만 그래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이제 삼십 대 중반의 알랭은 손유리에게 몇 번 대시했다.
그때마다 신나게 까였다.
손유리는 절대 마음을 열지 않았다.
미남의 촉망받는 화가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알랭뿐만 아니라 손유리에게 들이댄 파리지앵들이 많았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몸매와 우수에 젖은 분위기에 다들 빨려 들어갔다.
프랑스 여인보다 더 새하얀 피부가 두 몫으로 거들었다.
그중 며칠에 한 번 과외를 하는 알랭이 가장 심했다.
지금껏 봤던 여인들 중에 마리보다 알랭을 뜨겁게 가슴 뛰게 한 여인은 없었다.
그래서 더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외로운 타국 생활에서도 변함없이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리.
오늘 제출했던 그림을 화구통에 담았다.
띠디디디디디 띠디디디디디디.
그녀의 핸드폰이 조용히 울렸다.
“그럼 알랭 다음에 봐요.”
화실에서 손을 흔들며 손유리는 밖으로 나왔다.
“엄마~.”
강제로 이별을 당한 엄마의 전화였다.
손유리의 목소리가 밝게 엄마를 불렀다.
– 아빠다.
“…….”
하지만 들려온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손유리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고 좋아했던 아빠.
이제는 전화 통화도 어려운 사이가 됐다.
언제나 손유리 말에 귀 기울여주고 격려했던 아빠의 기억이 희미했다.
그 대신 윽박지르고 사랑을 갈라 놓아버린 아빠가 미웠다.
아직 손유리는 아빠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 유리야…….
“네.”
아빠의 부름에 사무적으로 답하는 손유리.
– 잘 지내고 있지?
“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고 징징거렸을 손유리.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어른이 됐다.
그것도 가슴에 상처를 가득 품은 어른.
지금도 아버지 돈으로 프랑스 유학 중이다.
손유리는 알바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너무 안일한 청춘을 보냈다는 걸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엄청난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또래들은 알바를 뛰며 꿈을 키웠다.
그에 비교하면 손유리는 새장 속 카나리아였다.
반성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워나갔다.
– 그럼 다행이다.
“……아빠 제가 지금 바빠요.”
더 이상 대화를 나눈다는 게 손유리에게는 고통이었다.
미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아빠다.
그래서 통화가 아직 부담스러웠다.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했다.
– 그래……. 미안하다.
“네?”
아빠의 미안하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나 실수 하나 없는 완벽한 분이다.
그런 아빠가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쉽게 뱉었다.
엄청난 변화였다.
– 그냥 너에게 미안하다……. 모든 게 다.
“아, 아빠.”
손유리가 아빠의 말에 당황했다.
– 그래도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으면 한다. 아빠에게 실망했겠지만 너를 위해서 선택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
사과에 이은 부탁이었다.
– 사랑한다. 유리야…….
“흑…….”
아빠의 사랑한다는 말에 참았던 서러움이 폭발했다.
손유리의 눈동자에서 맑은 눈물을 뚝뚝 떨어졌다.
– 힘들지만 힘내. 네 꿈을 언제나……. 잃지 말고 너만의 길을 가거라. 알았지?
“……네.”
– 그래 바쁜 것 같은데 이만 끊으마.
“아, 아빠!”
아빠가 전화를 끊어버리려 하자 손유리는 당황스러웠다.
잃어버렸던 아빠를 찾은 기분이었다.
– 유리야. 그 녀석 멋있더라.
“네?”
– 태산이 녀석 남자가 봐도 괜찮은 놈이다. 네 눈이 아빠보다 더 뛰어난 것 같구나.
“하아…….”
태산이라는 이름에 손유리는 깊은 한숨을 토했다.
그 남자를 만난 이후 몰아친 폭풍 같은 시간과 사건들이 많았다.
오늘 아빠를 통해 사과를 받아냈다.
장태산이라는 그 이름으로.
***
“지나간 밤과~ ♬이 맘을 루타타~♬ 이 새벽은 미쳐버려~ 루타타~♪ 불태워버려~♫~”
차가우면서 동시에 끈적한 감정이 담긴 노래가 녹음실에 울려 퍼졌다.
FOB의 신곡 작업 중이었다.
“오오오~♪ 루타타~”
쿵쾅거리는 신나는 비트음이 울렸다.
노래 가이드라인을 위해 먼저 불렀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다.
2018년도에 유행했던 가사와 노래에 편곡을 더했다.
저작권을 주장하려 해도 앞으로 10년 뒤의 노래다.
지금 시대에서는 창작할 수 없는 곡과 비트였다.
“……이, 이게 신곡입니까? 이사님?”
녹음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프로듀서와 황연태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때요? 들어 줄 만합니까?”
“뭔가 시대를 뛰어넘는 그런 곡 같습니다! 오! 이사님! 그냥 이대로 출시하죠? 이사님 목소리 진짜 듣기 좋습니다!”
황연태 대표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08년도만 해도 한 곡 터지면 몇 달은 먹고 살 만했다.
하지만 2015년을 넘어가면서 드라마도 16부작으로 끝나고 노래도 한 달 유행을 넘기기 힘들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몰입 소모 시간이 길지 않았다.
조금만 루즈하면 사람들이 참지 못했다.
그 시간에 즐길 것들이 사방에 널렸다.
핸드폰으로 게임할 시간도 모자랐다.
지하철에서 모바일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2008년도에는 상상만 하던 일들이 현실이 됐다.
아직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 단계다.
1년이 멀다하고 최신 제품과 기능들이 탑재돼 쏟아져 나왔다.
10년이면 강산이 아니라 나라가 변할 만큼 빠르게 시간과 공간, 문명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었다.
“서련이와 FOB 줄 곡입니다.”
시간을 투자해도 감각적인 곡을 창작할 자신이 없었다.
머리에 기억된 수많은 걸 그룹 곡들이 뒤죽박죽 섞여 튀어나왔다.
“데뷔하시죠! 이사님 능력잡니다. 그냥 바로 휩쓸어 버릴 수 있습니다.”
제작자로서 욕심을 부리는 황연태 대표.
“저 데뷔 안 해도 먹고 살 만하지 않습니까? 흑자 전환했다는 소리 들었습니다.”
물량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실력 넘치는 연습생들을 뽑아 속속 시장에 내놨다.
반응이 좋았다.
가끔 들러 될 만한 곡들을 골라줬다.
그리고 FOB 애들만 특별히 관리했다.
서련이나 멤버들과 얽힌 인연들은 그만큼 순수한 만남이었다.
“그런데 이사님…….”
대표면서도 이사를 어렵게(?) 생각하는 황연태 대표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안무는 어떻게 할까요?”
“저보고 부탁한 거 아니죠?”
“애들이 워낙 바쁘게 활동하느라 이것저것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회사 대표 급이라 바빴습니다.”
내가 준 신곡 덕분에 FOB 멤버들은 걸그룹 탑이 됐다.
이곳저곳 안 가는 곳이 드물었다.
“물 들어올 때 모터 달자는 소리죠?”
“흐흐. 우리 이사님 센스가 남다르시다니까~.”
“대표님 욕심이 남다른 거 아닙니까? 전 받는 것도 없는데~.”
작사, 작곡 수입금 전액을 불우 이웃 돕기로 기증 했다.
나에게는 과거 누군가의 작사, 작곡으로 탄생했던 곡들.
미래 누군가의 것들이기에 그들을 위한 카르마 포인트로 사용되기를 원했다.
놀랍게도 그런 일들은 내게 카르마 포인트로 적립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양도가 가능한 것 같았다.
구름전투사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으로 썼지만 장희재 작가를 위해 돌아갔다.
지금 그가 새로 집필한 다른 작품은 수십만 부를 찍고 있다.
몰래 20만 부쯤 구매해 TS 그룹 지원 전국 도서관과 학교에 뿌렸다.
그렇게 양심 막 팔아먹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장희재 작가 인생은 내가 책임질 생각이다.
“그리고……. 음반 한 번 내셔야죠.”
프로듀서를 손짓으로 내보낸 뒤 황 대표가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안 낸다니까요. 제 일도 바쁩니다.”
“그게 아니라 그거요~.”
“뭐 말입니까?”
“베토벤 재림자. 흐흐흐.”
“어째 황 대표님 점점 웃음소리가 음흉해집니다.”
“회사 잘 키워야 콩고물 떨어지죠.”
“그게 팔릴까요?”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유튜브 동영상에 클래식 좀 한다는 분들은 다 관람했습니다. 5000만 뷰가 넘었습니다. 이거 앨범 내면 대박입니다.”
“그래요?”
“차별화해서 팔 생각입니다. 금장을 단 앨범은 10만 원 정도에 특별 수록곡 한 곡 더 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반 버전은 5만 원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비싸게요?”
“클래식은 가격이 높을수록 좋은 겁니다. 금장은 한정판으로 10만 장 뿌리죠.”
“아니 앨범 한 장 팔아서 100억을 벌겠다는 겁니까?”
“회사…… 뿌리 내려야죠. 이거 다 이사님 회사 아닙니까. 저에게 돌아오는 건 콩고물~ 쬐금~.”
손가락을 아주 작게 만들며 웃는 황연태 대표.
요즘 돈 맛을 제대로 안 것 같다.
귀신같이 사업 계획을 세웠다.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음악의 신들을 위해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의 미발표작으로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면 포인트가 지급될 수도 있었다.
전부 그들에게 회향할 생각이다.
웨이터로 만족하며 살기에는 그들의 능력이 아까웠다.
“안무는 확실히 준비해 두셨죠?”
“……제가 그렇게 믿음직스럽습니까?
“흐흐. 애들 준비시켜뒀습니다. 안무 녹화까지도요.”
“황 대표님 능력자십니다.”
“서련이가 미리 말해 줬습니다. 다음 곡은 오빠가 곡과 함께 안무까지 선물한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거든요.”
나에 대해 빠삭하게 파악하고 대처하고 있는 황연태 대표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가시죠.”
일단 오늘은 아니었다.
내일은 엄마와 스케줄이 잡혔다.
도도희를 비롯해 유세라 팀장과 연극 관람하며 바쁘게 지내는 엄마다.
아버지는 요즘 조생종 출하 준비로 바빴다.
경호회사 직원들이 상주하며 식사와 여러 일들을 거들었다.
쌍둥이들도 과외 선생님으로 보낸 여성 가드들과 언니 동생하며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애들이 부쩍 성숙했습니다. 이 바닥에서 진리로 통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진리요?”
“탑이 되면…… 온몸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도배된다고 말입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는 서련과 FOB 멤버들이 상당히 괜찮은 건 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탑은 아니었다.
반짝하다 사라졌던 가요계의 그냥 걸 그룹 중 하나였다.
“흐흐흐~.”
웃는 황연태 대표.
지하 안무실 앞에 도착했다.
지하라고 해도 환기를 위해 공기정화에 산소공급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딸깍.
문을 열었다.
파아앗.
내부에서 쏟아지는 밝은 조명.
그리고…….
“오빠아아아아아아아!!!”
상큼 발랄한 아우라로 무장한 한 소녀가 덥석 품에 안겨왔다.
# 266
회귀의 전설